〈 122화 〉소꿉친구의 전용 생체 오나홀: 60화(END)
어떻게 그토록 치열했던 사랑싸움이 그렇게도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일까? 세 사람의 사랑싸움이 마침내 막을 내리고, 칼디르가 만들어낸 인형인 오로라마저 솔트와 플랑의 음모에 빠져 무대 위에서 퇴장당하기 전으로 시계를 돌려 아리아와 버스터의 대화를 천천히 살펴보면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수 있었던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엄연히 자의를 지닌 지성 생명체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는 게 정녕 네 뜻이란 말이지? 잘 알아들었어.”
“내가 한마디 했다고 이런 식으로 퉁명하게 나오면 곤란한데. 나는 하위차원의 지성 생명체들을 가지고 노는 문제 자체에 관해서는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네, 아리아. 그저 ‘선’이라는 걸 지켜줬으면 했다는 말이야.”
“적어도 내게는 그 말이 그 말이야. 네가 말한 그 ‘선’이라는 걸 지키면서 연극을 펼쳐나가는 게 어디 보통일인 줄 알아? 칼디르의 몸을 가지고 아직 해보지 못한 일도 많은데 이제는 다 내 머릿속에만 꿍쳐 넣어두게 생겼네.”
“자네가 직접 창조한 생명체를 통제하는 일 정도도 못해서야, 어디 ‘모든 현실우주의 창조주’라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마음껏 떠들어보라지. 네가 뭐라 하건 간에, 이건 내 연극이니까.”
‘초월자’ 아리아와 버스터. 잠시 과거로 돌아와 이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칼디르를 어떠한 고통에도 쾌락을 느끼는 몸으로 만들어버린 뒤에 그녀의 삶에 계속해서 관여해온 아리아의 행태에 그의 절친이자 이번 ‘연극’의 유일한 관람객이라 할 수 있는 버스터가 제기한 불만이 마침내 관철된 모양이었다.
아리아가 버스터의 말을 퉁명스럽게 받아치며 마지못해 칼디르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 것을 보면 언제라도 지금의 약속을 깰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일단 그녀는 관람객을 무시하는 영화감독, 독자를 무시하는 작가, 시청자를 무시하는 방송사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원칙 아래 무릎을 꿇기로 하고는 행동으로 증명해 보였다.
모든 현실우주의 창조주요, 또한 모든 생명체의 어버이인 아리아가 어떤 생명체의 삶에 간섭하는 것이나, 그 간섭을 거두어들이는 일이나 그다지 어려울 것은 없었다. 실제로 아리아는 버스터와의 사이에 모종의 약조를 맺은 뒤에 그 즉시 칼디르와 그 주변인에 대한 간섭을 중단하였고, 그와 동시에 플랑이 나타나 세 사람의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버스터가 자신의 의견을 관철함으로써, 아리아의 마수 안에 놀아나던 칼디르가 ‘생명체가 느낄 수 있는 최대한도의 쾌락(죽음과 부활의 무한반복)’을 겪고는 폐인이 되어버리는 운명만큼은 회피할 수 있게 되었다. 공주님과 슈가 역시 죽음이라는 최악의 결과만큼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저 아이... 플랑이라고 했던가? 보기 드문 명 사또님이시네. 딜도를 법봉 대신 쓰고, 형벌로 딜도 삽입형과 보지 비비기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다가 그만두고 한다는 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부부관계를 교통정리 해주는 거라니... 아주 흥미로워.”
“허허, 그것참. 딜도를 손에 쥔 여판사님이라니? 아리아, 자네의 간섭이 중단되니 오히려 이 이야기의 방향성이 더 이상해지는 것 같군. 이 이야기가 정상화되기에는 간섭의 역사가 너무나도 오래된 탓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무슨 평가를 하기보다는 세기의 명판결을 보는 데 집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마지못해 당분간은 이 이야기에 간섭하는 것을 관두고 당분간은 그저 관망하기로 마음먹은 아리아의 눈에도 판사 겸 검사를 자처한 플랑의- 솔로몬의 지혜에 버금가는- 명판결(?)은 상당히 흥미진진한 것이어서, 그녀가 품은 불만을 어느 정도 달래주었다.
버스터 역시 아리아의 간섭이 중단된 이후에도 아침 드라마처럼 흘러가 버리는 이야기의 방향성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지으면서도 플랑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인류는 아리아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므로, 인류의 일원인 칼디르의 손에서 태어난 플랑은 ‘피조물의 피조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존재가 자기 주인의 젖가슴을 잠시나마 만지작거리며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재되어있는 성욕을 표출해 보이는 장면에서 어찌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있겠는가.
한낱 안드로이드 따위가 주제넘게 인간님들의 보지를 쑤시면서 심문하다가 부부관계를 정리해주기까지 하다니. 아, 중간에 플랑이 칼디르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녀를 시원하게 따먹어주었더라면 일이 더 재밌게 되었을 텐데, 아리아가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플랑은 이 악물고 칼디르의 유혹을 어떻게든 견뎌 내 보였다.
‘정신 차려, 플랑. 너는 주인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아. 주인님을 상대로 사랑하는 감정을 가진다거나, 성욕을 느낀다거나 하면... 안 돼.’
플랑이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어찌나 혀를 세게 깨물었는지, 인공 혈액이 줄줄 새어 나올 정도였다. 흠... 피가 나오는 걸 보면 플랑의 혀는 칼디르가 무기를 만들 때 애용하곤 하는 어떤 금속물질 대신 인공 세포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이야, 인간의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된 안드로이드가 내 딸의 유혹을 버텨낼 줄이야.”
아리아는 플랑의 굳건한 의지를 보고는 그렇게 말하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아리아 그 자신의 배로 칼디르를 낳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가 제 어미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눈여겨보고는 초능력 에너지를 흘려 넣어준 것이 아리아였으므로 ‘내 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칼디르라는 인간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플랑 덕분에 칼디르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이 어느 정도 매듭지어지고 난 다음에 펼쳐진 장면 역시 매우 특기할 만했다. 히로인의 여동생인 솔트가 여주인공이 만든 로봇과 합심하여 여주인공의 또 다른 피조물인 오로라를 떡집에 내다 버리고 튀는 꼴을 어찌 아니 특기할 수 있겠는가. 이게 특기할 사항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기록으로 남을 가치가 없다.
“오로라를 제물로 바쳐... 스토리를 구한다... 자, 돈은 선불로 받았으니까, 이쯤에서 냅다 버리고 튀자. 여기는 그 떡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니까 지들이 알아서 찾든지 말든지 하겠지, 뭐. 여기서 더 들어갔다가는 우리까지 붙들려서 교정 강간 엔딩 당하고 말걸.”
“에에, 주인님을 놔두고 교정 강간 엔딩이라니, 그건 싫어욧...!”
“잠깐, 그전에... 오로라가 가진 사연 정도는 쪽지에다 적어서 붙여두면 좋겠지. 됐다, 이제 튀자! 에로 망가 여주인공처럼 자궁 문신 각인 당하고 포르노 사이트에 강제 출연하고 싶지 않으면 냉큼 내 손잡고 워프 뛰어!”
플랑을 설득하여 이 일을 주도적으로 벌인 솔트는 짐짝처럼 들고 온 오로라를 적당한 곳에 대강 던져두고는 그 길로 플랑의 손을 잡고 도망가 버렸다. 몇 분 후, 아니나 다를까 그녀들이 말해준 통장에 돈을 꽂아준 사내들이 나타나 전원이 꺼져있는 오로라를 들고 자기네들의 영업장에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카넬리안을 팔아넘겼을 때처럼 고위귀족과 이어져 있는 끈을 이용하여 오로라를 지구에 계시는 높으신 분들에게 팔아넘기...기 전에 스위치 오프 상태의 오로라를 자기네들끼리 멋대로 돌려가며 그 귀여운 엉덩이를 몇 번이고 사용해주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솔트의 말대로 그녀와 플랑마저 그 사내들의 우악스러운 손에 붙들릴 뻔했다. 오로라의 소체에 들어있던 전투용 모듈을 그대로 부착함으로써 자신을 강화한 플랑이 옆에 따라붙은 데다 히로인의 여동생인 솔트가 이 시점에서 끌려갈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가 사람을 잡는 법.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오로라의 첫 사용자가 되는 영광을 얻은 마피아들이 그렇게 대담하게 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제아무리 무도한 마피아들이라고 할지라도 높으신 분들에게 팔아넘길 물건에는 어지간해서는 손을 대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경우, 판매자인 솔트가 오로라의 몸에 붙여놓고 간 쪽지에 따르면 오로라는 전투용 모듈은 모두 해체된 상태이나 처녀막 재생에 도움이 될 만한 모듈은 여전히 장비한 상태였으므로 엄연히 손님들에게 팔아야 할 물건에 그런 식으로 손을 댄다 하더라도 빠져나갈 길은 있을 터였다.
“오오, 이년 봐라. 애널 구멍에 내준 상처를 금세 회복해버린 걸 보면 그 쪽지에 적혀 있던 내용이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군. 이 정도면 웃돈을 더 얹어줬어도 됐겠어.”
“우리끼리 돌려쓰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참 골치 아플 텐데, 험하게 굴려도 걱정이 없다니. 그것참 존나게 편리하구만.”
처녀를 빼앗는 것은 물론이요, 중간중간에 저항이라도 하면 바로바로 갖가지 고문도구로 찍어 누르더라도 수리하느라 골머리 썩일 필요 없이 자기가 알아서 회복하는 섹스로이드라니. 이 얼마나 간편한 물건인가.
흐흐, 이미 몇 번이고 사용당한 뒤에 처녀 프리미엄 붙어서 원래 값의 몇 배에 팔려나가는 처녀 빗치라니.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방금 사정한 좆이 금방이라도 발딱 서버리게 되는구만!
며칠 뒤, 오로라는 카넬리안이 팔려나간 경로와 유사한 연락망을 타고 지구까지 흘러들어 갔다. 평소에는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경찰도 높으신 분들이 사들인 물건이 실린 함선이 지나간다고 하니까 기꺼이 호송 함선을 보내 주었다.
“자, 워프 게이트를 안전하게 이용하시라면... 통관료를 내셔야지?”
“에라이, 벼룩의 간을 내먹을 놈들아. 이번에는 얼마 벌어먹지도 못했는데 이만큼이나 떼어가겠다고? 어째 짭새라는 것들이 우리 마피아들보다 더 악랄하냐?”
“꼬우면 너도 마피아 때려치우고 짭새하든지. 그 둘이 크게 다르지도 않구만.”
경찰들은 호송을 핑계로 마피아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차피 높으신 분들이 이 나라 부의 99%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있으니, 나 하나 이런 식으로 소소하게 삥 뜯는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는 게 있을까? 부패한 경찰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다른 일은 다 잊어먹어도 뒷돈만큼은 꼬박꼬박 챙겨두는 자기 행동을 합리화만 하면 다행이고, 마피아들을 상대로 겨우 그 정도 먹고 만족할 수 있겠느냐고 빈정대며 업종 변경을 권하는 경찰들도 있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떡집 주인의 손에서 중계상을 거쳐 마피아들과 부패 경찰의 손아귀에서 잠시 굴려지다가 마침내 지구에 도착한 오로라가 그 작고 여리여리한 플랑의 오리지널 소체를 가지고 당한 일은... 뭐,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오로라는 자력으로 탈출할 수 없다. 오로라의 빈자리는 강화된 플랑이 채워줄 테니, 칼디르에 의해 구조될 일도 없다. 결국, 오로라는 솔트의 바람대로 스토리 전개를 위한 암흑 연성진의 제물로 바쳐지게 된 셈이었다. 오로라... 이제, 정말로, 영원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