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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화 〉총독부의 사정: 4화 (135/225)



〈 135화 〉총독부의 사정: 4화

“총, 총리대신... 아직, 아직... 나는  할  있소... 더 할 수... 있다니까...!”


“이쯤 했으면 충분하지 않소, 총독? 어차피 더 걸 것도 없어 보이는데, 이제 그대로 누워서 푹 쉬시오. 오늘만 날인 것도 아닐 텐데...”


발틱과 빌뇌브의 진검승부는 발틱이 오늘의 판을 위해 챙겨온 판돈을 모두 꼴은 후에도 더 할  있다며 난동을 피우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려 제압당하고 마약 주사를 맞아 흐물흐물 해짐으로써 비로소 끝이   있었다.

참으로 길고도 긴 싸움이요, 보는 사람 손에 땀이 다 나오게 할 정도로 흥미진진한 싸움이었다. 간신히 맺음이 지어지기 전까지 도대체 몇 개에 달하는 행성계와 이권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오간 건지 미처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판이 큰 싸움이기도 했다.

혹시나  싸움의 끝맺음이 완전한 연소가 아닌, 작은 불씨를 남기는 불완전 연소일까 싶었던 이들은 빌뇌브와 발틱만 남겨둔 채로 서둘러 밖으로 나가버렸다. 초대녀들은... ‘사람’이 아니라 ‘노예’였으므로 손님들이 도망가는 와중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지만 말이다.


한참 카드를 돌릴  광기 그 자체로서 군림했던 발틱은 진정제가 몸에 들어간 뒤에야 평정심을 되찾은 듯, 빌뇌브의 권유에 따라 소파에 대자로 누워 계집들의 전신 애무를 즐기며 남은 시간을 때우려 했지만... 약 기운 탓인지 손가락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총...리...대...신... 이, 이걸로 나를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하시지는 마시오. 다음에는 내 기필코 그대를 이겨 보일 테니...”


“총독. 그 말씀, 벌써  백 번인지는 아시오? 어제도, 그저께도 똑같은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내 신들린 포커 솜씨에 영혼까지 털리신 분이 포부는 크시군. 으하하하...!”

이제는 포커페이스도 풀어버린 채 발틱의 앞에서 대놓고 웃어 보이는 빌뇌브였다. 그렇게 웃다가 패배자의 기분이 영영 비뚤어져서 포커판과의 연을 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뒤엣말로 ‘이거, 농담인 거 아시지요?’하고 덧붙이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이제 게임도 끝났고 재미를  만큼 봤겠다, 빌뇌브는 자리를 뜨기 전에 패배자에게 조그마한 자비를 베풀어주는 심정으로 음식 서비스를 호출하였고, 곧 진귀한 음식들이 좌르르 서빙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코를 찌르는 향긋한 기름내에 축 처져 있던 발틱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역시나 약 기운 때문에 일어서지는 못했다.


한참 동안 카드를 돌리기만 했으니 배가 출출할 텐데, 왜 음식을 시켜다 줘도 먹지를 못하는 거냐! 자지를 달고 태어난 사나이 주제에 야시시한 계집년들이 숟가락에 얹어 호호 불어주는 것을 받아먹는 저 꼴을 한 번 보라.

“한때는 그로즈니와 함께 자웅을 겨루던 장수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셨는지 모르겠군. 그럼 나도 이만 가봐야겠소.  저택으로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많아서.”

진실은 발틱이 그로즈니에게 일방적으로 처맞은 것에 더 가깝겠지만, 그건 너무 노골적인 표현 같았던 빌뇌브는 그런 식으로 발틱을 돌려 깠다.


빌뇌브는 이제 정말로 그에게 볼 일이 없다는 듯이 돌아서서는 그대로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화성의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틱의 앞에서는 줄곧 무표정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폭소를 터뜨렸던 그였지만,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어쩐 일로 자리에 편안히 앉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방안을 서성였다.

“총독부의 운수도 이제 다한 모양이로구만... 그로즈니 놈에게 재미있는 장난감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무인으로서 싸워볼 생각도 하지 않고 저토록 축 쳐져있다니 말이야. 덕분에 오늘 포커판에서 재미는 쏠쏠하게 봤다만...”

빌뇌브 아틀라스 페르세포네, 그는 태생적으로 애국자와는 거리가  사람이었다. 수십년 전에 이미 육신의 조국인 아틀란티스 제국을 배반하고 루시드 제국을 팔아넘긴바 있는 그가 루시드 제국 정부에서 내려온 발틱 총독을 마뜩찮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는 지금, 또다시 동아줄을 갈아탈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조국을 한  배반해본 경험이 있는데,  번은 배반하지 못할까? 단지, 현 세계의 패권국인 카테스 제국이 반 루시드 기조를 유지하는 이상 새 동아줄을 구하고자 해도 구할 길이 없어 끙끙 앓고만 있을 뿐이었다.


오늘 연회장에서 난동을 피우는 총독의 목에 강제로 주사기를 꽂아 그를 진정시킨 것 역시 빌뇌브  자신이었다. 오늘 그의 포커 도전을 받아준 것 역시 그가 그로즈니를 상대로 이길 만한 인물인지 떠보기 위함이요, 용돈 벌이는 덤이었다. 만일 그가 진정으로 ‘새 조국’ 루시드 제국에 충성을 다하는 인간이었더라면 그런 짓은 하지도 않았을 거다.

내가 아무리 발을 동동 굴려도 빠른 시일 내로 루시드 제국이라는 이름의 배를 버리고 갈아탈 만한 배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으니, 그동안에 시간벌이를 할 방법이 뭐 없을까? 그는 한침이나 궁리한 끝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을 해냈다. 그것은 바로 총독부의 수장을 조금  믿을 만한 사람으로 갈아치우는 것이었다.

클로세 부총독은 발틱 총독과는 다르게 그나마 부패도 덜하고,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은 하는 모양이던데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 한시라도 빠르게 총독을 클로세로 갈아치우는 편이 좋으려나. 아니다. 그쪽에서도 이미 총독을 상대로 장난질을  수를 짜는 눈치였으니... 그 장난질에 훼방을 놓치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클로세 놈도 그로즈니 놈을 상대로는 오래 버틸  없을 테지만, 발틱 놈보다는 나을 거다. 클로세 놈도 기회만 생기면 내빼고도 남을 놈이긴 해도 일단 지금은 발틱 놈이 하도 빼돌려서 가난에 쪼들리는 총독부의 재정을 가지고 어떻게든 싸움을 이어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호승심에 물들어서 그로즈니 놈의 방어선에 무작정 꼬라박기라도 하던 발틱 놈이 요즈음은 인명 손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면서 발을 빼니, 이대로 가다가는 저항운동이니 뭐니 한다는 놈들 손에 나까지 쓸려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빌뇌브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도 사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당장에 황제로부터 위임도 받지 않고 옥쇄를 훔쳐내어 나라를 팔아넘긴다는 내용의 조약문에 쾅쾅 찍어버린 것만 따져도 사형감이 되기에는 충분했고, 저항운동을 한다 하는 이들은 좌·우파 할 것 없이 그를 매우 증오하였다.


대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루시드 인들을 제하고 나면 아마도 내가 영순위 체포 겸 처단 대상이겠지. 하지만... 사악한 빨갱이 놈들의 뜻대로 발틱놈과 함께 벌집 피자가 되어 거리에 내걸리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현시점에서 발틱 놈의 가치는 오로지 내 포커 상대 노릇을 해주는 현금 인출기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앞뒤 사정  집어치우고 발틱 놈한테서는 이미 빨아먹을 대로 빨아먹기도 했고, 놈의 주변 경호가 그토록 허술하다는  내 두 눈으로 보고 나온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빌뇌브는 발틱 앞으로 음식 서비스를 잔뜩 시켜놓고 연회장을 나올 적에 보고야 말았다. 자기가 방을 나오던 바로 그 시점에서, 방 안에 남은 남성은 발틱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방 근처에 무장 경호 인력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달리 말하면, 일이 터졌을  그를 지켜줄 사람도 없다는 뜻이 되었다.


경호 인력을 주변에 심어두면 겁쟁이로 몰릴까 봐 그러는지는 몰라도, 루시드 제국 본국조차도 걸핏하면 터지는 쿠데타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는 판에 자기가 언제까지고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 설마하니, 제 부하들은 야망이고 용기고 없어서 자기를 살해하고 그 자리를 꿰차려 들지는 않을 거로 생각하는 건가?

겁쟁이로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경호 인력을 많이 데리고 다니지 않는 거로 생각하기도 좀 그런 것이, 그는 오래전부터 군인으로서 전장으로 나아가 적을 무찌를 생각은 하지도 않고 질 생각부터 하고는 중요한 시점에서 내빼는 전형적인 겁쟁이의 태도를 보여왔으니 위선 그 자체라  수 있었다.

뭐, 허술한 경호 체계를 틈타 누군가가 보낸 자객의 손에 발틱 그놈 골통에 구멍이 뻥 뚫린다고 해도 클로세든, 그 누구든 간에 ‘새 총독’이 내 이권만 보장해준다면야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지만.


“클로세, 그놈은 발틱 놈을 상대로 장난질을 꾸미기를... 그냥 죽이는 거로 끝내지는 않겠다고 했던가? 흐흣... 흣... 놈이 발틱을 잡겠답시고 준비한  물건은 정말이지, 다시 떠올려도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군.”


빌뇌브는 괴뢰 아틀란티스 제국의 총리대신으로서 마땅히 섬겨야  총독부 내부에 스파이를 심어 어떤 형태의 내부 갈등이 존재하는지, 어떠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지금 정상에 앉아있는 발틱을 몰아내고 총독의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봐 온 바 있었다.


여러 가지 선을 통해 알아본 바대로라면, 부총독 클로세는 자신의 상관인 발틱을 상대로 차라리 죽느니만 못할 치욕을 안겨줄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것도 발틱이 좋아하다 못해 총독부 재정을 탕진해가면서까지 생산 명령을 내린 칼디르 칵테일을 이용한 계획 말이다.

내가 굳이 놈을 도와주지 않아도 오래지 않아 놈이 발틱을 향한 불만을 더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게 될 것 같은데. 그러면... 클로세놈의 계획은 지원은 하지 않되, 발틱놈에게도 알리지 않고 방관하는 거로 하고...  다음은  루시드 저항운동 세력 내부의 보수파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 남는구만.


“이봐,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이만 들어오게!”

빌뇌브가 기나긴 생각을 마치고 문밖을 향해 외치자, 순식간에 몇 명의 사내들이 달려와 그의 앞에 장문의 보고서를 남기고는 허리를 꾸벅 숙여보인 뒤에 곧바로 퇴장했다. 사내들이 가져온 보고서에는 반 루시드 저항세력의 동태에 관한 정보들이 빼곡하게 쓰여있었는데, 이와 같은 정보는 빌뇌브가 거취를 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있었다.


루시드 제국이라는 공통된 적을 앞두고 아틀란티스 내의 수많은 정치 세력은 일단 힘을 하나로 모으기로 결의한 바 있었지만, 공산주의를 혐오하며 제정을 복고하고자 하는 우파와 마찬가지로 그런 우파의 뜻을 부정하고 공화국을 세우고자 하는 좌파 사이의 갈등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이들 좌파와 우파 사이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지금보다도 더더욱 확실하게 가속화하고, 나와 비슷한 성향의 우파를 감언이설로 꼬드긴다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보험으로서의 역할은 톡톡히 해낼 것이다. 원래 이런 반간계는 총독부에서 마땅히 주도해서 진행해야 하는 일이지만, 총독이라는 놈이 술담배에 쩔어있고 도박과 계집질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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