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딩(Pending) 1
1장. 미완성 형제
1.
남자에게서는 짙은 우디 향이 풍겼다. 꼬고 앉은 다리를 감싼 검은색 정장 바지에서는 고급스러운 위엄이 느껴졌고, 무릎 위에 얹어진 기다란 손가락에서는 과묵한 신용이 비쳤다. 문성하는 자신에게 허락된 시야가 딱 거기까지인 것처럼 정자세로 그의 바지와 손가락을 번갈아 봤다. 위는 보지 않았다. 암막에 가려진 것처럼 빛이 들지 않았다.
“술을 전혀 안 드시네요.”
막 양주병을 내려 둔 교포가 말했다. 남자의 옆에 비서처럼 착석한 그는 신문에서 몇 번 본 일 있는 인물이다. 홍콩의 유명 PE 출신으로, 현재는 글로벌 벤처 투자 기업 NGX의 임원으로 있다. 훌륭한 이력이지만, 그가 보좌하듯 지키고 있는 남자에 비하면 흔한 범인(凡人)일 뿐이다.
NGX의 대표인 남자는 벤처 투자업계의 신(神)으로 불렸다. 반나절 만에 1조 원짜리 투자 계약을 체결한 일도 있었다. 투자는 예외 없이 성공했다. 감각을 타고난 것은 물론이고 과감하기까지 한, 선택받은 사업가였다.
“모르는 사람과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몇 번이고 옆 얼음 통에 따라 버리고 난 위스키 잔을 쥐며 문성하가 말했다. 그 위로 손을 가져간 교포가 양주병을 기울였다. 순식간에 잔이 목 끝까지 찼다. 문성하의 얼굴을 담은 진갈색 표면이 찰랑이며 부서졌다. 조금만 더 채우면 불어난 홍수처럼 넘칠 게 분명했다.
“원래 그렇게 낯을 가리십니까.”
불현듯 눈앞의 남자가 운을 뗐다. 문성하는 묵묵히 눈동자를 끌어 올렸다. 비로소 그와 눈이 마주쳤다. 끄무레한 조명이 두 사람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틈에 진눈깨비처럼 내려앉았다. 문성하가 건조하게 답했다.
“좀 그런 편입니다.”
“다행이네요.”
남자가 팔을 내밀었다. 문성하의 앞에 있던 위스키 잔이 그의 커다란 손아귀 안에 들어왔다. 죽 당겨 자신의 입가로 가져간 남자가 재차 문성하를 응시했다. 미동도 없이 식어 가는 검은자위가 보였다.
“저에게만 이런 게 아니라서.”
말을 마친 그가 고개를 젖혔다. 잔 하나를 꽉 채운 양주가 벌컥거리며 목을 타고 넘어갔다. 지켜보던 문성하의 손가락이 옴짝거렸다. 옆의 교포가 문성하의 눈치를 보며 제 어깨를 주물렀다.
탁. 비워진 잔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낯빛 하나 바꾸지 않은 남자가 입을 훔쳤다. 곧 소파에 뒀던 재킷을 챙겨 제 어깨에 걸쳤다. 교포가 탐탁지 않게 물었다.
“벌써 간다고?”
남자가 고저 없이 대꾸했다.
“낯가리는 사람 앞에서 너무 시간 뺏는 거 예의 아니야. 물론 난 저쪽을 알지만. 그래서 술 마셨고.”
재킷을 갖춰 입은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곧 문성하를 힐긋하며 정중히 인사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입을 다문 그가 성큼성큼 걸었다. 문성하는 공기 같은 눈길로 그를 관조했다. 말라붙은 입에서 작지만 또렷한 한 마디가 샜다.
“다시는 볼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주 대표님.”
남자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입구 앞에 서서 문을 열어젖힐 뿐이었다. 나서는 그를 따라 교포가 뛰쳐나갔다. 탁. 두 사람이 사라진 끝에 문이 닫혔다. 텅 빈 룸 안에서 문성하가 묵은 숨을 터뜨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테이블을 지키는 양주병과 잔, 과일 접시와 포크 따위가 보였다. 문성하는 초점 없는 눈으로 그것들을 둘러봤다. 별것도 없는 곳을 별것이 있는 것처럼 보다가, 문득 남자가 있던 자리에 눈을 뒀다. 그가 남기고 간 음영이 어스레하게 죽어 가고 있었다.
나아간 손이 그가 들었던 위스키 잔을 쥐었다. 깨끗한 잔 안에는 딱 한 방울의 양주가 남아 있었다. 문성하는 잔을 당겼다.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천천히 입을 축였다. 메마른 입술이 쌉싸름하게 녹아 갔다. 문성하의 눈이 반쯤 감겼다.
네가 돌아오면 안 되지.
진정 자신을 생각했다면, 돌아와선 안 됐다. 문성하는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3개월의 신기루였다.
5년 전.
남자는 나뭇잎을 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자신이 심은 나무를 훼손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지잉. 빤히 베란다 밑을 내려다보던 문성하의 주머니가 진동했다. 잡고 있던 난간을 무의미하게 두드린 끝에 손을 내려 주머니에 넣었다. 빠져나온 핸드폰 액정이 요란하게 번쩍였다. 한가운데 적힌 건 ‘ST인베스트먼트 최재율 팀장’. 쯧. 혀가 절로 차였다.
“더럽게 끈질기네.”
짜증스럽게 핸드폰 진동을 껐다. 그럼에도 화면의 글자는 쉬이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문성하의 눈이 일그러졌다. 또 무시한다고 끝날 것 같지 않다. 부재중 전화를 여덟 번이나 남긴 놈이다.
“왜.”
끝내 통화 아이콘을 누르고 귓가에 가져갔다. 퉁명스러운 반응이 끝나자마자 상대방 쪽에서 시근덕대는 소리가 났다. 이어 한껏 고조된 욕설이 귀를 찔렀다.
[문성하, 이 개새끼야.]
“욕 말고 말을 해.”
[너 진짜 양심이 있어?]
“없어. 대한민국에서 양심 챙기면 그 사람만 손해지.”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고는 발을 뻗었다. 거실을 가로지르며 부엌 쪽을 살폈다, 바글바글 끓고 있는 빨간 냄비가 보였다. 금방이라도 넘칠 듯해 걸음을 재촉했다. 상대방의 어조가 격양돼 갔다.
[씨발, 네가 먼저 얘기했잖아. 피데스비에서 시리즈B1) 오픈하면 나하고 나눠 먹겠다고.]
“그야 예의상 한 말이지. 그 정도 눈치도 없어?”
[너 진짜 사람이냐? 혼자서 10억 원짜리를 홀랑 다 먹어? 내가 피데스비 투자하고 싶어서 거기 대표며 이사들 찾아다니며 수도 없이 밥 산 것 알잖아.]
“그 밥 내가 처먹었어? 왜 나한테 이래.”
[야. 너 진짜…….]
그르렁거리며 목 끓는 소리에 귓바퀴가 섰다. 이건 좀 섹시한데. 속으로 생각하며 가스레인지 불을 줄였다. 들썩이던 냄비 뚜껑이 점점 가라앉았다.
[내가 작년에 세교전지 너한테 나눠 준 건 생각도 안 하지? 이 배은망덕한 새끼야.]
드디어 나왔군. 문성하는 예상했다는 듯 홀로 끄덕였다. 이쯤에서 최재율이 선심 쓰듯 나눠 준 세교전지 지분 얘기를 꺼내겠지, 하던 차였다. 그에 대한 대답 역시 준비돼 있었다.
“그거 형이 나하고 섹스 한 것 좋았다면서 선물이라고 준 거잖아. 그거하고 이건 다른 얘기지.”
숨도 고르지 않고 삐딱한 언어를 흘렸다. 핸드폰 너머에서 환장하겠다는 양 악쓰는 소리가 났다. 문성하는 말없이 뚜껑을 열어 냄비 안을 살폈다.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된장찌개가 팔팔 끓고 있었다.
[너 진짜 지독한 놈이다.]
체념 섞인 비난은 구문(舊聞)에 가까웠다. 문성하는 보다 크게 주억거렸다.
“나도 알아. 형.”
[그따위로 살지 마. 정신 나간 업계 새끼들이 오냐오냐해 주니 네 멋대로 휘젓고 다녀도 될 것 같지? 너 그 곱상한 얼굴 얼마나 갈 것 같아.]
“아마 10년은 더 갈 것 같지만, 새겨는 들을게.”
바글거리는 거품을 보며 꼬박꼬박 말대꾸를 했다. 혼자 약이 오른 최재율이 씨발, 소리를 냈다. 딱 먹기 좋게 익은 두부를 확인한 문성하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슬슬 꺼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딩동.
돌연 현관 쪽에서 벨 소리가 났다. 문성하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은 없다. 휴일이라 택배가 오는 날도 아니다. 통상 떠올릴 수 있는 답은 두 가지다. 경비원이거나, 잡상인이거나.
일단 현관 쪽으로 갔다. 서벅서벅 나아가는 발걸음이 피로했다.
“누구세요?”
문을 열어 바깥을 살폈다. 제한적으로 비치는 실루엣이 제법 길었다. 일단 경비원은 아니다. 문성하는 좀 더 위쪽을 봤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 기억하시는지…….”
단정하며 듣기 좋은 저음에서 불안감이 묻어났다. 맑고 찬란한 가운데 먹구름을 숨긴 하늘. 귀는 황홀하지만, 단박에 기의(記意)를 파악하기 어렵다. 기묘하다 생각하면서도 문성하는 계속해 남자를 봤다. 눈을 떼기 어려웠다. 절로 입이 벌어지는 비주얼이었다.
키 190 정도. 체격 좋아 보임.
클 듯. 상위 0.1%로 예측. (출처: 자체 빅 데이터)
10점 만점에 9.5.
0.5 감점 사유: 나보다 어린 것 같음. 본래 연하는 취향 아님.
결론: 덕분에 행복한 주말이 됨.
빠르게 분석을 마친 후 갸우뚱했다. 주춤하는 그의 넓은 어깨가 보였다. 입을 다신 남자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저 주혜성이에요. 형.”
아. 이번에는 제대로 입이 벌어졌다. 핸드폰 쥔 손이 사르르 풀렸다. 안에서 스마트폰이 조금 흘러내렸다.
[야, 문성하. 듣고 있어? 피데스비 시리즈B 아직 클로징 안 했으니까, 거기 CEO한테 추가 오픈 가능한지 물어봐서…….]
“야. 끊어.”
[투자 끊겼다고?]
“끊으라고. 새끼야.”
다짜고짜 통화 종료 아이콘을 누르고는 핸드폰을 뒤로 숨겼다. 남자의 눈에 띄지 않는 각도에서 크게 심호흡한 후 다시 현관 너머를 확인했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일단 들어와요.”
체인을 걷고 문을 열어 줬다. 우두커니 선 남자가 문성하의 눈치를 봤다. 더 이상 눈을 주지 않고 등을 보였다. 부엌과 거실의 경계에 다다르자마자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용암처럼 끓어 넘치는 냄비가 보였다. 망할! 부리나케 달려가 불을 껐다. 현관 쪽에서 탁,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바닥까지 줄줄 흐른 국물을 행주로 훔치며 물었다. 여전히 남자로부터는 돌아선 채였다. 들숨을 삼킨 상대방이 답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
죽었군. 흥건하게 젖은 행주를 보며 영혼 없이 곱씹었다. 인기 없는 TV 드라마의 주인공이 죽었다는 소식만큼이나 감흥 없는 사실이었다.
“여긴 왜 온 거야. 그거 알려 주러?”
“그건 아니고요.”
남자가 말을 흐렸다. 바닥을 닦고 난 행주가 가스레인지를 덮었다. 벌어진 뚜껑 틈으로 보이는 된장찌개가 삼분의 일은 줄어 있었다. 거지 같네. 지리멸렬한 자국을 적당히 훔치다 냅다 행주를 던진 문성하가 뒤를 돌아봤다. 우뚝 선 남자가 긴장한 채 어물거렸다.
“그냥 형이 보고 싶어서 왔어요. 이제 전 가족도 없고……. 갑작스럽게 혼자가 된 기분이라.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데, 형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흥신소에 의뢰했어요. 형 찾아 달라고.”
“뭐?”
절로 언성이 높아졌다. 탄식하듯 제 얼굴을 짚은 남자가 사과했다.
“죄송해요. 기분 나쁘시죠.”
“아니. 뭐……. 그렇다기보다는.”
이번엔 문성하 쪽 말이 흐릿해졌다. 멍하니 남자를 보다가, 삐걱거리며 고개를 틀어 가스레인지를 응시했다. 다시 쥔 행주가 정처 없이 남은 국물을 훔쳤다. 천에 스민 잿빛 채도가 짙어져 갔다.
외부 기관까지 동원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께름칙한 기분은 둘째치고, 습관적으로 생각해 오던 익숙한 명제에 의거한 것이다.
자신은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계속 서 있지 말고 어디에 좀 앉아.”
등 뒤로 손짓을 했다. 뜸을 들인 끝에 식탁 의자에 앉는 기척이 느껴졌다. 문성하는 계속해서 행주질을 했다. 가스레인지가 허무할 정도로 깨끗해져 갔다.
“어디서 왔어?”
“미국이요.”
“나 떠나고 난 후 계속 거기서 산 거야?”
“네.”
“그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겠네?”
“아뇨. 미국으로는 안 가요.”
갓 청소를 마친 손이 멎었다. 찌푸린 면상이 돌아갔다. 반듯하게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제법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 한국에 정착하려고요.”
내내 소극적이던 아까와 달리 놀라울 정도로 확고한 어조였다. 자신이 지금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자못 얼어붙은 문성하가 물었다.
“한국에 뭐가 있는데?”
“형도 있고…….”
나직하게 찾아든 언어가 곧 끊겼다.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처럼 다음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문성하의 입에서 초조한 질문이 나왔다.
“설마 그게 다는 아니지?”
“그게 다인데요.”
천연덕스레 눈을 깜빡인 남자가 동공을 키웠다. 아예 문성하를 박제할 기세로 제 망막에 새겨 가며, 그가 말을 이었다.
“형하고 같이 살고 싶어서 왔어요. 저.”
문성하의 목을 타고 굵은 침이 넘어갔다. 손에 질질 이끌린 행주가 가스레인지 가장자리에 걸렸다. 툭. 천 쪼가리가 떨어졌다. 숨을 몰아쉰 문성하의 입이 달싹였다. 뭐라도 답하기 위해 입술 틈을 만들었다가, 없앴다가, 또 만들고, 결국 없앴다. 끝내 택한 건 가스레인지 쪽의 벽을 보는 것이었다.
문성하를 담은 하얀색 사각 타일이 수십 개는 돼 보였다. 그 어떤 조각에도 만족할 만한 자신은 담겨 있지 않다. 버겁게 얼굴을 쓸며 싱크대 위편을 힐긋했다. 유리문을 단 찬장 너머로 듬성듬성 자리한 수저와 식기 따위가 보였다. 물건 늘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최소한의 필수품만 갖춰 놓는 경우가 많았다.
젓가락, 숟가락, 포크, 접시, 그릇……. 그 어떤 물건도 세트로 구성한 게 없다. 모든 것이 철저한 일인용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남을 받아들이는 일은 지옥이다.
“식사했어?”
찬장을 더듬은 문성하가 물었다. 의아한 반문이 돌아왔다.
“식사요?”
“어. 밥 먹었냐고.”
“아직……. 안 했습니다.”
“그럼 일단 먹어. 지금 차려 줄게.”
수저와 그릇, 접시를 챙기며 문성하가 말했다. 등 너머의 남자는 답이 없었다. 조금은 어리둥절해하는 듯 보였다. 문성하는 개의치 않고 마저 움직였다. 밥공기에 밥을 담고, 국 공기엔 찌개를 담았다. 남자의 앞에 수저와 함께 놓아주고는, 냉장고를 열어 몇 가지 반찬을 뺐다. 딱 뚜껑만 열어 내줄까 하다 너무 무성의한 것 같아 새 접시를 꺼냈다. 하얀 표면 위에 서너 가지 반찬이 보기 좋게 올라왔다.
“차린 건 없지만, 먹어. 나 원래 요리 잘하는 편이 아니야. 딱 필요한 것만 익히고, 하는 성격이라서.”
남자의 앞에 반찬 접시를 두며 문성하가 중얼거렸다. 문성하와 식탁을 번갈아 본 남자가 느릿느릿 숟가락을 들었다. 까만 머리통이 정중하게 기울었다.
“잘 먹겠습니다. 형.”
“그래. 많이 먹고.”
말을 마친 문성하가 밑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빠르게 인터넷 창에 접속해 호텔 예약 사이트로 들어갔다. 적당한 비즈니스호텔을 검색한 후 일주일 치를 통째로 예약했다. 삼 분만에 결제까지 마친 끝에 얼굴을 들었다. 막 국물 맛을 본 남자가 문성하를 보며 웃었다.
“맛있어요. 형.”
“그래? 다행이네. 밥 더 필요하면 얘기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 주는 식사니, 최대한 챙겨 줘야지.”
단출한 응수에 남자의 이마가 움찔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문성하가 덧붙였다.
“나 너 받아 줄 생각 없어. 미안하지만.”
문성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믿어서 좋았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피가 섞인 동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안해요. 형.”
멀거니 문성하를 보던 남자가 덜컥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작지만 싸늘했다. 지켜보던 문성하가 흠칫했다. 시선을 비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부담되게 했네요. 가 볼게요.”
몸을 세운 남자가 구십 도 각도로 허리를 굽혔다. 지나칠 정도로 정중한 태도였다. 도로 바로 선 그가 뚜벅뚜벅 현관을 향해 걸었다. 경직된 채 서 있던 문성하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덜덜거리던 발이 불현듯 움직였다. 막 문을 열고 나서는 남자의 등으로 달려가, 뒤에서 팔을 챘다. 멈춰선 남자가 적지 않은 침묵 끝에 얼굴을 보였다.
“그, 말이지…….”
무작정 열린 입이 갈피를 못 잡고 더듬거렸다. 자신을 향하는 남자의 눈길이 느껴졌지만, 차마 그 낯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머릿속이 오로지 한 가지 상념으로 가득했다. 온몸의 맥조차 거기에 쏠려, 다른 것을 할 여력이 없었다.
보낼 때 보내더라도, 미안해하며 보내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미 10년 전에 겪은 이별의 방식이니까.
“말을 잘못했어. 일단 들어와.”
적절한 한 마디를 완성하지 못해 결국 애매한 지시를 흘리고 말았다. 다만 계산이 필요 없는 몸은 몹시도 솔직해, 남자를 잡은 손이 쉼 없이 옴지락거렸다. 머리맡에 내려앉는 눈빛이 묵직해졌다. 문성하는 여전히 마주 보지 못했다.
제법 긴 정적이 흘렀다. 선고의 서두처럼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탕.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문성하의 눈망울이 올라갔다. 팔을 옥죈 문성하의 손을 거머쥐며, 남자가 안쪽으로 몸을 들였다.
“네. 형.”
1)시리즈B: 스타트업의 두 번째 투자 유치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