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23.4도. 그 온도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이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지도 않았다. 건조하거나 습하지도 않았다. 1년에 손꼽을 정도로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숫자조차 안정적이었다. 23.4.
창밖에서는 어린아이가 울고 있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나 그 직전으로 보였다. 흑인까지는 아니지만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는 라틴계 여성으로 추정됐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를 다독이던 어머니가 이쪽 창문을 힐끔거렸다. 주혜성은 묵묵히 그녀를 마주 봤다. 기겁한 어머니가 대뜸 아이를 안아 들었다. 이내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피곤한 팔뚝이 늘어졌다. 흔들거리던 손에서 툭, 무거운 물건이 떨어졌다. 바닥에 부닥친 사냥용 장총이 저 멀리 미끄러졌다. 아버지가 동료 대학교수로부터 헐값에 사 온 것이었다. 그걸 들고 주말여행을 가는 걸 두 번 정도 봤다. 실제로 뭔가를 잡아 온 적은 없었다.
커튼이 팔랑였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에 쓸려 베이지색 천이 하늘하늘 나부꼈다. 여인의 찰랑이는 머리카락 같았다. 홀린 듯 바라보다 햇살을 따라 눈동자를 미끄러뜨렸다.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에 다다른 시선이 어느 지점에서 멎었다. 낭자한 붉은 피가 하나의 강을 이룬 곳이었다.
문득 펄떡이는 소리가 났다. 주혜성의 눈이 좀 더 돌아갔다. 검붉은 혈흔을 뒤집어쓴 채 굳어 가는 몸뚱이가 보였다. 주혜성은 한 걸음 물러섰다. 바닥에 몸을 내려 앉히고, 호수 같은 눈길로 남자를 관조했다.
살았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7분 20초 전 자신이 쐈고, 1분 35초 전 맥박을 확인했을 때 멎어 있었다. 게다가 심장을 정확히 맞춰 날려 버렸다. 살았을 턱이 없다.
경찰은 언제 올까. 소리를 들은 이웃집에서 신고를 안 했을 턱이 없는데.
뇌까리며 왼쪽 허리를 주물렀다. 9분 46초 전 아버지로부터 맞은 부위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지혈을 해야 하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묵은 때처럼 혈류가 하강하며 나른해지는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뭐라고 진술해야 할까. 정당방위는 당연한 것이고, 그에 앞서 다툼이 일어난 배경을 설명해야 한다. 문제는.
자신조차 가마득하다. 애초에 이 일이 왜 벌어졌는지.
고개를 젖힌 채 천장을 봤다. 메이드가 사흘에 한 번꼴로 털어 대 먼지 한 톨 비치지 않는 샹들리에 조명 등이 휘황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손을 뻗어 찰랑이는 크리스털 덩어리를 휘 잡아 보았다. 닿지 않았다. 애초에 잡을 수 없는 거리다. 화가 나진 않았다. 아까 전에는 아주 많이 화가 났지만.
잡을 수 없다는 게, 그리도 많이 화가 났다.
“내 것을 내 것이 아니라 해서.”
흘러내린 손바닥이 바닥에 붙었다. 바위 같은 표면을 긁어 대다 손톱을 박고는 콱 힘을 실었다. 딱, 소리를 내며 손톱 하나가 작살이 났다. 손가락에서도 피가 났다. 주혜성은 초점 없는 눈으로 생채기 난 자리를 내려다봤다. 조금조금 생겨나는 붉은 우물이 시뻘건 구렁텅이 같다. 그 형형한 구덩이 속에서, 성난 한 마디가 튀어 오른다. 아까 들은 아버지의 것.
-그러니 너도 더 이상 그놈에게 얽매이지 마라. 너하고는 처음부터 아무런 관계가 아니야. 나하고도 아무런 관계가 아니고. 그러니 놈에게 그 해코지를 하고도 내가 죄책감 따위를 느낀 적이 없지.
아버지는 포효했다.
-분명히 얘기한다. 놈하고 네 사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둘 다 어느 날 무슨 사고를 겪어 죽는다 해도 무덤에 꽃 한 송이 놔 줄 이유가 없는 사이라는걸!
“그래. 그거였지.”
깨달았다는 양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바삭한 입술 틈에서 긴 숨이 샜다. 아버지가 참으로 많은 실수를 했다. 형에게 해코지를 했고, 그래 놓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은 숨결을 고무처럼 씹어 대던 주혜성의 울대뼈가 돌연 곤두섰다. 날 선 잇새에서 성난 혼잣말이 터졌다.
“어디 개 같은 소리를…… 어떻게 형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아니야.”
그르렁거리는 한 마디가 덧붙었다.
“어떻게 문성하가 내 것이 아니야.”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던 얘기를 들었다. 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같은 허황된 얘기. 정말이지 너무도 말이 안 되는 얘기였고, 그걸 내뱉은 사람이 아버지였고. 그래서.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
“누구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소파 쪽에서 질문이 들렸다. 주혜성은 심상하게 노트북 화면을 봤다. 화상 회의 창 속 알렉스가 손을 흔들었다. See ya. 성의 없이 인사한 주혜성이 창을 껐다. 밋밋한 기본 바탕 화면이 나타났다.
“원래는 제가 가야 하는데.”
마우스를 치운 주혜성이 등을 젖혔다. 등받이에 기댄 고개가 늘어졌다.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더니, 그쪽에서 오겠다 했습니다.”
“항상 얘기한 그분이죠?”
주억거린 남자가 손님용 테이블 쪽으로 손을 뻗었다. 삼분의 이 가량이 빈 체스판을 가볍게 쓸고는, 곁눈질을 보냈다.
“하여간 보통 사이가 아닌 모양입니다.”
“다 알면서 그런 얘기하지 마시죠.”
정색한 주혜성이 경고했다. 낯빛 하나 바꾸지 않은 남자가 마저 체스판을 정돈했다. 주혜성은 가만히 사라지는 말들을 봤다. 분명히 아까 전 남자와 체스를 둔 기억이 있는데,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영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이겼던가, 남자가 이겼던가. 내 쪽의 검은색 ‘킹’이 살아 있는 걸 보면 내가 이긴 쪽인 듯한데.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평소에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래서 어떻게 했고,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를 분과 초 단위로 기억하면서 왜 지금은 그게 되지를 않을까.
하여간 문성하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이런 식이다.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항우울제 한번 드셔 보세요. 가장 약한 걸로 처방해 드릴 테니.”
“우울증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환자들은 종종 그렇게 얘기하죠.”
남자가 말끔해진 체스판을 접어 밑에 내려 뒀다. 주혜성이 미간을 좁혔다.
“쓸데없는 얘기 마시고, 하던 대로 수면제나 잘 처방하세요.”
“근본적인 불안감을 해소시키지 않으면 때때로 수면제도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통상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같이 처방하죠.”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주혜성이 탄식했다.
“김 선생님.”
“요즘에 그분하고 사이 좋다면서요. 같이 여행도 다녀오고. 그런데 왜 먼저 연락을 안 했습니까. 그쪽에서 기다릴 것 뻔히 알면서.”
남자가 허를 찔러 왔다. 주혜성이 멈칫했다. 미동하던 눈망울이 비껴 났다. 남자를 외면했음에도, 그에게서 꽂혀 오는 눈길이 아주 잘 느껴졌다. 주혜성은 화풀이를 하듯 날숨을 뱉었다. 씨발, 그냥 엮이지 말걸. 왜 그놈의 체스를 둬서.
남자를 만난 곳은 NGX 빌딩 사람들이 공용으로 쓰는 휴게용 라운지였다. 한 달 반 전 방한해 NGX코리아에 출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남자는 4인용 테이블에 홀로 앉아 체스를 두고 있었다. 좀 조용한 곳에서 하시지, 눈 둘 구석 없어 힘들 텐데. 지나가며 한마디 했더니 남자가 등 뒤에서 물었다. 혼자 많이 두셨나 봐요? 주혜성의 얼굴이 돌아갔다. 보지도 않은 남자가 중얼거렸다.
“혼자 많이 둬 본 사람이 할 법한 얘기잖습니까.”
그날을 계기로 남자와는 종종 체스를 뒀다. 처음엔 어디 식당 매니저인가 했다. NGX와 베이스터 사무실을 제외한 빌딩 저층부와 끝 층이 전부 레스토랑이었다. 굳이 묻지 않았지만 으레 그러려니 했고, 레스토랑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했을 때 위화감 없이 대답하기에 사실상 확신하고 있었다.
의아한 건 그가 주혜성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는 점이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NGX 빌딩에서 근무한다면 모를 수가 없다. 빌딩에 붙은 전광판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뜨는 얼굴이다. 그걸 아예 안 보는 건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잘 두시네.”
다섯 번째로 체스를 둔 날이었다. 패배한 남자가 박수를 쳤다. 주혜성은 말없이 남자의 ‘킹’을 가져갔다. 남자와는 총 일곱 판을 뒀고 그중 여섯 판을 주혜성이 이겼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남자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조금 즐거운 기색이었다.
“밤에 잠 안 올 때마다 혼자서 체스 뒀거든요.”
주혜성이 말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남자가 갸웃했다.
“불면증입니까.”
“아마도요.”
“병원 가 봤어요?”
“정신과 말씀이시죠.”
“네.”
“그런 데는 좀……. 환자 취급받는 기분이어서.”
“적절한 약과 함께 수면제 복용하면 나아질 수 있을 텐데요. 경험을 안 해 봐서 막연하게 거부감 느끼는 모양입니다. 시간 될 때 한번 와요. 바로 옆 건물이니까.”
남자가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면전에 내려앉은 사각 종이를 본 주혜성의 입에서 허, 소리가 났다. 정신과 원장이었다.
처음엔 안 가려 했지만, 남자와 체스 게임을 두 판 더 하고 결국 갔다. 문성하가 빌라 집을 빼고 연락처까지 바꾼 뒤 완전히 잠수를 탄 무렵이었다. 잠이 안 와 죽을 것만 같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갔다. 다짜고짜 수면제를 처방해 달라 하자, 남자는 일단 앉아서 얘기부터 하자 했다. 뻔뻔스러운 한마디는 덤이었다.
“이유 없는 불면증은 없거든요. 그리고 초진 환자가 온 지 일 분도 안 돼 수면제만 받아 갖고 나가면 바깥에 있는 우리 직원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앉아요. 주혜성 대표님.”
주혜성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자신을 진작 알았구나 싶었다.
“주 대표님은 그냥 두려운 겁니다. 그분하고는 습관적으로 상처 주고, 상처받는 일만 반복했으니까. 조금이라도 그럴 여지가 있는 상황이 오면 지레 발 빼는 버릇이 생긴 거죠. 문제는 앞으로 더 심해질 거라는 겁니다. 한번 정착한 습관은 바꾸기 쉽지 않거든요.”
구둣발로 체스판을 건드린 남자가 중얼거렸다. 주혜성이 대꾸했다.
“원래 사람이 그런 것 아닙니까. 상처 주고, 상처받고. 그러다 상황에 따라 도망치고.”
“맞는 얘기예요. 통상적인 연인 간에 흔히 발생하는 일이죠. 그런데 주 대표님은 조금 다릅니다. 지금까지 그런 걸 겪어 본 적 없던 사람이 갑자기 겪었다는 점에 있어 말입니다.”
남자가 소파 시트를 찍어 눌렀다. 곤두선 집게손가락을 표면에 붙인 그가 입을 뗐다.
“생각해 봅시다. 여기 어린아이가 있어요. 성장 과정이 어떻게 될까요? 뻔하죠. 유치원 가고, 초중고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대학을 가거나 사회생활을 하겠죠. 그 과정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때로는 경멸하고. 그러면서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겠죠.”
“제 얘기입니까.”
“죄송하지만 반대입니다. 주 대표님은 제가 봤을 때 초등학생쯤에 멈춰 있거든요. 그분을 처음 만난 12세 무렵 말입니다.”
집게손가락이 까딱거렸다. 주혜성이 인상을 썼다.
“꼭 유아 퇴행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기분이네요.”
“비슷할지도 모르죠. 제가 지금까지 들은 주 대표님 성장사에는 아주 큰 부분이 결여돼 있어요. 사람. 타인을 겪고, 타인과 부딪치고, 타인을 이해하는 이런 경험들. 그런 게 전반적으로 없어요. 주 대표님은 그냥 공부를 하고 개발을 하고 회사를 운영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알아서 따라왔죠. 애초에 동등한 관계가 아니에요. 당연히 주 대표님 입장에서는 타인을 두고 고민하거나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요.”
남자의 손가락이 떨어졌다. 턱을 괸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민이 필요한 존재가 나타난 겁니다. 12세 때 겪은, 주 대표님 인생사에 있어 유일한 ‘사람’이 10년 만에 다시 나타납니다. 주 대표님은 이 사람과 일반적인 소통을 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못 해요. 왜? 아까 말했잖습니까. 주 대표님은 10년 동안 진짜 사람을 만난 적이 없거든요. ‘이런 사람’에 대한 학습이 크게 부족하단 얘기입니다.”
주혜성의 뒤꿈치에 힘이 실렸다. 바닥을 디딘 구두 굽이 언짢게 짓밟혔다. 머릿속에 열기가 들어차는 기분이었다. 기분 나쁘게도 사실이었다.
주혜성은 지금껏 타인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문성하를 제외하고. 그래서 문성하가 가끔은 무섭다. 그의 앞에서는 할 줄 몰랐던 걸 해야 한다. 그게 두렵다.
못하는 걸 해야 하는 과정에서 실수할까 봐 두렵다.
“그래서 주 대표님은 마치 종교인이 신을 두려워하듯 그분 앞에서 움츠리는 경향이 있어요. 뭐, 학습 부진아가 갑자기 보통 학생 진도 따라가려니 벅찬 거라고 칩시다.”
입을 다문 남자가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안에서 빠져나온 건 트럼프 카드 케이스였다. 뚜껑을 연 그가 읊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주 대표님이 문제없이 감당할 거라 믿습니다.”
남자가 밑 부분에서 몇 장을 뺐다. 이어 하나하나 테이블에 올렸다. 올라온 건 10, 잭, 퀸, 킹이었다. 전부 스페이드 문양을 달고 있었다. 남은 카드를 섞어 가던 그가 턱짓했다.
“이게 뭐로 보입니까.”
“트럼프 카드죠.”
“이건 평범한 카드가 아닙니다. 제가 운 좋은 사람이라 직감한 분을 테스트할 때 쓰는 카드예요. 모든 사람은 특정한 운명을 타고나는데, 그렇게 타고나길 잘 풀리는 사람이 있거든요. 참고로 사이비는 아니에요. 일종의 영감 같은 거라고 해 두죠.”
스무 번 넘게 카드를 섞고 난 남자가 소파에서 일어섰다. 다가오던 그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직전 단계입니다. 10, 잭, 퀸, 킹, 에이스 카드 다섯 개가 같은 문양으로 모이면 그렇게 부르죠. 대단히 운 좋은 순간이라는 징조고요. 특히 스페이드는 그중에서도 최고의 패로 꼽힙니다.”
“그런데요.”
“지금부터 주 대표님은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완성할 스페이드 에이스를 뽑을 겁니다. 한 번은 솔직히 어렵고, 다섯 번 안에 뽑아요. 내가 장담합니다.”
데스크 앞에 선 남자가 위에다 트럼프 카드를 펼쳤다. 정체를 숨긴 50장의 카드가 늘어졌다. 주혜성은 잠자코 관자놀이를 눌렀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픈데, 별 쓸데없는 걸 시험하는 남자가 슬슬 피곤했다.
“아무거나 고르면 됩니까.”
“그럼요. 마음 가는 대로요.”
주혜성의 손이 나아갔다. 막 카드를 잡기 전, 데스크 위의 전화기가 울렸다. 멈춘 주혜성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귀에 대자 프런트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1번 딜입니다.]
입을 축인 주혜성이 답했다.
“들어오시라 해요.”
한숨과 함께 수화기를 내려 둔 손이 다시 카드 위로 갔다. 아까 잡으려 한 것 대신 다른 걸 골라 들었다. 뒤집는 것과 동시에 남자가 주춤했다. 어깨를 늘어뜨린 그가 흥미롭다는 양 감탄했다.
“이건 정말로 처음인데…….”
스페이드 에이스였다.
“이걸로 확실해졌네요.”
주혜성의 손에서 카드를 뺀 남자가 남은 것들을 쓸어 모았다. 하나로 모아 테이블에 툭, 쳐 가며 정돈한 그가 덧붙였다.
“주 대표님은 정말로 운이 좋아요. 누구 덕인지는 몰라도 말이죠.”
철컥.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저편에서 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드러나는 문성하를 힐금한 남자가 소파로 걸어갔다. 재킷을 챙긴 그가 가붓한 손 인사를 했다.
“그럼 또 봅시다. 주 대표님.”
성큼성큼 걸어간 남자가 문성하를 지나쳐 갔다. 어깨를 스친 문성하가 엉거주춤했다. 딱 입구를 밟고 선 채 들어오지도 빠지지도 않은 문성하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주혜성은 의자에 앉아 데스크 위의 주먹을 뭉쳤다. 안에 땀이 들어차는 기분이었다. 운 좋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걸 확인까지 했다. 그런데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행운’은 감히 확신할 수 없다.
“제대로 대답해. 너 나 안 보려고 했어?”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든 문성하가 버럭 했다. 동그랗게 응어리진 눈망울이 검은 보석처럼 빛을 발했다. 짓무른 입술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새빨개, 절로 혀가 달아 왔다. 주혜성의 주먹이 점점 풀렸다. 등줄기를 타고 몸서리칠 정도로 저릿한 혈류가 흘렀다. 제법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코앞인 것처럼 밀려드는 짜릿한 눈빛이, 달콤한 체향이, 미지근한 기류가.
어느 것 하나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도록 하는 게 없었다.
“CCTV 보이는 곳에 서 있지 말고, 이리 와.”
주혜성이 천천히 팔을 펼쳤다.
“지금 대답 못 해. 머릿속이 다른 걸로 차 있어.”
문성하가 멈칫했다. 주혜성이 덧붙였다.
“사람이 아닌 수준으로 키스하고 싶어. 형한테.”
쾅, 소리가 났다. 요란하게 문을 닫은 문성하가 눈을 치떴다. 나아간 발이 넓은 보폭으로 내뻗어졌다. 주혜성은 조용히 기다렸다. 15년 전부터 늘 그랬던 것처럼, 문성하가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렸다.
눈앞에 다다른 문성하가 세차게 멱살을 챘다. 앉아 있던 몸이 자석처럼 이끌렸다. 들린 얼굴에 그늘이 졌다. 이내 누기가 찾아들더니, 부리나케 입술이 찍혀 눌렸다. 후끈하며 오싹한 감각이 표피를 엄습했다. 얼어 있던 세포가 꽃처럼 만개하고, 처절한 전율이 몸을 메웠다. 주혜성의 뒷덜미가 길게 울렸다.
허우적거리며 팔을 뻗었다. 부러뜨릴 기세로 문성하의 허리를 휘감아 끌어안았다. 이어 비벼 대던 입을 우악스레 열었다. 보다 깊숙이 그에게 들어갈 셈이었다. 하지만.
탁! 날 선 마찰음이 두 사람의 틈을 가로질렀다. 몸을 떼어 낸 문성하가 눈을 시퍼렇게 떴다. 화들대는 어깨가 한눈에 들어왔다. 축축한 눈초리가 형형했다.
“됐어? 이제.”
싸늘한 음성이 들렸다. 주혜성은 잠자코 입을 훔쳤다. 화낼 건 예상했다. 상대가 문성하다. 자신이 무려 15년을 학습한 사람이다. 이 반응을 어찌 예측하지 못했을까.
그럼에도 하고 싶었다. 하지 않으면 미칠 정도로 피가 끓었다. 매번 그랬지만, 방금 전은 더 그랬다.
문성하가 자신을 보기 위해 먼저 와 줬다. 처음이었다.
“지금 중요한 게 뭔지를 몰라? 내가 나 기만하지 말라고 했지. 속이지도 말라고 했지. 그런데 왜 말을 안 들어. 빤히 보이는 잠적하면서 내 속이 어떨지, 그 생각은 안 했어?”
불현듯 날아든 주먹이 어깨에 꽂혔다.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은 주혜성이 목을 젖혔다. 하얀 형광등 빛이 만월처럼 흐무러지고 있었다. 아프지 않았다. 정말이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문성하가 더 이상 제 감정을 사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과잉될 정도로 화를 내며 주혜성을 갈구한다는 사실이.
그저 좋아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께름칙하게 헤어진 다음 잠수 타고. 뉴스에서는 네가 CEO에서 밀려 나네 마네 떠들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마음 편히 지냈을 거라 생각해? 너 나한테 실수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 지금 이게 실수하는 거야. 어?”
“미안해.”
뇌까린 주혜성이 어깨에 덮인 손을 감쌌다. 풀린 눈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끄덕였다. 손아귀에 잡힌 문성하의 주먹이 벌벌거렸다. 주혜성이 다정하게 눈매를 접었다.
“더 때려. 맞을 짓 했으니까.”
“씨발 새끼야.”
시근덕거린 문성하가 주먹을 뺐다. 이내 쏜살같이 주혜성의 가슴팍에 내리꽂았다. 맞은 부위가 일순 시큰했지만, 역시나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황홀하기까지 했다.
“형한테 남자로 관심받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세 번째로 날아든 주먹까지 고스란히 받아 낸 주혜성이 중얼거렸다. 문성하의 숨이 거칠어졌다. 비스듬히 쳐다본 주혜성이 말을 이었다.
“내가 진짜 동생이었다면, 형 나에게 이렇게 못했어.”
느른한 한 마디가 따라붙었다.
“동생을 못 때리거든. 형은.”
가슴팍에 붙은 주먹이 꿈틀거렸다. 경련하던 문성하의 머리통이 푹 기울었다. 주혜성의 윗눈썹이 비뚜름해졌다. 얼굴을 더 확인하고 싶은데, 이 각도에선 보이지 않아 애가 탔다.
“주혜성.”
한참의 침묵을 삼킨 끝에 문성하가 면상을 드러냈다. 확인한 주혜성이 얼어붙었다. 커다란 눈망울 그득히 물기가 차 있었다. 뭉친 방울이 비처럼 뚝 떨어져 내렸다. 주혜성이 힘겨운 심호흡을 했다.
문성하가 울었다. 제대로 본 건 처음이었다. 놀라웠다. 단지 울어서가 아니라.
왜 이걸 진작 본 적이 없었을까 싶을 정도로 예뻐서였다.
“나 안 떠난다고 얘기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문성하가 쏘아붙였다. 주혜성은 홀린 것처럼 시선을 고정했다. 넋을 잃은 입에서 청연 같은 대답이 나왔다.
“안 떠나.”
“기만하지 말고.”
“안 해.”
“속이지 말고.”
“안 해.”
범람하는 개울처럼 흔들리는 눈이 그럼에도 맑았다. 색색거린 문성하가 가슴팍을 억누른 손을 거뒀다. 이내 버겁게 제 눈을 홈착거렸다. 좀처럼 얼굴이 깨끗해지지 않았다. 눈물을 닦으면, 또다시 물기가 찼다.
“나한테 키스해.”
억지로 얼굴을 씻어 낸 문성하가 지시했다. 주혜성의 몸이 고분고분 일으켜졌다. 문성하의 등 뒤로 팔을 넣으며, 서서히 상체를 낮췄다. 내려간 입술이 문성하의 눈에 밀착했다. 춥, 소리 나게 빨아들인 주혜성이 문성하의 허리를 다독였다. 가까스로 가라앉힌 언어가 나왔다.
“그만 울어. 그럼 키스 못 해.”
“닥치고 해.”
“형이 이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반문하는 주혜성을 무시한 문성하가 불쑥 손을 올렸다. 어깨가 사납게 부여잡히며 젖은 눈이 가까워졌다. 단숨에 맞붙은 입술에서 또 불꽃이 튀었다. 할딱인 문성하가 주혜성의 어깨를 마구 긁었다. 머릿속이 열탕 속의 얼음처럼 녹아 갔다. 문성하의 허리를 두른 팔뚝에서 핏줄이 펄떡였다. 꿀렁거리는 주혜성의 울대뼈를 타고 신음이 터졌다.
“하아…….”
“더 빨아 줘.”
“터뜨려도 돼?”
“뭐 하러…….”
“조금만. 형 거 먹고 싶어.”
주혜성의 고개가 비스듬해졌다. 말랑한 아랫입술을 가볍게 씹고는, 살살 치아를 박았다. 어깨를 덮은 문성하의 손가락이 곰지락거렸다. 주혜성은 아예 문성하의 하반신을 다른 쪽 팔뚝으로 받치며 안아 올렸다. 문성하의 머리가 조금 높아졌다.
살을 질근거리던 치아가 어느 한 곳에 박혔다. 툭, 핏물 터지는 소리가 났다. 문성하의 입에서 달뜬 호흡이 터졌다. 빠르게 이를 거둔 주혜성이 빨개진 부위를 물었다. 버둥거린 문성하가 야릇한 소음을 흘렸다.
“흐읍……. 좋아.”
“맛있어. 진짜로.”
속삭인 주혜성이 문성하의 몸을 데스크 위에 앉혔다. 눈높이를 편하게 맞추고는, 본격적으로 입술을 흡입했다. 녹진하며 뜨끈한 물이 입 안을 채워 왔다. 전혀 비릿하지 않았다. 그저 달았다. 주혜성은 안달한 것처럼 문성하의 체액을 쉼 없이 삼켰다.
두 사람의 입술을 타고 핏물과 타액이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맑은 물만 나올 때까지 피를 내주며, 문성하는 습관처럼 주혜성의 어깨에 손톱을 박아 댔다. 데스크에 걸친 무릎이 이따금 달달거렸다. 주혜성은 문성하가 떨어지지 않게끔 허리를 두른 팔을 꽉 조였다.
말갛던 문성하의 볼이 묘한 홍조에 젖어 갔다. 힐긋한 주혜성이 더운 숨을 흘렸다. 욕정에 찬 혀가 뱀처럼 입술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컴컴한 곳에서 두 사람의 살이 바듯하게 엉겼다. 문성하의 머리가 들썩거렸다.
“으으음…….”
슬금슬금 밀려 난 문성하의 손이 어느 서류를 움켜쥐었다. 버스럭거리며 종이가 쪼그라들었다. 뒤늦게 밑을 일별한 문성하가 깜짝했다. 접합해 있던 입이 조금 떨어졌다. 문성하가 초조하게 말했다.
“이거 구겼어. 혜성아.”
보지도 않은 주혜성이 도로 문성하의 입을 덮쳤다. 쑥 뻗어 나간 혀가 아까보다 깊숙이 안을 헤집었다. 목구멍 근처까지 핥고 난 주혜성의 눈꺼풀이 흘러내렸다. 약에 취한 듯한 혼잣말이 나왔다.
“괜찮아. 더 구겨.”
***
세 시간 가까이 사무실 안에 있었다. 닐슨 CFO 건과 관련한 보고가 이십 분 단위로 들어와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주혜성은 전화가 오거나 화상 회의 창이 뜰 때마다 업무를 했고, 마치고 나면 다시 문성하와 키스를 했다. 키스만을 그렇게 오랫동안 한 게 처음이었다.
맞닿은 입을 통해 익숙한 숨결을 느낄 때마다 아랫도리는 쉽게도 부풀었다. 다만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키스를 더 하고 싶었다. 문성하도 같은 마음인 듯 딱히 몸을 섞자는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합의 아래 아주 긴 시간 입맞춤을 했다.
구름 뒤에 숨어 높다랗게 뜬 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서로의 물기가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빨아들였을 무렵 두 사람은 잠시 입을 뗐다. 문성하를 안은 채 키스를 하다 벽에 부딪친 탓에 스위치가 내려가 실내는 어둑했다. 주혜성의 가슴에 기댄 문성하가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주혜성은 잠자코 제 품을 응시했다.
먼 곳에서 날아든 달빛이 옆얼굴을 등불처럼 밝히고 있었다. 새하얀 볼이 한층 눈에 띄었다. 왼쪽 눈꼬리에 걸린 보조개며, 색정적인 가운데 온화한 눈매가 덩달아 오롯했다. 주혜성은 그림을 감상하듯 가만히 내려다봤다. 조금은 난해한 명작 영화의 아름답고 사연 깊은 주인공처럼 숨만 고르는 제 사람을 봤다. 그러다 떠올렸다. 왜 그렇게 오늘은 키스만 하고 싶었는지.
이 얼굴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누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신만이 독식한 것처럼, 그 누구에게도 내 줄 여지없이, 오로지 주혜성만이.
문성하를 아주 많이 갖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사무실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 로비 층 버튼을 눌렀다. 죽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어느 층에서 멈췄다. 열려 가는 문틈으로 남녀 실루엣이 비쳤다. 주혜성은 바로 알아봤다. 권도재와 한나였다.
“이제 퇴근해?”
손에 든 서류를 팔랑거리며 권도재가 물었다. 옆에 있던 한나가 문성하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문 대표님.”
“네. 오랜만입니다.”
꾸벅한 문성하가 눈치를 보다 주혜성의 뒤에 숨었다. 그 짧은 새, 문성하를 관찰하던 한나의 눈이 골똘해졌다. 미적거리다 흘러간 시선이 이번에는 주혜성에 걸렸다. 확신했다는 양 면상이 심각해졌다. 제 뺨을 어루만진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혼잣말을 했다. 아, 머리 아프다.
“너하고 형 그거 아니야? 그……. 뭐더라.”
갑자기 몸을 튼 권도재가 운을 뗐다. 한나가 소스라쳤다. 허공을 본 권도재가 한탄했다.
“아,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 뭐였지 그거.”
“또 무슨 쓸데없는 얘기를 하려고? 입 다물고 퇴근이나 해.”
한나가 훈수를 뒀다. 개의치 않고 고민하던 권도재가 제 머리를 서류로 탁, 쳤다. 명쾌한 외침이 터졌다.
“아. 그거!”
“야, 이 새끼야!”
갑자기 한나가 빽 소리를 질렀다. 기겁한 권도재가 움츠러들었다. 뒷걸음질 친 그가 한나와 주혜성, 문성하를 번갈아 보며 해명했다.
“구순 포진……. 헤르페스. 피곤해서 입술에 뭐 나는 거. 그거……. 그게 뭐. 그렇게까지 욕먹을 일이야?”
권도재가 억울해했다. 한나가 멍해졌다. 괜히 주혜성과 문성하를 힐끔거린 그녀가 입을 다셨다. 곧 느릿느릿 주억거리며 사과했다.
“미안. 욕먹을 일은 아니지.”
***
“혼자 퇴근하려고 기사 보냈다가 다시 불렀어. 이 앞으로 올 거야. 형 집에 들렀다 가자.”
빌딩 앞에 선 주혜성이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바로 대답하지 않은 문성하가 눈을 굴렸다. 주혜성이 꺄웃했다. 어물거린 문성하가 입을 뗐다.
“오는 건 좋은데, 집에 있는 재림이는 건드리지 마.”
“내가 뭘 건드려.”
헛웃음 친 주혜성이 고개를 돌렸다. 한밤의 강남대로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감상하듯 바라본 주혜성의 입이 열렸다. 저도 모르게 속내가 나왔다.
“그럴까 봐 두렵긴 한데.”
“야.”
주혜성의 손목을 잡은 문성하가 으름장을 놓았다. 곁눈질한 주혜성이 피식거렸다. 그새 빳빳해진 문성하가 하나도 무섭지 않은 고슴도치 같았다. 주혜성은 가만히 입매를 풀었다. 날연한 혼잣말이 나왔다.
“결국은 안 해.”
‘그런 상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피치 못할 사정을 붙여 해외에 보내거나, 협박범을 보내 문성하의 곁에서 영영 떨어뜨릴까 하는 생각. 수백 번쯤 한 것 같다. 그럼에도 결론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문성하가 너무도 아끼는 것이라, 차마 건드릴 수 없었다.
“저 차야?”
문성하가 저편을 가리켰다. 점점 다가오는 세단에서 두 눈이 번뜩였다. 주혜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선명해진 실루엣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고개가 저어졌다. 색깔만 같지, 완전히 다르다. 흔히 볼 수 있는 국산 세단으로 주혜성의 전용차와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저건 아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에서 부웅, 소리가 났다. 불현듯 속도를 높인 차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황급히 빠진 손이 문성하의 팔을 잡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까지 문성하를 밀어뜨렸다. 영문도 모르고 자빠진 문성하가 끄응, 신음하자마자 망막이 아릴 정도로 환한 빛이 전면을 엄습했다.
이후의 소리를 주혜성은 기억하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먼 외계에서 찾아든 것처럼 끄무레했다. 그 와중에 한 가지는 기억한다. 어느 울걱거리는, 문성하의 목소리.
“동생 아니에요. 애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