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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인지 부조화 (7/13)

Chapter 7. 인지 부조화

지금까지 대충 잘 놀며 지내 왔던 영상광고실습 수강생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최종본 발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짜 본격적으로 광고 제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상진아, 연우야. 안녕?”

강재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상진을 향해 많이 아파서 답장을 못 했다며 미안하다 했다. 오늘 날씨를 말하듯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선배님 드랍 한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졸인 줄 알아요? 집으로 찾아갈 뻔.”

“하하, 그럴 리가. 내가 에이뿔 맞게 해 준다고 했잖아.”

재하는 강의실 일체형 책상 가장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다음 지난번 연락을 언급하며 자연스럽게 김상진을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연우는 재하가 의도적으로 자신과 떨어져 앉았음을 눈치챘다. 언젠가 제가 똑같은 짓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화를 낼 때가 나았다. 웃는 낯으로 아무렇지 않게 광고 카피 따위나 스토리보드 컷 수 따위를 논하는 모습을 보니 발로 정강이를 차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콘티 앞부분을 휴대폰 클로즈업으로 가지 말고, 앱을 시행하는 화면 녹화를 해서 띄우면 어떨까요.”

“좋네. 그러면 좀 더 깨끗한 화면을 딸 수 있으니까.”

강재하는 연우의 의견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는 도대체 제게 왜 이러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눌러 앉혔다.

연우는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몇 달 전이었다면 강재하가 자신을 내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짧은 사이 강재하라는 존재를 속속들이 알게 됐다. 지난 1년 동안의 사전 정보와 두 달 동안의 매일 같은 만남, 그리고 집착에 가까운 짝사랑이 더해진 결과였다.

강재하의 눈빛은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짜 미소는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당연히 강재하가 예전처럼 매일같이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하는 일도, 디 팔로아로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팀원 1’, ‘동아리원 1’ 같은 존재로 강등당하고 만 것이다.

“이 부분은 상진이랑 나랑 둘이 같이 하자. 연우는 앱 공식 설명 부분 깨끗하게 좀 따서 줄래?”

“……네, 선배.”

아니, 그것도 아니다. ‘팀원3’, ‘동아리원 30’ 정도 위치라고 보는 게 걸맞겠다.

어찌 보면, 지난한 짝사랑을 끝낼 좋은 기회였다. 저 스스로는 놓을 수 없는 마음을 상대가 알아서 끊어 주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잘된 거야. 헤테로한테 코 꿰여서 인생 망칠 뻔했다고. 그러나 아무리 잘된 일이라고 되뇌어도 연우의 마음은 침전물처럼 낮게 가라앉았다. 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사기극이 들통난 건 아닐 테고. 내 마음이 들킨 것도 아니겠지. 아마 은경이 때문이겠지. 생각하다 보니 그에게 미움받을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스토리보드에 소품 디테일을 끄적이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아…….”

집중을 못 하던 사이, 펜이 탁자 밑으로 떨어졌다. 펜은 재하가 앉은 쪽까지 데구루루 굴러갔다. 연우가 몸을 아래로 숙임과 동시에 재하도 고개를 책상 아래로 넣고 손을 펜 쪽으로 뻗었다.

손가락이 맞닿고, 두 쌍의 눈이 서로를 인식했다. 연우는 그 순간 며칠 전 봄날에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아…….”

마주쳤던 눈과, 가까워져 붙었던 입술. 꿈속에서 선배가 주었던 뜨거움과 생생한 황홀감 같은 것들이 해일처럼 덮쳐 왔다. 사람 많은 한낮의 강의실에서 떠올리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환상이었다. 연우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재하의 견고한 가면에 균열이 갔다. 그럴 리 없는데, 후배의 얼굴은 마치 키스라도 해 달라고 조르는 듯이 보였다.

하마터면 재하는 그대로 고개를 틀어 입술을 맞댈 뻔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사라지려는 이성을 되찾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서 비추어 보고 있을 뿐이다. 정신 차리자.

그는 펜을 집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직도 아래에 머물러 있는 후배를 내려다봤다. 여전히 초조한 감정이 그의 눈 안에 맺혀 있었다.

* * *

지독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행동 양상을 보인다. 거리를 걷다가 쇼윈도 너머 디피된 옷만 봐도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함께 먹고 싶다고 생각한다. 게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대한민국 평범한 짝사랑남인 연우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국밥집에서 경제 뉴스를 보다가 좋아하는 상대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연우는 식당에서 깍두기를 한 입 베어 문 채 TV 화면을 보다가 그 진귀한 경험을 했다.

“토일 그룹 강승환 회장은 일감 몰아주기 등 부적절한 방법을 통해 사익을 편취한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강 회장은 오늘 오전 한남동 저택을 나서며 소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앵커의 무감한 목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의로 경제전문채널 뉴스를 본 적이 없었다. 나라의 경제를 이야기하는데 파리가 앉았다는 방송 사고 영상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그러니까 이건, 우연한 발견이었다.

뉴스에는 토일 그룹 강승환 회장이 저택에서 나서는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70세를 넘긴 나이에도 등이 꼿꼿했고, 눈빛이 매섭게 살아 있었다. 그러나 젊었을 때 잘생겼을 것 같은 남자라도 노인이라 연우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연우를 놀라게 한 진짜 주인공은 강 회장이 아니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 세 명이 강 회장을 비호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남자의 낯이 익었다. 강재하의 빌라 앞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었다. 재하 군에게 죽을 전해 달라던 어두운 피부의 남자.

“……설마.”

아침 드라마 같은 ‘재하 군’이라는 호칭, 그리고 종종 비서님을 찾던 강재하. 또 휴관일에 아무렇지도 않게 박물관을 열어 달라던 천진난만함. 그리고 엠비셔스 인사팀과 그가 직접 연락했다며 분노하던 이준형.

“허…….”

모든 게 단 하나의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각난 퍼즐이 맞아 들어가면서 전율이 찾아왔다. 헬렌 켈러가 ‘물’을 처음 알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연우는 입술을 바르르 떨며 손에 맺힌 땀을 티슈로 닦았다.

“할아버지 안 돌아가셨잖아! 이…… 사기꾼!”

“미친, 밥 먹다 말고 왜 이래?”

연우가 떨군 숟가락이 챙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김상진은 그거 다 먹은 거냐며 반도 비우지 않은 연우의 밥그릇에 눈독을 들였다. 어차피 밥맛은 떨어진 지 오래다. 너 다 먹어라 하고 밥공기를 김상진 쪽으로 내밀었다. 연우는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토일 그룹이라니…… 하, 진짜 꿈도 못 꿀 다른 세상이네.”

“왜 그래. 한국대생이 입사 못 할 회사가 어디에 있냐.”

아무것도 모르는 김상진이 ‘보이즈, 비 엠비셔스!’를 외쳤다. 그러고는 엠비셔스에 꼭 같이 입사하자고 했다. 그룹사 내 광고계열사는 광고를 못 따와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속물적인 말도 덧붙였다.

연우는 홀로 남겨진 공강 시간이 돼서야 약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는 벤치에 앉아 포털 사이트에 ‘토일 그룹 가계도’를 검색했다. ‘토일 그룹 가계도를 알아볼까요?’라는 제목의 블로그 게시 글이 가장 상단에 보였다.

토일그룹,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대기업 가운데 하나인데요!^^

가족 관계를 알아볼까요? ╭( •̀ •́ )╮

토일그룹은 1960년대 토일상운에서 시작한 기업이에요!

역사가 60년이라니... 정말 대단하죠? d=(´▽`)=b

강승환 회장에게는 아들이 셋 있는데요

셋 모두 외모가 준수한 미중년이라고 합니다 (하아...)

축복받은 유전자 같으니 ㅋㅋㅋㅋ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링크 클릭! ☞WWW.xx.nw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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