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처음 섹스를 할 때는 몇 개의 주의 사항이 있다. 첫째, 부모님한테 제대로 된 핑계를 댈 것.(나이가 몇 살이든, 자식은 늘 부모님한테 아기니까.) 둘째, 무리해서 끝까지 삽입하지 말 것. 셋째, 웬만하면 한 번만 할 것.
그러나 이러한 주의 사항은 본능과 욕구 앞에서 잊히기 십상이다. 연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섹스 후 남은 거라고는 부재중 전화 수십 통이 찍힌 휴대폰과 장기가 파열될 것 같은 고통뿐이었다.
연우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귀청이 터질 뻔했다. 그러나 재하가 전화를 대신 받자 어머니의 목소리는 천사의 음성으로 바뀌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실은 서울에서 저희가 좀 싸웠거든요. 술 한잔하다 보니까 깜빡하고 잠들어서 연락을 못 드렸어요. 제가 챙겼어야 했는데.”
- 어유, 어쩐지 둘이 분위기가 이상하더라니. 분명히 우리 아들이 잘못했겠지! 그래서, 싸운 건 잘 풀었어요?
“네. 잘 풀었어요.”
너무 잘 풀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바로 붙어먹을 정도로.
연우는 방금 통화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남자끼리 사귀는 것도 장점이 있었다. 부모의 간섭과 의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대단한 장점이. 심지어 그 상대가 대놓고 ‘어제 같이 잤다’고 말해도 쌀 한 톨만큼도 의심받지 않았다.
강재하는 전화를 끊자마자 의기양양해졌다. 완전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심지어 연우의 어머니는 둘이 더 놀다가 늦게 들어오라고 했다. 그들은 기쁨에 겨워 한동안 엉겨 붙은 채 침대 위에서 노닥거렸다.
그러다 다시 불이 붙었나 보다. 예열을 마친 강재하가 다시 하체를 붙여 왔다. 그러나 연우는 둔통을 이유로 칼같이 거절했다.
“오늘은 이제 안 될 것 같아. 너무 아파.”
“아, 많이 아파?”
재하는 뜨거운 수건을 들고 와 허리를 찜질해 주었다. 그는 정성스럽게 지압도 해 주고, 프런트에서 의약품을 요청해 아래에 연고도 발라 주었다. 연우는 삼십 분이 넘도록 황제 마사지를 받자 노곤노곤해졌다.
“이렇게까지 안 해 줘도 돼.”
“안 돼. 아껴 쓸 거야. 그래야 계속 쓰지.”
“…….”
통증 때문에 브런치는 자연스럽게 룸서비스로 대체됐다. 재하는 프렌치 토스트를 흡입하는 연우를 제 자식이라도 된 듯이 물고 빨았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 깨물었고, 진짜로 빨았다.
“밥 먹는데 체할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 나서야 상대는 아쉬운 얼굴로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재회 기념일 오후를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의논했다. 미술관, 레스토랑, 바다, 드라이브……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서로가 ‘뭐든지 상관없다’고 하는 바람에 의견이 하나로 좁혀지지 않았다.
“너랑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못 고르겠어.”
강재하는 스마트폰을 보다가 던져 버렸다. 오늘 같은 날에 어울리는, 뭔가 특별한 걸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더 많을걸.”
연우도 호기롭게 말했다. 그는 강재하와 같이 하고 싶은 것을 100개라도 댈 수 있었다. 그때 연우의 말을 들은 강재하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그럼 우리, 하고 싶은 거 말하기 게임 할까?”
“응? 뭔 게임?”
“서로 같이하고 싶은 걸 하나씩 얘기하는 거야. 3초 안에 못 대는 사람이 지는 거고.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이 말했던 것들을 모조리 같이 해 줘야 해.”
“그, 그래. 좋아.”
연우는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연우가 그와 같이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강재하도 좋아할 만한 것들이었다. 강재하가 하고 싶은 거 역시 그럴 거다. 둘은 취향도 비슷하니 말이다. 그러나 완전한 오산이었다.
“나부터 할게. 음… 난 선배랑 우리가 처음 만났던 카페에 다시 같이 가 보고 싶어.”
“그렇구나. 난 너 여장 한번 시켜 보고 싶어.”
“……어?”
연우(Lv.1)가 패닉에 빠졌다!
강재하는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3, 2…… 하고 숫자를 셌다. 안 돼. 이 게임은 거대한 함정 카드였다. 이렇게 된 이상 절대로 질 수 없다. 연우는 재빨리 다른 소재를 찾았다.
“나, 난 커플 아이템 맞추고 싶어. 티 안 나는 걸로.”
“난 너 한번 묶어 보고 싶어.”
“악! 그건 같이하는 게 아니잖아!”
“그럼 너도 나 묶어.”
연우의 공격에도 강재하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런 하드코어한 게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내 고결한 천사 어디로 갔어……. 연우는 거의 울상이 된 채 억지로 다음 소재를 찾았다. 자신도 상대에게 이상한 걸 시켜 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로 어릴 적 앨범 바꿔서 보고 싶어…….”
“귀엽네. 난 너 토끼 옷 입혀 보고 싶어. 침대에서.”
“……나랑 하고 싶은 게 그딴 거밖에 없어?!”
“3, 2…….”
“아악! 나는 지금 선배랑 싸우고 싶어!”
연우는 진저리를 쳤다. 이러다 지면, 여장을 하고 토끼 옷을 입은 채 묶여서 심한 짓을 당하게 되는 거다. 이제부터는 게임이 아니고, 인간의 존엄성이 달린 배틀이었다.
“진짜? 슬프다. 나는 너랑 평생 사랑하고 싶은데.”
“……어?”
강재하가 연우의 볼에 입을 맞췄다. 성적인 느낌이 전혀 없는 애정이 담긴 뽀뽀였다. 그러자 사고가 그대로 정지했다. 상대가 처음으로 꺼낸 사랑이라는 단어, 그 낯설고도 기분 좋은 설렘이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그래서 연우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을 입술만 달싹였다.
“그럼…… 내가 이겼네.”
연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평생 사랑하면서 살자.”
게임에 졌지만, 대신 윤연우는 평생의 사랑을 얻었다. 버거운 현실도, 불안한 미래도 이 순간만큼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거짓투성이인 나를, 못나고 비겁한 면까지 다 받아 준 사람. 그와 함께라면 가시밭길이라도 걸어갈 수 있을 테다. 연우는 강재하가 내민 손을 잡았다. 이제 오랜 시간을 웅크린 채 머물렀던 벽장에서 나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페이퍼 플레인 러브 본편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