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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틀린 그림 찾기
우연이 몇 개가 겹쳐야 필연이 될까?
아니, 그걸 필연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한 표현일까?
며칠이고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한빈은 그 물음의 답을 잘 알 수 없었다.
특히 5년간 컴퓨터 게임과 채팅 프로그램 안에서만 소통했던 남자와 우연히 학교에서 만난 다른 과 사람의 목소리가 똑같을 확률에, 하필 그 곁에 온라인 속 짝사랑 상대와 이름이 똑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이 더해질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도 안 갔다.
아니 사실은 어쩌면 그걸 본능적으로 가늠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는 게 정확할 거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백한빈은 저를 향한 나직한 목소리에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잊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평소엔 흑갈색이던 눈은 이렇게 붉은기가 도는 주광색 조명 아래에서는 헤이즐넛색으로 반짝인다.
오뚝하고 높은 콧대는 꼭 다듬은 듯 말끔하고, 조금 전까지 맞닿아있던 입술은 평소보다 조금 도톰해 보였다.
한빈은 그 단정하고 고운 눈에 비치는 저 자신을 피하려는 듯 시선을 떨구며 혼잣말처럼 작게 대답했다.
“그냥…… 잠깐 멍해서.”
“와. 백한빈. 이제 꽤 여유 있다 이건가.”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숨도 막히고, 그래서….”
변명하듯 이어지는 문장에 남자가 뺨을 간지럽게 건드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며칠 전이었다면 백한빈은 저 근사한 웃음 앞에서 쟤는 무슨 웃는 것도 저렇게 웃어, 하면서 내심 속으로 투덜댔을 거다.
하지만 이 순간 한빈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좀 달랐다.
…봐. 웃음소리도 다른데.
백한빈은 저도 모르게 5년간 헤드셋 너머로 들었던 남자의 흐린 웃음과 지금 이 순간의 웃음을 비교하며 제게 다시 입술을 부딪치는 남자에게 기꺼이 제 작은 입술을 열었다.
“하아, 흐….”
작은 직사각형 위에 찍힌 이름일 뿐이다.
그 이름 세 글자를 신경 쓰는 것도 기만의 새로운 종류다.
이미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두 사람에 대한 마음을 모두 손에 쥐고 있는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거의 자학에 가까운 끔찍한 가정이 아른거리는 것도 병이다.
백한빈은 숨소리 사이로 슬금슬금 머리를 드는 생각들을 물기 어린 따뜻한 온기로 덮어버리려고 애썼다.
고신재와 가나다라123의 공통점은 비슷한 목소리와 ‘박종우’라는 반듯한 이름 석 자뿐이다.
심지어 고신재는 이전에 백화점에 선물을 고르러 같이 갔을 때 박종우라는 이름을 듣고 주변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말조차도 안 했다.
그렇게나 사이가 최악인 어머니 밑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름을 알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 우연에 우연이 겹친 두 사람의 가장 선명한 공통점은 그저 둘 다 마찬가지로 다정하고, 또 상냥한 사람들이라는 거다.
한빈은 쉼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어느 순간 또다시 뻣뻣하게 혀를 멈춘 저를 살짝 눈을 뜨고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남자의 시선을 눈치채고 저도 모르게 손을 말아 쥐었다.
물론 그 순간 백한빈의 속을 알 리 없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이어진 것도 함께였다.
“한빈아, 네가 집중을 못 하는 건 내 잘못이겠지?”
“어? 아, 아아, 아니, 그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게 아니라고 잡아떼기에는 곧장 걸린 현행범이다.
그것도 입을 맞추던 남자의 무릎에 다리를 벌리고 마주 보고 앉아 있기까지 하면서 머리로는 기가 찰 상상을 했으니 죄질이 더욱 나쁘다.
한빈은 얼른 입술을 달싹이며 사과했다.
“…미안. 진짜 딴생각 안 할 게.”
“아냐. 해.”
단정하고 수려한 이목구비에 담긴 웃음이 얼마나 간지러울 만큼 고운지. 한빈은 덕분에 요 며칠동안 머릿속에서 조금씩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가던 자문의 연속이 싹둑 잘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딴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솔직히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망설임을 눈치라도 챈 걸까.
세상에서 다정한 천사 같은 눈웃음을 치는 연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대신 티셔츠 올려, 백한빈.”
“…….”
동갑내기 남자의 시선이 제 볼품없는 몸 위로 노골적으로 떨어지는 게 여전히 꽤 부끄러웠던 한빈은, 간신히 열렸던 입술을 다시 꾹 다문 채 잠시 망설였다.
몇십 년 만의 이른 더위라며 일찍 후덥지근해진 날씨 때문에 걸친 품이 넉넉한 반팔 티셔츠는 오랜 콤플렉스를 가려주기 좋았지만, 고작 천한 장을 위로 잡아 올리면 가느다란 뼈대에 여린 피부가 덧대어진 몸이 곧장 드러난다는 약점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말로 할 거 다 해놓고, 심지어는 지금도 무엇을 시작하기 위한 키스였는지 뻔히 알면서 티셔츠 하나 올리는 걸 망설이는 것도 좀 우습지 않나 싶었다.
결국, 백한빈은 제 머릿속의 망측한 상상을 사과라도 하듯 천천히 티셔츠 앞섶을 위로 올렸다.
“잘 잡고 있어. 옷 잡고 해, 딴생각.”
하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더 못된 제안이었다.
고운 반달모양으로 휜 눈이 작은 떨림조차 감출 수 없이 마른 상체 위를 퍽 탐욕스럽게 훑었다.
심지어 고신재는 고작 시선만으로도 허리에 꼿꼿하게 힘을 주며 바르르 떠는 백한빈의 가슴으로 곧장 제 손을 움직여 작은 돌기를 꾹 누르고 굴리며 단정한 목소리와는 딴판인 문장을 이어가기까지 했다.
“하도 빨아서 그런가. 한빈이 너 젖꼭지 좀 커진 거 같지 않아?”
“……죽는다, 진짜.”
“왜. 좋다는 소린데. 조금만 빨아도 금방 통통해져서는 혼자 야하고, 예쁘고 다 해, 아주.”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과 시신경을 통해 머리로 전해지는 모습이 서로 다를 게 없을 텐데도 요즈음 고신재는 늘 저 모양이었다.
살며 몇 개쯤 가지게 되는 별명 중 해골이나 창백한 유령과 떨어져 있는 게 하나 없던 백한빈은 고신재의 저 낯간지러운 칭찬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또 일그러지기까지 한 의견인지 아주 잘 알았다.
하지만 이제껏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따진 적은 몇 번 없다.
대체로 고신재가 저런 창피한 말을 할 때면 고신재 그의 손과 입술과 혀가 닿을 수 있는 그 어디든 잔뜩 희롱당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차례는 고신재의 말마따나 긴장으로 뾰족하게 선 작은 돌기 두 개였다.
“-흐으….”
그렇지 않아도 가슴 끝이 찌르르하고 간지러워 어찌할 바 몰랐던 한빈은 제 평평한 가슴에 고개를 파묻은 남자의 움직임에 고개를 뒤로 꺾으며 툭툭 끊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 잡아 올린 옷 아래로 올이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더운 숨을 머금은 타액이 함께 맞닿는 감각이 못 견디게 따뜻했다.
종종 딱딱한 치아가 스쳐 지나가기도 했지만, 손톱보다도 더 작게 돌출된 살덩이를 따뜻하고 축축한 점막 안에서 아프지 않게 빨고 굴리는 감촉의 아슬아슬한 자극이 더 컸다.
분명 옷을 잘 잡고 있으라고 했지만 천을 움켜쥔 손보다도 더욱 힘이 들어가는 건 가슴의 작은 돌기서부터 시작된 전류에 저절로 오므라드는 허벅지였다.
백한빈은 저를 품에 안고 있는 남자의 허리를 허벅지 사이로 조이고, 비비면서 얇은 면으로 된 트레이닝 바지 아래로 어렵잖게 느껴지는 단단한 감촉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꽉 맞물린 사타구니 밑으로 닿다 못해 벌어진 엉덩이 사이로 슬슬 비벼지기까지 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어떻게 제 몸 안 깊숙이 파고들고 휘저어대는지 이제 너무나 잘 알게 된 탓이다.
“한빈아. 잠깐 엉덩이 들어.”
또, 잠시 입술을 뗀 남자가 사근사근하게 건넨 이 다정한 명령 아닌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안다.
잠시 망설이던 한빈은 고신재의 어깨를 짚으며 살짝 하반신을 들썩였다.
그러자 칭찬하듯 목덜미 위로 입술을 쪽 떨어트린 남자가 형편없으리만큼 침입이 쉽던 트레이닝 바지를 짙은 남색의 속옷과 함께 통째로 잡아 내렸다.
사실 그것까진 백한빈 역시 예상했던 바였다.
하지만, 오늘의 섹스가 이전의 몇 번과 달라지기 시작한 건 지금부터였다.
“-아, 히이익!”
차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흥분으로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한 예민한 부위로 묘한 점성이 느껴지는 액체가 별안간 닿는 낯선 감각에 백한빈은 등줄기로 소름이 다 돋을 만큼 깜짝 놀랐다.
한빈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쉰 목소리가 너무 컸다고 생각하며 간신히 목을 가다듬고는, 거의 쥐어 짜내는 듯 이어 물었다.
“지금 그거…, 하아, 대체… 뭐야!”
“젤.”
“…제, 젤?”
“이런 거 쓰면 훨씬 편하다길래.”
그렇지 않아도 작은 골반을 절반 넘게 휘어잡을 수 있는 커다란 손이 작은 엉덩이 사이를 벌리고는 그사이를 노골적으로 적셨다.
한빈은 제 은밀한 부위가 기묘한 열감을 띠며 끈적거리는 감촉에 허리를 틀며 마른 어깨를 움츠렸지만, 애초에 반항조차 우스운 체격 차는 그 움직임조차 어리광처럼 보이게 했다.
“-흐으, 뭐야, 지, 직접……, 샀, 어?”
“그럼. 누구한테 쓸 건데.”
“놀리지 마!”
“놀린 거 아닌데.”
놀람 반, 긴장 반, 그리고 여전히 채 다 떨치지 못한 수치심 반으로 움찔대는 틈새로 손톱 끝을 잘 다듬은 단단한 손가락이 곧장 파고들었다.
“느낌, 진짜 이상해….”
“나쁜 거야, 이상한 거야.”
마디마디가 분명하고 긴 손가락이 좁고 작은 안의 옅은 분홍색 속살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뒤에서는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쭈걱대는 소리가 났다.
애액과 비슷한 점도의 투명한 액체는 꼭 그 안에서부터 흘러나온 것처럼 뒤를 적셨고, 단단한 손가락 마디를 그 어떤 때보다 부드럽게 꽉꽉 물어 들었다.
한빈은 어느새 제가 붙들고 있던 티셔츠 대신 연인이 된 남자의 어깨를 붙들고 허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대답했다.
“…이상…, 해. 이거, 뭔가 점점 따뜻해서…. 흐읏!”
“이상한 거면 통과.”
“이상한데 왜 통과야.”
“한빈이 너는 좋으면 이상하다고 하거든.”
고작 손가락 몇 마디를 삼키는 것조차도 이렇게 또렷하게 느껴지는데, 이 안으로 그보다 훨씬 더 속을 빠듯하게 채우는 것이 밀려 들어오면 어떤 느낌일까. 한빈은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소름이 돋았다.
옷 하나 벗지 않은 동갑내기 남자의 품 안에서 가슴께는 잇자국과 타액으로 번들대는 채로, 하체는 아예 완전히 벗겨진 채로 앞뒤로 투명한 것을 흘리며 간신히 바르작대는 예민한 얼굴 위로 발간 수치와 흥분이 뒤섞여 올라왔다.
확실히, 이제 ‘딴생각’을 할 겨를은 없어졌다.
살짝 비뚤어진 제 안경을 벗기는 것 대신 똑바로 다시 씌워주는 남자의 손이 제 뒤를 적신 것으로 번들거리는 걸 보며 눈이 시릴 정도로 부끄러워졌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 고신재의 짓궂은 행동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이것 좀 대신 끼워줄래?”
솔직히, 한빈은 그 순간 조금 울고 싶어졌다.
살살 원을 그리고 이내 꾹꾹 밀려 들어와 좁은 곳을 벌리던 손가락이 빠져나간 게 아쉽다는 듯 몸 안에서부터 옅은 경련이 저도 모르게 계속되다 못해 미끌미끌한 것이 묻은 모든 곳으로 열이 올라오는 것조차 미칠 것 같은데….
그런데, 그 당사자가 야해 빠진 손가락으로 네모 반듯한 작은 봉투를 건네며 야살스럽게 웃기까지 하다니.
정말이지 다 알면서 너무하다 싶었다.
“…어, 아, 안…, 해봤는데….”
“이참에 해 봐. 보다시피 손이 이래서 잘 되지도 않고, 옷도 버릴 것 같고.”
당연히, 옷은 핑계였다.
옷이 정말 신경 쓰였다면 진작에 벗었어야 했다.
어차피 제가 한껏 벌리고 희롱해둔 저 작은 구멍으로 깊게 처박고 나면 ‘그 무엇이든’ 옷을 더럽힐 게 뻔하다는 걸 모를 정도로 바보도 아니다.
하지만 고신재는 백한빈이 실핏줄까지 뻔히 그려질 정도로 마르고 가는 손을 벌벌 떨면서 제 바지의 훅을 풀고 지퍼를 내리는 순간을 입술을 적시며 내려다보기 위해 다소 못된 부탁을 했다.
뿔테 안경 아래로 뾰족한 눈을 몇 번이나 깜박이면서 머잖아 제 뒤를 꽉 채울 길고 커다란 기둥을 조금은 차갑고 건조한 손으로 잡는 순간에는, 솔직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서 반사적으로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지만 말이다.
“-앞뒤 확인하고. 그래, 앞에부터…, 그렇게, 맞춰.”
제 손에 꽉 찬 짙은 붉은색의 흥분 앞에서 뺨 위가 뜨거워진 한빈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도 반투명한 콘돔을 어설프게 잡아 벌렸다.
이 노골적일 만큼 선명한 흥분이 온전히 저를 향하고 있다는 건, 정말 아무리 봐도 믿기지도 않고 적응되지도 않는 한빈이었다.
지금 제가 스스로 하는 행위가 이 커다랗고 단단한 것을 몸 안 깊게 깊숙이 처박아 넣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상기할수록 뱃속 어딘가가 간질거리는 것도 같았다.
손에 쥔 이 핏줄 선 단단한 기둥이 안쪽 어딘가를 짓누르고 푹푹 처박을 때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안다.
이것이 꿰뚫고 들어왔을 때의 꽉 찬 부피감은, 더더욱 잘 안다.
뿌리 끝까지 삽입될 때면 저도 모르게 고신재가 알려준 아랫배 밑의 불룩한 느낌을 찾아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여 제가 그것을 더욱 조이도록, 어쩌면 반대로 그것이 저를 더욱 세게 짓누르도록 부추기는 법도 알게 됐다.
한빈은 저를 향해 그 길고 단단한 기둥의 끝을 적시기 시작한 남자의 성기를 어설프게 붙잡고는 처음으로 손에 쥔 콘돔을 잡아 씌우기 시작했다.
첫 콘돔 착용이 저 자신이 아니라 동갑내기 남자에게 대신 쓰게 됐다는 게 내심 기가 찰 일이기는 했지만, 엄연히 따지고 보면 제 안으로 파고들 것에 쓰는 것이니 용도만큼은 적확하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똑같이 초보자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고신재와 백한빈은 축적된 경험치가 달랐다.
RPG 게임으로 치면 고신재는 초보자 옷만 걸친 상급자고 백한빈은 막 초보자 마을에 발 디딘 조무래기다.
……그것도 콘돔도 못 씌우는 입문 중의 입문이면서 ‘좋은 것’만 잘 아는, 꽤 영악한 초보자다.
덕분에 머잖아 찾아올 감각을 떠올리며 자꾸 떨리고 엇나가는 손으로 고무링을 잡아 내리던 백한빈은, 짙고 붉은 귀두의 굴곡을 손으로 긁듯이 문지르고 말았다.
짙은 눈썹이 순간 확 찌푸려진 채로 튀어나온 낮게 앓는듯한 한숨에 백한빈은 저를 향한 장난을 따져 웃지도 못할 정도로 당황한 채로 벌겋게 익어 쩔쩔맸다.
“미, 미안! 정말 미안!”
“……뭐. 내가 손으로 가면 아쉬운 건 한빈이 너인데 미안할 건 없지.”
고신재는 “잘했다는 소리야.” 하고 백한빈의 입술에 쪽, 소리를 내어 입 맞췄다.
한편, 동갑내기 남자에게 듣는 칭찬에 울컥할 새조차 없던 한빈은 벌겋게 된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푹 젖은 제 엉덩이 사이에서 찔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에 이마까지 뜨끈뜨끈하게 열이 오르는 것 같은데,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입을 삐죽일 여유는 이미 머리에서 완전히 휘발된 지 오래다.
긴장한 몸을 바르작댈 때마다 오므라들었다 풀렸다를 반복하는 뒤에서는 자꾸 쿨쩍이는 소리가 났다.
“왜. 하지 마?”
“흐으…. 아, 그런 게, 아니라….”
“알아.”
한때 낯선 행위에 긴장하고 겁먹은 백한빈을 달래고 선택지를 주기 위함이었던 ‘하지 마?’라는 질문은 어느새 달뜬 순간을 움켜쥔 남자의 짓궂은 장난이 됐다. 고신재 그 역시도 지키지 못할 그저 그런 뻔한 허풍이기도 했다.
따뜻하고, 축축하고, 또 미끌미끌했다.
좁은 틈새로 성기를 밀어 넣는 고신재도, 흐물흐물하게 풀린 제 뒤로 굵은 기둥을 집어삼키는 백한빈도 그 순간만큼은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뒤를 젖게 한 것만으로도 전해지는 감도가 배가 될 수 있다는 걸 더욱 절실히 알게 된 건 백한빈 쪽이었다.
“하아, 흐, 으읏-!”
이미 충분히, 아니 충분한 것 이상으로 과하게 좋다고 생각했던 행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적응되기 전까지는 뒤를 벌리고 들어오는 굵직한 부피감이 버겁기도 했다.
흥분하면 흥분할수록 제 안 깊숙하게 파고들어 안을 꽉 채우는 부피감에 숨이 막혔고, 뱃속 깊은 곳 어딘가를 꾸욱 짓누른 그것이 움직임을 시작하면 슬쩍 빠져나갔다가 처박히는 순간의 날 것의 감각이 조금은 두렵기도 했었다.
하지만 ‘고작’ 뒤를 적시고 끈적이게 한 것만으로도 많은 게 바뀌었다.
우선은, 그 커다란 성기를 받는 것이 꽤 편해졌다.
“--아, 응, 흐으, 앗!”
한 줌의 불편을 온전히 떨쳐내고 나자 남은 건 온전한 자극뿐이었다.
길고 끝이 유독 불거진 성기가 기둥 중 가장 두꺼운 중간까지 처받고 들어 왔다가 빠져나가고, 살짝 각도를 틀어 푹 젖은 안쪽을 매끄럽게 푹 찌르고 비비자 짧은 숨을 헉, 들이켠 한빈의 허리가 위로 들떴다.
옷을 입었을 땐 뼈대가 딱 벌어진 늘씬하기만 한 체형 같지만 그걸 벗기고 보면 그 길쭉한 몸에 생각보다 근육이 훨씬 더 두툼하고 단단하게 들어찬 허리가 움직일수록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에서는 부끄러울 정도로 찔꺽거리는 소리가 났다.
백한빈은 고신재의 딱 절반이었다.
자꾸 몸을 틀어 움직이는 것을 붙잡느라 고작 한 손으로 붙잡아 누른 것에 꼼짝없이 잡힌 마른 팔뚝도, 벌어져 접힌 채로 푹푹 박히는 대로 같이 움직이는 볼품없는 다리도, 체중을 싣는 것만으로도 꼼짝할 수 없는 작은 엉덩이도.
고작 몇 개월 단순히 근육을 부풀린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달리 너무 일찍 철들었던 때부터 언제나 어제보다 오늘 더 완벽해져야 했던 육체는 백한빈의 몸과는 체급이 완전히 달랐다.
기어이 뿌리 끝까지 푹 쑤시고 들어가 저 안쪽까지 짓누르자 희고 마른 배가 들썩였다.
숨마저도 멋대로 제어하는 부피감에 백한빈은 저도 모르게 입까지 벌린 채로 유일하게 자유로운 고개만 뒤로 젖힌 채 짧게 꺾인 숨소리만 냈지만, 남자의 움직임은 멈추지도, 느려지지도 않았다.
“신, 신재야아. 흑, 아, 으응, 아, 힉…!”
따뜻하고, 축축하고, 매끄럽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눈앞이 핑 돌 정도로 꽉꽉 조여드는 좁은 구멍을 꼭 길들이기라도 하듯, 고신재는 자극의 깊이를 멋대로 달리했다.
차라리 다음에 올 쾌감의 방향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좀 나았을 거다.
하지만 고신재는 그 자신도 갈수록 더운 숨을 내쉬면서 뒤로 젖혀진 백한빈의 마른 목을 깨물고 핥고, 또 종종 입을 맞춰 아래뿐만 아니라 위에서도 젖은 소리를 내면서 집요하리만치 제 연인의 반응에 따라 움직였다.
“흐으, 아, 아앗, 아, 아!”
“여기가…, 후우, 읏, 여기가, 좋아?”
“으응, 제발, 아, 히으윽! 고신재, 흑…, 천천히, 제발….”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좋은 거면, 좋겠는데.
고신재는 제 몸과 백한빈의 하얗고 작은 몸이 부딪치며 나는 살소리와 야하기 짝이 없는 헐떡임 사이에서 조금은 멍하게 생각하면서 예민한 이목구비 위에서 비뚤어진 안경을 벗겨냈다.
눈가가 뜨거울 만큼 오른 저 자신의 열이 이끄는 대로 허리를 움직이는 건 고신재 역시 낯선 행위였다.
살면서 몸을 다듬을 수 있는 웬만한 운동은 손에 잡히는 대로 한 그였지만, 섹스는 이제껏 했던 그 어떤 운동과도 결이 달랐다.
힘을 주어 움직일 때마다 단단한 견갑골 주변에 새겨진 근육이 함께 꿈틀댔고, 푹 들어간 기립근을 타고 송골송골 맺힌 땀이 흘러내렸다.
헐떡이는 작고 마른 몸 위를 짓누르듯 붙이고 허리를 쳐올리자 고신재의 아랫배와 백한빈의 아랫배 사이에 흥분한 채 멀건 것을 질질 흘리던 백한빈의 성기가 꾹꾹 눌리듯 비벼졌다.
“--하아, 흐….”
목을 긁는 듯한 한숨은 누구의 입에서 먼저 흘러나왔는지 정확하지 않다.
고신재가 백한빈의 안쪽 깊숙한 곳에 제 성기를 찔러 넣고 사정한 뒤에도 불룩해진 마른 아랫배를 부러 큰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마른 몸을 자지러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갓 사정해서 한껏 감각이 돋아난 기둥을 순식간에 확 조였다가 컥, 컥 간신히 내뱉는 숨에 천천히 푸는 좁은 내벽은, 서툴기에 더욱 온도가 높은 것 같았다.
고신재는 백한빈의 안에 제 것을 삽입한 그대로 마른 몸을 훌쩍 안아 들었다.
한빈의 몸에서 저 자신이 토해낸 하얀 정액이 타고 흘러 서로의 아랫배와 시트를 더럽혔지만, 지금 이 널찍한 침실에서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완전히 사지에 힘이 풀린 백한빈은 더 이상 깊어질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거대한 기둥이 앉은 자세로 저를 더욱 깊게 꿰뚫어 내장까지 짓누르는 감각에 입조차 제대로 다물지 못하고 할딱였다.
고신재는 온갖 종류의 체액으로 끈적해진 몸을 찝찝해할 새도 없이 늘어져 간신히 숨만 몰아쉬는 제 연인의 쇄골과 목에 입 맞추고 퉁퉁 부은 작은 유두를 빨기도 하면서 묵직한 부피감에 익숙해질 시간을 충분히 줬다.
아닌 게 아니라, 한빈은 정신이 조금 들긴 했다.
“왜, 흐으, 안, 빼애….”
고신재의 것을 뿌리 끝까지 그 작은 몸에 욱여넣고도 웅얼웅얼 탓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고신재는 그 칭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기쁘다는 듯 벌어진 둔덕 사이와 척추뼈가 도드라진 허리의 촉촉한 땀을 제 손바닥으로 쓸면서 저 역시도 조금은 갈라지고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빈아. 기말고사 끝나고 여름에 뭐해?”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자세에서 튀어나온 한가한 질문에 여전히 쌕쌕 거친 숨을 할딱이던 한빈의 뾰족한 눈꼬리가 배는 매서워졌다.
물론, 고신재는 그 가늘어진 눈이 세상 누구보다 귀여운 사람이었다.
“지금 이러고, 하아, 이러고서, 그게, 궁금해 넌?”
“말해주면 뺄게.”
“…이, 미친 쓰레기가-, 흐으읏!”
조금 전까지 서로 몸을 섞다 못해 당장 실시간으로 몸이 이어진 상태로 나누는 대화치고는 꽤 험악해졌다.
하지만 예의 그 미친 쓰레기가 제 애인의 그 작은 입에서 거친 문장이 다 뽑히기도 전에 모르는 척 허리를 가볍게 쳐올려 말을 끊었으니, 문제는 없었다.
또, 제가 답을 늦게 내면 낼수록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분명히 깨달은 백한빈 역시 툭툭 끊기는 목소리로나마 기어이 답을 냈고 말이다.
“그…, 전공 교수님 스튜디오에서…, 하아, 인턴, 아니, 알바 노예….”
“숨 고르고 말해.”
“너는, 빼든가! 진짜, 허리……, 힘들단, 말이야. …응?”
사실, 엄밀히 따지면 백한빈은 지금의 자세가 아프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당장 자세를 무너트리거나 체중을 완전히 실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크고 단단한 손과 팔로 빈틈없이 지탱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빈은 정신이 들수록 제 뒤가 정말 한계까지 벌어진 채로 같은 남자의 성기를 뿌리 끝까지 받아먹고 있는 감각이 선명해지는 게 못 견디게 부끄러웠다.
제가 숨이라도 크게 쉬면 몸 안에 깊게 처박힌 그것을 반사적으로 조이는 것 같아 더 붉어질 수도 없는 귓불이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고신재는 백한빈의 작은 엄살이 그 무엇보다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남자였다.
“……흐으, 읏.”
백한빈은 세상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제 작은 어리광에 “알았어.” 하고 쪽, 입 맞추며 자신의 몸을 살짝 안아 올리는 힘에 반사적으로 팔을 감아 기댔다.
한계까지 벌어져 있던 구멍에서 여전히 단단한 기둥이 쭉, 빠져나가는 감각에 어깨까지 부르르 떨렸다.
꽉 찬 부피감이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몸 안에 무언가가 뭉근하게 남아서 마찰에 살짝 부은 듯한 내벽을 살살 긁는 것만 같기도 했다.
한편, 그 자유 아닌 자유 앞에서도 고신재의 은근한 질문세례는 계속됐다.
“……그럼 쉬는 날은 없나?”
“주말에…, 주말은 쉰댔어.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휴가는?”
“몰라아…. 뭐 벌써부터.”
단단한 어깨에 고개를 푹 파묻고 늘어진 한빈의 웅얼웅얼한 대답에 고신재가 조금 멋쩍게 웃었다.
확실히 아직 기말고사조차 치르지 않은 채로 하기에는 꽤 이른 대화 주제이긴 했다.
고신재 역시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며칠 전부터 백한빈에게 쭉,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살며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하는 문장이라 어색하고 멋쩍어서 이렇게 한빈이 제 품 안에서 늘어져 있는 순간에야 겨우 입을 뗐지만 말이다.
“…그, 혹시. 괜찮으면, 휴가 때 어디든 같이, 크흠, …같이, 갈래.”
세상 사람들은 다 평범하게 건넬 문장 하나가 어찌나 입안에서 모래알처럼 까칠까칠하게 굴러다니던지.
고신재는 백한빈이 제게 기댄 채 작게 내쉰 아무런 의미 없는 한숨에도 근육에 꽉 힘이 들어갈 만큼 긴장하기까지 했다.
어찌나 조용하던지 혹시 잠들었나 싶을 정도로 고요하던 한빈은, 이내 고신재의 귓가에 작게 옹알이처럼 들리는 대답을 전해주었다.
“‘어디든’……, 어디. 너도 무슨 단기 공연 들어간다며.”
“8월 9일까지 하고 끝나. 10일부터는 완전히 비어. 그리고 정말 말 그대로 어디든. 너 가고 싶었던 곳, 시간 되는 대로. …아. 이번에는 시간표도 같이 짜고.”
몇 번이나 속으로 연습했던 문장이었건만 어째 정말 문장으로 만들어 꺼내고 나자 너무 귀찮으리만치 문장을 쏟아낸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백한빈은 그 날선 예민한 얼굴에서 유일하게 말랑말랑한 뺨을 단단한 어깨에 붙여 기대고는, 여전히 속삭임처럼 나직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꽤 많이 다듬어진 목소리로 대답했으니 말이다.
“우선은… 연습이나 열심히 해. 공연 보러 갈 거니까.”
“…….”
“그러고 나서…, 그래, 뭐. 어디든 가자. …휴가는 교수님한테 물어볼게.”
붉게 익은 피부를 적신 땀이 살짝 식으면서 딱 기분 좋게 서늘해졌다.
이것도 저것도 닮은 거 하나 없는 고신재와 백한빈이지만, 굳이 비슷한 점을 긁어모아 찾자면 둘 다 퍽 예민하고 깔끔떠는 성격이라는 것인데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체액에 끈적이는 지금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건 꽤 신기한 일이었다.
고신재는 제 품에 안긴 남자의 몸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손에 닿는 등과 마른 허리를 몇 번 쓸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공연, 보러…온다고?”
“그럼 안 가? 나 초대장인가 뭔가 그것도 줘. 그런 거 있다며.”
백한빈의 말에 고신재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한참 뒤에야 이내 듣는 이 없는 혼잣말처럼 “……열심히 해야겠네.” 하고 중얼거렸을 뿐, 그렇게나 망설이다 꺼냈던 휴가 얘기도 쏙 들어갔다.
하지만 이 순간.
고신재의 입을 꾹 다물게 한 말을 꺼낸 당사자는, 그의 품에 안겨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는 제가 받은 두 가지 제안 중 자연스레 대답하지 않고 넘어간 다른 하나를 곱씹고 있었다는 게 맞을 거다.
바로 잠시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우연’이었다.
……‘이번에는’, 시간표를 같이 짜?
한빈은 제 몸을 빈틈없이 품은 남자의 온기에 반쯤 잠식된 듯 정신이 허물어진 상태로도 제가 들은 말을 속으로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작품후기]
안녕하세요!! ㅠ ㅠ
너무 오랜만이죠. 얼른 오고 싶었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조금 고생을 하다보니 많이 늦어졌습니다. 왠지 유독 춥게 느껴지는 11월이네요.
오늘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겨주시는 코멘트, 선작, 추천,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은 정말로! 최대한 빨리 가지고 오겠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