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 힐, 힐!-48화 (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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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2에 수정)

게임에서는 크고 작은 퀘스트들을 수행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준다.

그건 게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화일 때도 있고, 캐릭터를 꾸밀 수 있는 스킨이나 아이템일 때도 있다.

어떤 게임이든 잡았다 하면 곧잘 했던 백한빈은, 제가 원하는 보상을 어렵지 않게 얻었었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는 서로 똑같아 보이는 두 사람의 그림자 속에서 다른 부분을 찾아내야 하는 틀린 그림 찾기는 게임 속에서 늘 높은 랭크를 받았던 백한빈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나다라123】

-박종우, 25살, 대학생.

-성동구 ???? 아파트. ‘가족’이랑 같이 산다고 했음.

-휴대폰번호 XXX-XXXX-XXXX

-브론즈

휴대폰을 충전해야 한다는 핑계로 전공 강의실 가장 뒤, 구석에 떨어져 앉은 백한빈은 제가 노트 한쪽에 끄적인 짤막한 문장을 내려다보며 제가 쓴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5년을 알고 지냈는데 매일같이 웃고 떠들던 일상에 비해서 ‘가나’에 대해 아는 건 참 단출했다. 같은 서울에 산다는 것도 올해 들어서야 알게 된 일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제껏 그게 불만스러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는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늘 애썼을 뿐이다.

결국 이렇게 정보값이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백한빈이 가장 먼저 한 건, 여러 번 되새기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던 11자리의 숫자를 제 휴대폰에 등록하는 일이었다.

“…….”

백한빈의 휴대폰 메신저에는 머잖아 ‘새로 등록된 친구’가 떠올랐다.

프로필 사진도, 상태 메시지 한 줄도 없기는 했지만 사용자가 입력했다는 이름은 박종우 이름 석 자였다.

“……그래. 명함에 적힌 휴대폰 번호랑도 다르다고.”

평범한 경우라면 여기서 이 모든 고민을 끝냈을 거다.

끔찍한 생각도 정도가 있지, 꿈속 망상으로 얼굴을 빌릴 때는 언제고 이제는 자진해서 악몽을 꾸려고 한다고 헛웃음까지 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틀린 그림 찾기가 시작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백한빈은 ‘가나다라123’의 조촐한 프로필 옆에 유독 힘이 들어간 글씨체로 쓰인 생애 첫 애인의 신상정보로 시선을 옮겼다.

【고신재】

-25살, 대학생.

-학교 근처 주상복합 2701호. 형 한 명, 집은 청담...추정(?)

-휴대폰번호 XXX-XXXX-XXXX

-다이아

-가나랑 목소리 똑같고, 가까이에 ‘박종우’라는 이름의 비서가 있음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은 시간표를 나 따라 바꿨음. ...왜?

앞선 프로필보다는 훨씬 더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 몇 줄은 요즘 백한빈의 일상을 뒤흔든 질문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이름, 사는 곳, 연락처, 게임 아이디….”

백한빈은 제가 나란히 쓴 두 프로필 사이에서 확연히 다른 4개의 정보를 입안으로 구겨 넣듯 중얼거렸다.

웬만한 게임 속 틀린 그림 찾기에서는 안 겹치는 부분을 4개 정도 찾았으면 실패는 아닐 거다.

그러나 지금 백한빈의 눈앞에 정리된 문장들은 온라인 속 데이터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건 고작 4개의 엇갈림으로는 마음속에서 커진 물음을 다 답해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세상에 사는 곳도, 나이도, 목소리도 똑같으면서 특정 이름과 어떻게든 연관된 사람이 둘이나 있을 수 있을까?

애초에 고신재는, 왜 생판 모르는 남인 내 시간표를 왜 따라 했을까?

“…….”

사실 백한빈도 이 모든 물음표를 손쉽게 느낌표로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전제를 모르지 않았다.

그것만은 절대 머릿속으로 가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일부러 저만치에 밀어놓은 채로 무시해 왔을 뿐이다.

차라리 무용과 김유민에게 어떤 말도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다.

최소한 그랬다면 불안한 상상을 적당히 하다가 이내 흘러 지나갔을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점점 몸집을 키워가던 질문은 이내 절대 떠올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던 전제를 기어이 펜을 움켜쥔 손을 통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고신재는 가나다라123이다?

두 사람은, 동일 인물이다?...

문장부호를 온점이 아닌 물음표로 적은 건 기어이 완성한 가정을 조금이나마 부정해보려는 하찮은 시도였다.

백한빈은 그저 읽기만 했는데도 코끝까지 뜨거워지는 문장 앞에서 누굴 향하는지 모를 헛웃음을 쳤다.

고신재와 가나가 같은 사람이라니!

문장으로 만들어 되새기고 나니 더 끔찍한 망상이었다.

고신재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건 꿈속의 얼굴 대여보다 더 질이 나빴다.

최소한 백한빈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 짤막한 두 문장이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질문들의 답으로 가장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게 사실일 리가 없다. 절대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 사이의 틀린 그림을 아직 더 찾지 못한 저 자신이 둔함이 문제이지, ‘저 두 사람’이 문제여서는 안 된다.

한빈은 신경질적으로 펜을 끄적여 자신이 적은 문장 위를 까맣게 덧칠했다.

“…개소리야. 역시 말이 안 돼. 절대, 말이 안 돼….”

“뭐가 말이 안 돼.”

“아우, 씨, 깜짝이야!”

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백한빈은 제 옆에서 별안간 들린 목소리에 의자까지 삐끗 긁히는 소리를 내며 얼른 노트를 덮었다.

김푸름이었다.

“구석에서 혼자 뭐 하세용.”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안 온 줄 알고 전화할 뻔 했잖어. 혼자 세상 심각하게 뭐해, 진짜.”

“……휴, 휴대폰 충전. 배터리가 없어서.”

“아항.”

듬직한 덩치와 낮은 목소리와는 딴판인 장난스러운 말투로 웃는 김푸름은 노트 위를 빼곡하게 채웠던 의문들을 보지 못한 듯했다.

한빈은 아직도 빠르게 뛰는 제 심장을 쓸어내리며 사람이 차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전공 강의실 안을 훑었다.

사진과 전공 강의실 중 가장 큰 곳인 이곳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4학년을 제외한 사진과 재학생들은 전공을 불문하고 거의 다 모여있었다.

“자. 다들 여기 좀 봐주세요. 거의 모인 것 같으니까, 빨리 이야기하고 끝낼게요. 다들 일찍 집에 가고 싶잖아. 나도 과제 산더미다.”

한빈과 같은 학번이지만 두 살 더 많은 학회장은 학기 말 마지막 큰 과제와 시험을 앞둔 대학생들 아니랄까 봐 자리에 앉자마자 늘어져서 수다를 시작한 사람들을 곧장 휘어잡았다.

이맘때쯤 학과 회의라며 모여 하는 이야기는 늘 비슷하고 뻔했다.

학기 초에 얼마를 걷은 학회비는 어디에 어떻게 썼고, 또 얼마가 남았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4학년 졸업 전시회장 앞에 걸 화환 같은 자질구레한 것까지.

오랜만에 모인 만큼 쏟아내는 주제도 여러 가지였다.

노트 속 물음들을 두고 어찌나 신경을 썼던지 두통까지 올라오기 시작한 한빈은, 계속 시계만 곁눈질하며 끝날 때를 가늠했다.

그때였다.

“-아, 맞다. 종강 날에는 개강 파티 때랑 똑같이, 학교 앞 ????에서 7시에 모이는 거로. 이건 한 번 더 공지할게요.”

“아 왜 맨날 ????야? 다른데 좀 가지.”

“장 교수님이 거기 고기가 맛있다고 좋아하잖아.”

“고기 때문이겠냐? 술 때문이지. 막걸리 진짜 너무 싫어. 다음 날 머리 깨질 것 같다고.”

신입생들은 아직도 기합이 들어가서 빳빳하게 허리를 펴고 입을 다물고 있는데, 고학번일수록 꼭 한 마디씩 툭툭 던지던 지방방송은, ‘종강’ 한마디에 기어이 제대로 말문이 터졌다.

물론, 그건 백한빈을 따라 강의실 저쪽 구석에 나란히 앉아 있는 김푸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진짜 과제고 뭐고 빨리 종강했으면 좋겠다. 아, 남은 학회비도 탈탈 털어먹어야지.”

“…….”

“이번에는 꼭 식후 냉면까지 시켜야겠어. 난 2차도 안 가는데 안주로 학회비 엄청 빨아먹더라. 아까워 죽겠다니까.”

아마도 김푸름은 내버려두면 내버려두는 대로 개의치 않고 혼자 곧잘 떠들었을 거다.

애초에 그는 백한빈이 사람 많은 곳에서는 낯을 가리고 조용히 있는 쪽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흔한 대답 한 번 없이 멍하게 앞만 보고 있는 한빈을 오해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백한빈은 혼자 중얼중얼 입이 트인 제 친구를 혼자 두지 않았다.

그것도, 이 순간 김푸름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화제로 말이다.

“……푸름아.”

“엉?”

“너 저번에… 내가, 개강파티 때 취해서 말실수했다고 했지.”

눈을 끔벅끔벅하며 제가 들은 문장의 의미를 되짚던 푸름은, 이내 크게 손을 저으며 언제나 제 친구를 안심시켰던 사람 좋은 웃음을 걸었다.

“에에이! 말실수는 아니지. 그 정도로 뭘. 나무 잡고 토한 애만 둘인데, 그런 건 애교지, 애교. 주사에도 못 끼어.”

“내가 정확히 뭐라고 했어? 게임에서 만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만 말했어?”

“어어. 게임에서 만나 5년인가 알고 지낸 친구인데 좋아한다, 뭐 그런 말만 했어.”

유독 예민한 백한빈과 웬만한 것에 다 무던한 김푸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합이다.

괜한 걱정을 찾아서 하는 한빈을 호탕한 웃음과 함께 달래며 밝은 면을 찾아내는 푸름은, 이를테면 백한빈의 우울 상쇄 버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백한빈의 근심이 그보다 한 수 위였다.

“다른 말은 안 했어?”

“다른 말?”

“뭐…, 누구 이름을 부르거나, 있었던 일을 떠들거나.”

“아니, 전혀. 야, 걱정 말라니까. 너 그런 건 주사 축에도 못 끼어.”

백한빈은 문제가 생기려면 진작에 무슨 일이 있었어야 할 개강 첫날의 일을 종강을 앞둔 지금에서야 물어보며 사뭇 심각한 표정까지 됐다.

아니, 심각하다 뿐일까.

그렇지 않아도 창백한 얼굴이 핏기조차 없이 유독 퀭하기까지 하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푸름은 뒤늦게 저만치 밀려난 지 오래였던 기억의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날은 드물디드문 술주정에서 별달리 문제 될 게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상대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칭얼대는 건 문제가 아니라 귀여운 투정이다.

……게다가, 그때만 해도 백한빈의 짝사랑 상대가 남자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고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게임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다는데 저렇게 낯가리는 백한빈이 먼저 좋아하려면 게임쯤 되어야 하구나 싶어 내심 웃었을 뿐이다.

그때였다.

먼지 낀 김푸름의 기억 속에서 삐죽, 어떤 단어가 떠오른 건.

“…아. 그러고 보니, 무슨… 뭘 얘기한 것 같긴 하네.”

“뭐, 뭐얼?”

“그……, 뭐였지. 동물?”

거의 혼잣말이나 다름없는 작은 중얼거림이었지만 백한빈은 그 말을 분명히 들었다.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물?”

“정확하진 않아. 그런데 무슨 동물이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것 같은데.”

한빈은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느라 곧장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친구 앞에서 침묵이 길어져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기에, 백한빈은 왠지 뻣뻣하게 굳으려는 혀를 애써 굴려 기어이 그 단어를 꺼냈다.

“……‘하마’?”

“어, 그래! 맞다, 무슨 하마가 힐을 주네 마네…. 뭐 그런, 별거 아닌 게임 얘기했었네!”

김푸름은 괜히 사서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면서 말했지만, 사실 한빈은 그 상냥한 배려에 답답한 한숨이 곧장 터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어쩌면 한숨을 쉴 여유조차 사라졌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푸. 너 무용과에 아는 사람 있어?”

대답 대신 눈을 빠르게 깜박깜박하는 김푸름의 얼굴에서 드문 긴장이 보였다.

사실, 백한빈도 제가 너무 새삼스러운 질문을 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심지어 저의 비밀 연애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있긴 있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고신재라던가. 아! 유민이도 있고.”

“……그 두 사람 말고. 다른 사람으로.”

“있긴 한데. 왜?”

“그냥 별건 아니고. 궁금한 게 있어서.”

‘이건 너를 곤란하게 할 요청도 아니고, 네가 걱정할 일도 아니야’.

백한빈은 김푸름이 이어질 제 물음을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싶어서, 어울리지도 않게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를 내며 딱딱하게 굳으려는 표정을 풀려고 노력했다.

“혹시 이번 학기 무용과 개강파티 어디서 했는지 좀 물어봐 줄 수 있어?”

* * *

사실 고신재에게 ‘연애’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행위는 살며 단 한 번도 매력적인 적 없었다.

흔히들 연애의 종착지라고 부르는 결혼은 고신재 그에게 있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보기 좋은 살얼음판이었다.

대체로 서툰 연애를 시작하곤 하는 스무 살의 끄트머리에 ‘제 분수’를 알게 된 이후로는 감히 누군가를 먼저 자진해 만나는 선택지는 없어졌다.

그에게 연애란, 언젠가 원하지 않는 누군가와 평생 봐왔던 끔찍한 생활을 시작하는 전조를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연애를 시작한 요즘.

고신재는 하루하루가 가기 무섭게 그렇게나 냉소적이었던 제 첫사랑에 정신없이 푹 빠져들고 있었다.

백한빈과 함께하는 걸 상상하는 건, 정말이지 뭐가 됐든 재미있었다.

다시없이 유치한 짓이라고 생각했던 시간표 같이 짜기도, 방학 때 휴가를 맞춰 같이 놀러 가는 것도,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백한빈의 얼굴을 보고 있기만 해도 좋았다.

뾰족한 눈꼬리도, 작지만 고집스러운 입매도, 말라서 도드라지는 얼굴선과 조금은 울퉁불퉁한 콧대도, 심지어는 처음에는 좀 깬다 싶었던 그 답답하고 커다란 안경마저 이제 정이 듬뿍 든지 오래다.

정말이지 이래서 세상 사람들이 드라마든, 영화든, 하다못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노래에서든 하나같이 연애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을 지경이었다.

“나 좀 씻고 올게. 편히 쉬고 있어.”

“응.”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냉장고나 찬장에서 다 꺼내 먹고. 알았지?”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알았으니까 씻고 와.”

학기 말이 가까워질수록 늦게까지 매달리게 되는 과제와 연습이 끝난 후 나란히 도착한 자신의 집에서 현관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하얀 뺨에 키스하며 말하자, 백한빈은 오늘따라 창백한 얼굴로도 꼬박꼬박 대답해줬다.

땀 냄새나는 채로 돌아다니는 걸 싫어해서 웬만해서는 학교에서 가볍게라도 씻고 나오는 편이던 그는, 오늘은 평소의 깔끔한 척도 마다하고 백한빈과 함께 곧장 함께 귀가했다.

매일 같이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였다고 투덜대던 한빈은 오늘 평소보다 유독 힘들어했다.

……얼른 씻고 와서 어깨라도 좀 주물러 줄까.

집에 뭐라도 마실 게 있던가? 따뜻한 거라도 마시면 좋을 텐데.

고신재는 27층까지 올라오는 긴 엘리베이터 속에서 살짝 잡았던 백한빈의 손이 유독 차갑던 걸 떠올리며 집에 있는 먹을 것을 가늠했다.

학기 말 과제 무대에 방학 때 따로 들어가는 공연 연습까지.

고신재 그 역시도 팔다리며 온몸이 천근만근으로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였지만, 고신재는 저 자신보다도 품 안에 쏙 들어오는 마른 몸이 훨씬 더 신경 쓰였다.

고신재는 평소보다 잰걸음으로 욕실로 향했다.

하지만.

“……아, 가운.”

급하게 마음먹으면 될 일도 꼬인다더니, 늘 같은 곳에 걸려 있던 목욕 가운이 온데간데없었다. 신재는 작게 한숨을 푹 쉬면서 곧장 뒷걸음질 쳐서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좀 더 정확히는 향하려고 했다.

“…….”

고신재가 눈에 띄지 않는 건 도톰한 목욕 가운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그때였다.

그는 소파 옆에 덩그러니 혼자 놓여있는 가방을 보면서 잠시 멈춰 섰다가, 불이 꺼진 채 아무도 없는 화장실까지 마저 확인했다.

그러나 백한빈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널찍한 집 안은 오늘따라 유독 파리하게 질려 있던 한빈이 편의점에라도 내려갔을 거라는 평범한 생각 대신 왠지 모를 불길함을 먼저 불러일으켰다.

“한빈아?”

고신재는 성큼성큼 발을 옮기며 다시 집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전실, 현관, 복도, 거실과 화장실, 부엌, 그 옆의 펜트리. -하다못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문을 연 제 형의 방까지.

하지만 백한빈은 어디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

이제 이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고신재가 가지 않은 곳은 단 하나다.

바로 제 목소리가 들리고도 남을 곳이라, 이곳만은 아니겠거니 싶어 가장 뒤로 미뤄둔 침실이었다.

“…….”

“…….”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향한 곳에는 그가 찾던 두 가지가 모두 있었다.

물론 고신재의 눈에 의자에 걸쳐둔 가운보다 먼저 들어온 건, 그 앞에 우두커니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뒷모습이었다.

혹시라도 쓰러진 건 아닌가 싶어 사람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고개를 돌린 백한빈은 기묘할 만큼 침착한 눈이었다.

백한빈이 ‘하마’와 늘 웃고 떠들던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는 그림은, 한빈을 이 집에 들이는 순간부터 상상은 했던 일이었지만 이렇게 기묘한 느낌일 줄은 몰랐다.

“과제 때문에… 잠깐 켰어. 그런데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서.”

[작품후기]

안녕하세요!!!

오늘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선작과 추천 역시 정말 감사합니다!

늘 남겨주시는 코멘트들도 늘 기쁜 마음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 ^

어느덧 겨울이 엄청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아요.

건강 상하시지 않도록 늘 조심하세요. 매일매일이 따뜻하고 행복한 일로 가득하시기를 늘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 ^

저는 또 조만간 다음 편으로 찾아뵐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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