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뭐, 뭐라고? 형 페로몬을 나한테 뭘 어째?”
“진짜, 진짜! 한 번만 부탁할게!”
한별은 지금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대한민국에서 꽤 적은 편에 속하는 오메가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그다지 불편하게 살아오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기도 했고, 성격도 조용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오메가라는 형질보단 한별이 가진 외모가 더 특출난 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눈에 띄는 한별의 형 유성의 탓이 컸다.
“아니, 형……. 근데, 애초에 내가 가진 페로몬이 형이랑 다른데 어떻게 그걸…….”
“내가 내 페로몬을 조금 묻혀 둘 테니까…….”
“……이 미친 형 새끼가!”
한별은 대한민국 대표 남자 아이돌 그룹 채널(Cha.N)의 멤버이자 태어날 때부터 아이돌의 별을 타고났다며 명성이 자자한 친형, 유성을 보며 머리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 미친 형아야, 내가 왜! 왜!”
같은 오메가의 페로몬을 나한테 묻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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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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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방송사 Vnet의 아이돌 데뷔 프로그램 [Pick, My Dol!]을 통해 채널(Cha.N)이 데뷔했다.
실력 ok, 외모 ok, 끼 ok.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모든 멤버가 알파와 베타로 이루어진 그룹’이라는 점이었다.
그전까지 연예계는 상대적으로 외모가 아리따운 오메가가 주를 이루었고, 자연히 오메가 인물상이 인기를 얻었다. 그만큼 오메가의 외모는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물론 알파 연예인의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알파보다 오메가의 숫자가 훨씬 적다는 것이 한몫했다. 희귀한 형질이니만큼 대중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채널(Cha.N)의 인기 요인은 그와는 다른 매력에 있었다.
팬들이 가수의 실력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응원할 수 있다는 점은 물론, 자체적으로 작·편곡도 가능하며, 얼굴이 잘생겼다.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 점이었다.
채널(Cha.N)은 멤버 전원 얼굴이 잘생겼다.
일반적으로 베타보단 알파, 오메가 형질을 띠는 연예인들의 외모가 눈에 띄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채널(Cha.N)은 알파가 둘, 베타가 셋임에도 베타 멤버들이 알파 형질 멤버들의 통수를 후려칠 만큼 수려한 외모를 자랑했다.
그중 하나로 알려진 것이 한별의 형, 유성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전교 1등은 물론, 간혹 전국 1등이 찍힌 모의고사 성적표를 가져오던 유성이 아이돌이 되겠다며 뛰쳐나간 것은 정확히 그가 고2를 앞둔 겨울이었다.
‘한별아, 형 찾지 마.’
‘……엥? 갑자기 뭔 소리야?’
‘형은 아이돌이 되어 돌아올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설명을 해 줘야 알지. ……어? 형, 어디 가? 어디 가냐고! 야악―!’
한별이 기억하는 세 살 터울의 형, 유성은 노래나 춤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아이돌 무대를 보기는커녕 노래도 듣지 않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작곡을 배우고 싶다는 한별에게 선뜻 자신의 사양 좋은 컴퓨터를 내주고, 용돈을 쪼개 미디 프로그램을 사 줄 만큼 동생을 아끼는 둘도 없는 형이기도 했다.
근데, 뭐?
아이돌? 갑자기?
그렇게 유성은 사춘기가 슬슬 끝나 가던 열여덟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밖으로 나가 소식이 끊겼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연락도 안 되고, 도대체 무얼 하는지 확인도 되지 않던 유성이 [Pick, My Dol!]에 덜컥 얼굴을 내비친 것이다.
공부를 잘하다 못해 손에 꼽던 형이 아이돌이라니! 가출한 아들이 갑자기 아이돌 프로그램에 나오다니!
그날 이후 부모님의 핸드폰은 불이 나기 시작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로그램에서 유성의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한별은 더욱 말을 아끼게 되었다.
이후, 유성은 결국 데뷔했다.
[Pick, My Dol!]에서 당당히. 그것도, 1위로.
첫 등급 평가에 저등급으로 시작한 유성은 점차 춤이 늘고, 보컬이 늘고, 랩이 늘었다.
그러자 그다음 평가에 하이패스를 단 듯 최고 등급에 들어가더니 잘생기고 날카로운 외모, 그럼에도 다정한 말투로 센터보단 팀원을 이끄는 리더로서 인기를 끌었다. 170센티미터 중반대였던 키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훌쩍 커선 기어코 180센티미터를 찍었다.
이를 지켜보는 한별로선 당황스럽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형이 걱정한 것과 다르게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어 뿌듯했다. 하여 작곡가를 꿈꾸는 한별은 나중에 자신이 만든 곡을 유성이 불러 주는 꿈도 꾸었다.
“……저, 저게 뭐야?”
하지만 한별은 유성의 마지막 방송, 관객석에 들어섰을 때 형의 팬들이 들어 올린 플래카드를 보곤 눈이 흔들리고 말았다.
[베타의 희망! 최유성, 김세현, 하예찬!]
[베타즈 데뷔해!]
“……베타라고?”
형이? 유성이 형이?
……형은, 오메가인데?
이후, 한별은 유성에 관한 이야기를 더더욱 아끼게 되었다.
원래도 유성은 자신의 사이클을 잘 관리했다. 단 한 번도 문제가 생긴 적 없어, 그의 친한 친구들 역시 유성의 형질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억제제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공부하는 동안, 그리고 시험을 보는 동안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철저하게 관리한 것이다.
우성 오메가이기 때문에 억제제를 사용해도 간혹 부작용 때문에 조금 힘겹게 사이클을 나는 한별과는 달리, 유성은 억제제를 먹지 않아도 적당히 사이클을 넘겼다.
아무튼 형질을 이야기하지 않아 베타로 알려졌다가 나중에 밝혀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건 형질을 가진 이들이 꽤 많은 차별을 받던 옛날의 이야기지 않던가.
그런데, 어째서 유성이 베타로 묶여 있는가.
급히 핸드폰을 찾은 한별은 프로그램의 오메가 출연자가 전부 떨어진 점, 데뷔 조를 뽑는 마지막 화에 남은 12명 중 9명이 알파라는 점, 그리고 유성의 성격과 외모 탓에 생긴 일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제목: 최메테오 형질 비워둔 거 너무 발리는 부분 오메가는 아닌 것 같고 베타 아님 알파 각
작성자: ㅇㅇ
제곧내
댓글새로고침
왜 비워놨지?
└ 컨셉질
└ 먹금
└ 베타인 듯? 다른 알파들 외모만 봐도 딱 보이지 않나
└ 맞아ㅠㅠㅠㅠ 알파 특유의 향이 없다
└ 도대체ㅋㅋㅋㅋ어디서 맡는 거야 그 향ㅋㅋㅋㅋㅋㅋㅋㅋ
어느 쪽이어도 좋지만 베타에 한 표 건다. 베타의 힘을 보여 줘ㅠㅠㅠㅠㅠㅠㅠ
└ 오메가 남돌 취향은 도대체 어디서 힘을 얻나 ㅠ
└ 그럼 픽마돌 말고 ZBS에서 작년 말에 끝난 The Z SloT ㄱㄱ 참가자에 오메가 가득함. PD가 알파라는 소리 있었을 정도임
└ 슬롯 걔네 데뷔 멤 센터 임신으로 나가리 된 이후로 활동은 합니까...?
└ ㄴㄴ 일주일 전에 해체 발표 함 ㅅ11발...
채널(Cha.N)이 데뷔하기 직전에 터진 타 방송사 프로그램 출신 아이돌의 사건으로 [Pick, My Dol!]에 출현한 오메가 참가자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리고 형질이 비어 있던 터라 사람들은 유성이 베타일 것이라 확신했다.
“아, 어쩌자고 형질을 속인 건데…….”
“사실 속인 건 아니지…….”
“말 안 한 거랑 속인 거랑 뭔 차인데!”
하지만 한별은 유성이 열성 오메가임을 알기에 데뷔하고 시간이 지나도록 조마조마했다. 말마따나 속인 것은 아니지만, 말하지 않았다는 건 속이는 것과 진배없기에 더욱 불안했다.
그렇게 18살에 데뷔한 유성은 이제 22살이 되었고, 유성은 형질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나 숨기는 것이 편했기에 멤버들에게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중에 따로 들어 보니 그 이유인즉 제 형질 탓에 가족 같은 멤버들과 어색해지기 싫어서라고 했다. 특히나 멤버 중엔 알파가 있기에 더더욱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4년 동안 잘 숨겨 온 진실이 밝혀질 상황 앞에서 유성은 동생에게 두 손을 모아 비볐다.
“후……. 일단, 제대로 설명을 해 봐. 하나하나, 차근차근.”
제 페로몬을 묻히겠다는 형의 말에 한별은 당장 멱살을 잡으려 손을 치켜들었다. 이에 유성은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채널(Cha.N)은 데뷔 전부터 여러 광고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데뷔 후에도 명료한 콘셉트와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5년 차가 된 지금도 스케줄이 가득했다.
히트 사이클을 칼같이 관리해 온 유성이기에 그간 멤버나 다른 사람들에게 형질을 들키지 않았는데, 계속된 스케줄 탓인지 문제가 생겼다. 히트 사이클에 맞춰 억제제를 먹었음에도 페로몬이 새어 나온 것이다.
“잠깐만, 페로몬이?”
“어…….”
유성이 난감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한별은 형의 이야기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형의 페로몬이 새어 나오는 걸 느낀 적이 있던가? 단언컨대 한별의 기억엔 단 한 번도 없었다.
“형, 잠깐만. 형 스케줄 표 좀 줘 봐.”
“어?”
“얼른.”
단호한 한별의 말에 유성이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제 핸드폰을 들었다.
유성이 활동하는 그룹, 채널(Cha.N)의 스케줄 표는 올해를 넘어, 계약 기간이 끝나는 여름까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게다가 이제 곧 10월. 여러 방송사에서 시작되는 연말 공연을 준비해야 하니, 당연히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별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따 밤 라디오도 있어?”
“응…….”
지금 이런 상황에?
본래 페로몬은 사이클 때뿐 아니라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멋대로 흘러나오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쉬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쉴 이유가 하등 없기 때문이었다. 대외적으로는 베타로 알려져 있는데, 히트 사이클 때문에 쉰다곤 말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멤버들한테 아직 들킨 건 아니지?”
“그게…….”
“결국 들켰냐!”
“아니야! 난 안 들켰어!”
한별이 유성의 멱살을 잡았다. 유성은 급히 양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