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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2화 (2/78)

2화

“너희 뭐 하니? 한별이, 왜 소리가 크고?”

“아녜요! 엄마!”

“저희, 놀아요! 아주 신나게 놀고 있어요! 우린 진짜로 정말 재밌게 놀고 있는 거예요!”

한별의 살의 가득한 시선을 마주한 유성은 살아남기 위해 급히 문밖의 어머니께 거짓을 고했다.

상황을 떠나, 유성이 여태껏 제가 오메가임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명확했다.

데뷔 후, 매년 터지는 ‘오메가 아이돌 논란’에 언제나 유성의 이름은 없었다. 형질이 섞인 아이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도 오메가 아이돌은 여러 소문을 몰고 다닌 것이다.

더구나 페로몬이 흘러나올 정도로 몸이 좋지 않은 지금조차 오메가라고 밝히기엔 상황이 나빴다.

최근 터진 ‘오메가 아이돌, C군의 임신설’ 탓이다. 이런 안 좋은 시기에 오메가임이 알려지면 유성의 커리어에 분명히 문제가 될 터다.

흘러나오는 페로몬을 갈무리하지 못할 만큼 좋지 않은 몸, 하지만 이어 가고 싶은 아이돌 활동.

“한별아, 진짜 미안해……. 네 페로몬이라고 해서 그나마 다행히 넘어간 상태긴 해…….”

한별 역시 유성처럼 자신의 형질을 굳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편은 아니나, 형의 멤버들은 이미 자신이 오메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별은 유성이 급히 머리를 굴린 대가가 이것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한별은 죽을죄를 지었다며 싹싹 비는 제 형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후……. 그렇다고 날 파는 건 진짜 형으로서 좀 너무했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동생을 팔아?! 한별이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놓았다.

한별은 페로몬이 강한 우성 오메가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페로몬 조절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히트 사이클 주기도 철저하게 챙겨 억제제를 먹었으며, 혹시나 자신의 페로몬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두려워 주의했다.

그런데, 나를 페로몬 관리도 못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물론, 한별도 유성이 얼마나 궁지에 몰렸으면 그런 변명을 뱉은 것인지 이해는 됐다.

형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얼마나 바라던 꿈이었는지 알고 있다. [Pick, My Dol!] 방송 내내 잠은 죽어서 자려는 것인지 자는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았던 유성이었다.

1등으로 데뷔한 후에도 결국은 아들의 꿈을 허락하고 응원하는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연습생 기간이 꽤 되는 멤버들보다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매번 연습실에 박혀 있기도 했다.

오메가는 무조건 떨어뜨리고 보자는 의견이 가득했을 때도 베타일 것이라는 시청자의 추측에 힘입어 살아남았고, 데뷔 후에도 오메가가 아닐 것이라는 의견에 조금의 논란도 일지 않았었다.

한별은 생각을 정리하고, 결국 인정했다.

오메가임을 밝히지 않은 형의 판단은 옳았다. 변명으로 자신의 이름을 올리긴 했으나, 논란이 없기 위해선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

오메가가 없는 숙소에 오메가 페로몬이 묻었다면 당연히 누군가 몰래 연애를 해서 자신의 애인을 데려왔거나 사생의 침입을 먼저 예상할 테니까.

“하지만 애인을 데려온 건 아닐 테니, 사생 생각해서 회사 뒤집혔을 거고.”

“어…… 맞아.”

한별의 말에 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채널(Cha.N)의 숙소는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아파트였다. 그런데, 그곳까지 쳐들어온 사생이 있다?

이미 데뷔 초에 아니, 데뷔 전 프로그램 출연 시절부터 붙은 사생 탓에 멤버들의 노이로제는 극에 달해 있었다. 한별 역시 유성이 겪는 상황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제 일이 아님에도 스트레스가 함께 오르기까지 했었다.

이에 유성은 멤버들의 불안함을 잠재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하지만 유성은 최근 연예계에 터진 사건들로 인해 차마 자신이 오메가임을 밝힐 수 없었고, 그 차선책으로 한별을 입에 올린 것이다.

“……알겠어, 알겠다고.”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한별을 향해 유성이 고맙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한별은 마음 한편이 짠했다. 자신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그간 얼마나 불안했을까.

하지만 울컥 화가 치솟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눈을 찌릿 치켜뜨자, 유성이 어깨를 움츠리며 한별의 눈치를 보았다.

둘은 평범한 형제 사이가 아니었다. 형질이 어떻든 세 살 차의 형제라면 일단 싸우고, 부딪치고 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던가?

같은 부모에게서 난 자식이라면 서로를 물고 뜯는 데 혈안이 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유성과 한별은 그러지 않았다.

순전히 유성과 한별의 성격이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둘 중 누군가 삐딱선을 타든가 예민했다면 모르겠으나, 둘 다 성격이 둥글둥글하니 딱히 모난 곳이 없었다.

한별이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할 때 유성이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 탓도 컸다. 그런 만큼 한별은 자신의 형의 일을 차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뭐, 내 얘기 하는 것 정도야…….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근데, 좀 문제가 생겼어.”

“……제발, 형이 말한 그대로 조금이라고 얘기해 줘. 큰 문제 아니라고.”

“…….”

한별의 즉답에 유성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표정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탓에 한별은 형의 멱살을 다시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뭔데. 얘기 듣고 멱살 잡을게.”

“안 잡는다는 결론은 없는 거야?”

“응. 없어.”

한별의 목소리는 지엄했다. 유성은 감히 한별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단영이 형이.”

“응. 형네 리더 형이.”

“……페로몬 향이 취향이래. 그래서, 일이 좀 복잡해졌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결국, 한별은 제 형의 멱살을 다시 꽉 잡았다.

* * *

한별이 젓가락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주위에서 히죽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잘 묵었다~.”

“오냐.”

한별이 배를 두드리는 친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준다고. 알겠다고.’

갑자기 몰린 스트레스 탓인지 힘이 풀려 뒷덜미를 주무르며 말하는 한별에게 유성은 침착하게 용돈을 내밀었다.

평소라면 유성이 주는 용돈을 ‘오~ FLEX?’ 하며 감사하게 받았을 한별이지만, 자신의 일에 휘말린 동생을 향한 뇌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받으면서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었다.

얼마나 스트레스였으면 한별은 지난밤, ‘너 이제부터 나랑 한배 탄 거다?’ 하며 윙크를 날리는 유성이 꿈에 나왔다.

“나 그럼 간다.”

“아무리 친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사치라지만, 밥만 처먹고 입만 싹 닦고 가는 꼬락서니 좀 봐라.”

“우리가 먹어 줘서 고맙지? 다 알아, 새끼야.”

“아, 헛소리 달달하고.”

“야! 도은한! 버스 온다!”

“강재휘 저거 또 먼저 가네. 나 진짜 간다. 잘 먹었다!”

“그래, 가라.”

한별은 제 복잡한 표정엔 관심도 없고, 학원에 간다며 먼저 멀어지는 친구들의 등에 욕을 던져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에휴.”

앓느니 죽지. 한별은 목 밑까지 올라왔던 욕을 차분히 가라앉히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능이 코앞에 다가온 가을이다. 괜히 장난이랍시고 한 소리 했다가 엉뚱한 곳으로 튀면 절교 선언까지 나오는, 스트레스 가득한 시기였다.

“한별아.”

한별은 먼저 멀어진 친구들과는 달리 제 옆에 서서 자신을 걱정스레 내려다보는 다른 친구, 태하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맛있게 먹었어? 양이 적진 않았고?”

“응. 맛있게 잘 먹었어. 고마워.”

정 없는 저 새끼들이랑 달리, 너는 참 좋은 친구야. 한별은 조금 감동적인 얼굴로 태하를 올려다보았다.

한별은 형이 아이돌로 데뷔한 후, 가장 친한 친구라 할 수 있는 이 셋을 제외하면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소문을 듣고 친해지려 다가온 사람은 많았지만,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유성이 가족의 이야기를 최대한 줄이고 노출하지 않는다 해도 한별에겐 많은 시선이 붙었다.

“무슨 고민 있어? 안색이 안 좋은데.”

“…….”

역시 넌 진짜 좋은 친구야.

관심 하나 없이 사라진 친구들과는 다르게 한별의 안색을 읽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태하의 얼굴에 한별은 조금 기분이 나아짐을 느꼈다.

하지만, 이 고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었다. 가족 외엔 유성의 형질을 모르니 더더욱 얘기할 수 없었다.

특히나, 어제 유성에게 들었던 그 충격적인 말은 더더욱.

‘……페로몬 향이 취향이래. 그래서 일이 좀 복잡해졌어.’

‘나 고등학생인 거, 멤버들이 알아?’

‘……내가 동생이 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겠지? 나도 단영이 형이 둘째라는 것만 알아.’

‘4년 동안 숙소 생활하면서 가족 관계도 설명 안 하고 뭐 했냐?’

역시, 남에겐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다. 한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별아. 눈이…… 죽어 있는데?”

“그냥 걱정돼서 그래. 수능 얼마 안 남았고 하니까, 불안해서.”

“정말?”

“그럼~.”

“……그렇구나. 한별이 넌 잘할 거야.”

말을 내뱉고 나니 걱정이었다. 한별은 형인 유성도 문제지만,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이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보통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꿈이 확고하면 그 꿈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고들 한다. 한별 역시 이미 어려서부터 작·편곡에 소질을 보였으니 그대로 해 나가면 된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았다.

어릴 땐 나름 천재 소리 들었던 한별은 눈앞에 선, 또 다른 천재의 응원에 어색하게 미소만 지었다.

순간 한별은 태하에게 자신의 사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함께 머리를 싸매 달라고 할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유성의 사정도 사정인데, 태하에겐 절대 말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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