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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5화 (5/78)

5화

“한별아.”

한별의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태하가 땀을 삐질 흘리며 그를 불렀다.

“아무튼, 태하 넌 연습해. 이번 데뷔가 무산됐더라도 할 일은 해야지.”

“그게…….”

“거기다 수능도 얼마 안 남아서 오히려 잘됐지, 뭐. 한쪽에 쭉 집중할 수 있잖아.”

어쩐지 톡 쏘는 말투가 튀어 나갔다. 태하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한별은 내심 이렇게 세상을 만든 신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공부는 걱정 마. 형이 잘 가르쳐 줘. 우리 형, 예찬이 형 수능 점수도 잘 받게 도와줬다더라고.”

채널(Cha.N)의 막내 멤버의 수능 이야기까지 말하며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자, 태하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응?”

내가 세상 원망하던 걸 너무 티 냈나?

한별은 태하에게 사과해야 하나 싶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금 난감한 듯 고운 이마를 좁히던 태하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혹시 너, 데뷔 날짜 나왔어? 바로?”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뭐야?”

“나, 사실…….”

“지태하! 최한별! 얼른 나와!”

“야! 오늘 돼지 폭찹 스테이크 나온다고! 늦으면 쪼꼼밖에 못 받는다고!”

태하의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교실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며 외치는 친구들의 목소리에 한별은 미간을 좁혔다.

“아, 쟤네는 무슨 돼지 못 먹은 귀신이 붙었나……. 태하야, 일단 급식실 가자.”

“어? ……응.”

점심시간은 아직 남았으니 못한 이야기는 점심을 먹고 들으면 될 것이다. 아니면, 밥 먹는 중에 들으면 되지. 한별은 그리 가볍게 생각하곤 태하와 함께 급식실을 향해 달렸다.

하여 한별은 식사 중에 태하에게 말하라 했지만, 밥은 맛있게 먹고 나중에 말하는 편이 좋겠다며 웃는 태하의 답에 수긍했다.

―3학년 1반 지태하. 3학년 1반 지태하. 지금 교무실로 오세요.

하지만 한별이 점심시간에 태하가 못한 말을 듣게 되는 일은 없었다.

식사를 막 끝내기가 무섭게 들려온 방송에 태하는 교무실로 불려 가야 했고, 수업 종이 울린 후에야 교실에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쉬는 시간엔 수면제나 다름없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기절해 버렸고, 그다음 쉬는 시간엔 태하가 다시 교무실로 불려 갔다.

“태하, 오늘 종일 불려 가네?”

교과서를 빌리러 온 재휘에게 줄 책을 꺼내며 한별이 중얼거리자, 재휘가 그를 타박하듯 입을 열었다.

“소식 개 느리네. 왜, 지태하 재작년에 학교 대항전 나가서 받아 온 거 있잖아.”

한별은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고 보니 태하는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퀴즈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었다. 응원석엔 친구나 학교 선생님이 앉아야 한다며 자신과 은한, 재휘가 응원 현수막을 뽑아서 갔었다.

당시 태하는 그 방송에서 고2, 고3 선배들을 제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었다. 역시, 사기캐……. 세상은 불공평하다.

“아, 아~ 어, 그게 왜?”

“그거 우승 상품으로 대학 4년 등록금이랑 3주 내외 단기 어학연수 지원 있었잖아. 그런데 그게 사용할 수 있는 일정이 정해져 있대. 그래서 수능 끝나고 정시 원서 접수까지 비는 기간에 가기도 하더라. 근데, 그러려면 출석 관련해서 학교랑 얘기를 해야 하니까.”

“아.”

한별은 그제야 이해가 됐다.

본디 태하는 회사에 묶인 상태인 데다 연습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근, 태하의 데뷔가 또 어그러졌다. 아무리 빨라도 고등학교 재학 중엔 데뷔할 확률이 희박했다.

그래서 이 틈에 어학연수를 가려는 건가?

내내 바쁜 태하의 빈자리를 보던 한별은 재휘에게 교과서를 내밀었다.

“낙서하지 마라. 저번처럼 그림 그리지도 말고.”

“야, 최한별…… 난 네 책에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데?”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표정을 짓는 재휘를 보며 한별은 표정을 흐렸다.

“……네 눈엔 이게 그림이 아니면 뭐로 보이냐?”

“글씨, 인마. 글씨. 한글도 못 알아보냐? 세종대왕님이 서운해하시겠다.”

“글씨였냐? 상형 문자인 줄.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눈뜨겠다.”

때마침 수업 종이 쳤고, 한별은 급하게 달려 나가는 재휘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맨 뒷자리, 아직 교실에 돌아오지 않은 태하의 빈자리를 보며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데뷔 일정이 어그러졌어도 태하는 회사에 묶인 연습생이다. 단기 어학연수여도 그만큼 레슨 시간이 사라지는 건데, 회사에서 들이는 레슨 비용을 생각하면 태하가 쉽게 어학연수를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교내에 소문이 났을 정도라면…….

“태하야.”

한별은 수업이 끝난 후, 다음 이동 수업을 위해 교과서를 챙겨 드는 태하를 불렀다.

내내 바쁘게 불려 다녔던 탓에 태하 역시 정신이 없었던 것인지, 한별이 제 이름을 부른 후에야 제대로 정신을 차린 듯했다.

“아. 한별아, 미안해. 내가 계속 정신이 없어서…….”

먼저 사과하는 태하를 보며 한별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아까 내가 하려던 얘기는…….”

“너, 혹시 회사 그만뒀어?”

한별의 말에 태하가 멈칫하다, 이내 표정이 굳혔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은 건데 정답이었다.

한별은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 들었다. 태하의 성적이 좋은 건 머리도 좋지만, 그보다 큰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태하가 매번 데뷔 조에 오른 것도, 잘하는 것 이상으로 열심히 연습했기 때문이니까.

한별이 그런 태하를 계속해서 응원한 것은 데뷔란 화려한 독배를 삼키게 되는 일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한별이 너한텐 빨리 말해 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았어. 매번 응원해 주고 도와줬는데…….”

아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태하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사과할 일도 아닌데 응원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며 미안한 표정을 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근데, 어째서? 왜? 연습 잘하고 있었잖아.”

한별이 한 걸음 가까이 서서 묻자, 태하가 난감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13살 꼬꼬마 시절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던 태하였다. 그만큼 이리 쉽게 포기할 녀석이 아닌데!

“회사가 어려워져서…….”

태하의 지친 표정을 본 한별은 지금 그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왜냐면 지금은 채널(Cha.N)의 멤버인 윤수와 세현이 그랬기 때문이다. 특히, 말수가 적은 윤수는 종종 지금 태하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윤수는 채널(Cha.N)로 데뷔하기 전, 어찌 보면 망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데뷔 프로젝트 팀의 멤버였다. ‘Teo’라는 예명이 박힌 프로필 사진까지 SNS에 올라왔다. 심지어 데뷔 예정 날짜까지 올라왔는데, 결국 무산됐다.

그래서일까. [Pick, My Dol!] 첫 방송 인터뷰 때, 윤수는 사실 아이돌이라는 꿈을 포기하려 했다고 말하며 딱 저런 표정을 지었다.

‘그 힘든 시기를 어떻게 버텼나요?’

아래로 인터뷰에 자막이 달렸다. 당시 윤수는 고민을 하다 무어라 답하기 어렵다는 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포기하고 지내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전 [Pick, My Dol!]에 참가 신청하고 있었어요.’

그 대답에 비슷한 일을 겪었던 다른 멤버들이 윤수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한별은 그를 위로하던 장면을 떠올리곤 저도 마찬가지로 태하의 머리를 쓱쓱 쓸었다. 괜찮아, 괜찮아.

다른 사람에겐 그저 남의 일이겠지만, 한별에겐 주변 사람이 겪어 본 일이고, 좌절했던 일이고 진행형인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그 지옥 속에서 꿈을 이뤄 낸 사람들을 알고 있다. 물론, 데뷔 후도 다른 의미의 지옥에 살고 있긴 하지만…….

“일단, 수능을 잘 보자.”

“응. 알겠어, 한별아.”

태하가 미소 지었다. 한별은 뿌듯했다.

“같이 대학 가면 되지.”

“그래!”

열심히 달려온 만큼, 잠시 쉬어 가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멈춘 게 아니라, 다시 움직이기 위한 힘을 비축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한별의 눈에 태하는 뭐든 잘하는 친구니까.

한별의 말에 웃던 태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앞으로 내가 네 공부 도와주면 안 될까? 물론, 내가 유성이 형처럼 수능 만점자고 그런 건 아니지만…….”

음……. 그건 좀 난감하다. 애초에 숙소에 가는 이유가 수능 탓이 아니니까.

간당간당하긴 해도 한별은 가고 싶은 학교의 최저 등급 점수는 받는 상황이었다. 그러니만큼 여기서 조금만 더 끌어 올리면 성적은 안정권에 들어서니, 사실 유성의 과외도 굳이 필요하진 않았다.

“아……. 내가 태하, 네 시간을 빼앗는 거 아닐까?”

“그건 아냐. 차라리 내가 나을 거야. 한별아, 아무리 아는 사람들이라 해도 숙소에 가는 건 위험해.”

태하의 눈이 조금 일렁였다. 하지만 한별은 되레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네 시간 빼앗을 순 없어. 나도 유성이 형이 편하고.”

“……혹시.”

“응?”

“거기, 아니, 그…….”

태하가 고민하듯 미간을 좁혔다 폈다.

“거기, 알파가 둘 있잖아.”

“어? 응, 그렇지.”

뭔가 알파이기 전에 형의 동료라는 생각이 너무도 강하긴 하지만.

한별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하가 굳은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알파긴 해도, 나랑 공부하면 독서실이라든가 학교에서 하기도 좋잖아.”

미안하지만 그러면 안 돼요, 태하야. 그 알파들 때문에 가는 거거든. 걱정 가득한 태하의 모습에 한별은 하하,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형이 있는데, 뭐.”

“……그럼, 나도 같이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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