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어?”
“그 과외 말이야. 수능 만점한테 받는 거, 나한테도 좋은데.”
안 되는데요. 태하야, 너도 알파인데요.
유성의 페로몬에 생각이 닿은 한별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한별의 강한 반대에 태하는 주춤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형 숙소에서 하는 거라 외부인을 데리고 들어갈 순 없어. 나도 아직 들어가려면 꽤 까다롭기도 하고. 그리고 너, 그간 데뷔 준비 들어간다고 해서 네 개인 공부하는 시간이 꽤 부족했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더 빼앗기면 안 돼. 내가 미안해서 더 안 돼.”
“미안해하지 않아도…….”
“정말 고마워.”
한별의 감사 인사에 태하는 더 할 말이 없어진 듯 입을 다물었다.
“내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그래도 태하, 네 시간을 더 이상 엉뚱한 데에 빼앗기진 말자.”
“응…….”
“평일은 학교에서 도와줘. 주말에도 매번 형네 숙소에 가는 건 아니니까, 주말도 괜찮고. 그래도 괜찮을까?”
“응. 나도 주말 좋아.”
“그럼, 그때 보자.”
“토요일?”
“너만 괜찮으면 토요일에 보는 게 좋겠지?”
“고마워.”
“고마울 게 뭐가 있다고. 그럼 토요일에 보…… 어, 어어? 태하야, 태하야! 우리 이동 수업 4반! 달려!”
수업 종이 울렸다. 당황한 한별이 교과서를 들고, 다음 수업 교실을 향해 달렸다. 태하는 앞서 달려가는 한별을 보며 교과서를 꽉 쥐었다.
* * *
빨간 펜을 들고, 시험지를 채점하던 유성이 피곤한 듯 누워 늘어진 한별에게 입을 열었다.
“동생님, 부탁이 있는데.”
“왜.”
나 지금 부탁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진짜 기겁하거든?
한별은 일전에 부탁하겠다며 두 손을 모으던 유성이 생각나, 고개만 슬쩍 돌려 유성을 보았다. 그 시선에 유성이 시험지로 고개를 숙였다.
“한별아. 그렇게 노려보시면 형이 참 무섭고 그래…….”
“난 형이 무슨 부탁을 할지 참 무섭고 그래.”
“큰 거 아냐.”
“큰 거 아냐? 지금 내가 형 숙소 왔다 갔다 하는 건, 큰 거 아니고?”
“잘못했슴다.”
한별이 뚱해진 얼굴로 왜, 하고 유성에게 되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배를 탄 형제니까.
“이번 주말에 같이 이동할 수 있어?”
“주말에?”
“응…….”
“이번 주말 스케줄이 뭔데.”
“……어. 그, 충남에 문화제 있는데, 그거 개막식 공연…….”
충남?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천안도 충남이고, 태안도 충남이고, 금산도 충남이다.
“충남 어디.”
한별이 핸드폰을 들어 검색했다. 충남, 문화제.
“공주…….”
“뭐 타고.”
“밴 타고 갑니다.”
서울에서 공주. 한별은 이동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베고 있던 베개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지금 나한테 차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리잔 거야?!
한별이 베개를 들자, 유성이 자신에게 날아오리라는 것을 눈치챈 듯 급히 양손을 들어 막았다.
“미안합니다!”
“너는! 어떻게 된 게! 형이라는 놈이!”
베개 싸움을 하듯 마구 내리치자, 풀썩이는 소리가 울렸다.
“악!”
“할 말이야? 그게? 어? 밴을 타고?”
“미안해! 근데, 내 말 좀! 한별아!”
분이 풀리지 않았다. 한참을 베개로 유성을 내리치던 한별이 이내 지친 듯 다시 늘어졌다. 정작 베개로 열심히 맞은 유성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저 인간의 체력은 어디서 오는 거야.
“아니 내가, 응?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해. 지금 최한별 ×돼 봐라, 하고 계획 짜는 거지?”
“에이, 설마~.”
“그러지 않고서야 형이 나한테 이럴 순 없지!”
한별이 화를 내는 이유는 명확했다.
차 타고 한 시간 반이면 한별은 100퍼센트 확률로 차멀미에 시달릴 것이다.
차 타고 30분. 그나마도 한별의 컨디션이 좋을 때 멀미를 견딜 수 있는 최장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세 배나 되는 거리를 차 타고 가자고 하니 이가 갈리는 것이다.
“미안…….”
하지만, 그렇다고 가지 않겠다고 하기는 또 어려웠다.
어지간하면 숙소 방문도 조금 띄엄띄엄하려고 하지만, 유성의 히트 사이클이 시작될 예정인 날짜가 이틀 뒤 목요일이었다.
하필 유성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탓에 억제제도 효과가 약한 것으로 줄인 상태. 그러니 굉장히 높은 확률로 페로몬이 새어 나올 것이다. 학원 수업을 며칠 쉬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주는 내내 숙소에 들락거려야 할 상황이었다.
“아니, 숙소에만 있어도 된다며.”
“여긴 지역 축제다 보니까……. 이미 약속도 되어 있고.”
이미 팀과 관련된 금액이 책정되어 있다나.
아무튼, 한별이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확실한 건 유성을 따라 1시간 30분이나 자동차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 잠깐만, 주말 언제?”
“토요일. 사실 일요일 스케줄도 있긴, 한데…….”
“…….”
“일요일은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근데, 토요일은 아무래도…….”
늘어지는 유성의 목소리에 한별이 이를 으득 물었다. 몸 상태 조진 인간은 그 입을 다물라.
한별은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들었다.
“……아, 태하한테 또 미안한 짓 해 버렸잖아.”
“태하?”
“토요일에 같이 공부하기로 했단 말이야. 약속해 놨는데.”
“굳이 왜? 형이 과외 해 주잖아.”
“친구랑 공부하는 거랑 똑같아?”
주말은 밥 먹는 시간도 수능 시간이랑 똑같이 체크하려 드시는 분이 무슨……. 요즘 한별은 유성 덕에 반강제 수능 루틴을 밟고 있었다.
“태하도 공부 잘해.”
“나보다 잘해?”
“…….”
수능 만점자가 그걸 물어보면 내가 뭐라 답해야 합니까.
한별이 흐린 눈으로 입을 열었다.
“형은 내가 쉬는 게 그렇게 싫어?”
“에이, 설마.”
“그래, 아니어야 할 거야. 형의 계획에 놀아나 주고 있기까지 한데, 아닌 게 아니면 가만 안 둘 테니까.”
“예, 예에…….”
한별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태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주말에 사정이 생겨 형을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는 메시지에 태하는 평소와 다름없는 답장을 보냈다.
지태하
알겠어. 이번 주는 무리여도 다음 주엔 볼 수 있으면 좋겠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고럼, 고럼.
한별이 액정을 보며 다정한 친구에 대해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 유성이 고개를 움직여 한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 개 놀랐네! 무슨 귀신이야? 고개를 왜 그렇게 움직여?”
“애인이야?”
“아니거든.”
태하는 누가 봐도 좋은 애인 감이긴 했다. 하지만, 한별은 그를 친구 이상으로 볼 생각은 없었다.
단호한 한별의 대답에 유성이 “왜?” 하고 되물었다.
“애인으로 삼기 싫을 만큼 성격이 별로야?”
“그런 거 아냐.”
“그럼?”
“솔직히 성격 좋고, 키도 크고, 머리도 좋고, 심지어 우성 알파지만……. 근데 완전 좋은 친구라서 그러면 안 돼.”
“좋은 친구가 좋은 애인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근데, 왜 안 돼?”
“태하 꿈이 아이돌이야. 소속사에서 연습도 꽤 오래했―.”
“뭐어?”
“아, 깜짝이야.”
유성의 큰 반응에 한별이 몸을 움찔거렸다. 뭐가 그렇게 놀랄 일인데?
“왜?”
“……아, 아냐. 아냐 아무것도.”
한별이 미간을 좁히자, 유성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성이 다시 물었다.
“아이돌이야? 정말?”
“응. 잘생겼고 노래도 잘해. 솔직히 형보단 더 잘하는 듯.”
“아, 아니……. 그렇구나…… 걔가 그랬구나.”
“뭐가. 뭔데 그랬구나, 야. 형이 태하 본 적 있나?”
“아니, 몰라. 아무것도 아냐. 한별이 네 친구라길래, 난 혹시 너랑 비슷한 과인가 했지. 원래 친구는 비슷한 애들끼리 모이잖아.”
“무슨 뜻이야. 정확하게 얘기해.”
“음치인가 했지.”
형 새끼가 나를 먹인다. 한별이 이를 으득 물자, 유성이 농담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는 사이 현관문이 열리고, 멤버들이 하나둘 숙소로 들어왔다. 공부하는 동안 퇴근한 것인지, 유성을 마구 뒤쫓는 한별을 보며 멤버들이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사이좋네~.”
“그러게.”
대체 어디가? 한별은 그들의 반응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녀오셨어요.”
“응~ 오늘도 공부 열심히 했어?”
단영이 웃으며 한별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별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촬영했던 프로그램을 모니터링을 하려는 것인지, 멤버들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화면을 보기 시작했다.
굳이 자신이 볼 필요는 없는 것이기에 들고 나왔던 베개를 붙잡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단영이 눈을 빛내며 한별을 불렀다.
“이제 다시 공부할 거야?”
“네? 아, 해야죠?”
“슬슬 쉴 때 되지 않았어? 이거, 같이 모니터링 좀 해 줄래?”
굳이? 일반인인 내가? 한별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유성이 동생이잖아~ 난 한별이의 시선을 믿어.”
같은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타고난 능력은 다른 법이었다. 한별은 고개를 젓고 싶었지만, 슬쩍 다가온 유성이 한별을 앉혔다.
“왜. 나, 공부해야 해.”
“쉬는 것도 필요한 거야. 오늘 학교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내내 형이 너 공부 봐줬으니까, 형 스케줄도 봐줘.”
유성이 그렇게 말하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촬영본은 2주쯤 전에 찍은 녹화본이었다.
“너무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돼. 수능이 전부가 아니니, 조금은 쉬었으면 하거든.”
“조금 걱정돼서 그래.”
“엊그제도 늦게까지 공부했잖아.”
어린 막냇동생 챙기는 팔불출 형들 같다. 반짝반짝 잘생긴 사람들이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건네는 말에, 한별은 어쩔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