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바로 옆에 앉은 유성이 함께 보내는 걱정스러운 얼굴엔 그다지 감흥이 없었지만, 채널(Cha.N)의 멤버들은 조금 달랐다.
한별은 형의 데뷔를 응원하기 위해 [Pick, My Dol!]의 모든 회차를 본방송으로 달렸다.
방송 기간 내내 유성과 케미가 좋고, 팀 미션이 진행되는 내내 사이가 좋았던 지금 멤버들을 유성과 함께 홈페이지 투표 명단에 올려놓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뽑은 아이돌이니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게다가, 동생이 없어 자신을 친동생처럼 생각하며 아끼는 사람들인 걸 알기에 더더욱 매정할 수 없었다.
“어떤 프로그램인데요?”
“픽마돌4. 다다음 주 방송이 생방송 무대거든. 그래서, 그 전에 연습 한번 봐주고 왔어.”
“아…….”
한별은 흐린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서바이벌 아이돌 데뷔 프로그램이라지만, 고생도 이런 개고생이 없다 싶을 정도였던 [Pick, My Dol!] 1시즌이 떠오른 탓이었다.
지금이야 채널(Cha.N)은 누구보다 화려한 연예계 생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Pick, My Dol!]의 첫 시즌은 정말 누가 봐도 열악했다.
출연자들의 키나 몸무게 등의 기본 신상이야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기에 상관이 없지만, 핸드폰 번호나 거주 지역, 사는 위치까지 퍼져 출연자는 다들 곤욕을 치러야 했다.
유성에 대해 알아내고자 그가 졸업한 학교나 재학 중인 학교에 툭하면 찾아와 진을 치는 사람들 때문에 노이로제가 온 탓인지, 주변 사람들은 반대로 한별의 정보를 알리지 않았다. 덕분에 한별은 조용히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갈수록 자신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기에 처음, 유성은 부모님의 반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집에 최대한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응원을 받게 된 이후엔 가족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귀가를 피했다.
“그…… 속 쓰리지 않아요? 편집이라든가…….”
한별의 말에 멤버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 [Pick, My Dol!] 시즌 1에 출연하며 당했던 온갖 상황들을 떠올린 듯했다.
“후배들은 죄가 없으니까.”
인기가 많은 그룹이기 때문일까? 아무리 기다려도 채널(Cha.N)의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 회차에 이미 채널(Cha.N)의 출연을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4 출연진들의 연습실 모습과 작은 다툼을 과장해 보여 주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 번씩 당해 보았던 편집에 모두가 미간을 슬쩍 좁히던 찰나였다.
“아, 맞다. 한별아, 유성이가 이야기했어?”
어두워진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단영이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텔레비전에 시선을 두고 있던 한별이 유성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에 행사 따라가는 거요?”
“응. 밤에 불꽃놀이도 한대. 공부만 하는 것보다, 여행 겸 잠깐 쉬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좋을 것 같다길래 우린 좋다고 했거든.”
“네……. 가야죠.”
안 가면 큰일 나니까…….
반쯤 죽은 듯 흐려진 눈빛을 알아채지 못한 듯, 채널(Cha.N) 멤버들이 신나게 박수를 치는 것을 보며 한별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성이 형 히트 사이클만 아니었어도 안 따라가는 건데.’
한별은 원망을 가득 담아 유성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애써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한별의 시선을 모른 척하는 게 얄미워 팔뚝을 꾹 잡았다.
“……너무 스트레스 받는 건 안 좋아. 응? 한별아.”
유성의 말에 한별은 이마에 핏줄로 사거리를 그리곤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지금 상황이 된 것도 형의 스트레스 때문이지. 근데, 내 스트레스는 어쩔 거냐고 형 새끼야!
그사이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린 멤버들을 확인한 한별이 손에 힘을 주자, 유성은 신음을 죽인 채 파들댔다.
* * *
“머리 많이 울려? 속은 괜찮아?”
“형……. 미안한데, 제발 닥쳐 봐…….”
“예…….”
심한 차멀미에 끙끙 앓다, 결국 조수석에 늘어진 한별의 모습에 멤버들과 그 뒷자리에 앉은 유성이 불안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서울을 빠져나와 경부 고속 도로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눈앞이 노랗게 변하고 앞서가는 버스들은 흐물거렸다. 옆 차선의 차들이 울렁울렁 움직였다.
“뒤에 버스도 따라오고, 우리 시간도 맞춰야 해서 더 느리게는 못 움직이는데…….”
운전석에 앉은 매니저가 난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별은 차마 괜찮다고는 말하지 못하고 손만 내저었다.
“차라리, 빨리 가는 게 나아요…….”
어차피 고생할 일이라면 빨리 도착하는 게 낫다. 휴게소라도 들러 약이나 마실 걸 사자고 하던 멤버들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어차피 다 쓸모없는 행동이었다. 한별은 이미 귀 뒤에 멀미약도 붙였고, 출발 전에 마시는 멀미약도 먹었다.
늘어진 한별의 이마에 차가운 체온이 닿았다. 제 머리카락을 느릿하게 쓸어 주는 손길에 한별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위험하니까, 제대로 앉아…….”
한별의 말에 손이 떨어졌다.
유성의 한숨에 섞인 안타까움이 한별에게 들렸다. 내 동생 어쩌면 좋아. 느릿하고 조용한 걱정 소리가 조금씩 희미해졌다.
“……형이 미안해.”
유성의 목소리에 멤버들이 ‘유성이가 잘못했네~’ 하며 그를 타박했다. 사실 장난스럽지만, 미안함이 담긴 것은 채널(Cha.N)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별은 유성의 목소리에 섞인 미안함이 제 차멀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타박할 생각이 없었다.
유성의 아이돌 활동을 지켜 주기로 다짐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러니 이 정도 힘든 것은 감수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적어도 함께 짊어질 수 있는 짐이니까.
최메테오 진짜 ×같지 않냐? 천재로 이미지 메이킹 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저 새끼 연생 기간 없잖아 혼자 밤새 연습해서 고등급 반 간 걸로 몰아가는데 진심 말이 된다고 생각함?
솔직히 학원 다녔을 거다 학원도 연생 기간으로 쳐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돈 먹였나 보지
못하는 척으로 시작하는 천재 아이도루의 탄생ㅋㅋㅋㅋㅋ
주작작주작작
최주작 알아서 밝히고 하차해라
V넷의 아들ㅋㅋㅋㅋㅋ
유성을 향해 쏟아지던 날것의 비난은, 한별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연습생 출신으로 알음알음 인지도가 있었던 다른 출연자들과는 다르게, 유일한 비연습생 출신 출연자로 대중의 시선을 받았던 유성이었다.
아무리 유성이 실용 음악 학원, 댄스 학원 등을 다니지 않았다며 읍소해도 돌아오는 건 비웃음뿐이었다.
대응하고, 또 해도 두꺼운 벽에 소리치는 먹먹한 기분이었다.
한별은 자신의 형이 욕을 먹고, 또 먹고, 계속 먹는 것들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그건, 함께 들 수 없는 짐이었으니까.
하여 한별은 유성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형을 향한 악플을 지켜보고 울면서 하나하나 모아 PDF로 만들어 보관해야 보관했다. 또, 심한 말들에 손을 떨면서도 캡처를 했다.
형이 데뷔하면 모든 자료를 계약할 소속사에 넘기기 위해서였고, 만약 데뷔하지 못하더라도 부모님과 함께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형이 채널(Cha.N)로 데뷔하고 팬들이 많이 생긴 이후, 정작 한별은 인터넷을 잘 들어가지 않았다.
절대 유성이나 형의 멤버들 역시 검색하지 않았다. 검색할 것만 확인하고, 노래를 듣고, 최신 가수들의 영상을 찾아보는 정도로만 끝이 났다. 특히나 댓글 창은 절대 확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형이나 채널(Cha.N)을 검색했다간 수없이 쏟아지는 악의에 활동을 중단하는 모습이나, 대중의 시선에 떠는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게 될 테니까.
형이 데뷔한 만큼, 이에 대처하는 건 소속사의 역할이 되었기에 한솔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깊이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
“괜찮아. 진짜로. 쉬면…….”
그러니 지금은 되레 괜찮았다. 적어도 자신이 나눠 들어 상황을 낫게 할 수 있으니까.
진실이 아닌 일에도 욕을 먹던 형이었다. 한별은 유성이 오메가라는 형질을 밝히는 건 형이 스스로 준비되었을 때 당당하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형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벌어 주는 정도는 동생으로서 충분히 도울 수 있었다.
“한별아.”
한별은 자신을 부르는 형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도 멀미로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차가 멈춘 덕분인지 고속 도로 위에 있을 때보단 속이 나았다.
“괜찮아?”
그런데, 주차장이 아니었다. 무대 바로 뒤까지 차로 이동한 것인지 대기실로 사용하는 천막이 바로 보였다.
벌써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본 한별이 이마를 짚었다.
“내릴 수 있겠어?”
“어…….”
한별은 계속해서 늘어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천막 안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이 전부 내릴 준비를 하는 듯 짐을 챙기고 있었다.
한별은 그저 따라온 것뿐이니 밴 안에 남아 있어도 됐지만, 차에 앉아 있다는 생각만으로 속이 울렁거리기에 천막 안에서 무대를 구경하기로 했다.
하지만 멀리서 카메라 줌을 당겨 형들을 찍는 팬들이 있을 테니, 한별은 밴 안에서 조금 더 버티다 내리고자 안전벨트만 풀었다.
“내리자, 한별아.”
“아냐. 형 먼저 가.”
덜컥, 차 문이 열렸다. 커다란 사람이 조수석의 문을 열고 한별을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