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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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은 다른 채널(Cha.N) 멤버들이 스케줄로 자리를 비운 동안, 병원에 다녀온 유성을 보곤 몸 상태를 물었다.
“역시, 엄마 아빠한테도 말씀을 드려 두는 편이 낫지 않아?”
물론 아시면 걱정하시겠지만, 나중에 알게 되셨다가 더 속상해하시는 게 오히려 불효지 않나.
하지만, 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자신이 마음대로 알릴 사항은 아니기에 한별은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두 분 다 바쁘신데 나까지 걱정 얹어 드릴 순 없잖아. 아빠도 논문 때문에 정신없으실 거고, 엄마도 지금 출장 가셨고. 비행기 타고 나가셨을 텐데, 얘기해 봤자 돌아올 수 있을 리도 없고.”
“그건 그렇지…….”
한별은 유성의 말에 수긍했다.
부모님이 아들들을 사랑하시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아끼고 사랑하시지만, 바쁜 부모님과의 시간은 언제나 적었다.
그렇게 아들들은 부모님이 없는 곳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청소년이 되었고, 이윽고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됐다. 한별은 자신이 아팠다면 자신 역시 유성에게만 이야기했을 테니까.
그래도 형의 건강이 걱정되었기에 한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스트레스 원인이 뭐야?”
“원인이 뭐가 있어. 연예인 중에 건강 문제없는 사람이 없는데. 그리고, 스트레스는 연예인 아니더라도 많잖아.”
“그야 그렇지만, 형은 여태 이런 적 없었으니까 그렇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물론,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군이라는 것은 옆에서 본 한별이 가장 잘 알았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이런 일이 없었다. 오히려 팬들이 유성이 2회차 인생을 사는 건 아니냐고 의심할 만큼 모든 일에 능숙하게 대처해 냈다.
물론, 말은 안 되지만 그만큼 유성은 나이로 따지면 저보다 형이자 채널(Cha.N)의 리더, 단영이나 윤수보다 말실수가 적었다. 아니,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또한 유성은 베타로 알려져 있기에 알파 형질의 연예인들과는 엮이는 경우가 없었다. 어쩌다 여자 연예인과 창조 스캔들 논란이 생길 법한 일도 유성은 전부 사전에 대처해 냈다.
그리고 실력 논란? 당연히 없다. 인터넷에 MR 제거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달리는 댓글이 [채널은 실력으로까지 마라]이니까.
작곡을 전공하려는 한별이 듣기에도 채널(Cha.N)은 개개인의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솔로 데뷔가 가능할 정도였다.
스케줄이 많은 것도 스트레스이긴 하겠으나, 한별이 보기엔 그것도 아니었다.
채널(Cha.N)이 데뷔한 지 벌써 4년이다.
이제 5년 차가 된 채널(Cha.N)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아, 1군이라 평을 받는 아이돌 그룹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갔다. 그 탓에 데뷔 초에 비해선 몸을 심하게 사용해야 하는 스케줄은 적었다.
“이번에 갔던 축제도 재작년에 오겠다고, 팬들이랑 약속했던 거 지키는 거라면서?”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언제나 팬들이 움직이기 힘들어했다.
예능이나 방송에서 어떻게 하겠노라 농담할 순 있다. 하지만, 유성은 장난으로라도 빈말하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팬들과 약속했던 행사를 이행한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까지의 유성의 상태로 미루어 짐작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만한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체력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말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만 상태가 안 좋은 게 아니라, 다들 안 좋아.”
“뭐?”
“그냥, 일이 많아서 그래. 기계도 계속 쉼 없이 쓰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잖아. 그런데 4년 내내 뛰었으니 말 다 했지.”
그럼 휴가를 받든가, 이 아이돌 놈아.
한별은 그제야 형이 그간 휴가를 간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국에 나간 것도 명목상 휴가라지만 사실 리얼리티 촬영을 하러 간 것이었고, 간혹 집에 들른 것도 물건을 가지러 오거나, 부모님과 일정을 맞춰 밥 한 끼를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정말 괜찮다며 웃는 유성을 보던 한별은, 채널(Cha.N) 멤버들이 돌아오자 입을 다물었다. 한별은 형이 세면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슬쩍 단영의 방을 두드렸다.
큰형이자 채널(Cha.N)의 리더인 단영과 막내, 예찬이 함께 생활하는 방엔 팬들이 준 편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한별아~ 들어와도 되는데, 편지 밟으면 안 된다?”
“……궁금한 게 있어서 왔는데, 바쁘시면 나가 볼까요?”
“아냐~ 예찬이 침대는 비어 있으니까, 저기 앉아 있어도 돼.”
“아, 손은 움직이면서 말하라고. 박 다음에 반 씨지 왜 백 씨가 나와!”
잘못 들어왔나 보다.
한별은 한숨을 내쉬다, 팬들의 편지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는 것을 도왔다. 뭔가 돕다 보면 슬쩍 질문하기도 편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별의 계획대로, 단영과 예찬은 그 질문에 난감해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요즘 왜 다들 몸이 안 좋냐고? 수능 공부하는 한별이 앞에서 우리가 주름잡을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저야 수능 끝나면 괜찮아질 일이잖아요. 저도 안 좋은데, 형까지 안 좋으면 부모님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요. 형이 아프니까 걱정돼서 그래요.”
형의 말에 따르면, 다른 멤버들은 수능을 앞둔 동생을 걱정하는 형의 마음이 이해되기에 한별이 숙소에 방문하는 데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별의 눈엔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 보였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
기실 한별이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유성이 스케줄을 나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한별이야 유성의 몸 상태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지만, 멤버들은 이를 알지 못하니까.
한별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걱정이 그저 ‘부차적인 이유’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리더인 단영의 방에 들어온 것이다.
“유성이 형도 몸이 안 좋아 보였어요. 근데도 저를 챙기려고 들어요. 그러니, 알아야겠어요.”
한숨을 내쉬던 단영과 예찬이 잠시 시선을 교환하다, 한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이번에 계약 기간이 끝나는 거 알지?”
암요, 알죠. 친형이 있는 그룹인데 모르겠습니까.
한별은 채널(Cha.N)의 팬클럽, 시그널도 가입한 상태였다. 물론, 형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진짜 팬이어서 가입하기엔…… 친형이 있지 않나. 평범하게 사이좋은 형제라고는 해도, 차마 형의 이름이 박힌 물건과 반짝이는 응원봉을 들기는 좀…….
‘윤단영! 정윤수! 김세현! 최유성! 하예찬! 사랑해! 함께해! 채―널!’
……노래 사이에 형 이름 외치는 것도 좀. 그래서 가입만 한 후, 방치 중이었다.
한정판에 대한 욕심은 있어서 한시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팬클럽 키트를 매번 구매는 했지만…… 비닐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쌓여 있었다.
‘이거, 사 놓기만 하고 왜 안 뜯었어?’
‘뜯으면…… 형 얼굴이 나오잖아.’
‘……?’
‘굳이 형 얼굴을 사진으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나?’
‘…….’
다시 돌아와서, 한별은 갑작스런 계약 기간 이야기에 눈을 끔뻑였다. 단영이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 다시 웃음을 지었다.
“우리 이번에 재계약하지 않고, 모회사 쪽 투자 받아서 우리끼리 따로 레이블 설립하게 됐어.”
그럴 만하지. 채널(Cha.N)이 소속사에 벌어다 준 돈이 얼만데.
아이돌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프로그램이 채널(Cha.N)이 데뷔한 [Pick, My Dol!]이었고, 그들이 데뷔한 첫 시즌이 가장 잘된 케이스였다.
이후로도 많은 아이돌 데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어느 정도 성공한 아이돌 그룹도 있긴 하나 흐지부지 사라진 아이돌이 더 많았다. 채널(Cha.N)만큼 성공한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아이돌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기획사에서도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한별은 분명 기획사에서 채널(Cha.N)을 절대 놔주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살살 구슬리고, 잘 대해 주겠다는 식으로 재계약을 들이밀었겠지.
애초에 방송사를 가진 대기업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소속사였다. 다른 회사로 나간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봐야 Vnet 출연 정지밖에 더 당할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회사가 그렇듯 중구난방, 안하무인, 아티스트 관리는 최악에 팬들을 돈 벌어다 주는 호구로 생각하는 것까지. 계약이 묶여 있어 버티고 있는 것뿐이지, 앞으로 함께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만큼 한별이 생각해도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소속사의 이름 아래 남는 것이 아니라, 소속사를 가진 모회사의 투자로 멤버들끼리 레이블을 만든다. 대기업의 자본력은 유지하면서, 자율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눈 뜨고 소속 가수를 모기업에 빼앗긴 소속사 관계자들 입장에선 뒷덜미를 잡을 만한 상황이겠지만, 소속사를 제외하면 대기업은 이미지와 황금알을 낳는 채널(Cha.N)을, 방송사는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채널(Cha.N) 멤버 섭외를, 채널(Cha.N)은 자율성과 더 좋은 정산 비율을 갖게 된다.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한 건가요?”
레이블을 설립하는 것과 형의 건강 상태의 연관성을 생각하던 한별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더라도 유성의 몸 상태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너무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마 페로몬에 관한 이야기는 꺼낼 수 없기에, 한별은 조금 의심스러운 듯 단영과 예찬을 바라보았다.
예찬이 볼을 긁적였다.
“사실 레이블을 설립하면 소속 아티스트로만 남게 되지 않아. 그게 유성이 형한텐 조금 힘들었을 수도 있고.”
“아…….”
유성을 제외한 채널(Cha.N) 멤버들은 소속사 연습생 출신들이었다.
요즘 연습생들이 그렇듯 회사에서 작곡 레슨 정도는 받은 상태였고, 덕분에 자신들이 노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눈앞의 두 사람만 해도 채널(Cha.N)의 앨범에 작사로 참여한 곡만 50곡이 넘었고, 타 그룹이나 아티스트 앨범에 작사로 참여한 적도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한마디로 레이블의 대표 프로듀서 활동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심지어 레이블 설립 후, 자신들이 프로듀싱에 참여해 후배 아이돌을 양성까지 해 보자고 의견을 모은 것이다.
지금처럼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것은 본인의 실력을 키워 멤버들과 합을 맞출 수 있지만, 그 외의 것은 유성에게 스트레스로 다가갔을 것이라는 설명이 덧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