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10화 (10/78)

10화

“물론, 그냥 아이돌로서 활동만 해도 괜찮아. 솔직히 유성이는 상황 판단도 빠르고 말도 잘해서 예능 쪽으로 나가도 괜찮을 텐데, 본인이 레이블 설립에 굉장히 열심히라 아무래도 우리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을 거야.”

“솔직히 우린 법적 자문 같은 건 좋은 로펌이랑 변호사를 찾으면 되겠다고 적당히 생각했는데, 유성이 형이 좀 열심히 파고들고 있어.”

작곡, 작사, 노래와 춤 메이킹이 가능한 멤버들 사이에 비연습생 출신의 유성은 자신이 할 일을 프로듀싱 이외의 것으로 잡은 것이다.

“근데, 그 와중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시간 쪼개서 평소보다 미디 프로그램 공부까지 더 하는 거야…….”

한별의 머릿속에서 얌전히 잠을 자던 어이라는 녀석이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나? 아니면, 그 무슨 마법 소설에서 나오는 주인공 친구가 쓰는 것처럼 시간 돌리는 시계라도 가지고 있는 거야?

“그걸, 형이 다 해요?”

“……미안. 우리가 좀 말렸어야 했는데.”

한별은 이제야 이해가 됐다.

비록 자신이 수험생이고, 부모님이 바빠 집에 자주 홀로 남겨진다고 하더라도 석 달만 지나면 성인이다.

이를 채널(Cha.N) 멤버들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한별이 숙소에 드나드는 걸 환영한 건, 저들 대신 친동생인 한별이 유성을 살펴 주었으면 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제가 숙소에 오가는 걸 허락한 거예요?”

“그런 감이 없잖아 있지. 네가 아픈 걸 이용한 건 미안해.”

“아뇨, 괜찮아요.”

전 오히려 감사한데요.

한별이 몸이 좋지 않으니 친형으로서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를 핑계로 삼아, 채널(Cha.N) 멤버들은 유성의 말도 안 되는 일정을 뭉그러뜨린 것이다.

이제 한별은 시간이 남으니, 수험생 동생 가르치겠다고 고3 문제집을 풀어 버리는 형을 어떻게 조지는 편이 좋을지 고민했다.

그 인간은 쉬는 방법을 모르나? 몸 상태가 그렇게 될 정도로 갈아서 움직이는 게 말이 돼?

한별은 성실함 하나는 끝내주는 형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 * *

한별은 지금 조금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지금 형 회사에? 내가 왜?”

―그…… 전에 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라고 말하지 말고, 제대로 얘기해.”

―혹시, 주변에 누구 있어……? 주변이 조금 시끌벅적하네?

“…….”

태하가 있다.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친구들과 교실에 남아 책상을 붙여 앉아 공부하고 있었고, 학원에 다니는 두 친구가 먼저 나간 탓에 커다란 교실에 태하와 단둘이 마주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물론 교실에 남아 자습하는 친구들도 드문드문 있었지만,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전화가 와서 그냥 교실에서 받아 버린 탓에 옆에 앉은 태하에겐 통화 소리가 들릴 확률이 높았다.

“태하야, 나 잠깐만 형이랑 얘기 좀 하고 올게.”

“응? 알았어.”

문제를 확인하던 태하가 안경을 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별은 사람들이 적은 곳으로 가, 다시 귀에 핸드폰을 갖다 댔다.

“이제 나 혼자야. 왜?”

―전에 했던 얘기 있잖아. 그, 단영이 형이 네 페로몬이 취향이라고 했던 거.

“……아이돌이 연애 같은 거 하면 안 된다, 그 소리 하지 그랬어.”

―아, 한별아. 그런 거 아니라고……. 그 형은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야.

어느 누구든 취향이라는 소리 들으면 그런 쪽으로 듣는데요.

물론, 한별도 단영이 자신에게 연애 감정 같은 걸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간 숙소를 드나들며 단영이 건넨 말들은 대부분 친동생을 챙기는 정도였으니까.

단영은 멤버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만큼, 한별 역시 가족의 가족이 된 것이다. 한별이 느끼기에도 단영에게 자신은 그냥 가족에 가까웠다.

‘지난주에 2학기 중간고사였다고? 한별아, 너 아침 안 먹고 가지 않았어? 뭐? 원래 아침을 잘 안 먹……?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우리 야식으로 치킨 시킬 생각인, 야식을 안 먹는다고……? 말도 안 돼! 수험생이면 잘 먹어야지! 당장 나와!’

‘한별아. 거실에 있는 영양제 먹고 가라. 알았지? 무조건이다.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냥 종류별로 다 챙겨서 가져가.’

……잔소리가 좀 대단하긴 했지만, 아무튼 가족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페로몬이 (사실은 형의 페로몬이지만) 마음에 든다는 소리를 했다는데, 그게 지금 자신이 회사에 가야 하는 것과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

“나, 수험생인 건 알지?”

―한별아. 형 돈 많아. 공부 못 해도 돼. 형이 책임질게.

“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이유나 말해.”

―그게…… 단영이 형이 계획하던 원대한 꿈에 너를 넣은 것 같아.

“원대한 꿈이 무슨…… 뭐? 잠깐만, 단영이 형 꿈?”

한별이 기겁했다.

윤단영. 스물넷. 데뷔 전, [Pick, My Dol!]에 출연했을 당시 스무 명 남짓의 알파 중 유일한 20대 출연자였다.

큰 키와 잘생긴 외모, 끝까지 해내는 끈기와 평소엔 장난기 넘치고 정 많은 모습이나, 연습에 들어가기만 하면 카리스마 가득한 면모를 보여 많은 인기몰이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또한, 평소의 그 장난기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Pick, My Dol!] 프로그램 중반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코너가 있었다.

데뷔한 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로, 대부분 갓 데뷔해 바쁠 자신에게 이야기하거나 음악 프로그램 1위에 기뻐할 자신에게 지금의 자신이 있어 네가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데뷔는 무리일 정도로 하위권에 있는 연습생들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의 자신에게 나는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니, 후회는 없다면서도 눈물을 보여 팬들의 응집력을 높이기도 했다.

[Pick, My Dol!]에서 진행하는 레슨이나 연습이 굉장히 힘든 편이라, 유명 기획사 연습생 출신들도 합숙 중간에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목격담도 더러 있을 정도였다.

고된 연습을 이겨 내며 미래를 꿈꾸면서도 답답함에 울음을 터뜨리던 출연자들의 모습 사이에서도 항상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책임지는 단영은 굉장히 눈에 띄었다.

‘서른다섯의 윤단영에게.’

고단한 연습에도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출연자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응원하던 사람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던 스물의 단영이 눈을 빛냈다.

‘지금쯤 너는 네가 네 손으로 프로듀싱한, 혹은 프로듀싱에 참여한 후배 그룹의 대상 소식을 들으며 흐뭇해하고 있겠지?’

한별은 당시, 단영의 방송분이 나오자마자 채팅 창에 펼쳐지던 수많은 갈고리의 향연을 떠올렸다. 그게 진심이었을 줄이야…….

―단영이 형이 후배 그룹 만드는 데 진심이거든……. 우리가 레이블을 만들면, 빠른 시일 내로 연습생 모집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하더라.

멤버들의 실력이 좋은 탓이었다. 데뷔 초부터 자작곡으로 1위를 거머쥔 앨범의 프로듀싱 권한은 대부분이 채널(Cha.N)에게 있었다.

“차라리 페로몬이 취향이네 어쩌네 하던 거, 연애 감정인 것 같다고 해 줘. 그럼 거절로 깔끔하게 끝나니까.”

―안타깝지만, 아닙니다…….

유성의 건강 상태 때문에 일이 꼬인 줄 알았는데, 온갖 해괴한 일들이 닥쳐오고 있었다.

“일단, 안 간다고 전해 줘.”

―나도 그렇게 전하긴 했거든……? 한별이라면 분명 안 올 거라고.

“근데, 왜?”

―근데…… 단영이 형은 굉장히 진심이야.

“나도 진심이거든! 난 아이돌이 될 생각이 없어! 내 꿈은 작곡가라니까?”

―나도 돌겠어……. 그래서 말인데, 그냥 한 번만 와서 얘기 나눠 주면 안 될까?

“왜?”

―직접 보고 거절하면, 형도 그런 생각 안 할 테니까.

형 새끼가 지금 나 먹이는 건가? 한별에게서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자 수화기 너머로 미안, 하는 작은 소리가 넘어왔다.

―그게 아니더라도 연습실 와 주긴 해야 해…….

“왜?”

―숙소야, 네가 왔다 갔다 하니까 페로몬이 묻을 수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회사에선 아무래도…….

×발.

한별은 이를 으득 물었다.

* * *

“그래서, 한별이 네가 우리가 양성할 아이돌의 멤버가 되어 줬으면 좋겠―.”

“거절합니다.”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난 안 할 건데요.

차에 타자마자 장황하게 이어진 설명에 대응할 틈을 놓친 한별이 단영의 마지막 말을 끊고 고개를 저었다.

단영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

“제가 아이돌을 할 생각이 없어서요. 거기다 전, 아이돌에 어울리지도 않고…….”

단영이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디가?”

“……네? 일단, 아이돌은 말을 잘해야 하잖아요. 전 말을 그리 조리 있게 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잘하는데? 앞에서 운전하는 매니저와 한별의 옆자리에 앉은 단영이 같은 생각을 한 듯 말이 없어졌다.

한별의 말을 이해하려는 듯 잠시 말이 없던 단영은 잠시 눈만 깜빡이다, 알겠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주관적인 거니까. 다른 이유는?”

“유성이 형은 되게 잘생겼잖아요? 근데 전 그런 편이 아니고.”

“……또 다른 이유는?”

“끼도 있어야 하는데, 전 그다지…….”

“또 그거 말고 다른 이유는.”

이유가 더 필요해?

한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대적으로 색소가 옅은 갈색 눈동자가 의아하다는 빛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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