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12화 (12/78)

12화

“한별아. 혹시, 좋아하는 노래 있니?”

한별은 눈을 빛내는 단영의 모습에 다시 문을 열고 도망치고 싶어졌다.

예전엔 ‘아이돌이 무슨 연애야! 페로몬이 마음에 든다고, 어? 얼굴 자주 보자고 하는 말이 쉽게 나와?!’라고 외쳤던 한별이었다.

그런데 그게 오메가를 본 알파의 본능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원석을 제 퍼즐에 꽂아 넣으려는 프로듀서의 본능이었다니…….

“진짜…… 저, 진짜 노래도 못 하고 춤도 못 춰요.”

“한별아. 그건 내가 판단해.”

한별은 유성을 지그시 노려봤다. ‘나도 이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는 표정이 돌아왔지만, 한별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런 얼굴은 팬들한테나 보여. 나한테 보이지 말고.

“그리고, 그 페로몬은 절대 춤을 못 출 수 없는 페로몬이었어.”

“……예?”

“내 본능이 그래. 난 여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

단영의 말에 한별을 보며 잔뜩 기대하고 있던 채널(Cha.N) 멤버들의 시선이 단영에게 꽂혔다. 같이 페로몬을 맡았던 우성 알파, 윤수의 표정도 멤버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공기 중에 무수한 갈고리가 떠다니고 있다. 한별을 후배로 만들고 싶어 하는 단영과 의견이 같은 듯, 그 옆에서 한별을 보며 눈을 빛내던 멤버들도 머리 위로 물음표를 가득 띄웠다.

“……형. 그랬다가 한별이 말대로 진짜로 못하면요?”

처음부터 한별의 기겁을 보았던 막내, 예찬이 단영에게 묻자 단영이 씨익 웃었다.

“그럼 내가 한별이 작곡 공부 도와줄게. 입시 도움은 모르겠지만, 작곡가로 데뷔하는 데엔 도움 충분히 될걸?”

채널(Cha.N) 내 저작권료 킹이 이야기하셨다. 내내 죽은 눈이던 한별이 눈을 빛내며 콜을 외쳤다. 조건은 두말할 것 없는데, 애초에 이건 사기다. 페로몬은 한별이 아닌 유성의 것이니까.

저 인간의 본능은 어떻게 된 거람. 페로몬의 주인인 유성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며, 랩도 곧잘 하니까.

“자, 그럼 해 볼까? 세현아. 노래 좀 틀어 줘.”

“넹~.”

춤추기 좋은 리듬의 곡이 흘러나왔다. 아, 민망해 죽을 것 같긴 한데……. 한별은 눈을 꽉 감고 몸을 움직였다.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이럴, 리가 없는데…….”

단영의 동공이 심하게 떨렸다.

“제가 못 춘다고 그랬잖아요…….”

각목이 바스러졌다. 흐느적도 아니고, 뻣뻣 그 자체였다.

유연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움직임에 단영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채널(Cha.N)의 앨범 수록곡 중 가장 듣기 쉬운 발라드를 틀었다.

“여기에 춤을 추라고요?”

“아니, 노래…….”

에이. 설마, 설마 노래까지 못 하겠어? 하던 단영은 한별이 소리를 내자마자 장렬히 전사했다.

“말도 안 돼! 저런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왜 음이 하나야? 박자는 다 맞추면서!”

최한별. 그는 오늘 형과 다른, 절대 음치와 절대 몸치임을 형의 동료들에게 알렸다.

“그래서 제가…… 저 그냥 작곡한다고 했잖아요…….”

한별은 울고 싶어졌다.

* * *

단영의 아이돌 후배 만들기 프로젝트에 한별을 넣는 것은 당연히 무산이 됐다.

어지간한 몸치, 음치라면 뼈를 깎는 트레이닝을 통해 데뷔할 수 있다는 것이 단영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어지간한’ 경우였다.

‘박치는 아니니, 랩을 시키면 어떨까……?’

한별의 페로몬에 (사실은 유성의 페로몬이지만) 꽂혔던 단영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며 그 이후로도 몇 번 한별을 연습실로 불렀지만, 모두가 고개를 젓는 탓에 단영은 결국 침몰했다.

“풉…….”

“최한별이, 노래랑 춤…….”

“그냥 대놓고 웃어라, 새끼들아…….”

페로몬에 관한 이야기는 쏙 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가 비웃음을 당한 한별이었다.

키득거리는 친구들을 원망스럽게 보던 한별은 빈 음료수병을 들고 친구들의 뒤통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공격은 나쁜 것이야, 최한별. 손을 내려.

“푸흑, 큭…….”

“와, 진짜. 그 형들은 너 음치에 몸치인 거 몰랐대?”

“대체 뭐에 꽂힌 건지, 친형이 잘하니까 동생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진지하게 말하잖아.”

단영은 내내 그럴 리 없다고 현실을 외면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한별의 모습에 결국 인정하고야 말았다. 자신의 원대한 꿈에 한별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근데, 너 요즘 학원 안 가는 날도 학교에서 빨리 나가는 것 같더라?”

“노래 만들어야 하니까.”

“학원에서?”

“아니, 형 회사에.”

비록 한별을 아이돌로 데뷔시킬 순 없었지만, 단영이 당당하게 외쳤던 내기의 결과로 한별은 간혹 형의 회사에 들르게 되었다.

원래는 개인적으로 작업한 결과물만 메일로 슬쩍 보내려 했는데, 유성이 슬쩍 의견을 틀었다.

‘한별이가 우리 회사 작업실 오면 되지 않아? 솔직히 학원에 있는 기기로 미디 작업하는 것보단 실사용하는 기기들 보는 편이 나을 거고. 약속대로 가르쳐 주기로 했으면, 형이 시간 좀 써야지.’

오메가인 걸 안 들키려고 발악하시는 형이 조금 안쓰러웠지만, 도와주기로 한 만큼 따라야 했다.

그 덕에 작곡 과외가 시작되긴 했는데 슬슬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작곡과 실기 준비도 병행하다 보니 단영 역시 한별을 따라 마음이 무거워진 듯했다.

하지만, 한별로서는 좋은 기기로 작업할 수 있는 기회는 놓칠 수 없었다.

‘내가 널 아이돌로 만들 순 없어도 대학 합격은 도와주고 싶다…….’

‘네……. 그 대학, 들어가고 싶어요…….’

‘하……. 아직도 머리가 아프네. 절대 그 페로몬은 춤, 노래를 못할 페로몬이 아닌데.’

‘형, 저 아이돌 안 한다니까요?’

‘그래…… 아니! 근데, K대는 왜 특별 전형으로 내신을 봐서 애를 일반 전형을 넣게 만들어? 작곡과잖아!’

‘저도 모르죠…….’

‘그리고, 수능 커트라인은 또 왜 이러냐? 작곡과인데!’

‘저도 몰라요…….’

이처럼 여러 번의 아니시에이팅과 함께하는 작곡 과외였다.

한별은 이미 내신을 죽 쑨 상태였다. 솔직히 성적만 따지면 꽤 좋았다. 몰려다니는 친구 중 태하가 가장 공부를 잘했고, 그다음이 한별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각과 결석이 잦은 데다 학교 시험 당일 결석도 꽤 있었다.

물론, 한별이 원한 것은 아니었다.

‘한별이가 우성이다 보니까…….’

유성이 채널(Cha.N) 멤버들에게 우성이라는 핑계를 입에 올린 이유도 있었다. 지구에 사는 인구 중 오메가는 적었고, 그중 우성 오메가는 더욱 희귀했다.

히트 사이클에 맞춰 억제제를 먹으면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억제되는 편이었다. 형을 닮은 것인지 한별의 히트 사이클은 2개월 하고도 2주 정도면 시작하는, 꽤 정확한 주기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억제제 부작용이 심했다. 애초에 억제제 자체가 소수 형질을 위한 약이라 부작용이 조금 있는 편인데, 그중 우성 형질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심했다.

열성인 유성과는 달리, 우성인 한별은 억제제를 먹은 후 학교에 가는 도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억제제를 먹은 날, 코피가 한참 동안 멎지 않는 바람에 그 장면을 지켜본 체육 선생님의 명에 의해 한별의 체육 시간은 기본 열외 상황이 되었다. 덕분에 내신은 조진 것이다.

수능과 실기의 중요도가 굉장히 높은 상황. 형의 상황에 스트레스가 있다 하더라도 한솔은 수험생은 공부와 작곡 과외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한별아. 그럼 오늘도 회사 가는 거야?”

대화 내내 조용하던 태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에 시선을 맞춘 한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공부는 해야 하니까. 오늘 학원 수업도 없고.”

“혹시, 둘만 작업해? 그 리더분이랑?”

“아냐~ 우리 형도 있고, 예찬이 형도 있어.”

아무리 가족처럼 생각한다 해도 남이었다. 애초에 형이 아니면 묶일 일도 없던 이들이기에 상대가 자신을 편히 생각한다 해도 한별은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게다가, 자신만 있으면 형의 페로몬이 제 페로몬임을 인식시킬 수 없다. 한별은 페로몬의 주인을 헷갈리게 만들면서도 대입 준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비장한 사냥꾼이었다.

무엇보다 작업실에 함께 있다 보니 유성의 미디 찍는 실력이 뜬금없이 늘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앨범 참여도가 항상 부족해 아쉬웠는데, 이참에 옆에서 배울 수 있게 되어 잘되었다며 웃던 형의 모습이 떠올라, 한별은 이를 으득 물었다.

“한별아……?”

“미안. 지금 조금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

“엉뚱?”

“사람 뒤통수를 어떻게 잘 내리쳐야 한 번에 기절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

“……폭행은 나쁜 거다, 최한별아.”

“하…….”

한숨을 쉬던 한별이 친구들을 보며 흐린 시선을 보냈다. 사람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 건지 정도는 물어야 하는 거 아니냐?

고개를 돌리던 한별은 걱정스럽게 자신을 보는 태하를 보고 눈을 빛냈다.

“태하야.”

“응?”

“넌 어떨 때 쉬어?”

“뭘?”

“야, 야. 요즘 지태하가 공부에 미쳐서 몸 관리 안 하고, 집중하는 편이긴 해도 강제로 기절시키면 안 돼. 우린 네 편 안 들어줄 거다?”

“아, 시끄러워. 너희한테 이야기한 거 아니야! 태하야. 너 진짜 어떨 때 쉬어? 쉴 생각이 들기는 해?”

한별이 태하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한별의 주변에 그나마 유성과 비슷한 사람이 태하뿐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성적도 좋으면서 성격도 좋고, 성실하다. 게다가 주변을 굉장히 잘 챙기는 성격인 덕에 자신보다 남을 챙기는 것처럼 보였다.

좋게 말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호구였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보니, 아프더라도 참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우선으로 한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나도 정말 힘들면 쉬고 싶단 생각이 들지.”

“정말?”

“응. 근데, 지금까진 그런 생각이 안 들었던 것뿐이야.”

“그게 문제인 건데……?”

“어?”

문제는 두 사람이 생각하는 아픔의 기준이 한별과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한별이 보기엔 정말 쉬어야 하는 이들이 계속 움직이려 드니 도저히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네가 지태하 보호자냐?’ 하는 얼굴로 한별을 바라보았지만, 역시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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