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한별은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태하를 보며 이마를 짚었다.
“정말 쉬어야 할 때 안 쉬잖아.”
“아직 쉴 때가 아니어서 그런 거 아닐까?”
“몸이 아픈데?”
“유성이 형, 몸 안 좋아?”
대번 유성의 이야기를 꺼내는 태하의 물음에 한별은 눈을 끔뻑였다.
“……내가 유성이 형 얘기라는 이야기를 했었나?”
“아니, 그건 아니지만…… 요즘 내내 유성이 형이랑 붙어 있었잖아. 근데 걱정을 꺼내니까, 당연히 유성이 형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어.”
정작 다른 두 친구는 그런 생각 못 했다는 듯 흐린 눈으로 태하를 보고 있었다. 한별은 다정하고 섬세한 태하를 보며 감동이 물씬 올라왔다. 그래도, 답은 해 줬으면 하는데.
“맞긴 해. 형이 너무 안 쉬거든.”
스케줄은 멤버들이 어떻게든 나눴다 해도, 형의 고지식한 성격 탓에 여전히 일은 너무도 많았다. 심지어 제발 좀 쉬라며 친동생까지 숙소에 불러들였건만, 정작 유성은 있는 힘껏 한별의 수험 생활을 돕는 중이었다.
“그래서 태하, 너는 어떻게 하면 쉬어 줄 건지 물어본 거야. 내 주변에 물어볼 사람 중에 성실한 사람이 너밖에 없잖아.”
“우우우―!”
“우리도 한 성실 한다!”
솔직히 야유를 퍼붓는 저 친구 둘은 성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난스레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 친구들에게 한별이 미소를 지었다.
“성실함으로 태하 이길 수 있는 사람만 덤벼.”
“아, 어떻게 지태하를 비벼.”
“최한별 양심 없네. 나랑 도은한을 비교해야지.”
“내가 너는 이긴다.”
“오늘도 너의 헛소리가 하늘을 울리는구나.”
“아, 귀 아파.”
한 마디가 나오면 열 마디를 더 덧붙이는 탓에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한별은 애써 고개를 돌리며 태하에게 집중했다.
한별의 지긋한 시선에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태하가 이내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해야 할 일을 마치면 충분히 쉬지 않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할 일을 끝마치지 않으면 답답해서.”
“그게 몸이 안 좋거나 해도?”
“응. 괜히 마음이 무겁고 그래. 일이 안 끝났는데, 쉬는 건 조금…….”
한별이 보는 유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열두 살 이후론 가볍게 다퉈 본 적도 없는 만큼 어른스러운 형이었다. 하지만, 스케줄 펑크에 예민하고 자신이 세운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다른 사람인 양 표정이 굳었다.
물론,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자신에게 열을 올렸다.
가끔 혹시 누군가가 형을 위협하며 따라가기라도 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런 형을, 강제로라도 쉬게 할 방법이 없을까?
처음부터 장난 가득하던 두 친구는 형의 일에 너무 걱정하는 것도 좋지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초에 두 친구에겐 그다지 기대가 없었기에, 한별은 학원으로 향한다는 말에 손만 대충 흔들었다.
“태하, 네가 보기에도 내가 너무 심하게 걱정하는 것 같아?”
“가족 일이잖아. 걱정되는 건 당연하지.”
웃으며 답하는 태하의 목소리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것보단, 난 오히려 네가 그 회사에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걱정되는데.”
“그건 왜?”
“그야……. 한별이 너, 혹시 연예인 할 생각 있어?”
“뭐? 에이. 전혀.”
아이돌은 무슨. 단조로운 동요조차 제대로 못 부르는 데다,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는데.
형의 비밀을 지켜 주기 위한 행동도 옆에 유성이 곁에 있으니 커버가 되는 것이지, 자신 혼자 사람들을 속여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애초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회사에 드나드는 것과 연예인이 될 생각이 무슨 연관인지 알기 힘든 듯 한별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태하는 말을 아꼈다.
“아니라면 조심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해. 그 형들은 한별이 네가 오메가라는 거, 알고 있지?”
“어? 그렇지.”
“그럼 그 형들 팬 입장에선 멤버의 동생이 드나드는 게 아니라, 오메가 한 명이 드나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태하의 말에 한별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생각해 보니,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말마따나 조심해야 할 필요는 있었다.
물론, 멤버들의 개인 방송 중 형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의 팬 반응 때문인지 유성이 동생과 우애가 좋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고민하던 한별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형들도 이제 컴백 준비해야 하니까, 빈도를 줄이긴 해야겠다.”
“……한별아. 아주 안 간다고는 안 하는구나.”
“그건, 사정이 있어서…….”
“형 건강 때문이라면, 소속사에 맡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러면 좋겠지만, 형질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안타깝게도 소속사엔 기댈 수 없었다.
채널(Cha.N)의 소속사는 몸집만 크지, 내실은 전부 허상이나 다름없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이제 5년 차. 연예계에선 연차가 제법 쌓였지만, 아직 사회적으로는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20대 초중반인 채널(Cha.N) 멤버들이 봐도 지금의 소속사는 영 아니었다. 그들이 괜히 레이블을 설립하려는 게 아닌 것이다.
“형 상태만 좋아지면 당연히 그만 갈 거야. 솔직히 나도 그만하고 싶은데, 지금 형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족이 나뿐이라.”
한별의 말에 태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가타부타 더 말을 얹기엔 가족 사이의 일이었다. 한별이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가장 친한 친구가 은한과 재휘, 그리고 자신이라는 것을 태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부터 갑자기 중2병이 찾아오기라도 한 것인지, 그때부터 자신을 감싸고 돌았던 형이기에 한별은 차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태하 역시 한별에게 그러한 친형 이야기를 건너 듣곤 했기에, 유성을 걱정하는 한별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꼭 형 건강 때문만은 아니야. 과외비 안 내고 수능 만점자 과외 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거야…….”
“작곡 수업도 그래. 나, 지금 학원 수업도 주에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 가서 학원비도 꽤 세. 문제는 이게 입시 준비로 바뀌면 학원비가 더 들어가. 2배 정도일걸.”
한별의 꿈은 필드에서 활동하는 작곡가였다. 그러니만큼 자신의 앨범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들에게도 곡을 건네는 단영이나 예찬에게 듣는 이야기들이 자신에겐 뼈와 살이 될 것들이었다.
물론 이상한 오해를 받으면 당연히 곤란해지겠지만, 눈앞에 놓인 상황과 미래를 위해서 차마 가지 않겠다고 딱 잘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입시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때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붙잡아 보고 싶거든.”
평범한 고민이었다. 공부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기도 생각해야 하는 예체능 전공,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고3의 아주 평범한 발악이었다.
그 와중에 형의 일이 끼어 있어 이상하게 꼬여 있긴 해도, 한별이 해야 할 것은 확실했다.
“실기 끝날 때까지야. 실패하면 무작정 필드로 나가서 두드리는 거고, 대학 입학하면 조금 더 공부하는 거고.”
당장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고3이었다.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지만, 당장 후회하지 않을 만큼은 노력해 보고 싶었다.
한별이 머리를 긁적이며 내뱉는 말에 태하가 미소를 지었다.
“응. 너는 잘할 거야.”
매번 태하에게 건넸던 응원의 말이 제게 되돌아오자, 한별은 조금 민망했다.
“그래도 한별아, 조심하긴 해야 해.”
“뭐, 그렇지. 내가 오메가니까. 나, 그래도 우리 형 없으면 그 형들 따로 보는 일 없어.”
“그것도 있지만…….”
태하가 입술을 달싹이다 주변을 살폈다. 뭐가, 왜? 주변에 태하와 한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페로몬 말이야.”
“어……?”
페로몬 왜. 뭐. 형의 일 때문에 괜히 주춤해진 한별이 태하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미안해, 한별아. 네 개인적인 일이니, 그간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이젠 얘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
예? 뭐가요?
한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아니, 그게 무슨…….”
“그…… 미성년자에게 페로몬 샤워를 하는 건 문제가 있어, 한별아. 아무리 같은 오메가라고 해도…… 아니, 일단 법적으로 같은 형질끼리는 그, 결혼할 수 없는…….”
“잠깐만, 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한별은 빽― 소리를 쳤다.
* * *
머리가 지끈거렸다.
태하가 알파인 것은 초등학교 때 형질 검사에서 알게 되었다.
친한 친구가 된 이후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태하 역시 한별의 형질을 알게 된 이후 신경 쓰는 기색은 아니었기에 둘 다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지금껏 한별은 태하의 페로몬을 맡아 본 적이 없었다.
오메가의 히트 사이클이나 알파의 러트 사이클에 노출되면 상대 형질이 꽤 난감한 상황을 겪게 된다는 것을 익히 알기에 억제제는 필수적이었다.
알파와 오메가는 수가 무척 적어, 다니는 학교 전교생을 뒤집어도 형질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았다.
그러니만큼 그간 태하가 무조건 억제제를 챙겨 제 페로몬의 ‘피읖’ 자도 한별에게 느껴지지 않게 한 것은 혹시나 생길 문제를 피하기 위함도 있지만, 친구인 자신을 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태하야, 너 혹시…….”
“응?”
“페로몬에 좀 예민하니?”
“그게, 응. 조금…….”
한별은 유성의 페로몬이 자신에게 조금만 닿아도 최대한 지우고, 날렸다.
아무리 멤버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라 해도, 상대의 페로몬을 자신에게 묻힌다는 건 약간의 거부감이 일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같은 오메가면 더더욱.
물론, 가족의 페로몬이니 ‘지독할 정도로 싫다! 증오스럽다!’ 하는 생각까진 안 들지만, 아무튼 본능적인 거부감은 있었다.
그간 종종 함께 생활하며 유성의 페로몬이 남으면, 나중에 자신의 페로몬을 슬쩍 덧씌워 날린 후 오래도록 목욕하여 티도 나지 않게 했었다.
심지어 자신과 형이 매번 확인까지 했는데, 그걸 알아차리다니. 태하는 도대체 얼마나 페로몬에 예민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