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 *
“……형은, 알아서 어떻게든 버텨 봐.”
세상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한별은 억제제 부작용으로 침대에 누워 이마를 짚었다.
―너 원래 주기 지금 아니잖아?
“나도 몰라…….”
형이랑 있어서 영향 받았나 보지. 으득, 이를 문 한별의 목소리에 전화 너머 유성은 입을 다물었는지 한참 말이 없었다.
알파든 오메가든 형질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게 힘들었다. 원치 않게 페로몬에 노출되면, 종종 사이클이 무너진다는 거.
같은 오메가라고는 해도 유성의 페로몬에 계속 닿았던 탓에 주기가 무너져 갑작스럽게 히트 사이클이 터진 듯 보였다.
―형이 미안해……. 많이 힘들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걱정 섞인 목소리에 한별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해. 난 지극히 정상이야.”
몸이 안 좋아 페로몬 새어 나오는 인간이 건강한 사람을 걱정하는 모습이 웃기기만 했다.
그저 주기가 좀 어긋났을 뿐이다. 억제제 효과로 몸 상태가 조금 좋지 않을 뿐, 유성처럼 페로몬이 새어 나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학교도 못 가잖아. 수업 들어야 할 텐데.
“형이 수능 범위까지 다 알려 줘 놓고, 뭘. 어차피 요즘 수업도 제대로 안 해.”
―그래도 수능이 얼마 안 남았잖아. 몸 괜찮아지면 바로 수능 보러 가야 할 상황인데?
“괜찮다니까.”
오히려 수능 전에 터졌으니 다행이다. 조금만 더 뒤에 터졌으면 공부 다 해 놓고 수능 보러 못 갈 뻔했다.
게다가, 같이 공부하는 건 태하도 있었다.
수능이 다가오는 만큼 대다수 수업이 문제 풀이 위주로 흘러가기에 수업 진도에 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당장 머리가 좀 아프고, 숨이 막히고, 울렁이고, 힘들 뿐.
―근데, 어째 해가 갈수록 부작용이 심해지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우성 오메가가 수가 원체 적으니까. 사람이 많아야 약을 발전시키는데.”
30년 전, 억제제가 개발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메가는 혹시나 하는 걱정에 밖을 돌아다니기 불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메가라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집 안에서만 살 순 없기에, 그들은 차라리 자신의 형질을 숨기지 않고 밝혔다. 억제제랄 게 없는 상황에서 돌연 사이클이 찾아오기라도 하면 난감해지니까.
형질이 잘못된 것도 아니니만큼 솔직히 밝히는 건 좋으나, 한편으로 미묘한 차별은 존재했다. 하여, 억제제가 개발된 지금까지도 여러 오메가와 알파들은 굳이 제 형질을 밝히지 않았다.
특히나 한별은 형처럼 오메가로 발현한 후, 굳이 누구에게도 제 형질을 밝히지 않았다. 멋모르던 어린 시절, 형질 검사 결과를 공유했던 친한 친구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친구들은 입이 무거웠기에 한별은 간혹 몸이 좋지 않아 학교를 빠질 뿐, 오메가라는 이야기가 퍼지진 않았다.
자신이 아이돌의 동생이라는 것도 몇몇만이 알 뿐, 크게 소문이 돌지 않은 걸로 봐선 조용히 있는 것이 나름 자신의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한별의 입장에선 오히려 다행인 일이었다. 한별이 오메가라는 소문이 퍼졌다면 유성을 돕는 일에도 차질이 있었을 테니까.
자신이 채널(Cha.N) 멤버의 동생이라 해도, 오메가라는 것과 멤버 사이에 알파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여 형의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이전처럼 다시 거리를 둘 생각이었다.
―부모님 안 계시지?
“응. 이번 주도 못 들어오시는 것 같은데?”
―몸도 안 좋은데, 집에 혼자…….
“나, 애 아니거든? 누가 누굴 걱정해?”
곧 스물이 되는 동생을 걱정하는, 몸 안 좋은 형이라…….
한별은 여전히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커다랗지만 조용한 집은 익숙했다. 부모님의 바쁜 일정은 어려서부터 이미 자주 있던 일이었다.
유성은 중학생 이후로 형 노릇을 하려 했지만, 과거의 유성을 기억하는 한별 입장에선 기가 찼다. 밥하기 귀찮다고 3살 어린 동생한테 밥 짓는 법을 가르친 게 누군데…….
그러다 보니 최근엔 유성이 아이돌을 꿈꾸기 시작하며, 그때부터 자신에게 하는 행동을 관리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하는 중이었다.
―오늘 작업만 어느 정도 마무리하면 집에 들를게.
“아, 됐어! 뭘 와!”
―당연히 가야지. 동생이 아픈데. 부모님 걱정하실까 봐 또 얘기 안 했을 게 뻔한데.
“당연하지. 그게 나…….”
―최유성! 아, 통화 중이야?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라며 덧붙이려던 한별이 입을 다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유성 외의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해했다. 매번 있던 억제제 부작용인데, 왜 굳이 전화까지 하나 했네.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유성의 페로몬 조절은 아직 차도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별은 히트 사이클이 시작된 후, 사흘 정도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슬슬 흘러나오는 유성의 페로몬을 한별의 페로몬이라고 속이는 것이 불가할 지경에 이르렀을 테니, 유성이 잠깐이라도 집에 들르는 것이 맞았다.
몸이 막 안 좋아졌을 때처럼 조절이 아예 되지 않는 상황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들킬 가능성은 애초부터 배제하는 편이 좋았다.
한별은 통화를 끊고, 핸드폰을 들어 영어 단어와 뜻을 쭉쭉 불러 주는 음성을 켰다. 머릿속엔 들어오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했다.
지이잉.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고, 한별은 귀찮은 듯 표정을 굳히며 손을 움직였다.
강재휘
오늘 점심 쫄면에 만두 튀김 나오는데 네 몫은 내가 더 먹어도 돼냐
돼가 아니고 되다, 이 또라이 새끼야.
아픈 친구에게 네 밥 내가 먹음, 따위의 말이나 하는 친구에게 어이가 날아간 한별이 이를 으득 물었다.
꺼져...
잠시 후.
몸에 도는 약 기운에 잠에 빠지기 직전, 다시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에 잠이 달아나 버렸다.
도은한
강재휘말고
내가먹음 콜?
이걸 친구라고.
잠과 함께 다시 돌아올 것 같던 한별의 어이는 또 저 멀리 날아갔다.
먹기 위해 사는 친구 녀석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별은 은한의 연락을 무시하고 핸드폰을 뒤집었다.
지잉.
하지만 다시 울리는 핸드폰에 한별은 주먹을 꽉 쥔 채 진동을 무시하고자 이불을 잡아 머리끝까지 올렸다. 답 안 하면, 연락 안 하겠지.
지잉.
그러나 또 울린다. 답이 없다고 메시지 테러라도 하는 건지, 진동은 전화라도 온 것처럼 끊이지 않았다.
“아, 진짜 미친 또라이 새끼들!”
다시 시작되는 진동에 결국 핸드폰을 든 한별은, 자신을 짜증 나게 만든 이름이 아닌 모르는 번호를 보곤 손으로 눈을 비볐다.
“……여보세요?”
―미안. 혹시, 자고 있었어? 내가 깨운 건가?
낮은 목소리가 다정하게 흘러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단영이 형이 내 번호 알던가? 한별이 더 말을 잇지 못하자, 전화 너머로 “여보세요?” 하는 소리가 넘어왔다.
“안, 녕하세요?”
―안녕~.
유성과 통화가 끊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멤버 목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통화가 끊어진 걸 보고 전화한 건가?
“저, 제 번호는 어떻게…….”
한별은 채널(Cha.N) 멤버들의 번호를 저장한 적이 없었고, 자신 역시 알려 주지 않았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단영의 목소리가 어색했다.
―아, 멤버들은 다른 가족 번호 알고 있어. 긴급 연락망은 있어야 하니까.
사고가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가족 번호를 모르면 매니저를 찾고, 여러 루트를 거쳐 가족에게 연락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유성인 부모님 출장이 잦다고, 부모님 번호보다 네 번호를 1순위로 알려 줬거든.
“아…….”
그럴 만했다. 한별 역시 학교에 출장이 잦고 일이 바쁜 부모님의 번호가 아니라, 유성의 소속사와 채널(Cha.N) 매니저 핸드폰 번호를 적었다. 형은 아이돌이라 번호가 자주 바뀌니, 연락이 닿을 수 있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몸이 많이 안 좋다고 들어서…… 미안해. 걱정돼서 전화해 봤어.
왜?
한별은 단영이 굳이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쓴다는 게 의아했다.
“혹시, 형이 저 때문에 집중 잘 못 해요? 저 몸 안 좋다고?”
―어?
“만약 그런 거면 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전해 주세요. 저, 정말 괜찮거든요. 일에 지장이 가는 거면 형한테 이야기하지 말 걸 그랬어요.”
―……잠, 잠깐만, 한별아? 지금 내가 유성이 때문에 전화했다고 생각한 거야?
“……?”
당연하죠?
단영은 유성이 속한 채널(Cha.N)의 멤버일 뿐, 자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요즘이야 일이 일이다 보니 자주 만나고 있지만, 한별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유성의 몸만 좋아지면 전처럼 만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거 참……. 한별아, 형은 그냥 네가 걱정돼서 연락한 거야.
“네? 왜요?”
―왜냐니…… 동생이니까.
난 유성이 형 동생이지, 그쪽 동생은 아닌데……. 한별이 흐린 눈을 하자, 침묵의 뜻을 알아챈 건지 수화기 너머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친동생은 아니지. 그래도 자주 숙소에 오고, 회사도 들렀잖아. 얼굴 아는 사람 아프다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아…… 네에.”
―다른 뜻은 없어. 나도 내가 원하는 데에 꽂혀서 눈이 돌면 사람 귀찮게 하는 편이라는 걸 잘 알거든. 좀 아쉽고 아까워서 챙긴 것도 있지만, 어쨌거나 동생이잖아. 유성이도 많이 걱정하고. 내 입장에서도 그래. 아직 열아홉밖에 안 됐는데 집에 혼자 있다고 하니까 걱정이 돼서 연락 한번 해 봤어.
“네…… 감사합니다.”
걱정을 받는 것이 어색했다.
한별을 걱정하는 이는 언제나 유성과 친구들이었다. 그 외의 타인이 자신이 걱정돼서 연락을 취한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수험생이기도 하고. 곧 수능이니까 몸 관리 잘하자.
단영의 말에 한별은 픽 웃음을 흘렸다. 수험생 관리하는 학원 원장님 같은 말이었다. 아니지, 작곡 레슨을 해 주고 있으니 선생님 맞나?
“숙제는 잘해 갈게요.”
―응~ 기대할게. 몸조리 잘해.
길지 않은 통화였다. 2분 남짓 통화했다고 알려 주던 화면이 이내 기본 배경 화면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