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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16화 (16/78)

16화

‘번호를 저장할까?’

고민하던 한별은 홀드 버튼을 눌렀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학교 점심시간도 곧 끝날 테니, 적어도 하교 시간까지는 조금 잘 수 있겠지. 눈을 다시 감으려던 한별은 돌연 들려온 현관 벨 소리에 몸을 떨었다.

“…….”

……나 진짜 이젠 좀 쉬면 안 되나?

지금 시간에 방문할 사람이 없었다. 유성이라면 문을 그냥 열고 들어왔을 것이고,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숨을 푹 내쉰 한별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문 앞엔 상자가 놓여 있었다.

“……?”

웬 택배?

아니, 택배가 아닌가? 받는 사람에 적힌 이름을 보면 한별의 택배가 맞긴 한데, 택배 회사의 이름은 아니었다.

최근 뭘 주문한 기억이 없었기에 머리 위로 물음표를 가득 띄운 한별이 주춤주춤 뒷걸음질 쳐,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퀵……?”

보내는 사람 이름에 적힌 정윤수라는 세 글자에 한별의 눈이 흔들렸다. 채널(Cha.N)의 둘째가 왜? 첫째랑 통화 지금 막 끝냈는데?

한별은 상자 안 가득 든 달콤한 간식의 향연에 말을 잇지 못했다.

“잘 먹겠다고…… 연락해 줘야 하는 건가?”

한별의 표정에 혼란이 가득 찼다.

* * *

“수능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니?”

“네.”

“몸은 괜찮고?”

오랜만에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셨다.

한별은 부모님의 물음에 멋쩍게 웃으며 답을 피했다. 하지만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어머니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며 입을 열었다.

기실 평일이니만큼 학생이라면 집이 아니라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 참 여전한 분이었다.

어머니가 웃고 있는 한별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저 아직 용돈 남아 있어요, 엄마.”

“그러니? 부족하면 문자 하고. 혹시 모르니까, 통장에 넣어 둘게.”

“네, 알겠어요.”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맡은 연구가 한참 진행되고 있다며, 다시 학교 내 사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갈아입을 옷만 급하게 찾고 있었다.

한별이 아버지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셔츠 찾으시는 거예요?”

“어? 그래. 저번에 세탁해서 넣어 놨던 것 같은데.”

한별이 익숙하게 다른 옷장을 열어, 가지런히 접힌 셔츠를 꺼냈다.

“속옷은 안 필요하세요?”

“급하게 새로 산 것들이 있어서 속옷은 괜찮아. 고맙다.”

“여보, 출발할 건데요.”

“금방 나가요. 한별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고.”

한별은 부모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유성도 한별도 부모님께 ‘무슨 일’을 잘 알리지 않았다.

웃음을 지은 한별은 부모님을 배웅했다.

“네. 알겠어요. 다녀오세요.”

조금 복작거리던 집이 다시 조용해졌다.

익숙한 일이었다. 정신없이 집을 빠져나가는 부모님을 향해 손을 흔들다 내린 한별이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히트 사이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억제제를 먹고 있는 데다 유성처럼 몸이 나쁜 건 아니니, 페로몬이 흘러나오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슬슬 히트 사이클이 끝나 가니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사이클이 원래 예정된 주기대로 터지지 않은 탓에 옷에 페로몬이 묻어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페로몬을 제대로 날리지 못했으니, 지금부터 준비해야 히트 사이클이 끝난 후 곧장 등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별은 창문을 열고, 입어야 할 옷들을 먼저 세탁했다. 교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제 유성이 잠시 다녀갔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집에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으니 자신의 페로몬이 묻었을 리는 없었다.

한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약의 효과인가? 조금 멍한 기분에 조금 어수선해졌던 집을 정리하던 한별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사위가 묘할 정도로 조용하게 느껴졌다.

“내가 꿈을 꾸나?”

혹시 방금 부모님이 왔다 가셨기 때문에 조용하다고 느끼는 걸까? 그렇게도 생각했지만, 그것치고도 이상했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부정맥…… 인가? 불안할 정도로 집이 고요했다. 평소와 다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던 한별은, 이내 자신의 핸드폰 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 쉬는 시간만 되면 단톡 방에 불이 났다. 그게 아니더라도 개인 메시지가 쌓이는 편이었다. 태하는 조용한 편이지만, 재휘와 은한이 항상 엉뚱한 소리를 해 대기 때문이었다.

몸이 좋지 않다는 것 때문인지 유성도 자주 연락을 했다. 스케줄이 없어서 작곡 공부를 하고 있다며, 한번 들어 달라는 핑계로 수시로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여 쉴 틈 없이 울려 대던 핸드폰이 어쩐 일인지 오늘은 아침 내내 조용하다.

한별은 조용하면 좋지, 하고 넘겼다. 부모님이 나가신 후, 자신의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마저 커다랗게 들리는 고요한 곳에서 한별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사람은 무언가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기시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지이잉, 지잉.

한참 조용하던 핸드폰이 크게 진동했다.

한별은 숨을 꼴깍 삼키고 다가가, 핸드폰을 들었다.

강재휘

내가 지금 잘못 보는 거 아니지? 나 지금 좀 당황스러워서 지금 연락하는 거거든?

도은한

내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헛소문인 것 같거든?

최한별아 너 그냥 핸드폰 꺼라

강재휘

애들이 막 물어보는데 내가 답을 할 수가 없단 말이야;

http://www.starstorynewsch.kr/...

야;; 이거 확인 좀 해 봐 한별아;;

너 진짜 데뷔하냐?

온갖 헛소리로 톡 방이 뒤집혀 있었다.

* * *

―채널(Cha.N) 멤버 ‘유성’의 동생. 데뷔 코앞?

―채널(Cha.N) 유성, 동생 데뷔하나?

―채널(Cha.N) 유성 동생, 데뷔에 관한 소문과 관련하여

한별의 데뷔와 관련된 헛소문은 애초에 성립이 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현직 아이돌의 동생이라는 특이점만 제외한다면 한별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다.

채널(Cha.N) 멤버들이 한별의 실력을 보자마자 말을 잃었을 정도로 음치에 박치였다.

물론, 아주 어릴 땐 잠시 무대에 대한 동경을 품었으나, 일찌감치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확인한 한별은 그 어린 나이에 친히 자신의 꿈을 달걀 깨뜨리듯 반으로 깨뜨려 소멸시켰다.

이후, 한별의 핸드폰엔 불이 났다. 중학교 졸업 후 연락이 되지 않았던 동창과 학원에서 적당히 번호를 교환했던 동생들한테 맞냐는 연락이 가득 쌓인 것이다.

윤아윤

너 유성 동생이었어?

서진한

형 아이돌 해?

한별의 형제 관계를 확인하는 메시지도 수두룩했다.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소문인지 파악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나하나 답하기도 글렀다. 유성이 갑자기 [Pick, My Dol!]에 나왔을 때보다 더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다.

한별이 톡톡 핸드폰을 건드리자, 액정에 [원수 새끼]라는 명칭이 떠올랐다. 유성의 번호와 함께 한참 신호음이 가다 뚝, 전화가 끊겼다.

녹화나 자컨 등 스케줄 중이면 전화를 받을 수 없다. 연습 직전이라면 연습을 위해 전화를 꺼 둔다. 녹음 중이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신호가 가고 있다는 건, 적어도 일정이 진행 중이 아니라서 핸드폰을 켜 놓았다는 소리였다.

한별은 돌아 버릴 것 같은 기분에 인터넷 창을 다시 띄웠다. 아까 뉴스 제목들만 확인하고 기겁해 껐던 참이었다.

굉장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유성이 데뷔한 이후엔 애써 무시했지만, 유성의 데뷔 전 한참 [Pick, My Dol!]에 출연하고 있을 땐 자주 느꼈던 감각이었다.

유성에게 쏟아지는 온갖 비난과 말도 안 되는 루머, 자신과 부모님을 향한 원색적인 욕설까지.

요즘엔 사그라졌다지만, 여전히 한별에게 인터넷 창을 켜는 것은 많은 정신력의 소모를 불러왔다.

“후…….”

검색해야 하나?

아니, 해도 될까?

숨을 삼킨 한별이 검색창의 공란을 누르자마자 핸드폰에 알림이 떴다.

지태하

한별아

한별아 몸은 괜찮아?

한별아

혹시 괜찮다면 연락 좀 해 줄 수 있어?

마치 행동을 막으려는 듯 도착하는 연락에 한별은 곧장 손의 위치를 옮겨 태하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래, 조금만 이따가 확인해도 되겠지.

나 괜찮아 내일 학교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지태하

다행이야

지금 나 때문에 학교 시끄럽지?

잠시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자신의 짧은 질문에도 답을 고르는 다정한 친구의 모습이 그려졌다.

지태하

그냥 소문만 심하게 돌았을 뿐이야. 곧 사그라들 거고.

너는 정말 아파서 못 온 것뿐인데 학교에는 그 일 때문에 안 나온 거라며 소문이 사실이라는 이야기가 도는 바람에 조금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

재휘랑 은한이한테도 절대 아니라고 이야기해 놨어.

넌 나 아닌 거 어떻게 알았어?

지태하

지금까지 작곡가 준비한 네가 갑자기 아이돌 하겠다고 생각을 바꿀 것 같지 않았거든. 무엇보다 네가 우리한테 먼저 이야기 안 했을 리도 없잖아.

한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상황을 잘 아는 태하가 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친구들을 잘 설득해 준 모양이었다.

왜 이런 소문이 퍼졌는지 알 수가 없네.

한별은 태하에게 한탄하듯 답장했다.

형인 유성에게 해야 할 말이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니만큼 답답함을 어디에든 호소해야 할 것 같았다.

한별의 투정 같지 않은 투정에 태하는 잠시 답을 하지 않았다. 친구한테 너무 한탄했나? 그것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

지태하

한별아 지금 집에 있어?

응? 그렇지

지태하

내가 잠깐 가도 될까?

갑자기? 한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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