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어젯밤에 마지막 억제제도 먹었기에 몸 상태도 많이 회복된 찰나였다.
혹시나 옅게 묻은 페로몬에 태하가 불편해하진 않을까 싶어, 한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털어 냈다.
지금?
지태하
응 지금
난 괜찮지만... 너 집 방향 반대잖아
지태하
괜찮아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들어주기로 했으니까.
그건 그렇지만. 한별은 태하에게 그럼 그렇게 하라는 답장을 보내고 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시간을 계산했다.
‘약 10분…….’
시간을 확인하던 한별은 핸드폰 액정에 비친 자신의 몰골에 기겁하며 욕실로 달려갔다.
* * *
잠시 후, 생각보다 이르게 도착한 태하가 급하게 달려오는 한별의 모습에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손을 뻗었다.
“넘어져……!”
“난 환자가 아니야, 태하야.”
“그래도…… 억제제 부작용은 꽤 남아 있잖아.”
하긴, 이 녀석도 우성이라 억제제 먹겠구나.
가족들에게 하듯 아니다, 괜찮다, 습관처럼 말하려던 한별은 감추지 못할 사람이 앞에서 빤히 바라보자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 오후부터 많이 괜찮아졌어. 원래는 오늘부터 학교 가려고도 했고…….”
“쉴 땐 확실히 쉬어야 해, 한별아.”
태하는 단호했다. 고개를 숙이고 끄덕이던 한별이 생각났다는 듯 조금 급히 고개를 들었다.
“학교에 이야기 많이 돌았어? 그 헛소문?”
“어…… 조금?”
태하가 차마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는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돌은커녕 애국가, 아니, 동요도 제대로 못 부르는 자신인데 데뷔 소문은 너무 뜬금없다. 그러니 같은 반, 혹은 같은 반이었던 학생들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보다 다른 반이어서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은 게 학교였다. 태하도 많은 친구와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고,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유성이 데뷔한 이후론 더욱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자신보단 태하가 정신없었을 것이다. 아이돌 데뷔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조용히 학교에 다니던 그 성격으로 열심히 설명하고 다녔을 것이다.
오랜 시간 친하게 지낸 만큼, 태하의 상황이 그려지는 느낌에 한별은 미안함이 가득해졌다.
“형은 뭐라셔?”
“그게…… 계속 통화를 걸고는 있는데, 연락이 안 되네.”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형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어찌 된 영문인지 유성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억제제 부작용으로 집에 있던 기간 내내 유성에게 메시지가 왔었기에, 이제 한별은 조금 불안하던 참이었다. 유성의 연락은 어젯밤 11시를 기점으로 뚝 끊어져 있었다.
“혹시, 내가 오는 동안 따로 이유 생각난 게 있어?”
한별은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싫고, 이미 유성이 유명해지며 겪은 온갖 온상을 가까이서 본 상황이었다.
한별 역시 좋은 의미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일차원적인 욕심은 있다. 하지만, 그건 작곡가로서 유명해지기를 바란 것이었다.
노래를 부른 가수의 한 발짝 뒤에 서서 1위를 한 가수를 향한 박수를 보내는 작곡가. 그것이 한별의 꿈이었다. 결코 자신의 얼굴이 이런 식으로 퍼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나, 알려지는 거 싫어서 형한테도 내 이야기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거 알잖아.”
그런데,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된 걸까. 한별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듯 표정을 굳히자, 태하가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해 본 게 있는데.”
“어떤 걸?”
“작곡 과외 한 것도 있고, 형 보려고 자주 교류하기도 했잖아.”
“그거야…….”
한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유성의 몸 상태 때문에 억지로 간 숙소와 회사였지만, 후엔 한별 역시 자신의 꿈과 욕심을 위해서 열심히 방문했다.
이 일에 자신 역시 일조하긴 했구나.
한별이 조금 뜨끔하여 입을 다물자, 태하가 입을 열었다.
“영상이랑 사진들이 떴거든. 혹시, 확인해 봤어?”
“아니…….”
“그럼 굳이 안 봐도 돼.”
한별이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려 하자, 태하가 한별을 말렸다. 자신이 이미 확인해 봤다며 고개를 젓곤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맨 처음엔 알음알음 퍼진 소문이었던 것 같거든.”
한별이 채널(Cha.N)의 숙소를 드나드는 건 기실 사생들 사이에서 조용히 이야기가 흘렀다. 처음엔 새로 이사 온 아파트 주민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때까진 채널(Cha.N)의 숙소가 있는 같은 동에 이사 온 것처럼 보이는 잘생긴 남학생 정도로 물밑에서 돌아다니던 소문이기에 회사에서도, 유성도, 대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별의 이야기가 제대로 제대로 퍼지기 시작한 건 채널(Cha.N)과 동행했던 지역 축제 때부터였다.
채널(Cha.N) 멤버들의 차에서 내린 후 나타난 의문의 소년. 매니저라기엔 어린 데다, 눈에 띄는 외모 덕에 잠시 채널(Cha.N)의 팬 계정 사이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유성이가 동생과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했는데…….’
거기다 행사장에서 유성이 한별을 부르는 것을 들은 팬들이 있었던 탓에, 한별이 유성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아챈 팬들은 처음엔 입을 다물었다.
그저 형제끼리 외형이 닮은 듯 닮지 않아, 소위 ‘그림체가 다르다’는 이야기만 슬쩍 돌았을 뿐이었다. 여기에 형제 사이가 좋다는 이야기까지 붙어, 팬들의 미소가 흐뭇하게 짙어졌다.
하지만 한별의 숙소 방문과 회사 방문이 점차 잦아지자, 소문은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동생이어도, 왜 이렇게 자주 와?’
‘숙소는 그럴 수 있지만, 회사는 왜……?’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도 한별이 회사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단영이 직접 한별을 학교 앞에서 픽업했던 날이니, 회사로 간 첫날의 사진이 퍼진 것이다.
‘느낌이 조금 싸하지 않아?’
‘동생이 소속사까지 오는 게 흔한 일은 아닌데.’
‘그냥 동생을 챙기는 게 아닌 것 같다. 그치?’
그때부터 한별의 연습생 설이 퍼진 것이다.
채널(Cha.N)이 있는 소속사엔 원래 연습생이 없었다. 데뷔한 팀 모두가 [Pick, My Dol!] 출신의 아이돌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르면 당연히 시작되는 연습생 모집 공문조차 올라온 적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Pick, My Dol!] 출신의 아이돌만을 위한 소속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Pick, My Dol!]은 시즌4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는 소속사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 연습생을 받아야 했고, 실제로 연습생 모집을 위한 공고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한 소속사의 행보 탓에 한별의 이야기가 더욱 데뷔와 관련된 이야기로 부풀어진 것이다.
“……미안. 혹시나 했는데, 설마 진짜 그렇게까지 이야기가 퍼질까 했어.”
‘한별이 너, 혹시 연예인 할 생각 있어?’
태하가 자신에게 혹시 데뷔 생각이 있느냐 물었던 기억이 떠올라, 한별은 입을 떡하니 벌렸다.
“태하야. 전에 나한테 연예인 할 생각 있냐고 물어본 거, 이거 예상하고 물어봤던 거야?”
“……조금?”
이래서 머리 좋은 사람들은 무섭다. 한별 입장에선 상상도 못 한 일이었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내다본 걸까.
한별의 표정에 태하는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유성이 형이랑 연락이 안 되는 걸 보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일 거야.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기사라, 회사에서 막아 줄 수 있거든.”
작은 기획사 소속이었던 태하와 달리, 채널(Cha.N)의 기획사는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이런 헛소문이나 다름없는 기사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밤이 된 지금까지 기사가 올라가 있다는 것은 회사 대응이 심하게 늦었거나,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형이 회사랑 싸우고 있는 거 아니겠지?”
한별은 반쯤 그리 생각하면서도 제발 아니길 바라며 핸드폰을 꽉 쥐었다.
“유해진 거지, 본래 형 성격이 유한 게 아니란 말이야…….”
그리고 대응하려면 당사자인 나랑도 이야기해야지, 왜 또 혼자 하고 있어.
한별은 손을 들어 열이 올라 뻣뻣해진 목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한별을 본 태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별아.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생각해 봐야 해.”
“굳이…… 꼭 해야 할까?”
“소문은 부풀면 부풀었지 그냥 꺼지지 않아. 그 과정에서 분명 여러 말도 나올 거고…….”
“나, 애초에 할 생각 없어. 노래랑 춤도 안 되고 연기도 안 돼. 너는 잘 알잖아.”
평소 태하라면 아니라고 할 테지만, 차마 이번만큼은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학예회 출연진에서 1순위로 이름이 빠지던 한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예계는 학예회 따위가 아니다. 연습생이었다 하더라도 근처에 있었던 태하와 아이돌 형제를 둔 한별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실력이 없는데도 유명해지기도 하고, 실력이 출중한데도 대중에게 이름 한 번 언급되지 못하기도 하는 게 연예계다.
그런데 데뷔는커녕 연습생도 아닌 한별의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어느 연예계 기획사라도 눈을 빛낼 상황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별이 입을 열었다.
“잠깐…… 그냥 둘까.”
“뭐?”
그래도 형이 아니라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이라면, 한별은 잠시 감수할 수 있었다.
그 말에 태하는 눈을 크게 뜨고 끔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