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한별의 대응은 무대응이었다. 주변의 물음에도 결코 입을 열지 않았고, 쏟아지는 문자와 연락에도 관련 사항이라면 일절 답하지 않았다.
형인 유성 역시 그다음 날 한별에게 전화를 했지만, 한별은 그 전화도 받지 않았다.
평범하게 학교 수업을 들었고, 평범하게 식사를 했다. 친구들과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하교하는 것까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인터넷의 바다는 한별의 이야기로 시끄러웠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행동으로 한별의 주변만큼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 기자들이 학교 근처를 빙빙 돌았지만, 한별이 평소와 다름없다는 것을 안 친구들이 한별과 동행하여 모르는 사람들이 붙는 것을 원천 차단했다.
그때, 또 다른 답답한 사람이 차를 끌고 나타났다.
“해명이나 제대로 하시지.”
“……어, 음.”
“왜, 뭐. 제대로 얘기해.”
“음…… 태하야, 집이 어디니?”
“태하, 나 때문에 차에 같이 탄 거니까 보내려고 하지 말고.”
“동생님. 형 진짜 졸업 앨범만 가지고 가면 되거든? 근데, 혹시 집에 밥 있―.”
“딴소리하지 말고.”
“너무 몰아세우지 말아 줘…….”
따라붙는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엉뚱한 도로를 빙빙 돌던 유성은, 한별이 화를 풀지 않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엉뚱한 기사 올라오게 해서 미안해.”
유성의 탓이 아님에도 사과를 하는 것은 유성이었다. 지금 한별에게 중요한 건 사과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파악이었다.
“어쩌다가 그런 기사가 올라온 거야?”
유성의 페로몬 때문에 오해가 시작됐을 수는 있다. 최근의 한별은 원하든 원치 않든 회사를 많이 드나들긴 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여태 나지 않았던 소문이 갑작스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점이다.
한별의 외모가 처음으로 언급된 사생의 사진에서도, 채널(Cha.N)의 멤버들과 함께 간 행사장에서도 지금껏 그런 낌새는 없었다.
그저 ‘채널(Cha.N) 멤버 유성의 엄청난 집안 유전자’ 정도로만 화제가 됐을 뿐, 한별의 연예계 입성과 관련짓진 않았다. 조용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한별의 성격도, 유성의 제어도 있던 덕이다.
알음알음 한별의 얼굴을 알던 사람들이나 일부러 불씨를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채널(Cha.N)의 라이브 방송에 잘생겼다는 동생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유성은 단호하게 막았다.
‘동생이요? 아이돌? 절대 안 해요.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
‘연예인…… 동생이 하는 건 상상이 안 되는데요. 본인도 별로 안 좋아해요.’
‘애초에 동생은 어려서부터 카메라 앞에 서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모든 말이 정답이었다.
한별이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가족사진이나 굳이 찍어야 하는 학급 단체 사진뿐이었다.
아무튼, 그간 그리 열심히 막았던 형이 사과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때, 태하가 무언가 눈치챈 듯 유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형. 저, 죄송하지만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어? 응, 그래.”
“혹시 소속사에 새 그룹 결성됐습니까?”
“…….”
유성의 움직임이 멎었다.
채널(Cha.N) 이후로도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그룹들이 생겼다. 하지만, 누가 봐도 채널(Cha.N)의 아성을 이을 직속 후배라 할 수 있는 그룹은 없었다.
[Pick, My Dol!]의 첫 그룹인 채널(Cha.N)은 다섯 명으로 시작해 5년 차가 되도록 여전히 잘나가는 1티어 그룹으로 인식되었지만, 그 이후로 데뷔한 그룹들은 죄다 적당한 이름만을 남겼다. 전부 화제성은 1티어였지만, 성적에선 아쉬움이 남은 것이다.
전부 소속사가 없는 출연진이었던 시즌1과는 달리, 시즌2부턴 여러 소속사의 연습생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잡음이 많았다.
실력 좋은 연습생들이 포진한 소속사의 압력에 계약 기간이 짧게 설정되기도 했고, 나중엔 여기저기서 로비가 일어나며 최근 시즌4가 종영했음에도 시즌5의 시작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태하가 핸드폰을 들어 기사들을 확인하곤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기사가 채널(Cha.N)의 첫 후배 그룹이 나온다는 듯한 뉘앙스를 열심히 뿌리고 있었다.
“외부인한텐 이야기하기 좀 그런데.”
“한별이 친구이자 저 자신을 걸고 절대 어디서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절대 그럴 수 없고요.”
“내가 네 뭘 믿고?”
“전부 녹음해도 좋습니다. 필요하시다면 각서도 쓸게요.”
한별은 이미 태하에게 유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켰다. 하지만, 태하는 당사자인 유성에게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별의 입장을 생각하여 모르는 일로 간주하고 입에도 올리지 않는 것이다.
둘을 지켜보던 한별이 입을 열었다.
“태하 아이돌 준비했던 거 형한테도 알려 줬잖아. 아무리 모르는 척해도 얘 눈 피하긴 좀 힘들어.”
입을 다물었던 유성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그 말 그대로야.”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복잡한 듯 머리칼을 헤집었던 유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회사에서 화제성을 노리는 것 같아.”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건가요?”
유성이 침묵으로 긍정하자, 태하가 미간을 찡그렸다.
한별도 채널(Cha.N)의 멤버들도 동의한 적 없는 마케팅.
채널(Cha.N)의 멤버들이 모기업의 투자를 받아 레이블을 세우기 전, 그러니까 올해 말~내년 초 사이에 신인 그룹을 데뷔시켜야 채널(Cha.N)의 이름을 마케팅에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회사에서 직접 한별의 이름을 섞어 기사를 냈을 리는 없었다. 회사에 계약된 것은 유성이지 한별이 아니니까.
애초에 연예부 기자들은 한별의 아이돌 데뷔 가능성이 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기사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꾸준히 유성의 이름을 섞는 것뿐이지.
정확하지 않은 사진, 하지만 한별의 주변 사람들이라면 한별을 바로 알아볼 정도로 흐리게 만든 영상들.
무엇보다 기사엔 한별의 이름이 전혀 없었다.
그저 채널(Cha.N) ‘유성’의 동생. 이 한 문장으로도 화제성은 넘쳤다. 한별이 SNS를 하지 않기에 기사에 쓰인 소스들 역시 팬들이 찍은 영상과 사진들이었다.
아무래도 일반인이기에 마음대로 사진을 찍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만큼 회사에서 정정, 삭제 요청만 들어가도 해결될 텐데, 회사의 반응은 어쩐지 미적지근했다.
“진짜 일 못 하네.”
“하하…….”
한별의 뚱한 목소리에 유성이 한숨과 같은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채널(Cha.N)의 후배가 데뷔한다고 해도, 채널(Cha.N) 팬들이나 아이돌 팬들이 시선을 돌려 소속사 신인 그룹을 응원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채널(Cha.N)은 애초에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고, 소속사 출신으로 연습한 것이 아닌 데다가, 회사에선 채널(Cha.N)의 데뷔 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소위 말하는 온갖 ‘뻘짓’을 다 했으니 팬들이 소속사에 고운 시선을 보낼 리 없었다.
그러니 팬들 사이에 슬쩍 화제가 된 한별을 유성의 동생이라는 것과 채널(Cha.N) 후배라는 타이틀을 같이 슬쩍 엮어 마케팅하려던 것 같은데……. 연예계에 아직 발끝도 담그지 못한 한별이 보기에도 무리수 가득한 계획이었다.
“이거, 회사에 얘기하느라 어제 전화도 제대로 못 한 거야?”
늦은 시간까지 회사 연습실이 아닌, 사무실을 드나들었을 것이다.
수능 이후 컴백 예정인 채널(Cha.N)이기에 너튜브 자체 콘텐츠와 몇몇 스케줄을 제외하면 연습에만 매진해도 모자란데, 엉뚱한 일에 골치를 앓고 있었을 것이 확연히 보였다.
한별은 건강도 시원찮은 유성이 걱정됐다. 상황이 제게 영 좋지 않게 흘러간다고 해도, 결국 유성은 한별의 하나뿐인 형이었다.
“형.”
“응?”
“혹시, 내가 소문에 크게 손을 대지 않았을 때 형한테 문제가 될 게 있을까?”
“……뭐?”
끼익. 차가 멈췄다. 집 근처이기도 했지만, 태하 역시 눈을 크게 뜨고 한별을 바라보는 걸 보니 꽤 엉뚱한 말이었나 보다.
“무슨 소리야. 지금 핸드폰에 연락 계속 쏟아지고 있지 않아? 기자들도 확인하려고 난리일 텐데.”
“기자는 무시하면 되는 거고, 연락은 번호 바꾸고 주변 사람들한테만 알리면 돼. 근데 내가 정말로 데뷔할 것도 아니고, 내 이야기 갖다가 써먹는 걸 안 막는 건 회사에서 할 일을 방치하고 있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이 소문이 형 활동에 방해가 돼?”
방해될 건 없다. 한별이 사건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외모로 화제가 된 것뿐이니까.
정말 문제가 되려면 한별이 당장 밖에 나가 비행을 저지르고 사고를 쳐야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0퍼센트였다.
한별은 한 번도 자신의 데뷔와 관련된 이야기는 1도 꺼내지 않았으며, 아파서 결석했던 때를 제외하면 학교생활도 성실했다.
화제의 주체는 한별인데, 그 화제성을 엉뚱한 데에 연결하려 혈안이 되어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회사에서 역풍을 맞을 것은 누가 봐도 당연했다.
그리고 한별이 아는 유성은 그 역풍을 충분히 이용해 먹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유성은 형의 입장에서 동생이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을 최대한 막아 보려 하는 것 같았지만, 원래 일 못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멀쩡한 사람들만 뒷덜미 잡는 법이었다.
소속사는 데뷔 윤곽이 나온 신인 그룹을 위해 유성의 의견은 말로만 해결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소문의 ‘유성 동생’에 관한 기사는 우후죽순 쏟아졌다.
“제 개인 생각이지만요. 채널 계약 기간이 곧 종료된다는 거 알고 있어요. 재계약 가능성이 없다는 말은 이미 인터넷에 파다하고요. 아무리 봐도 계약 종료 전에 신인 그룹 홍보로 이용하려는 느낌이라서요.”
태하로서는 채널(Cha.N)이 레이블 설립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이에 한별이 덧붙이듯 입을 열었다.
“이름값이 적당히 떨어지면 재계약하기 좋고, 아예 떨어지면 안 보니 좋고. 너무 뻔하잖아. 근데, 난 내가 논란이 될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
논란은커녕 화제가 됐지만, 어쨌거나 채널(Cha.N) 팬덤 내에선 확실히 술렁일 만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