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20화 (20/78)

20화

* * *

“그럼,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소문은 사방에서 들렸다. 한동안 아는 사람들만 알고 퍼지지 않았던 유성의 동생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다니는 학원 내에 전부 퍼진 상태였다.

수험 기간만 끝나면 학원에 나올 일이 없을 테니 그동안만 버티면 된다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야…… 듣겠다.”

지금도 그랬다.

한별은 평소와 다르지 않음에도 원생들은 자연스럽게 한별을 피했다. 눈치를 보며 일부러 말을 아끼기도 했고, 속이 꼬인 사람들은 모른 척 ‘연예인 험담’을 하기도 했다.

애초에 연예인을 향한 논란이라는 것 자체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법이지만, 시달리는 건 본인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별은 갑자기 헛소문이 퍼진 탓에 자신이 알려져 조금 불편함을 겪었을 뿐이지만, 예찬의 상황이 터지며 채널(Cha.N) 멤버들 전부 행동의 제약이 걸렸다.

너무하다 싶을 만큼 닿는 확연한 시선들에 한별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어지간하면 대응책이 나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려 했다. 하지만 한별의 엉뚱한 소문이 퍼진 상황이었고, 이어 약간 사그라드는 걸 노렸다는 듯 예찬의 이야기가 퍼졌다.

무엇보다 아무리 봐도 창조 논란인 것이.

[New!] 제목: 그래서 ㅎㅇㅊ이 따돌림 주도한 게 맞음?

작성자: ㅇㅇ

왜 말이 다 지멋대로지? 누구는 쟤가 한 게 맞다 그러고 누구는 아니래 동창 안 나오냐고;

[New!] 제목: 아니 애초에 ㅎㅇㅊ ㅊㅁ예중 졸업은 맞아?

작성자: ㅇㅇ

왜 말만 나오고 동창이 하나도 안 나오냐

댓글

근데 실드치는 사람도 없음

└ 이해 불가...

[New!] 제목: 실드가 없으니 맞다고 본다

작성자: ㅇㅇ

제곧내

댓글

원래 창조 논란엔 먹이를 안 줌

└ 근데 기사가 떴잖아

└ 기레기 원래 엉뚱한 거에도 속보 잘 냄

[New!] 제목: 단독 뜨는 거 없나?

작성자: ㅇㅇ

제보자 없나 제보자?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의문점만 가득 퍼졌다.

어디서 시작된 소문인지도 진위 확인이 되지 않았다. 들은 사람은 있는데 시작한 사람은 없는 소문이라, 인터넷은 더욱 혼란에 휩싸였다.

기실 예찬의 졸업 중학교부터 미궁에 쌓여 있으니, 소문이 퍼지다가도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한별은 자신이 물어볼까 생각하다가도 대응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형들을 위해 핸드폰을 내렸다.

그래도, 찾아볼 수는 있잖아……?

실로 오랜만에 검색을 시작했다. 형의 데뷔 전엔 인터넷 페이지에 빠삭할 정도로 돌아다녔지만, 형이 데뷔한 후 모르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했다.

연예계와 관련된 모든 검색을 피하던 한별은 드디어 손을 움직였다.

검색은 현란했다. 유성의 프로그램 출연이 결정된 이후, 형을 데뷔시키기 위해 돌아다녔던 온갖 커뮤니티를 다시 추적하고 멤버들의 써방 단어를 수집했다.

파랑새, 인별그램, 너튜브는 물론이고 그 외의 포털 사이트와 팬들이 활동한다는 모든 커뮤니티를 돌았다.

소문이 시작된 지점을 찾는다. 예찬이 다녔으리라 추정되는 중학교 홈페이지 역시 확인했다.

예찬이 유성보다 한 살 어리니, 지금 나이는 스물하나. 데뷔한 4년 전이라면 고1 입학식도 하기 전이었다. 프로그램 출연으로 학교 수업 참여가 어려워져, 데뷔가 확정된 뒤엔 고등학교를 아예 자퇴했다.

예찬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남아 있을까 싶어 그가 다녔을 중학교로 추정되는 학교의 축제, 체육 대회 사진을 전부 저장했다.

물론, 비교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 씨! 사진 왜 이렇게 많아!”

입학식 사진부터 성교육 예방 교육, 불조심 교육 등등 행사 사진을 전부 저장하고 나니 폴더가 넘쳤다.

편성 학급 10학급. 학생 총수 900명 가까이 되는 학교의 사진을 뒤져 보려니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 사이로 흐릿하지만, 예찬과 아주 약간이라도 비슷하게 보이는 사진들을 따로 분류했다.

사람은 자라며 외모가 바뀌기 마련이라, 그냥 비슷하다 싶으면 전부 가져왔다.

지태하

정말 사진 찾는 중이야?

친구들과 함께 있는 채팅방이 아닌, 개인 연락이었다. 컵에 담긴 찬물을 들이켜던 한별이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ㅇㅇ

지태하

유성이 형이 찾아보지 않을까?

옳은 말이었다. 회사가 대응할 일이지 한별이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열이 받아서 직접 나서는 것이었다. 형의 아이돌 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조금이라도 나서는 편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됐다.

형이 아이돌 생활을 계속 이어 간다면 자신에게 콩고물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남들이 보기엔 금액적인 면을 제외하면 없지 않냐 묻겠지만, 작곡가를 준비하는 한별 입장에선 당연히 작곡가로서의 지름길이 열렸다.

세상 쉬운 길이 어디에 있겠냐만, 상대적으로 쉬운 길을 굳이 외면해 빙 돌아갈 만큼 한별은 순진하지 않았다.

가족의 도움 없이 내 힘으로만 오롯이 성공하겠어! 하는 꿈 같은 이야긴 소년 만화에서나 나올 다짐이었다.

“그러게, 왜 자꾸 형을 건드려?”

한별이 짜증이 오른 듯 중얼거렸다.

어려서부터 힘든 내색하지 않던 유성이었다. 지금도 대응력 바닥인 소속사 탓에 정신없을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니, 반박 기사라도 나야 속이라도 편하지!

데뷔 전, 한가득 쌓인 욕설을 한가득 모아 전달했음에도 여태까지 지지부진한 처리를 보이는 소속사이니만큼 분명 문제가 커질 것이 자명했다.

지태하

역시 물어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미 물어봤어.

유성에게선 답이 없었다. 소속사와 회의 중이거나 멤버들끼리 이야기 중일 것이다.

어지간히 답답해야 이런 짓을 안 하지. 한별은 사진을 아무리 확인해도 예찬과 비슷한 인물은 보이지 않자, 머리를 긁적였다.

답답함에 무엇이라도 하려는 성격은 아무래도 부모님과 형을 닮긴 한 모양이다. 생산성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다. 그리고 원래 이런 일은 머리가 시키는 게 아니고 가슴이 시킨다.

무작정 저장한 사진들을 적당히 묶어 두고, 흐릿한 눈으로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던 한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연이은 채널(Cha.N)의 악재? 멤버 세현, 갑질 논란

―채널(Cha.N) 세현, 갑질 논란 폭로 글 올라와

커뮤니티가 다시 뒤집혔다. 진짜 연이어서 사건이 터졌다.

말이 돼?

말 그대로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논란들에 예찬의 상황에선 ‘정확한 이야기도 없고, 예찬이 그럴 리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던 팬들이었다.

하지만, 세현의 논란마저 터지자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한 명일 땐 중립을 지키려던 사람들이 멤버 중 두 사람이 논란이 되자 ‘그럴 줄 알았다’는 의견이 순식간에 대세가 된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몸값 후려치기를 위한 작업을 넘어섰다. 형을 통해서만 연예계에 관심을 가진 탓에 이해가 깊진 않은 한별마저 알아챌 정도였다.

“태하야.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어? 어…….

한별은 바로 핸드폰을 들어 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하는 이어진 한별의 물음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별이 연예계에 너무 깊게 연관되지 않았으면 하는 걱정이 확실히 느껴졌다.

―보통은 그래. 데뷔도 못 한 연습생한테 비용 청구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작은 회사여도?”

―작은 회사일수록 데뷔 이후에 비용 청구하는 편이야. 회사에서 계약 해지 통보 받아서 해지하는 거면 소요 비용 청구 안 하고. 근데 한별아, 지금 물어보는 건 상황이 완전히 다른 거잖아……? 너, 데뷔할 생각 없다며.

“그렇지.”

―이게 연습생이 계약 위반하거나 귀책 사유가 있어서 해지하게 되는 상황이면 투자한 비용을 배상해야 할 수도 있어. 투자라고는 해도 귀책을 이유로 해지하면 문제가 될 수 있거든. 요즘은 없다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귀책 사유로 해지하면 몇 배로 배상한다는 연습생 계약도 있었고.

태하는 간간이 한숨을 내쉬면서도 전부 설명해 주었다.

―근데, 한별아. 난 네가 StarV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건 진짜 추천하지 않아.

“……나, 너무 티 나게 물어봤니?”

―못 채면 바보게? 연습생 해지 배상 관련을 묻고 있는데?

나쁜 짓이라는 건 한별 역시 알았다. 하지도 않을 연습생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유성이 원치 않을 일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근데, 시간을 벌 생각이라서.”

지금 채널(Cha.N)엔 대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이가 없을 만큼 연이은 이 상황들을 정리하려면 다른 곳에 누군가 시선을 돌릴 것이 필요했다.

“법적 대응을 하든, 반박문을 쓰든 시간이 필요하니까.”

심지어 지금 채찍을 들고 있는 건 채널(Cha.N) 쪽이었다.

소속사에서 나오려 하자, 같이 채널(Cha.N)을 향해 칼을 들고 겨누는 소속사에게 한별은 잠깐이나마 당근을 쥐여 줄 생각이었다. 나중에 소속사에서 당근을 흔들든 말든 상관이 없으니까.

한별의 기사들은 순식간에 사방에서 내려갔다. 물론, 형 쪽은 두 멤버의 문제가 남았으나 그건 알아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놈의 논란. 전부 터지려면 진작 터졌어야 했던 일들이었다.

그만큼 채널(Cha.N)이 데뷔한 프로그램은 엄청난 화제였다. 자신이 픽한 출연진을 데뷔시키기 위해 온갖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붙기까지 했다. 그 사이에서도 깨끗하디깨끗한 이들이 채널(Cha.N)이었다.

그런 만큼, 한별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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