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Pick My Dol!] 방영 당시로 처음 기억하던 사람들 입장에선 당연히 예찬이 아이돌 준비를 위해 연습생 생활을 했을 것으로 생각해, 중학교 후보군은 예중에 있었다.
연습생 경력은 6개월. 생각보다 연습생 기간이 길지 않기도 했고, 더욱이 고운 외모가 기억에 박힌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말. 노래 실력 하나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지만, 당시엔 몸집이 있었던 예찬의 몸은 쉽게 무게가 줄어들지 않았다.
데뷔를 위해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연습에 매진했지만, 단 1그램도 줄어들지 않는 무게에 짧은 기간의 연습생 기간이 정리된 것이다.
독한 마음을 품고 몸무게를 줄이기 시작한 예찬은 그 다다음 해 2월, 프로그램에 몰라볼 정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는 이야기가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이었다.
“난 가장 신기한 게, 유성이 형이 그때 갑자기 앨범을 챙겨 갔다는 거야.”
“아…….”
혹시, 신 내렸나? 한별은 가능성 있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간혹 신내림 받는 연예인들 있다고 하잖아.”
“하하…….”
“연예인 팔자가 무당 팔자랑 비슷하다던데.”
“한별아. 그런 건 어디서 본 거야?”
“너튜브.”
이제 태하는 해탈한 표정이었다.
예찬의 상황과 관련된 답은 유성이 가져간 졸업 앨범에 있었다. 자체 콘텐츠 촬영을 위해 가져갔던 졸업 앨범 속엔 다이어트 전, 예찬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 사진이 퍼지고 난 후부터 예찬의 동창이라는 사람들이 등판해 ‘예찬의 학교 폭력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반박이 퍼져 나갔다.
여기서 한별이 한 것은 거의 없었다. 친구인 재휘의 친누나가 유성과 동갑인 것을 알고 도움을 요청한 것밖엔.
졸업 앨범 인증, 같은 반이었다는 인증과 더불어 예찬이 반에서 조용하면서도 다정하고 배려심 넘치는 친구였다는 글이 합쳐지자 파장은 금세 사그라졌다.
그런 와중에 어떻게 알았는지 예찬에게서 감사 문자까지 받은 한별은 볼을 긁적였다.
한별은 기지개를 한번 쭉 켠 후, 한 손으로 뭉친 어깨를 주물렀다.
“아, 맞아. 태하 너 그건 어떻게 됐어? 단기 어학연수?”
자신이야 수능 끝난 후 실기 준비도 해야 하지만, 태하 성적이라면 의대 입학도 가능할 것이다.
수능 끝나고 원서 접수까지 시간이 남으니, 그동안 다녀오려나? 생각하던 한별은 이어진 태하의 답에 눈을 크게 떴다.
“안 가려고.”
“뭐? 왜?”
그 좋은 기회를 왜 날려? 눈을 끔뻑거리는 한별의 모습에 잠시 미소 지은 태하가 고개를 저었다.
“메리트가 없으니까. 차라리 그동안 다른 걸 준비하는 게 나아.”
“그래도 현지에서 한번 생활해 보는 게 낫지 않아?”
“고작 한 달을?”
“그야…….”
대답하던 한별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어학연수라 하면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다. 현지 생활을 직접 겪어 보기 좋은 기간이란 뜻이다.
하지만 좋게 말해 한 달이지, 태하가 나갔던 프로그램에서 제안한 어학연수는 한 달은 무슨, 3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다.
금액이 비싼 곳에 따라선 2주로도 줄어든다던데, 공부를 위해선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차라리 개인적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동감이다. 그럼 돈도 벌고, 영어 공부도 될 테니까.
한별은 쉬이 수긍했다. 그 어학연수 다녀오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 받을 태하의 대학 장학금이 사라지진 않는다. 출국 경험 한 번은 사라지겠지만.
“그리고, 나 어려서 외국에서 살았어서 괜찮아. 굳이 나가지 않아도 돼.”
아, 그럼 진짜 필요 없네. 세상은 넓고, 집안이 좋은 데다 본인마저 사기캐인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옆자리에 앉은 태하가 한별을 빤히 바라보았다. 핸드폰을 켜 잠시 연락들을 확인하던 한별이 물끄러미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태하가 눈을 가늘게 접었다.
“왜?”
얼굴에 뭐 묻었나? 손을 들어 볼을 매만지자, 태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힘 빠진 웃음을 지었다.
“아냐. 내일 수능 우리 학교에서 보지? 몇 반이었어?”
“어? 나 4반. 태하 넌 2반이었나?”
“응. 은한이랑 재휘는 다른 학교로 배정됐다던데……. 점심 같이 먹을까?”
“그럼 나 혼자 먹으라고 하려고 그랬어?”
한별이 비죽 장난기를 담으며 웃으며 묻자, 태하가 당황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라고.
외모에 비해 순하기만 한 태하를 보며 한별은 걱정에 빠졌다.
유성이 형이 태하의 번호를 가져갔다. 연락이 왔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무슨 이야기를 위해 가져갔는지 대충 감은 있었다.
당장 태하에게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아마 채널(Cha.N)의 레이블이 설립된 이후에 연습생 계약을 요구하지 않을까?
언제나 착하고 다정하기만 한 태하가 형네 연습생으로 들어간 이후를 상상해 보던 한별은 심각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휘둘리…… 려나?”
“뭐가?”
“태하야.”
“응.”
“아무리 아는 사람이어도, 계약서를 쓸 땐 신중해야 해.”
“…….”
“특히 우리 형. 알겠지?”
한별의 진지한 표정에 눈을 맞추던 태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바로 사인하지 말고, 무조건 변호사 대동해야 해.”
“응.”
“정 안 되면 나한테라도 이야기해 주고.”
태하는 연신 알았다고 했지만, 한별로서는 영 믿기지 않아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 * *
한편, 유성은 어이가 없었다.
“한별이가?”
“어…….”
세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녹음 파일을 내보였다.
세현의 갑질 논란과 관련한 대응 방법은 이미 생각해 뒀다. 애초에 어디서 시작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알고 있기에, 대응하려고 준비하던 유성은 뜬금없이 한별에게서 왔다는 내용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무슨 일이든 쉽게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익숙했다. 채널(Cha.N)이 만들어진 프로그램 자체가 굉장히 매운맛이라 칭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었기에 눈치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창조 논란은 조금만 상황을 뒤집으면 가라앉기 마련이었다. 막내, 예찬의 상황도 그러했기에 세현과 관련된 사항도 틈을 조금만 긁어 거짓을 벗겨 내면 금세 바뀔 일이었다.
“이거, 그날 녹음본 맞잖아?”
“어…….”
채널(Cha.N)의 스케줄은 대부분이 스태프들과 함께였다. 급하게 내려가는 지역 행사라고 해도, 함께 온 매니저 외에도 비상시를 대비한 또 다른 스태프들이 추가로 자리하게 되어 있고, 그에 따른 영상과 녹음이 이어졌다.
너튜브 채널에 올라갈 영상은 어떤 것이 올라가게 될지 알 수 없다. 무대에 오르기 전의 시끌벅적한 멤버들의 모습을 원하는 팬들의 수요가 있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세현의 논란 역시 방송사 무대가 아닌, 행사 중 일어난 상황이었다. 멤버 중 가장 춤을 잘 추고 무대의 완벽도에 예민한 세현이 무대 담당자에게 몇 가지 요청한 데서 시작됐다.
물론, 급작스러운 요청 사항이 당황스러울 순 있었다. 하지만 채널(Cha.N)은 안무가 격한 편이기에 안전과 관련된 것은 양보할 수가 없었다.
‘저, 죄송하지만 안전을 위해서 무대 위 악기가 전부 정리된 후에 올라가겠습니다.’
멤버들의 동선을 생각하면 무대에 남은 악기에 발이 걸릴 확률이 높았다. 움직임을 줄인다고 해도, 만에 하나를 생각한 세현과 스태프 사이에 마찰이 빚어졌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한별을 찾아 돌아온 유성은, 그때 행사 관계자에게 이야기하는 세현의 모습을 확인했다.
출연진 입장에서 충분히 요청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공연이기에 무대를 어느 정도 정리한 후에 올라가도 괜찮을 거라는 판단하에 요청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상대가 급발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니, 무대가 작은 것도 아닌데 그냥 올라가면 될걸.’
대뜸 반말하는 상대에게 세현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반말은 삼가 주시고요.’
‘우리가 뭐 당신이 해 달라면 다 해 줘야 해요? 서울서 왔으면 다인가?’
‘무대 시간상 너무 지연된다면 괜찮습니다만, 저희 무대 동선에 저 드럼이 걸릴 것 같아요. 앰프는 뒤로 빼도 되지만, 중간 부분은 아무래도…….’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해도 닿지 않았다.
어린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버럭 소리를 치던 관계자는 차를 돌리고 돌아온 채널(Cha.N) 매니저가 도착해 이야기하자 그제야 구시렁대며 무대를 정리했다.
이 상황을 본 사람은 많았다. 하여 채널(Cha.N)의 멤버들은 함께 있었던 스태프 중심으로 반박할 거리를 찾으려던 참이었다.
그때, 한별은 무슨 생각으로 녹음을 했던 것인지. 세현은 리더, 단영의 핸드폰에 도착한 녹음본에 가슴 한편이 뭉클하면서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이름이 알려졌어도 무대를 돌아다니다 보면 부딪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평소라면 유성이나 단영이 먼저 했을 대응이 한별에게 나오니, 모두가 기묘해졌다.
“너희 그 뭐냐, 둘 다 무슨 비밀 조직 애들이고 그래?”
“뭐라는 거야…….”
“아니면 FBI라든가, CIA라든가…….”
“우리 미국인 아닌데?”
“그럼 국정원……. 아, 요즘엔 그 뭐냐 정보사?”
“미쳤나 봐……. 김세현 군대 빨리 가고 싶어서 그러냐?”
유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움직이는 건 어려서부터의 버릇이었다. 부모님의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은 데다, 보고 자라 왔으니 그럴 수밖에.
“정말 대단하긴 해. 너도 그렇지만, 한별이도 연예계 파악하는 거 되게 빨랐지 않아?”
세현의 말에 유성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알아채지 못한 듯 밝은 세현이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