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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28화 (28/78)

28화

데뷔한 선배 그룹을 따라다니는 그 멤버의 동생. 그리고, 화제가 되는 그 멤버의 친구. 신인 개발 팀의 컨택이 있었고, 둘 다 데뷔 조 합류 이야기가 돌지도 모른다.

전 소속사에선 일곱이었지만, 태하에다 한별까지 포함하면 이젠 여덟이 된다.

데뷔 전, 채널(Cha.N) 선배들의 무대에 보이지도 않을 검은색 옷을 입고, 화제도 되지 않은 연습생들과 1군 아이돌 센터 멤버의 하나뿐인 동생.

심지어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람이라면 이름값에서 순식간에 밀린다. 연습생들 사이에선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혹시, 너도 여기 들어와?”

자신들의 살길을 찾고자 당시 소속사에서 밀어주던 태하만 제외하고 넘어온 그들이다.

일 처리는 주먹구구식이어도 커다란 모기업과 방송국이 버티고 있는 소속사에서 데뷔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쏟아진 소식들은 그들의 정신을 쏙 빼놓기 좋았다.

“글쎄…….”

태하는 정확하게 답하지 않았다. 이미 신인 개발 팀이 태하를 캐스팅했다는 소식은 돌았나 보다.

채널(Cha.N) 멤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소속사에 데뷔 조는 이들 외엔 없었다. 이미 한 번 소속사 이동을 추진하려던 태하였기에 들어오면 바로 데뷔 조 합류는 누가 봐도 뻔한 사실이었다. 물론, 안 들어갈 거지만.

복도 끝, 코너에 선 한별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혹시, 너도 계약했어?”

연습생이 긴장된 목소리로 태하에게 물었다. 고개를 살짝 내밀자, 단정하게 생긴 연습생이 식은땀을 흘리는 게 보였다.

태하는 답하지 않았다. 계약은 비밀 유지가 기본이므로 쉽게 입밖에 올려선 안 됐다. 멤버의 변동에 따라 투자가 바뀔 수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제 한별이 나설 때였다.

“태하야.”

한별이 있는지 몰랐던 것인지 연습생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한별이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한참 찾았네. 나, 슬슬 가야 하는데. 나갈까? 대화 중이었어?”

“아냐, 이제 가도 돼.”

태하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한별은 저와 눈을 맞추지 못하는 연습생을 향해 일절 미안함을 갖지 않기로 했다.

* * *

“미안.”

바닥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하고 있던 한별이 쭈그러진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서운하다는 뜻인지, 한동안 한별에게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하던 유성은 사흘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한별에게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제 좀 말할 기분이 들어?”

“아니, 한별아. 아무리 그래도 태하한테 얘기한 건 좀 아니잖아!”

“또, 또 목소리 높인다. 변수 생기자마자 울컥하는 버릇 좀 고치랬지? 그리고, 내가 말한 게 아니라 태하가 페로몬 맡고 눈치챈 거라고.”

유성의 아니시에이팅에 한별이 이를 으득 물곤 타박했다. 쿠션을 꾹 끌어안은 유성에게 한별은 단호했다.

“그리고, 팬들한테나 형이 아이돌이지 나한텐 아이돌 아니거든? 어디서 애교 질이야.”

“나, 베개 안고 있는 거 귀엽냐?”

“……이 인간이 방송물 먹더니 미쳤나.”

팬들이 닮았다며 보내 준 커다란 사막 여우 인형을 손으로 꾹꾹 반죽하듯 주무르는 유성의 모습에 한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미리 알려 줬어야 할 거 아냐.”

“일이 이렇게 꼬일 거라고 형은 예상했어?”

“……그건 아니긴 한데.”

“나도 예상이나 했겠냐고. 태하가 내 페로몬 알고 있는지 몰랐어. 열두 살에 발현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는데, 나야말로 알았겠어? 나도 7년을 보는 동안 태하 페로몬,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그리고, 애초에 태하를 끌고 들어올 생각 없었어. 형 후배랍시고 키워지는 연습생들이 태하 물 먹이고 나온 사람들이던데, 그럼 태하도 얻어맞은 빚이 있잖아.”

“후배 아냐.”

“그래, 그래. 프로그램 출신이 아니니 후배 아니지. 아무튼, 그래서 합류한 것뿐이지 상황 끝날 때까지 태하는 원래 형 상황에 개입 안 할 예정이었다고.”

한별은 유성에게서 흘러나오는 옅은 시트러스 향에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목에 걸린 안경 줄이 팽팽해졌다.

유성도 한별이 태하를 끌고 들어오며 데뷔 조 사이에서는 문제가, 회사도 꼬이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별 혼자만으로는 이 정도로 해내진 못했을 것이다. 개인 방송에 슬쩍슬쩍 한별의 이야기를 꺼내는 행동을 더 오랫동안 했을 텐데, 태하가 판에 합류하며 순식간에 줄었다.

하지만, 억지로 합류한 것이나 다름없는 태하의 상황에 한별은 여전히 미안함이 마음 가득히 퍼졌다.

한별의 표정에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 제발 그 버릇 좀 고쳐. 난 형처럼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말 안 하면 따라가기 버거워.”

“……안 그래도 되는데.”

“형이 알아서 잘할 테니 이용이나 당하라고? 연습생 건도 그래. 일부러 데리고 와서 돌아다니게 하면, 가만히 있다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소문들에 어떻게 대응하냐고.”

“그, 음. 그렇긴 하지…….”

“대체 뭘 바라는 건진 모르겠지만, 결론이 좋다고 전부 좋은 게 아니라고, 이 사람아! 중간에 뭘 할지 좀 알려 주라고. 좀!”

“아, 알겠어. 화내지 마…….”

발끈, 열을 올렸던 한별은 제 눈치를 보는 유성의 모습에 호흡을 다스렸다.

다행히도 회사에선 한별이 자체 콘텐츠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이나, 돌아다니는 연예인의 모습을 보며 연예인에 대한 환상을 키웠으면 하는 눈치였다.

자체 콘텐츠 메인 스태프들은 대부분 해당 아이돌의 편의를 봐주려는 이들이 많았고, 분위기도 대부분 즐겁고 편안하게 흘러갔다.

아무리 아르바이트 같은 계약서를 쓰고 들어왔다고 해도, 외부인인 한별을 보고도 콘텐츠에 한번 참여해 보는 게 어떠냐며 웃던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했다.

“근데, 진짜 이러다 내가 연습생 계약서 쓰면 어떡할 거야?”

한별이 보기에도 상황은 사실 그리 좋지 않았다. 회사에선 한별을 거의 연습생 확정이라 생각한 것인지, 태하에게 공을 들이고 있었다.

데뷔 멤버가 거의 다 결성된 상황에서 태하를 끼워넣기 힘들 텐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찾아와 태하를 노렸다.

“태하는 할 생각 있대?”

“……왜 말을 돌리실까.”

“그게 중요해서 그래.”

“왜?”

“만약에 태하가 합류하고 싶다고 정하면, 손속은 둬야 하니까 그렇지.”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한별은 고개를 저었다. 손속 따위 바라지 않는다.

“없어. 이미 물어봤어. 한다고 해도 StarV에선 안 한대.”

“다행이네.”

“내용 다시 바꿔, 형. 나 진짜 이러다 연습생 서명하면 어떡할 거야?”

한별이 지그시 바라보자, 유성이 뺨을 긁적였다.

“한별이 넌 사람들 속이는 거 잘 못 하잖아.”

“…….”

형 새끼가 여기서 또 뼈를 때리네. 아주 가루 되겠어. 예전부터 담담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하도 뼈를 맞아서, 이미 한별은 순살이 된 지 오래였다.

“요즘은 순살 가격도 2천 원 올랐더라.”

“좀 많이 아팠니?”

“형이 평소에 하도 팩트로 쳐서 난 요즘 치킨도 뼈 있는 걸로만 먹어.”

“……뼈 있는 걸로 시켜 줄게.”

“허니 콤보.”

자연스럽게 치킨을 뜯어낸 한별이 유성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돌렸다.

유성이 여지없이 말을 돌린다는 건 아무리 물어도 말해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한별은 그만큼 표정을 감추고 사람들을 속이는 덴 재능이 없었다.

만약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 자연스럽게 연습생으로 합류하게 되었을 경우의 문제는 여러 가지였다.

1. 한별은 절대 연습생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꿈이 작곡가인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말 그대로 할 수 없었다. 실력이 없는데 연습해 봤자 결론은 방출뿐이다.

2. 그러나 어떻게든 회사에서 이름값만 데리고 진행할 수도 있었다.

욕을 먹는 건 한별이지 회사가 아니다. 벌써부터 눈앞에 훤했다.

실력은 없는데 형만 믿고 나왔다, 요즘은 개나 소나 아이돌을 한다, 얼굴만 믿고 나댄다, 등등 온갖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이다.

둘 다 문제였다.

연습생으로 들어가도 문제고 진짜 회사가 하는, 속된 말로 ‘꼬락서니’를 보면 실력이 없더라도 밀어붙일 것 같았다.

최근 데뷔한 아이돌 중에선 많이 사라진 듯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있었다. 소위 말하는 ‘수납 멤버’가 적은 파트와 군무의 양 사이드를 배정 받아 욕을 미친 듯이 먹으며 활동하는 케이스 말이다.

사실 한별 정도 되면 수납 멤버 활동이 아니고, 아프다며 음방 스케줄마다 의자를 갖다 둬야 할 정도였다.

“이거, 상황 더 길어지면 진짜 이상해지는 거 알지.”

슬슬 팬들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한별이 소속사만 후배 그룹이라 마케팅하는 그룹에 합류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함께 퍼진 온갖 소문 탓에 채널(Cha.N)의 이야기가 섞여 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동생이 연습생으로 들어가며 채널(Cha.N)의 동생 그룹으로 설정을 잡았다더라, 쌍둥이 그룹으로 잡아서 콘셉트를 비슷하게 간다더라, 하는 내용들이었다.

Tlqkf 우리 애들한테 제발 너네가 프로듀싱 하는 새끼들 붙이지 말라고 우리 갓널 팬들이 뽑아서 만든 갓돌인데 왜 그딴 새끼들을 붙여

아오 씹 딱 봐도 데뷔하면 망돌각인데 왜 내 새끼들 붙이는지 모르겠다 그 원스타 때문이냐?

망성아 아무리 봐도 거기 망돌 각이니까 제발 탈주해 들어가지마 나와

슬슬 팬들도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더 흘렀다간 진짜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 될 것이 뻔하기에 한별은 유성을 보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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