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29화 (29/78)

29화

“어떻게 빼낼 건데. 분위기 돌았다고.”

당장 계약서에 사인해야 할 상황이었다. 채널(Cha.N)의 팬들이 피로감에 데뷔 조를 욕하고 있지만, 까가 빠를 부른다고 했던가. 엉뚱하게 데뷔 조를 감싸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얼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영상이나 사진 자료는 채널(Cha.N)의 무대에서 춤을 추는 찰나의 것뿐인데 그 작은 것으로도 착즙하는 팬들이 붙은 것이다.

문제는 팬들이 그 사이에 대부분 한별을 끼워 넣었고, 알음알음 태하의 사진까지 엮는 사람들도 생겨났단 점이다.

이러니 회사에선 더 불을 켜고 한별과 태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화제성을 절대 포기할 수 없기에. 데뷔 인원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지만, 화제성 가진 두 사람을 포기한다는 건 성공 가능성을 낮추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태하야 이제 막 이름이 나오는 상황이니까 제외할 수 있어. 본인이 거절하면 되니까.”

성공 가능성을 위해 태하를 데려오려 한 것이지, 태하는 한별의 상황과는 달랐다.

게다가 태하의 전 소속사와 현 StarV의 데뷔 조 멤버의 상관관계를 확인한다면 회사 역시 더는 연습생 관련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형. 약, 아직 한참 먹어야 해?”

“어?”

“페로몬 약 말이야.”

“곧 괜찮아질 거야. 스케줄도 많이 줄어서 컨디션도 괜찮고, 페로몬 흘러나오는 것도 조금씩 조절되긴 해. 병원도 두어 번 가면 되고.”

“한 달 정도네. 나 일하는 거, 꼭 3개월 채울 필요는 없겠지?”

마지노선은 이제 한 달. 한별이 성인이 되는 시기였다. 회사에서 태하를 캐스팅하며 제시했던 사항 역시 내년 상반기 데뷔였다.

아마 그 이상 늦어지면 회사에서 먼저 데뷔 조 합류를 포기할 것이다. 대부분 회사가 1~2년 이상의 차이를 두고 후배 그룹을 데뷔시키니, 이 이상 늦어지면 데뷔는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만다.

계약직 스태프 활동이야 (아직 원서 접수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대학에 합격했다는 이유를 들어 연장하지만 않으면 되었다.

“……한별아. 그건 대학에 합격할 수 있어야 쓸 수 있는 이유고.”

“입 다물어…….”

내가 누구 때문에 컨디션이 아작 났던 건지 몰라서 그래? 한별의 눈빛이 유성에게 싸늘하게 꽂혔다.

“괜찮아. 그 사람들, 너 그 조에 못 넣어.”

“왜?”

“걔네, 다 알파거든.”

“……엥?”

한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 *

한별의 형질은 회사에선 알지 못했고, 채널(Cha.N)의 멤버들 정도만 알았다.

알고 싶어서 안 건 아니고, 유성이 자신의 형질을 밝히지 않기 위해 한별의 핑계를 대는 바람에 강제로 알려진 것이지만, 본인이 직접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멤버들 역시 굳이 다른 사람에게 한별이 오메가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형질로 차별하는 건 아직도 옛 생각에 빠진 어르신들이나 하는 행동이지만, 그 영향이 남아 있긴 해서 형질을 말하지 않은 상대의 형질을 마음대로 알리는 것은 문제가 되었다.

“알파 형질…… 아이돌?”

“응.”

“그거 너무 옛날, 그…… 20년 전 아이돌 컨셉 아냐?”

“그렇지.”

“통할까?”

복고풍인가 보지. 유성의 대답에 한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초에 성공하기 힘든 조합이었다. 예전처럼 알파 우월 사상이 있던 시기면 모를까, 지금처럼 알파고 오메가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요즘은 형질보단 성별에 구애 받았다.

솔직히 잘생기면 오빤데 오메가고 알파고 뭔 상관이야?

팬들은 특히나 그랬다. 오메가라고 해도 외형이나 키, 외모 등은 상대적으로 형질 유전자보다 성별 유전자에 영향을 더 크게 받기 때문이다.

물론 알파는 이러하고 오메가는 저러하다 하는 편견은 있지만, 그마저도 연예계에선 많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솔직히 한별만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날카롭게 생긴 유성의 옆에 있기에 순하고 여려 보인 것뿐이지, 혼자 있을 땐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메가의 여린 선보다는 잘생겼다는 이야기가 곧잘 나오는 편이었다.

“솔직히 우리 형만 하더라도 딱 보이잖아. 분위기가 알파네 뭐네 그래도 사람들이 그게 옛날 이미지 때문에 쓰는 이야기지…….”

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사람들이 생각하던 알파의 이미지라면 눈앞의 태하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커다란 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선이나 체격, 등등…….

“하긴, 그 채널 리더 같은 경우는 알파인데도 선이 곱지?”

“그렇지.”

자신도 모르게 태하의 모습을 확인하던 한별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키도 단영이 형보다 윤수 형이 더 크고, 윤수 형이 더 사납게 생겼지.”

곰처럼 생기긴 했지만, 말수도 적은 걸 보면 성격은 푸근한 곰이 맞았다.

프로그램에 나오던 당시부터 눈에 띄었던 이들이 형과 같이 데뷔했을 때 얼마나 뿌듯하던지. 한별은 잠시 아련하게 과거를 되짚었다.

그런데, 후배로 뭐?

소속사에서 나오는 그룹?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별도 형이 나오던 시즌 외 다른 시즌은 누가 데뷔했다더라는 기사만 확인했다.

하지만, 한별은 자신의 생각이 팬들의 생각과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같은 프로그램 타 시즌 출신도 소속사 후배보단 라이벌로 인식하는 것이 채널(Cha.N)의 팬들이니까.

“후배는 무슨…….”

채널(Cha.N)에 오메가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알파 아이돌 좋아하는 팬들을 모으고 싶은가 본데, 그럼 타깃이 또 다르다.

당시 오메가 아이돌들의 논란이 컸던 탓에 오메가만 제외했을 뿐이지, 실력이 가장 좋았던 이들만 살아남은 것이다.

베타가 적게 살아남아 알파 판이라 불렸지만, 솔직히 편집 방향이 알파 출연진한테 온갖 서사와 스포트라이트가 갔다.

“왜 그렇게 프로그램을 알파 판으로 만드나 했더니, 회사 취향이었네.”

“하하…….”

지금 한별은 태하와 학원 작업실에 있었다. 일부러 주변에도 오해가 쌓이게 둘 필요가 있었기에, 만든 곡에 가이드 녹음을 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근데, 태하야. 이렇게 같이 작업하는 것도 연습생 이야기가 퍼지는 데에 도움이 될까?”

“다른 소속사였으면 그다지 안 흔들렸을 텐데, 상대가 StarV잖아.”

“케어 개 같고 취향 올드 한 거?”

“으응…….”

심지어 회사에서 밀어주는 콘셉트라든가 수록곡이 심하게 촌스러워 팬들이 다 알아챌 정도였다. 오죽하면 작·편곡에 멤버 이름이 적히지 않은 곡은 팬들이 채 듣기도 전에 거른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아무튼, 그 탓에 공식적으론 자체 프로듀싱을 한다는 이유로 멤버가 무조건 껴 있는 소속사이니, 그 역할을 한별이 한다는 식으로 언플 하기 딱 좋았다.

그나저나, 사람이 없어도 대놓고 까긴 좀 그런가 보다. 한별은 기나긴 연습생 생활의 버릇이 든 태하가 안타까웠다. 난 너한텐 녹음 같은 거 안 하는데…….

“근데, 태하야. 너 전 소속사에 있을 때 그 사람들 알파인 거 몰랐어?”

“전혀……. 사실, 그 소속사는 형질 같은 건 신경 안 쓰는 곳이었거든.”

대부분의 연예 기획사들이 그렇듯, 연습생들의 성별만 확인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별은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인구 대부분이 베타이기에 그 사이에서 또 나눠서 데뷔시키려면 알파나 오메가는 팀을 꾸리기 힘들었다. 형질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건 차별이나 다름없는 일이니, 더욱 지양되는 사항이기도 했다.

물론, 그 극악의 인구수를 뚫고 서로 다른 형질들이 데뷔해 화제가 되기도, 반대로 시끌시끌해지는 그룹도 있었다.

또한 다른 형질의 멤버가 데뷔한 경우, 돈이 더 들더라도 숙소를 나누거나 집이 서울에 있는 경우엔 아예 본가에서 스케줄 장소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건 어디서 들었어?”

“연습생들 사이에선 꽤 많이 도는 이야기야. 트레이너나 타 회사에서 온 사람들이 전해 주기도 하고. 데뷔한 지 얼마 안 됐고, 멤버들 형질이 뭔지 딱히 말 안 한 그룹인데 숙소 나눠 쓰면 확률 대충 50퍼센트라고 들었어.”

“하긴, 페로몬은 서로한테 꽤 영향을 주니까. 히트나 러트 아니어도 같이 지내다가 비슷한 시기에 터지면 일 나는 거지.”

“응, 아무래도…….”

“근데, 그건 그렇다 쳐도 알파만 모으는 게 가능한가? 오메가 모으는 것보다야 조금 더 가능성 있다지만.”

“그게, 실제론 모든 멤버가 알파가 아닐 수도 있어.”

“아, 그거 가능성도 있다. 인상이 날카롭거나 선이 짙으면 알파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유성이 오메가임을 밝혔으면 처음부터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회사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높으신 분 중에 알파 우월 사상을 가진 누군가가 있으리라는 건 슬슬 짐작이 됐다.

물론, 데뷔 안 할 거니까 상관은 없다. 한별이 어떤 형질을 가졌는지 모르기에 캐스팅했을 것이라는 유성의 짐작도 한별로선 되레 기껍기만 했다.

“형이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게 애초에 힌트였네. 나, 연기 못 한다고 안 알려 준다더니.”

한별의 한탄에 태하는 차마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한별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자신이 가이드 한 파일들을 조금씩 수정하는 모습에 옆에 앉아 있던 태하가 눈을 끔뻑였다.

“근데, 한별아. 작업하는 거 되게 익숙해 보인다.”

“어려서부터 했으니까. 아무렴 벌써 7년째인데.”

“작·편곡만 한 거 아니었어? 이거…… 녹음한 보컬 톤 조정하는 것도 되게 익숙한 것 같아.”

“내가 좀 빨리 늘긴 했어.”

칭찬은 잘 받아먹는 편이 좋다. 한별이 웃자, 태하 역시 웃음을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