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생각해 보면 한별은 당연히 작곡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대부분 아이가 꿈이 생기면 내 장래 희망은 이것이고, 유명해질 것이다, 같은 두루뭉술한 답을 내놓는 것에 비해 한별의 꿈은 굉장히 확고했다.
컴퓨터가 필요하고, 미디 프로그램이 있으면 더 좋다. 음향 장비까진 아직 무리일 테니 그건 나중에 학원을 가면 좋겠지? 하는 식이었다.
예체능으로 빠지려는 한별을 이해하지 못한 건 부모님이었다. 대부분의 일은 아들들이 알아서 하도록 모든 의사를 존중해 주시는 편이지만, 예체능은 훗날 생활이 힘들 것 같다는 판단하에 강하게 반대하신 것이다.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도와준 것은 유성이었다. 학교에서 했던 동요 만들기 수업에서 한별이 만든 노래를 학생들이 계속 부르고 다녔다는 이유를 들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생각보다 순탄했다. 지금의 실력까지 오르는 데 막힘이 없었다. 마치, 당연히 해내야 하는 실력을 흡수하듯이.
“나, 생각보다 천재였나 봐.”
“그러게.”
태하가 웃으며 답하자, 한별은 오히려 민망해졌다.
보통 사람이 자아도취에 빠지면 태클을 거는 게 맞지 않냐고. 무얼 해도 고개를 끄덕이는 다정한 모습에 한별은 포기한 듯 고개를 떨궜다.
“말한 내가 더 민망하다.”
“왜? 잘하는 거 맞는데. 나 있었던 소속사에서 녹음할 때 봤던 것보다 빠르기도 하고.”
“……그, 그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한별에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기뻤다. 꼭 어른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 가끔은 친구의 인정도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법이었다.
“그럼, 이거 수정만 하면 할 일은 끝?”
“응. 이걸 넣으면 돼.”
일순 한별은 희망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가는 게 꼭 꿈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반대로 가지 않는다고 꿈과 멀어진다는 이유가 되지도 않았다.
대학을 가지 않고도 작곡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많았고, 한별은 둘 다 잡아 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진 것뿐이다.
“태하, 너는 원서 몇 개 쓸 거야?”
파일을 변환하는 동안 할 것이 없어진 한별이 의자에 기대듯 누워 태하에게 물었다. 수능도 잘 봤으니 대학을 가겠지? 하는 생각에 건넨 질문이었다.
정작 태하는 생각해 보지 않은 듯 눈을 굴리다, 되레 한별에게 물었다.
“한별이 너는?”
“나? 딱 세 군데만 쓸 거야. 떨어지면 그냥 대학 안 갈 거고.”
지금 한 작업도 소문 때문에 태하와 함께 작업실에 들어온 것이지만, 작업은 포트폴리오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아는 사람이 불러 줬으면 해서 유성에게 부탁할까 했지만, 아이돌을 아마추어의 곡에 가이드 보컬로 쓸 순 없으니 그 생각은 일찍이 접었다.
“이거, 회사에 넣어 본다는 곡이었지?”
“응.”
아직 아무런 이력도 없는 햇병아리의 곡을 누가 사 주겠냐만, 그래도 도전은 해 봐야 했다.
곡을 모집하는 소속사는 많았고, 한별은 작은 곳이어도 차근차근 발을 내디뎌 볼 생각이었다.
“계약 끝난 다음에 해야 하긴 해.”
“그렇지. 회사에서 절대 안 놓치려고 할 테니까.”
“나중에 내 곡도 불러 줄 거야?”
“……어?”
“너도 데뷔해야지. 내가 뭐 되는 사람은 아니지만, 태하 넌 분명 성공할 수 있어.”
“네 감이야?”
“응. 내 감이야. 믿어도 돼.”
실패한 삶이라기엔 아직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다. 원치 않는 이유로 방출이 되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좌절됐다고 해도 멈출 필요는 없었다.
한별이 보는 태하는 충분히 날아오르고도 남으니, 자신감이 꺾이지 않았으면 했다.
“더 좋은 회사로 가자.”
“네 주변에 아이돌 비율이 너무 높아지는 거 아냐?”
“솔직히 그럼 나야 감사하지. 수록곡에라도 내 노래 하나쯤 넣어 주지 않을까?”
“자리 잡기 전까진 A&R에 관여하기 힘들어.”
“그만큼 성공하면 되지.”
“그렇지만 한별아, 내가 너에게 먼저 곡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거 아냐?”
둘 오간 대화는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장난기 사이에도 진심이 섞였다. 서로 잘될 것이라는 희망을 말에 섞어, 서로가 가라앉지 않도록 서로를 붙잡아 주는 것이다.
0에서 시작한 파일 변환 퍼센티지가 70을 넘어 어느새 80에 도달했다.
“변환만 끝나면 나가…….”
지잉―.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던 한별이 핸드폰의 진동에 다시금 손을 내렸다.
태하는 거의 무음 모드로 해 두니 자신의 핸드폰일 것이다. 회사겠지. 이젠 금세 예상이 되는 루틴이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집착하면 가려다가도 무서워서 그만두지 않나.
한별의 지친 표정을 읽은 태하가 곤란한 듯 한별과 핸드폰을 확인했다.
“한 달, 버틸 수 있겠지?”
“정 안 되면 미리 거절해도 될 거야.”
회사 데뷔 조의 형질 관련한 이야기는 한별이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오메가라 무리일 것 같다는 패는 사용할 수 없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이유로 소속사와 숙소를 드나들 수 있게 되었지만, 유성의 몸만 나으면 더는 돌아다니지 않을 예정이었다.
“형, 병원 계속 다니고 계시지?”
“응.”
한별을 바라보던 태하가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가까이 닿았다. 목에 살짝 닿았던 숨결이 다시 떨어졌다.
“혹시, 많이 나?”
잠시 조용하던 한별이 심각한 표정으로 태하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보통 못 알아챌 거야. 그래도 약간은 남아 있어.”
“나는?”
“너는 괜찮아. 네 건 거의 안 나.”
태하는 한별의 옷이나 체향에 살짝 섞인 유성의 페로몬 향을 단박에 알아챘다. 한별의 페로몬은 잘 조절이 되는 덕에 다행이었다.
유성의 페로몬만 남아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괜히 둘 다 났다가 누군가 알아채면 곤란해지니까. 태하만큼 페로몬에 예민한 사람은 본 적 없으니 가능성은 적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페로몬 향수 같은 거라도 좀 사야 하나?”
“그럼 더 문제 아닐까?”
“하긴, 다 섞이겠지.”
태하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 담겼다. 물론, 건강상으론 유성의 걱정이지만 일에 휘말리는 한별이 가장 걱정되었다.
“채널 멤버분들은 아직 모르지?”
“그렇지. 왜 이렇게까지 숨기나 싶은데, 생각해 보니까 회사 때문에도 숨겨야 할 상황이긴 했겠어. 이 정도로 알파를 밀어주는 회사면.”
“그렇지…….”
이래서 형이 오메가인 걸 밝히지 않으려는 거였나?
한별은 고민에 빠졌다.
“……모르겠다. 회사가 그냥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바로 빠져나오는 비속어에 태하는 웃음을 지었다. 태하가 연습생이 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줄였던 비속어였고, 형이 아이돌이 되면서 단어를 애써 고르던 한별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꼬이니, 본 성격이 자꾸 튀어나왔다. 날 제발 가만히 뒀음 좋겠는데.
머리칼을 헤집던 한별이 고개를 들자, 태하가 손을 들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한별은 지금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아, 진짜 모르겠다. 나, 기획사에 메일 넣는 것만 같이 봐줄래?”
“물론이지.”
태하가 기쁘게 웃었다. 한별 역시 가볍게 웃으며 방금 자신의 핸드폰에 전송된 커피 쿠폰을 모른 척하기로 했다.
* * *
한별은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연기를 못 한댔지 표정이 다양하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국어책과 표정 연기 실패자는 말을 올리지 않고, 평소대로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 달 동안 정말 열심히 버텼다.
태하에게 한차례 들어 결성해 둔 데뷔 조 안엔 프로듀싱이 가능한 멤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한별은, 일부러 자신이 작곡한 곡을 매니저들이 있는 자리에서 채널(Cha.N) 멤버들에게 들려줬다.
‘회사 차원에서도 프로듀싱 멤버 못 놓치지.’
당연히 회사에선 눈에 불을 켰지만, 한별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회사와 선을 확실하게 그었다. 유성의 상태가 거의 호전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아예 안 와도 된대?”
“그건 아니고…….”
“에이, 씨―.”
“조심은 하랬어. 완치는 아니지만, 이제 조절은 잘되니까 괜찮아.”
멤버들을 속이는 것도 슬슬 한계였다. 유성의 페로몬 탓에 어긋난 히트 사이클이 갑자기 다시 터질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이전처럼 페로몬을 묻힐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별은 이미 수능이 끝나고도 한 달이 지났다. 그러니 이젠 몸이 나을 법도 한데 계속 안 좋다고 하니, 같이 병원을 가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까지 나온 것이다.
단영이 심각한 표정으로 한별에게 다른 병원을 가 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던 날. 결국 한별은 유성에게 분노를 터트리고 말았다.
‘내가 얼마나 더 환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데! 난 멀쩡하다고! 엊그제는 윤수 형이 한약 찾는 것 같더라!’
‘내, 내가 미안하다―!’
‘오면 네가 다 먹어, 최유성!’
한별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유성의 멱살을 다시 잡았다.
현재 채널(Cha.N) 계약 만료 건을 놓고 회사와의 관계가 썩 좋지 않은데, 그런 상황에 한별마저 회사와 엮여 버렸기에 유성은 더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한별로서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한별아. 오늘 우리끼리 숙소에서 이것저것 시켜서 저녁 먹기로 했거든. 같이 먹지 않을래?
“예?”
저 출근 날 아닌데요. 아직 회사에 다니지도 않는 저를 휴일에 출근시키는 건가요.
물론, 거절은 거절됐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와 주셔야 한다는 유성의 간곡한 사정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