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31화 (31/78)

31화

최근 들어 단영은 한별 본인이 눈치를 챌 정도로 더욱 공을 들였다. 마치, 전에 자신을 아이돌로 만들겠다며 눈을 빛내던 모습과 흡사해 한별은 열심히 거리를 두었다.

몸이 회복되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는 지론인지, 한별은 머쓱하게 앉아 있는 자신의 앞접시에 먹을 것을 계속 올리는 윤수도 부담스러웠다.

“저, 이거 다 못 먹는데요.”

“괜찮아, 남겨도 돼.”

아니, 처음부터 조금만 두면 되지 않냐고.

한별이 숨을 삼켰다. 그에게서 자꾸만 더 얹어 주는 시골의 인심이 느껴진다.

“미안해서 그래. 유성이가 도와달라고 했다며.”

갑작스러운 세현의 말에 한별은 식은땀을 흘렸다. ……뭐를. 뭐를 도와줬는데. 벌써 들켰냐? 오메가인 거? 숨기는 거? 뭐, 뭐. 뭔데.

세현은 오메가의 ‘오’ 자도 떠내지 않았지만, 괜히 찔리는 건 연기를 잘하지 못하는 한별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은 그냥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괜찮지만, 속여야 하는 사람을 앞에 뒀다는 생각이 드니 자신도 모르게 과하게 반응했다.

여태까지 그래 왔듯 한별의 상태를 가려 주는 건 유성이었다.

“한별이가 지금 엄청 고생이지. 회사 제안 거절하느라. 엊그제도 내 동생 핸드폰에 기프티콘 보냈대.”

“어휴…….”

“돌겠다, 진짜. 도대체 뭘 또 터뜨릴지 모르니 대비도 못 하겠고. 한별아, 진짜 네 덕분에 시간 많이 벌었어.”

“아니에요.”

고마우면 내가 작곡가로 데뷔할 때까지 1군 아이돌 이름값을 유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기왕이면, 내 곡 써 주고.

연기는 하지 않아도 속마음은 내놓지 않았다. 연기는 못 해도 상대를 앞에 두고 하지 않아야 할 말은 누를 줄 알았다.

“한별인 작곡해야 하는데 그치.”

단영이 눈을 빛냈다.

‘아, 그래 저거.’

진짜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노리는 눈빛이다.

한별은 슬쩍 단영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식사가 끝나면 꼭 소화제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접시에 올라온 음식들을 입에 넣었다.

“한별아, 궁금한 게 있는데.”

제발 저를 향한 관심은 좀 접어 주지 않으실래요?

한별이 컵을 가져와 물을 들이켜자, 무언가 먹는 중엔 묻지 않으려는 듯 단영은 멀뚱히 한별을 바라보았다.

“그, 같이 화제 됐던 그 친구 말이야.”

과거형이다. 한별은 촬영 스태프 계약 건도 있고, 회사에서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여 아직도 진행형이나 태하는 조금 더 일찍 회사의 제안에 선을 그었다.

처음, 회사는 태하에게도 똑같이 빠른 데뷔를 약속할 수 있다며 제안했지만, 나중에 태하가 현 데뷔 조들과 같은 소속사 출신, 그것도 같은 멤버가 될 뻔했다는 것을 확인하곤 캐스팅에 시들해진 것이다.

심지어 최근, 데뷔 조 사이에서도 이탈이 일어났다. 한별뿐만 아니라 태하의 합류 이야기가 나오자 버티지 못한 연습생 하나가 자진해서 회사를 나간 것이다. 태하에게 가장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던 그 연습생이었다.

물론, 태하가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고민하는 듯 행동한 것은 며칠 되지 않았고, 오히려 행동한 것은 한별이었다.

더욱 태하와 같이 다니며 슬쩍 제 사진이 찍힐 때 같이 찍히도록 만들기도 하고, 같이 이어폰을 나눠 낀 사진이 도는 것에도 대응하지 않고 놔뒀다.

그러다 보니 소속사에서도 태하의 캐스팅을 슬슬 포기하려 할 때였는데, 때마침 데뷔 조 멤버가 나간 것이다.

야심 차게 6인조로 기획했지만 7인조, 8인조까지 수정하려 했다가 결국 5인조가 된 상황. 이에 회사에선 더욱 한별을 원하게 됐다.

회사에선 기획하고 있던 세계관을 바꾸고, 홍보 문구 등을 바꿔야 하는 바쁜 상황이니 채널(Cha.N)에겐 득이 됐다.

“네.”

이제 태하는 자신이 가고 싶은 회사를 찾기만 하면 된다. 기왕이면, 진짜 내실 있는 곳으로.

“혹시, 아직 아이돌 하고 싶대?”

여전히 프로듀싱의 꿈 포기 안 했구나, 이 사람. 자신을 데려올 수 없으니, 가능성 있는 태하를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한별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레이블 직원으로 들어올 사람들은 멤버들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꾸려졌을 것이다.

기획이고 프로젝트고, 오디션 프로그램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자신들이 해야 했으니 팀 과제엔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분명 잘하는 사람들만 데리고 빠져나가려는 거겠지.

회사 내실로만 따져도 모기업의 지원을 받으니 퀄리티 떨어지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런 회사에서 태하가 데뷔를 한다……?’

한별은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전 회사는 한별이 보기에도 너무 작았다.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한 소속사에선 연습생을 많이 뽑을 수도 없었다.

여러 연습생을 두고 실력 경쟁을 통해 데뷔 조를 뽑는 형식인 타 기획사와는 달리, 태하의 지난 소속사는 들어오는 연습생들을 한 팀으로 묶었다.

그러니 태하가 혼자 남는 바람에 데뷔가 무산되었고, 연습생이 남지 않았으니 더 유지할 수가 없어진 것이다.

“좋아. 그럼 그 친구 한번 물어봐도 될까?”

“왜 저한테 허락을…… 저한테 묻지 않으셔도 돼요.”

“……?”

“당연한 거잖아요. 태하의 일인데, 제가 왜…….”

“애인 아니었어?”

“……네?”

“아, 학생한텐 애인이란 말이 좀 그런가? ……사귀는 사이?”

“…….”

절대 아닌데요?!

이젠 온갖 오해를 다 받고 있었다.

* * *

“음……. 오해할 법도 했나?”

혼이 나간 한별이 단영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태하에게 전했다.

그런데 처음엔 웃으며 통화를 받았던 태하의 목소리는 한별이 말이 끝나자 어째서인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한별이 알기로 태하는 그간 연애해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생 땐 어렸고, 한별 역시 친구들과 노는 게 가장 좋으니 친구들과 피시방이나 다녔지, 연애랑은 거리가 멀었다.

연애 감정에 눈을 뜨기 시작할 사춘기 시절의 태하는 이미 소속사 연습생이었다.

데뷔 후 과거사에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선 당연히 연습에 매진해야 했고, 한별 역시 같은 학교였으니 태하가 연애사와 관련된 일은 전혀 없다고 강력히 보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태하의 낮은 목소리에 한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장래 희망이 연예계에 있는 애를 왜 나 따위에 붙여?

한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 괜히 나 때문에 오해 받게 해서.”

―왜?

“뭐가 왜야. 이게 만약에 엉뚱한 사람이랑 엮였으면 너 진짜 큰일 나는 거야.”

―난 아직 아이돌 아닌데……?

“아직은 아니어도 커다란 스캔들 감이야, 태하야.”

―…….

“성공할 사람은 준비부터 해야 한다니까? 특히나 사람들 앞에 서고자 하는 사람은 더 그래.”

이건 한별의 지론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 아직 아이돌 아니야. 데뷔하지도 않았고. 한별이 네가 나한테 미안할 건 없어.

“혹시나 너한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해.”

―괜찮아. 네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 일이 터진다면 그건 내 행실에 문제가 있던 거겠지. 그리고, 내가 아이돌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걸.

“왜 보장이 없어!”

지금껏 내가 본 누구보다 가장 멋있는 사람인데. 한별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다급하게 태하의 말을 정정했다.

무대에 서는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빛을 가졌다. 강할 수도 있고, 남들보다 흐릴 수도 있지만, 저마다가 가진 빛을 사람들을 향해 뿜어내는 사람들만이 무대 위에서 당당할 수 있었다.

“할 수 있어. 태하 너라면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어. 내가 보증해.”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하는 그간 한별이 본 사람 중 누구보다 가장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친구들의 손길에 떠밀려 올라간 작은 강당에서 조심스럽게 불렀던 태하의 노래가 여전히 생생했다.

그땐 레슨을 받은 적도 없고, 사람들을 휘어잡는 표정 연기 같은 것도 배운 적 없었던 태하였다. 하지만 한별의 눈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그 누구보다 밝게 빛났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물론이지.”

―여전히, 믿어? 내가 잘할 거라고?

태하의 물음에 한별은 웃음을 지었다.

“응. 믿어. 분명 멋질 거야.”

너는 성공할 것이다.

그만큼 성공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그래서 누구보다 네게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어 주고 싶어. 그게 여전한 나의 꿈이야, 태하야.

* * *

“아뇨, 괜찮아요. 속이 차서 지금 먹긴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

“그래? 알겠어.”

단영은 머쓱하게 음료수를 건넸던 손을 내렸다. 여전히 저와 약간의 거리감을 두는 한별이었다.

“여전하구나, 한별이는.”

“어떤 게요?”

“아니 그냥…….”

너, 우리 스케줄 따라 움직인 지 벌써 두 달째란다.

소속사의 이해할 수 없는 목적으로 한별이 채널(Cha.N)의 ‘매니저 보조’라는 명목으로 돌아다닌 지 두 달.

어느덧 한별은 스물이 되었고,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덕에 어느덧 마지막 출근 날이 되었다.

처음엔 눈치를 보는 듯 움직이던 한별이었지만.

‘최한별도 특이한 사람이다.’

단영은 연예인이 많은 방송국 복도에서도 시선 하나 돌아가지 않는 한별을 보며 그렇게 정의 내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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