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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32화 (32/78)

32화

그간 유성만큼 특이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돌이라면 응당 범인과는 다른 특이점이 있기 마련이라지만, 유성은 그 정도가 심했다.

같이 생활하는 지금도 느끼고 있지만, [Pick My Dol!] 프로그램을 찍을 때도 함께하는 모든 출연자가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전부 기억해 주고, 행동으로 보여 주는 유성을 보며 ‘본투비 아이돌이다!’라고 좋아하지만, 주변인들이 보는 유성은 원래 아이돌에 맞는 사람이 아니다.

유성은 본투비 아이돌이라기보단 사람들을 모으고, 의견을 정리하고, 나올 패턴과 변수를 분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인간 맞아?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기억력이 좋고, 머리가 비상했다. 몇 번이나 논란이 될지도 모르는 일들을 사전에 막아 냈고, 녹음을 생활화할 정도로 혹시 모를 사건에 대비하는 역량도 뛰어났다.

리더인 자신이 한 것은 그저 멤버들을 챙기고, 연습을 주도한 것뿐이었다. 그것만 했음에도 자신이 생각한 캐릭터 분석을 끝낸 것인지, 유성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할 말들을 전부 골라냈다.

채널(Cha.N) 내 가장 장난기가 있지만 누구보다 무서운 호랑이 리더. 프로그램이 끝난 후 생겨났던 ‘프로듀서 되고 싶은 또라이 윤단영’의 이미지는 어느새 ‘누구보다 아이돌에 진심인 채널(Cha.N)의 리더 윤단영’이 되어 있었다.

‘그런 리더 이미지가 꽤 괜찮으니까. 멋있잖아?’

프로그램 중엔 연습생 기간 없지만, 끝도 없이 노력해 프로그램 1위까지 거머쥔 이미지였던 사람이 지금은 천재 아이돌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하지만, 유성의 행동은 명확했다. 어디선가 분석해 온 이야기와 자료, 아이돌들의 행동 패턴과 팬들의 댓글들을 분석하고 찾아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뭔가 전부 익숙해 보였다. 매니저 혹은 회사의 직원들이 해당 아티스트의 반응을 조사하는 루트와 정확히 일치했다.

‘옛날에 한별이가 아이돌 팬 활동을 했거든.’

그것만으론 네 행동이 전부 설명되진 않는데? 하는 말이 목 아래까지 나왔지만, 단영은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동생이 아이돌 팬 활동을 해서 형이 팬 반응 잘 찾는 거랑, 네가 그런 이미지까지 기획하는 거랑은 결이 다르잖아.

하지만 그 행동에 토를 달긴 어려웠다. 유성의 의견들로 인해 프로그램 화제성을 넘어서 생각보다 탄탄한 루트로 1군 입성을 했고, 작년 말의 논란까지 생각보다 편안하게 잠재울 수 있었으니까.

‘……논란이, 되레 홍보가 돼 버렸네.’

그 홍보를 토대로 컴백한 1월. 신곡은 당당히 차트 인에 성공했다. 단영은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낸 유성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간혹 오싹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그 최유성의 동생’을 한번 보고 싶었다. 종종 유성이 얘기하던 저와 달리 유순한 생김새라든가, 작아서 귀엽다든가 하는 표현이 멤버들한텐 의문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너한테 있어서 귀엽다는 단어는 귀엽고, 작은 소동물이 눈앞에 있어도 카메라가 앞에 있을 때, 혹은 팬들이 있을 때나 쓰는 단어 아니었나?

그 후, 멤버들 사이에서 마치 환상의 동물 같던 ‘그 최유성의 동생’을 보았을 때, 모두의 기대는 와장창 박살이 났다.

‘귀엽다며?’

‘귀엽잖아.’

‘……?’

작고 귀엽다고 하기에 170센티미터 초반인 건가 했는데, 2~3센티미터만 더 크면 180센티미터는 될 것 같은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한별의 모습에 특히나 채널(Cha.N) 멤버 중 유일하게 170대 중반이던 예찬이 침몰했다.

하도 귀엽다고 하길래 막내 특유의 애교가 있는 말투를 상상했던 세현 역시, 유성보다 훨씬 표정이 적은 한별의 모습에 동공이 흔들렸다.

유일하게 둘째, 윤수만이 귀엽긴 하다며 조용하게 끄덕였는데 그건 윤수의 키가 186센티미터의 장신이었으니 가능한 판단이었다.

단영 역시 유성과는 다른 동그란 외모나 상대적으로 유순해 보이는 눈초리, 전체적으로 색이 짙은 형과는 다르게 색소가 옅은 한별의 모습에 처음엔 부드럽고 섬세한 성격일 것으로 생각했다.

‘형, 그건 형이 윤수 형 다음으로 키가 커서 그렇게 보는 거겠지.’

‘한별이 눈빛은 보고 말하는 거지? 최유성만큼 독기 서린 거 못 봤어?’

하지만 세현은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그리고 세현의 평가는 정확했다. 단영에게도 한별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깨진 것은 한별이 프로그램을 향해 날리는 신랄한 평가를 들었을 때였다.

숙소에 들어올 수 있게 이야기됐다고 해도, 자신의 주 생활 공간이 아니니 멤버들과 굳이 사적인 말을 섞지도 않았고, 볼일을 마치면 미련 없이 나가던 한별을 슬쩍 붙잡은 것은 자신들이었다.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평가해 달라는 단영의 말에 잠시 묘한 표정을 짓던 한별은, 얼마 후 거리낌 없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끝에 나오겠죠. 이번 화에 나온다고 했으면 당연히요.’

‘아까 저 출연자 목에 분명히 파란색 물이 들어 있었어요. 근데 없잖아요. 편집하면서 시간 순서를 입맛대로 바꿨다는 뜻이죠, 뭐.’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는 건 아니에요. 저 프로그램, 편집으로 뒤집어 까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형들 때도 몇 번 봤어요. 저런 어그로, 분명 지난 시즌에도 몇 번 나왔을 거고요.’

기억력이랑 분석력은 집안 유전인 건가? 한별이 윤수가 쥐여 준 과자를 손에 들고 툭툭 내뱉은 말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단영은 땀을 삐질 흘렀다. 야, 최유성. 너 동생의 분석력에 감격한 표정 짓지 마라, 이 팔불출아.

하지만 옛날에 했다던 아이돌 팬 활동에 편집 순서를 알아채는 능력이나, 제대로 본 적 없는 프로그램의 최근 회차를 보고 데뷔 예상 멤버를 알아채거나 하는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혹시, 우리 이전에 나온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이렇게 봤어?’

‘아뇨? 그런 적 없는데요. 아예 안 봤어요.’

그러나 감만은 뛰어났다. 단영은 한별이 숙소에 와서 유성에게 개인 과외를 받는 동안, 간혹 간식을 시켜 주며 단편적인 것들을 물었다.

유성이 데뷔한 이후 인터넷과 거리를 뒀다지만, 너튜브에 올라오는 공식 영상은 봤다는 말에 혹시나 하여 물은 것이다.

‘그럼, 다음 세계관에선 주인공이 세현이 형이 되겠네요.’

‘그래? 우리 아직 뮤비도 안 찍었는데, 어떻게 나올 것 같아?’

‘예찬이 형 후속곡 뮤비에서 반지를 들어서 가까이 가져오는 걸로 끝났잖아요. 세계관을 관통하는 대적자는 꾸준히 유성이 형이었고, 세현이 형이랑 예찬이 형이 쌍둥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나오고 있고요.’

‘……어, 어? 그렇지?’

‘그 컨셉이 계속되면서 두 사람은 계속 동음이의어를 사용해서 말장난처럼 이어졌거든요. 같은 단어인데 한자 뜻으로 차이 두기도 하고, 한글이랑 외국어랑 발음이 같은데 바꾸기도 하고요. 근데, 스토리상 데뷔 뮤비부터 전화를 걸어서 사건을 막으려던 건 세현이 형이잖아요.’

‘응.’

‘반지는 Ring이고, 동사로 사용하면 전화하다, 니까요. 전화를 받는 걸로 시작하겠죠. 본격적으로 개입해서 사건을 막는 듯한 내용으로요. 저번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곡이었으니까, 이번엔 딥 한 곡으로 가야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을 거고. 컨셉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얘 진짜 대박이다.

준비 중인 곡의 분위기와 다음 뮤비로 예정된 스토리까지 일치하는 한별의 예상에 단영은 떡하니 입을 벌렸다.

이때, 단영은 운명을 느꼈다. 이런 애가 아이돌을 하면 팬들이랑 서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해석도 해 줄 수 있고, 일석이조 아닌가!

사실 그간 채널(Cha.N)의 세계관 스토리에 신이 나서 개입한 것은 단영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단영이 생각한 것만큼 세계관 구축에 진심이 아니었고, 이것은 현실감 넘치는 마인드를 가진 유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지극히 현실적이어도 모든 것을 계산하고 분석해 아이돌의 모습이 된 유성과는 달리, 한별에겐 감이라는 게 있었다.

‘얘, 아이돌 만들어서 옆에 두고 있고 싶다.’

하지만 단영은 이후로 한별의 실력을 보며 그를 아이돌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만들 레이블에 한별의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바로 알아차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그렇기에 찰나라지만, 한별이 자신들과 같이 일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만약 설립한 레이블에 한별이 들어오게 되면 지금처럼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의견을 공유하며 함께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확장해야 했으니까. 친해지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리고 임시 매니저, 혹은 촬영 스태프 보조라는 핑계를 댔지만, 회사에선 한별을 어떻게든 다음 데뷔 조에 넣고 싶어 했다.

한별은 소속사 측에 ‘같이 다녀 보고,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계약하지 않아도 좋다’는 각서까지 얻어 내곤 정말 편하게 멤버들과 함께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단영은 유성이 한별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잘됐다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황은 완벽하게 반대였다.

‘몸, 안 좋다며……?’

가만히 보니 유성을 챙기는 것은 한별이었고, 오히려 잔소리를 듣는 건 유성이 아닌가.

한별이 병원에 가야 한다며 간혹 일찍 퇴근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유성 역시 함께 갔다. 그마저도 완치가 되었다며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리 동생이 걱정되어도 그렇지. 이제 성인이 된 동생을 그렇게까지 챙겨?

카메라 앞이 아니라면 적당한 친밀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유성이 한별만 나타났다 하면 형의 얼굴을 하고, 한별에게 들러붙는 모습을 보며 단영은 심각해졌다.

‘돌아다니는 연예인한테 관심 없고, 멤버들한테도 벽을 세우는 편이고…… 그 친한 친구도, 애인이 아니라고 했고.’

제발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해 줘.

단영은 뒤에서 한별을 껴안고 웃으며 이야기는 유성의 모습이나, 이따금 느껴지는, 한별의 것으로 추정되는 옅지만 상큼한 페로몬을 최대한 부정하고 싶어졌다.

‘설마, 형한테……?’

그렇게 단영의 오해는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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