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36화 (36/78)

36화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태하가 말꼬리를 죽 늘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한별이 어떤 이유라도 다 듣겠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채널(Cha.N)이 만든다는 그 레이블, 정말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응?”

태하의 눈에 평소와 다른 서늘함이 감돌았다가, 한별과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양 사라졌다. 그 자리엔 평소처럼 다정함만이 남았다.

“성공할 확률이 크다는 건 알아. 유성이 형도 있으니, 가능성 있겠지.”

한별은 의외의 이야기에 눈을 끔뻑였다.

옆자리에 앉은 태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난 솔직히, 유성이 형이 왜 사업이나 검사를 안 하고 아이돌을 하는지 종종 이해가 안 되기는 해.”

한별도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그건 태하도 마찬가지였지만, 태하보다 더 심한 것이 유성이었다.

사교성도 좋고, 필요할 땐 장난도 잘 치며 웃음기 많은 유성이지만, 사실 그래야 할 때가 아니고서는 항시 냉철함을 유지했다.

평소엔 한별에게도 웃음 가득히 대하는 편이지만, 수능 준비할 땐 칼같이 시간을 재지 않았나.

당시 유성은 지금 잠깐 고생하면 미래에 행복한 결과로 돌아올 테니 감수하라고 했다. 눈물이 나긴 했지만 맞는 말이었기에 당시 한별은 강행군을 계속했다.

“근데, 왜 마음에 안 들어?”

태하가 판단한 것처럼 유성은 수완과 셈에 밝으니, 채널이 만들 레이블에선 어떠한 문제가 생긴들 원활하게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다.

사실 이번 논란들도 채널(Cha.N)의 멤버들, 그리고 그들과 딱 붙어 일하는 사람들이 합작해서 막아 낸 것이지, 소속사에 뼈를 묻은 이들은 오히려 방관하기만 했다.

특히나 채널(Cha.N)은 본인들이 소속사에 당했던 것을 역이용한 전적도 있으니, 충분히 후배 그룹에게도 잘해 줄 텐데.

“음…… 잘해 줄 거라는 건 인정하는데, 나까지 들어가면 한별이 네가 정말 묶일 것 같거든.”

“어?”

“분명해. 내가 보기엔 한별이 너도 되게 잘하잖아.”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의문 가득한 한별의 눈빛을 알아챈 태하가 웃음을 지으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야? 내가 묶이다니?”

“그 말대로야. 레이블에 유성이 형만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별이 너, 말은 형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을 거라고 하지만 사실 엄청 노력하잖아.”

다시 자리에 앉은 태하가 다시 집게를 들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음식이 소화되기라도 한 건지, 아깐 못 먹을 것 같았던 음식이 하나둘 입안에 들어갔다.

맛있게 구워진 고기들을 집게로 집은 태하가 한별의 접시 위에 올렸다.

“야아―.”

“얼른 먹어. 먹으면서 들어.”

태하는 젓가락으로 고기 하나를 집어 한별의 입에 대 주었다. 뚱해진 얼굴로 입을 벌려 고기를 우물거리는 한별을 뿌듯하게 보던 태하가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한별이 너, 굉장히 잘해. 노래 엄청 좋아. 이번에 내가 가이드 한 것도 내가 잘해서 녹음이 잘됐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아냐. 애초에 노래가 좋지 않으면 녹음본이 잘 나올 수가 없어.”

“아니, 그―.”

“근데 만약에 그 레이블에 나까지 들어가면 넌 어떡할 것 같아? 형한테도 노래를 줄 수 있고, 채널 멤버들이 개인 활동을 하게 될 수도 있고, 나도 있어.”

“…….”

새로 설립될 레이블에 주기 위한 곡을 계속 만들게 될 것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한 소속사를 위한, 전속이나 다름없는 활동을 하게 될 테지.

“한별이 넌 주변 사람들한테 되게 무른 편이잖아.”

한별은 자신의 성공도 좋지만, 그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웃는 모습이 좋았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무대 위에서 미소를 짓던 태하의 모습이 좋아서 노래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그때처럼, 아이돌이 되겠다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반짝이던 형의 모습이 좋아서 조금 더 노력하게 된 그때처럼. 한별은 줄곧 주변의 영향을 받아 왔다.

“내가 그 레이블에 들어가서 너까지 발을 묶이게 된다면…… 너는 네가 작곡가로서 만들고 싶은 곡, 대중이 좋아할 곡, 한 앨범의 타이틀, 그리고 너만의 곡을 작업하기보단 나나 채널(Cha.N)에게 어울리고, 레이블의 성향과 맞는 수록곡만을 작업하게 될 거야.”

“왜 꼭 그럴 거라고 생각해?”

“그 회사 프로듀싱 권한이 채널(Cha.N)에게 있으니까.”

사실 정답이었다.

외부에 작곡가를 둘 순 있다. 하지만 이름이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곡의 완성도가 좋지 않은 경우, 수록조차 못 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채널(Cha.N)과 태하에게 맞춰서 곡을 만든다면 타이틀이 아닌 수록곡이 될 확률이 높았다.

‘프로듀싱이 가능한 그룹’.

이 타이틀은 채널(Cha.N)에겐 이득이어도 한별에겐 해였다.

타이틀을 제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있다면 모를까, 태하까지 레이블에 들어가면 한별은 그 레이블의 성향에 한하는 작곡가가 될 확률이 높았다.

“한국에 연예 기획사는 많고, 각기 원하는 장르와 성향, 비트, 다 달라. 한별이 넌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했잖아. 난 네 한계가 한쪽에만 치우치는 거, 원하지 않아.”

태하의 생각은 확고했다.

“난 네가 만드는 노래가 부르고 싶은 거지, 나한테 맞춰진 노래에 활동하고 싶은 게 아냐. 나한테도 분명 한계가 있을 거고, 한별이 너한테도 한계가 있을 텐데 그걸 뛰어넘으려고 해야지.”

나, 네가 만든 노래 좋아한다니까.

태하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계속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생각보다 달콤했다.

“내가 막 음정 엄청 높은 노래 만들면 어떡하려고.”

“그럼, 그 소리를 낼 수 있게 노력해야지.”

“말도 안 되는 애교 떠는 노래면?”

“음……. 내가 귀여운 편은 아니지만, 부를 수 있게 연구해 볼게.”

“엄청, 진짜 엄청 섹시한 노래를 만들면 또 어떡하려고.”

“그럼 지금보다 몸을 더 만들어야겠네. 그리고 나, 춤 꽤 춰. 한별아.”

태하는 여전히 한별의 뮤즈였다. 자신이 전부 소화해 내고 말겠다는 눈빛에 한별은 입꼬리가 자꾸 부들거렸다.

“무엇보다 나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회사에 가고 싶어. 그래서 일부러 작은 곳에서 연습한 거기도 해.”

“아…….”

“큰 곳일수록 나한테 관여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날 억지로 움직이려는 사람들도 많을 거고. 그렇게 되면 난 네 노래를 부르기까지 몇 년 이상 걸려. 그러기 싫었어.”

한별은 이상할 정도로 볼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노래를 불러 주겠다는 태하의 말에 취한 것 같았다.

“태하야. 나, 지금 되게 기쁜데 술 좀 마셔도 되냐?”

“안 돼.”

건강에 안 좋아.

태하의 표정은 여전히 다정했지만, 목소리는 단호했다.

* * *

한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조금 쉬기 위해서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얼마나 이러고 있었더라? 핸드폰으로 시간을 잠시 확인하려는데, 문이 열리고 단영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

“어서 오세요.”

온다는 건 들었다. 당연히 그 혼자는 아니고, 유성이 뒤따라왔다.

“한별아, 발표 났지?”

“네.”

“어때, 합격했어?”

한별이 뺨을 긁자, 단영이 다급하게 다가와 한별의 옆 의자에 앉았다.

소속사의 연습생 캐스팅을 거절하고, 계약 스태프 활동이 끝이 났지만 단영과는 꽤 자주 만났다.

대학 실기와 관련된 의견도 나누고, 간혹 단영과 예찬이 내는 편곡 숙제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회사나 숙소에선 만날 수 없으니 결국 남는 곳은 한별이 다니는 학원이었다.

학원은 한별이 원소를 낸 대학 입시가 끝나는 동시에 수업도 종료됐다. 하지만 학원생 특전으로 저렴한 가격에 녹음실과 장비 사용이 가능하기에 단영이 유성과 함께 한별을 보러 이곳으로 오곤 했다.

“스케줄 없어요?”

“오늘 세현이만 있어. 컴백 전에 다 찍어 뒀는데, 우리도 좀 쉬어야지.”

너무 TMI 아닙니까?

아무튼 한별의 비공식 작곡 과외 선생님은 한별의 대입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한 모양이다.

단영이 학원 같은 데로 안 빠져서 다행이다. 지금만 해도 내가 가르쳤으니 무조건 합격해야 한다는 열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지 않나. 이런 선생님 밑이라면 학원생 전부 위장에 병이 생겨 쓰러졌을 것이다.

유성은 단영과 한별의 위치가 가깝다고 생각했는지, 한 걸음 다가와 단영이 앉은 의자를 뒤로 뺐다.

“내 동생한테 가까이 붙지 마, 형.”

“아, 결과 때문인데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안 돼.”

유성의 눈에 싸늘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너 진짜 과보호 중증이다.”

단영이 투덜대면서도 몸을 물렸다. 그래도 눈길은 한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장 결과를 알려 달라는 표정이었다.

“음……. 못 붙었어요.”

“뭐? 왜!”

“…….”

떨어져서 서글픈 건 난데, 왜 당신이 소리치십니까. 한별의 눈빛마저 싸늘해지자, 단영은 뒤늦게 입을 다물었다.

“아니, 왜? 거기, 작곡 즉흥이었잖아. 24마디 그거 아냐?”

“맞아요.”

주어진 화성을 보고 악기 혹은 가창으로 즉석 멜로디를 작곡하는 실기 시험. 단영은 자신과 함께 채널(Cha.N)의 곡 작업을 맡는 예찬과 한별의 대입에 정성을 다했다.

한별의 실력은 좋은 편이었기에 단영과 예찬은 한별이 절대 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별이 떨어졌다니? 단영은 당사자인 한별보다 더 좌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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