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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40화 (40/78)

40화

“자~ 그럼 왼쪽에서부터 자기소개 하고 바로 원샷~!”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테이블에 오는 선배마다 인사 차원에서 술을 한 잔씩 권할 줄이야.

“한별아, 괜찮아?”

“어…….”

같은 양임에도 태하는 멀쩡했지만, 한별에겐 한 잔 한 잔이 독이었다.

‘우리가 부모님을 닮았으면 100퍼센트의 확률로 술에 약할 거야.’

[Pick, My Dol!]에 출연하기 전, 유성이 한별에게 당부하며 한 말이 있었다. 부모님 두 분 다 알코올에 약하신 터라 술을 기피하는 편이니, 우리 역시 성인이 된 후에도 조심해야 한다고.

나이가 되면 텔레비전이나 기타 매체에 나오는 것처럼 퇴근 후, 맥주 한 캔을 사서 하루를 정리하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한별은 선배들과 함께 마신 단 두 잔의 알코올에 울렁이는 속을 힘겹게 달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23기 한동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23기 윤창석입니다!”

“안녕하십니까. 23기로 입학한 전수형입니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함께 입학한 동기 중 스무 살에 입학한 사람은 태하와 한별, 단둘.

경쟁률이 심하게 센 대학답게 재수해서 들어온 동기들이 많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관심도 받았다.

“이번 기수 막내였지? 막내는 많이 받아야지~.”

“감사합니다. 23기 지태하입니다.”

“와, 진짜 잘생겼네.”

“심지어 수석! 장학금 받았잖아. 노래도 잘하고,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네~.”

“과대 감이다, 과대 감.”

태하를 향한 칭찬이 앞다투어 나왔다.

한별은 내심 이 칭찬과 관심이 태하에게만 쏟아졌으면 했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배들은 태하의 바로 옆, 사이드에 앉은 한별을 놓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연예계와 가까운 학과이다 보니 소문도 빠르게 도는 것인지, 한별을 향해 반가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나, 너희 두 사람 알아. 둘 다 작년 말에 시끌시끌하지 않았어?”

“아, 그 소문 돌았다던 둘?”

“19기에 정윤수 선배랑 같은 멤버라던, 그.”

“아~ 채널 최유성 동생!”

그리고 관심은 넘치는 술잔으로 돌아왔다.

스물이면 무쇠도 씹어먹을 청춘이라며 부어 주는 애정은 정말 거절하고만 싶었다.

“23기 최한별입니다.”

“형은 가수던데 동생은 작곡 전공이네~.”

“잘 부탁해, 한별? 한별이~.”

“예, 선배님.”

“선배님은 무슨~ 형이라고 불러.”

뒤엎고 튀고 싶다. 하지만 지금 뒤엎었다간 아싸가 아니고 강제 인싸행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자신을 소개하는 첫 모습에 최악으로 찍히면 나쁜 내용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강제로 중심에 서게 된다는 것쯤은 여러 번 보았다.

‘그냥 예능에서 딱 한 번 미친 척 배신했을 뿐이야……. 근데, 그날 방송 후에 국민 배신자가 되어 있었어.’

한탄하던 세현의 말을 떠올리며 한별은 침착하게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어?”

“그, 윤수야?”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있던 윤수가 다가와 한별의 잔을 빼앗아 들었다.

“정윤수 선배님?”

“그 채널…….”

“아, 멤버라…….”

같이 작업할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건 좋았다. 하지만 인싸가 되고 싶진 않았다. 윤수가 가까이 오면 무조건 인싸행이다.

“선배님. 저 괜찮습니다.”

주세요, 제발. 그냥 제가 마실게요.

한별이 급히 손을 내밀었다. 자신의 뜻을 알아채기를 바랐지만 윤수는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 진짜 조졌습니다.

윤수가 한별의 평온한 학교생활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사실 신입생 환영회는 윤수가 올 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학과 행사라지만 윤수는 유명 아이돌이고, 이미지를 챙겨야 하는 위치니까.

윤수 말고도 다른 학년에 있는 연예계에 종사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참여하지 않았다.

꼭 1군 아이돌이 아니어도 아이돌 중 보컬 실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 다른 학년에도 있었고, 인디 밴드 보컬과 유명 기획사 연습생이자 메인 보컬로 데뷔할 예정인 학생도 있었다.

인디 밴드의 보컬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회식은 꺼리듯 참석하지 않았고, 어린 나이에 데뷔해 20대 중후반을 넘어가 연차가 적당히 쌓인 경우엔 교수 쪽에 인사를 하고 소개만 받은 뒤 돌아갔다.

윤수 역시 그래도 될 것이고, 굳이 술잔을 채우지 않아도 됨에도 한별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잔을 받아 뒀다.

“그, 멤버 동생이라도 너무 챙기는 거 아냐?”

헛소문 퍼지면 ×된다.

한별은 자신의 형이 어떤 짓을 하다 몸 상태가 맛이 갔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자신이 할 일이면 체력과 건강을 갈아서라도 해내는 타입은 한별이 부모님과 형에게 물려받은 성격이 아니던가.

자신보다 더했지, 덜하진 않은 유성을 알기에 한별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당신 계약 만료 가까이 됐고, 레이블 설립 때문에 여기서 진짜 헛소문 돌면 다 조진다고.

목 밑까지 차오른 말을 차마 사람 많은 곳에서 차마 던질 순 없던 한별이 어떻게 이야기를 틀어야 할지 생각을 돌렸다. 여기서 헛소문 퍼지면 형의 아이돌 생활에 비상등이 켜지니까.

“원래 대신 마셔 주면 흑기사이긴 한데…….”

눈치 없이 끼어드는 모 학생의 말에 한별의 속은 타들어 갔다. 이걸 어떻게 무르지?

“대신 마셔 주면 흑기사예요? 그럼 제가 정윤수 선배님 잔을 대신 마셔 드리면 어떻게 되나요?”

그때 끼어든 건 태하였다.

이제 갓 스물이 되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구한 얼굴과 순수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변에 앉아, 이상해진 분위기에 눈이 흔들리던 학생들의 시선이 태하에게 몰렸다.

“원래 제가 먹으려고 했거든요. 친구잖아요. 제가 한별이 집도 알고요.”

“나…….”

태하의 말에 윤수가 자신도 한별의 집을 안다는 듯 입을 열려다 한별과 시선이 마주쳤다. 당신은 알아도 안다고 하지 맙시다.

묘하게 작은 움직임으로 고개를 가로젓는 한별의 몸짓에 윤수가 입을 다물었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 친하거든요. 한별이가 술이 좀 많이 약한 거, 한별이 형 통해서 들으셨나 봐요. 감사합니다. 챙겨 주셔서.”

태하가 선을 그었다. 다정한 목소리와 미소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한별은 갑자기 변한 상황에 태하를 보며 눈을 끔뻑였지만, 선배들이 신난 표정으로 잔을 채우는 것을 알면서도 태하는 윤수에게서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한별이네 형께도 전달해 드릴게요. 형이 걱정하시는 거, 저도 잘 알거든요.”

“…….”

“제가 한별이 잘 데려다줄 테니까, 선배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저희 환영해 주세요. 저, 잔 채워 주시면 안 될까요?”

예쁘게 봐주세요, 선배님.

태하가 눈을 휘었다. 약간의 애교가 섞인 목소리는 벌써 10년 넘게 알고 지낸 한별도 들어 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서늘했다. 태하의 말로 주변의 분위기가 풀리다 못해 순식간에 신나는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한별은 등이 오싹했다.

“이야~ 친구가 좋긴 좋아? 태하 너도 진짜 부럽다. 작곡 전공이잖아~.”

“그럼요. 제가 한별이 덕을 좀 많이 볼 것 같아요.”

“나도 작곡 전공이랑 친해지면 좋을 것 같은데~.”

“제가 한 잔 따라 드릴게요, 선배님. 저도 한 잔 주세요. 아, 한별이 건 제가 대신 마실게요. 한별이 쓰러지면 형한테 얼마나 혼나겠어요.”

“친구 챙기느라 바쁘구나! 오케이, 오케이.”

아, 이거 진짜 인싸행 열차 탔다.

태하랑 같이 학교 다니게 됐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는데. 한별은 자신의 잔을 대신 받아넘기는 태하를 보며 흐린 눈이 되었다.

* * *

“너, 괜찮아?”

한별이 술이 약하다는 사실은 친구 중 아무도 알지 못했다. 수학여행 때 같은 방 친구들은 술을 챙겨 오지 않는 순진한 편에 속했으니까.

……고 기억하고 있었다.

‘아냐, 최한별한테 걸리면 뒈져서 숨긴 거야.’

‘뭐?’

‘100퍼센트 선생님한테 찌를걸?’

‘방으론 절대 술 가져가지 말 것. 강재휘 있는 방에서 모여! 하고 거기서 마셨어.’

‘…….’

사실 한별이 있는 방에서만 마시지 않았다는 후일담이 있었지만, 한별도 졸업 후 전부 끝난 상황에서 알았으니 그냥 순진했던 것으로 치자.

한별로서는 형이 아이돌이 된 이후로 자신 역시 철저히 관리한 것이었다.

될지 안 될지 확실하진 않지만, 정말 유명 작곡가가 되면 텔레비전에도 꽤 많이 출연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 역시 한 점 부끄럼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한별이었다.

덕분에 고등학교 졸업 전까진 담배는커녕 술잔도 손에 들지 않았다. 이제 미성년자가 아니라 마실 수는 있지만, 이렇게 알코올에 약한 것을 알았으니 술과도 안녕이다.

올해 1월 1일이 되고, 미성년자를 탈출한 한별이지만, 한별은 그때 연습하는 채널(Cha.N) 멤버들 가까이에 있었다.

그래서 태하가 신기했다.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아서 자신의 주량을 모르는 한별의 상태를 바로 알아챘으니 말이다.

지금 한별은 택시에 앉아 태하를 붙잡고 있었다.

“한별아.”

“……어. 괜찮아?”

“우리 걸어서, 조금 걸어서 갈까?”

“아냐, 일단 집에 가야지.”

“지금, 잠깐 내리자.”

시트에 늘어지듯 기댄 태하가 한별의 손을 꽉 잡았다.

흔들리는 한별의 상태를 아는 듯 미소를 지은 태하가 잡은 손을 작게 흔들자 한별이 포기한 듯 숨을 내쉬었다.

“어떡해요, 멈춰요?”

“예, 부탁드립니다.”

결국, 반도 가지 못한 채 택시에서 내렸다. 적은 양이지만 몸에 퍼진 술기운에 몸이 좋지 않았다.

물론, 술 탓도 있지만 속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차의 흔들림은 도통 익숙해질 수 없었다.

“차 안에 방향제가 커피 향이더라. 한별이 너, 그 헤이즐넛 향 별로 안 좋아하잖아.”

태하가 멀미의 이유를 만들어 주듯 입을 열었다. 단 두 잔뿐이지만 술을 마셔서 컨디션이 많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차 안에 있던 방향제가 문제라는 듯이.

한별의 몫에 윤수의 몫까지 마신 태하만 하겠냐는 심정으로 택시 안에서 애써 버텼지만, 사실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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