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45화 (45/78)

45화

“밖에선 화를 잘 안 내잖아.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열을 내는 기준이 남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그 열이 화일 수도 있고 승부욕일 수도 있다. 굳이 따지자면 윤수는 자신이 정한 기준이 있다면 그 목표를 위해서 미친 듯이 달려가는 타입이었다.

물론,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아 문제가 터지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알기론 유성이 형이랑도 꽤 싸웠다고 들었어.”

유성과 윤수의 목표가 같으면 시너지는 배를 넘어 제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목표가 갈리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근데, 그거랑 싸웠다는 거랑 왜…….”

“데뷔 초반 관련 내용들도 꽤 많더라고.”

한별은 이미 인터넷을 뒤져 보며 그룹의 과거 이야기와 논란들까지 전부 확인한 후였다.

대부분 인터넷의 바다 깊숙한 곳에 묻혀 사람들이 잊고 있던 것들을 한별은 하나하나 다시 발굴했다. 설령 그것이 형에 대한, 그리고 가족에 대한 욕이어도 침착하게 확인했다.

태하는 걱정되는 표정으로 한별을 바라보았다. 유성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할 당시 원색적인 욕에 힘겨워했던 걸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 형, 공식적으론 이미지가 되게 좋아. 예능이나 토크쇼 패널 같은 것도 많이 했었으니까. 라디오 DJ 대타도 꽤 자주 했으니 사람들도 익숙해하는 편이거든.”

하지만, 윤수는 정반대였다. 멤버들끼리 있을 때도 말이 적은 편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런 행동들이 왕따설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5년을 붙어 다니면 아무리 물색없는 사람이라도 서로를 잘 알게 된다. 얼기설기 모아 데뷔시킨 그룹도 적당히 절친한 친구, 사랑하는 멤버를 넘어서 가족 같은 원수가 되고도 남았을 기간이다.

채널(Cha.N) 역시 마찬가지였다. 데뷔 후 떨어져 지낸 시간이 손에 꼽을 지경이기에 서로 안 맞는 부분에 대한 조율은 끝난 상황이었다. 겉으론 비즈니스적인 관계라고 하면서도 속으론 서로를 걱정하는, 평범한 형제처럼 된 것이다.

“확실히 정윤수 선배가 유버스 앱에 올린 글들이 조금 의심스럽게 올라오긴 했어.”

“그렇기야 하지.”

유버스 앱은 소위 찐팬 중심의 앱이라, 그 모든 내용이 인터넷에 퍼지지는 않았다. 더구나 몇 개를 짜깁기하는 건 일도 아니기에 은근히 루머의 온상지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한별은 윤수가 올린 모든 의미심장한 메시지들이 앨범을 위한 것, 그리고 그룹의 활동 방향에 대한 것들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활동?”

“내가 알고 있기론 레이블 설립 준비 때문에 앨범 준비가 어렵대.”

잠시라도 활동하지 않으면 잊히는 연예계 특성상 휴식기라도 이런저런 스케줄에 참여해야 했다.

유성이 활동하는 동안 최근 화제가 된 일 외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고 조용한 생활을 했던 한별이기에 남은 스케줄과 활동 예정 내역이 공유되었었다.

“StarV 계약 종료 한 달 전에 단체 앨범 나오는데, 그 전에 개인 앨범 예정이 두어 개 있었어.”

이제 곧 4월이다. 마지막 앨범은 계약이 종료되기 직전인 6월 즈음 예정이었으니 꾸준한 활동을 전제로 4―5월쯤에 개인 혹은 유닛 앨범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그런 진실을 알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요하지도 않고. 설령 위조되었다 하더라도 가십거리만 되면 충분하니까. 굳이 말하자면 윤수는 그런 짜깁기의 피해자였다.

“저번에 핸드폰 보고 있는 영상 올라온 걸로도 태도 논란 일어났거든. 연애 중 아니냐고.”

“연애?”

“응. 근데 사실 그것도 알고 보면 팬들한테 보내는 메시지 올리고 있던 거였어.”

아이돌의 삶이 그렇듯 멤버들 역시 사생의 연락이 끊이지 않는 편이었다. 그냥 무시해 버리는 멤버도 있지만, 윤수는 여전히 번호를 차단하는 걸 선호했다.

모르는 번호가 쌓여 가는 차단 목록을 질려 하는 타입과 달리, 윤수는 그걸 트로피처럼 삼았다. 그 사실을 알기에 멤버들 역시 놔두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 사항 하나하나 알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인데 왕따라니 말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런 가십성 짜깁기 기사가 쌓이고 쌓인다면?

엄청 시끄러울 정도로 화제가 된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작은 찌라시성 기사에 올라왔다가 금세 지워진다고 해도 문제가 된다. 읽은 사람이 얼마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아마 안티들은 이 내용들 전부 캡처 해 뒀을 거야.”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안티의 행동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그치만, 이건 멤버들이 정리해야 하는 건이잖아.”

태하의 말에 한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학교에서만큼은 소문을 잦아들게 할 순 있으니까.”

“학교에선?”

“루머는 설령 퍼지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안 흔들렸느냐가 중요해. 근데 윤수 형은 말수가 적은 편이라 주변에서 엄청 휘둘리기 좋거든.”

“아…….”

또 끼어들겠다는 소리구나. 태하는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어떻게 하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윤수 형이잖아. 한마디로 내가 그 따돌리고 있다는 멤버의 동생이란 소리지.”

겹치는 수업은 이번 학기에 하나, 다음 학기에 개설되는 수업 하나였다. 1년이지만 윤수와 친한 모습이 보이면 어느 정도 주변 정리는 될 터다.

솔직히 멤버와 사이가 나쁘다면 멤버의 친동생과 친하게 지낼 리가 없지 않은가. 학기 초, 윤수가 한별에게 말을 건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천만다행이었다.

1년도 아니다. 이번 학기만 잘 지나가면 다음 학기는 레이블 설립 이후이니 이전처럼 채널(Cha.N)과 마주치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는 것이 한별이 내린 결론이었다.

“곧 MT이기도 하니까 그때 이야기하는 것만 내보이면 금방 사그라들긴 할 거라고 생각해.”

“아. 그건 그렇지만, 나중에 더 알려지면 좀 문제가 되지 않을까?”

“……나도 그건 좀 걱정이긴 해.”

한별은 태하가 뭘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채널(Cha.N) 멤버들과 크게 엮이고 싶지 않았다. 단영, 윤수와는 특히 그랬다.

회사를 나오며 그래도 여유가 생긴 태하와는 달리, 그 둘은 여전히 아이돌이고 앞으로도 아이돌일 예정이니까.

아이돌이라고 형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직업으로 생물학적인 게 바뀌면 그게 외계인이지, 지구인이겠냐고.

아이돌이라고 알파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한별은 더더욱 제 형질을 들키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학교든 학과든 오메가라는 이야기가 돌기라도 하면 좋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알려졌을 때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옳은 말이다. 오메가라는 것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한별의 모든 노력은 왜곡될 것이 뻔했다. 윤수와 친하게 지냈던 것, 혹은 멤버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들 전부.

멤버의 동생이라는 것, 억제제를 먹고 있으니 괜찮다는 내용마저 그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변명으로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길 테니까.

가장 좋은 건 한별이 오메가인 것까지 알려지지 않는 것이지만, 대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태하야.”

“응.”

“우리 일단 너튜브 채널부터 빠르게 만들자.”

태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학과의 녹음실은 학과 학생이면 예약하여 누구든 사용할 수 있었다. 1학년 학생한테는 괜히 망가뜨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실습 조교가 동석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말이다.

‘쟤 얼굴만 섬네일에 박아도 100만은 기본으로 찍을 텐데.’

한별은 시스템을 매만지며 태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편곡한 MR에 맞춰 녹음하는 태하를 보며 떠오른 생각을 차마 입 밖에 내진 않았다. 태하가 얼굴을 공개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태하는 굳이 따지면 얼굴 때문에 손해 보는 타입이었다. 실력은 이미 차고 넘치는데 외모 때문에 평가절하되는 쪽.

노래도 메인 보컬이 될 만큼 잘하는데 늘 그룹에서의 취급은 비주얼 담당, 센터 담당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터라 춤 선도 고와 리드 댄서 재질도 충분히 지녔다. 그리고 그 실력은 태하가 소형 기획사에서 만년 데뷔 조로 6년간 갈고닦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선배랍시고 7인조 신인 그룹의 홍보를 도와주는 역할의 영상을 촬영했던 유성의 말을 떠올린 한별이 눈을 끔뻑였다.

‘전 소속사 연습 영상이 회사에 있었어. 연습생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파악은 해야 하니까 받아 뒀던 게 있더라고.’

춤 선보다도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외모 때문이지, 어려서 시작한 연습생 생활 덕에 다른 멤버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 받았다. 아무렴, 채널(Cha.N)의 메인 댄서인 세현이 평가했으니 정확했다.

‘그 연습 영상만 보더라도 차이가 꽤 크더라고. 근데, 이번에 데뷔 조 보면서 확신했어. 그 회사에선 어떻게든 태하를 데리고 있으려고 했을 거야. 그룹에서 무조건 메인을 맡을 만한 멤버니 어떻게든 태하한테 맞췄을 거고.’

‘여러 번 데뷔가 뒤엎어졌는데? 주요 멤버가 있는데 데뷔가 뒤집혀?’

‘보통 데뷔는 중·고등학생 아니면 20대 초반이잖아. 자기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막상 곁가지 취급을 받으면 참을 수 있겠어?’

‘아…….’

‘은근히 있어. 데뷔 조로 묶어 놨는데 앨범 컨셉이나 방향성 듣더니 힘이 쭉 풀려선 데뷔시킬 수도 없을 만큼 행실이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경우. 작은 회사는 덜 체계적이고 사람도 없으니, 일일이 케어를 못 하는 경우가 많거든.’

연습생 수가 많지 않은 곳. 그러니, 제가 아무렇게나 해도 데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제멋대로 구는 연습생.

회사 차원에서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서에 손해 배상 청구 조항을 집어넣긴 하지만, 작은 회사일수록 법적 대응을 꺼렸다.

장기적으로 끌고 가 봐야 회사에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계약서상 적힌 내용 중 연습생에게 이행되지 않았던 사항들을 핑계로 실랑이를 하느니, 그냥 방출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태하는 그런 곳에서 6년 넘게 연습해 온 거고.

“한별아. 다시 녹음하는 게 좋을까?”

“음…… 2절 싸비(후렴) 부분만 다시. 앞은 내가 듣기엔 괜찮았거든?”

‘멘탈 제대로 잡지 못하거나 기가 세지 않으면 못 버텨. 항상 착하고 순하게? 그런 사람들은 1년도 못 버티고 회사 탈출했거나 벌써 사기당해서 은퇴했을걸.’

단영이 했던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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