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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49화 (49/78)

49화

한별은 자리에 앉자 밀려오는 자괴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돌들은 도대체 이런 행동을 어떻게 견디는 걸까.

잠깐의 쪽팔림을 견디면 괜찮다지만 남는 기나긴 수치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연예인들은 흑역사가 전부 영상으로 기록돼 몇십 년은 퍼지는 걸 어떻게 참느냐고.

한별은 채널(Cha.N)이 데뷔 초에 찍었던 모닝콜 영상을 핸드폰에 담아 놔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별아. 잘했어.”

정윤수가 밉다. 한별의 눈빛을 받아 낸 윤수가 배시시 웃었다. 이건 윤수가 잘못했다.

옆에 앉아 있던 5조는 태하를 데리고 나갔다.

“자, 5조. 5조, 이야―.”

MC가 말을 잃었다. 평소에도 말을 잃게 하는 외모지만, 가까이서 보면 더 입이 벌어지는 키와 얼굴이긴 했다. 윤수는 아이돌이라는 것 때문에 어느 정도 대비가 됐지만, 태하는 전혀 아니었다.

MC가 말을 잃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자~ 자기소개 한번!”

“23기 보컬 전공 지태하입니다.”

“잘생겼다~!”

“최고다!”

역시 같은 조인 5조가 가장 시끄러웠고, 보컬 전공 학생들이 직속 후배라며 호응을 이었다.

“5조 조장. 태하 왜 데리고 나왔어요. 종이 읽어 주세요!”

“가장 잘생긴 사람 데려오기였습니다.”

“와!”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한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외모로는 지태하 못 이기지.

정작 MC는 흘끔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이내 장난스럽게 웃으며 윤수를 가리켰다.

“자, 정윤수 선배님 나와 주시겠습니까~.”

MC의 부름에 윤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이분이 우리 학과에서 매번 잘생긴 사람으로 뽑히던 사람인데~.”

눈 호강이었다. 심지어 둘 다 날카롭게 생겼다 보니 더욱 신기한 느낌이었다.

“와, 진짜 잘생겼네.”

“미쳤다. 키 봐.”

“둘 다 깔창 안 깔았지?”

안 깔았다. 채널(Cha.N) 멤버들은 윤수와 키를 맞추기 위해서 촬영 때는 깔창을 깔았지만, 윤수는 프로필 키가 자신의 정확한 키였다.

태하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크는 모습을 보았으니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의 비슷하지만 한별에 기억엔 태하가 윤수보다 2센티미터 정도 더 컸다.

둘 다 인상이 날카로웠지만 조금 더 진중하고 묵직해 보이는 건 윤수였다. 평소 생활에서도 태하는 커다란 키와 떡 벌어진 몸에 비해 날렵했으니 이미지가 그렇게 박힐 수밖에 없었다.

“곰이랑 표범인가?”

한별이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둘 다 육식 동물 같다는 느낌은 변함이 없었다.

“두 사람 잘생긴 걸로는 서로한테 안 지는 것 같은데~.”

“선배님께서 더 멋지시죠.”

태하가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자신이 감히 선배에게 견주냐는 듯한 목소리였다. 윤수 역시 방송처럼 철판을 깔 필요가 없다 보니, 고개를 저으며 태하가 더 멋있다고 반박했다.

“그럼 다른 걸로 대결해서 이기는 사람이 옳은 걸로 하죠~ 자신 있는 종목이 뭐가 있을까요? 먼저 나온 건 태하 후배님이니까, 후배님이 결정해 봅시다.”

뭘 잘해요? 하는 MC의 질문에 태하가 잠시 고민했다.

“노래 잘합니다.”

“아아아~ 그럼 안 되지~.”

되지도 않는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며 어깨를 떠는 MC의 모습에 학생들이 정색했다.

“우우우―.”

“MC는 물러나라.”

“와, 진짜 너무하네. 나도 나름 잘생겼거든?”

키득대던 MC가 눈을 빛냈다.

“전공 말고. 학교에서 배우는 거 말고.”

“음…….”

고민하던 태하가 빙긋 웃었다.

“힘 잘 씁니다.”

“오~ 정윤수 선배님은요?”

“저도 좋습니다.”

눈을 빛낸 MC가 한 건 잡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힘쓰는 건 앉았다 일어났다 아닌가요?”

모두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가득 들어찼다. 그리고 한별의 표정은 한껏 구겨졌다. 아, 제발. 여기서 커플 게임 시작할 것 같은 소리 하지 마라. 한쪽은 현직 아이돌이라고!

한별이 다급한 얼굴로 MC를 바라보았다.

“정윤수 선배님.”

MC가 눈을 빛내더니 자신을 가리켰다.

“저 들어 올리실 수 있겠습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걱정을 순식간에 해결하는 MC의 말에 한별이 안도했다. 스캔들의 위험에선 일단 벗어났다.

윤수의 본직을 기억한 탓에 순간적으로 굳었던 학생들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MC를 보다 키득거렸다.

MC를 맡은 3학년의 학생은 갓 입학한 신입생들도 알 만큼 유명한 CC의 한 명이었다. 애인도 같은 학과 2학년이어서 열애설이 날 확률이 완벽하게 차단됐다.

“야악! 김영준!”

애인의 바람 장면엔 나이고 학년이고 없었다.

물론, 진짜 바람은 아닌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심지어 윤수는 모두가 아는 알파고 MC를 맡은 학생은 베타였기 때문에 더욱 상관이 없었다.

윤수가 잠시 자신에겐 후배, 태하와 한별에겐 선배인 MC를 바라보았다.

“저 64킬로그램입니다.”

윤수가 그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뻗었다. 슬쩍 몸을 숙여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 자세로 MC를 안아 들자 객석에서 박수가 나왔다.

“자 그럼 태하 후배님은!”

“우우우― 선배가 후배 힘들게 한다.”

“우우― 선배는 물럿거라~!”

“야, 야! 조용히 해! 난 끝나고 혜미한테 반 죽었어!”

“우우― 꼰대질 한다.”

“바람이다!”

“바람이다 누구얏! 점수 뺏을 거야!”

“아하하하―!”

MC는 야유에도 꿋꿋하게 몸을 돌렸고, 태하 역시 윤수와 비슷하게 안아 들었다가 내려 줬다. 사방에서 ‘오오―!’ 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윤수는 온갖 방송에서 힘이 세다는 것을 입증했었기에 아는 사실이었지만, 태하는 일반 학생이기 때문이었다.

“와, 내가 안겨 봤는데 누가 더 힘센지 진짜 구분 안 되네!”

“부럽다!”

고민하는 척하던 MC가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자, 학생 중에 자기 몸무게가 64킬로그램 근처다. 손!”

“와, 진짜 나빴다.”

“몸무게를 밝히라고 하다니!”

“아, 연예인도 아니면서 뭘 그래! 아, 내가 연예계 활동을 하고 있는 동기, 선배, 후배님들은 패스할게요~ 혹시, 교수님 중에서는 없으십니까!”

자신의 몸무게가 밝혀질 위기에 모두가 침묵했다. 차분히 가라앉아 버린 분위기에 MC가 당황했다.

“뭐야, 없어? 나랑 몸무게 비슷해야 비교가 되지!”

“부담스러워…….”

학생들의 중얼거림은 곧 웅성거림으로 변했다.

몸무게의 문제가 아니고, 저 외모들 사이에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부담이었다. 윤수건 태하건 스캔들은 차치하더라도 옆에 서기 민망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외모임은 분명했다.

실제로 가운데 선 MC는 너희가 얼른 나오지 않으면 내가 이 사이에 오징어가 되어 계속 서 있어야 한다는 말로 기묘한 협박(?)을 하고 있었다.

“한별아.”

오는 버스 안에서 옆에 앉았던 선배가 톡톡 한별을 두드렸다.

“혹시, 몸무게 물어보면 실례일까?”

“예? 아뇨.”

한별이 자신의 몸무게를 말하자, 선배가 눈을 빛내며 손을 들었다.

“오! 남학생이 들 줄 알았는데, 여학생이 등장!”

“아니, 아니. 나 60킬로그램 안 넘거든?! 나 말고!”

“예?”

한별이 당황했다.

“한별 후배님 몸무게가 비슷해!”

아뇨. 3킬로그램 정도 차이 나는데요.

옷 핏은 괜찮은 편이라지만, 한별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근육량 등이 있기에 무게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몸치여도 건강을 위해 운동은 하는 편이라 더욱 그랬다.

“아니, 그…….”

“사람들 기다린다! 얼른 나와요!”

당황한 한별이 주변 학생들의 보챔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별 후배님 다시 나왔습니다! 박수!”

MC가 웃으며 한별에게 다가와 몸무게를 물었다. 한숨을 내쉰 한별이 무게를 이야기하자 MC가 똑같이 눈을 빛냈다.

“자~ 나온 두 분한테 선택권 드릴게요. 나를 선택하면 조금 더 가볍고! 한별 후배님을 선택하면 조금 더 무겁고!”

누가 봐도 이기려면 MC를 골라야 하는 상황.

사실 MC 입장에선 누가 되든 상관없었다. MC는 임자가 있고, 한별은 멤버의 동생이니 윤수도 거리낄 게 없으니까.

한별의 입장에선 자신을 선택해야 할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한별의 눈빛을 읽은 듯 태하가 먼저 손을 들었다.

“제가 한별이 쪽으로 갈게요.”

좋은 판단이었다. 아무리 같은 팀 멤버의 동생이라 하더라도 한차례 왕따설이 퍼진 상황에서 더 문제 생기면 그놈의 스캔들과는 멀어지기 힘들었다.

“윤수 선배님은요?”

“내가 한별이랑 해도 되는데.”

안 된다고, 이 사람아!

한별은 차마 고개를 마구 젓지도 못했다. 자신이 피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선택권이 자신에게 오는 것도 애매했다.

‘유성 동생도 정윤수 피하던데?’

그딴 말이 퍼지기라도 하면 그놈의 따돌림무새들이 축제라며 신나 할 거 아냐!

진짜 진퇴양난이다.

한별 자신은 거절할 수 없고, 주변의 상황이 정리되어야 하는 그런 상황. MC는 재밌으면 됐고, 학생들은 한별의 속사정을 모르고, 윤수를 믿을 순 없으니 남은 건 태하였다.

“한별 후배님은 어때요?”

“전 아무나 상관없습니다.”

“아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MC만 신났다. ‘난 누구한테 안겨 볼까’ 하는 식으로 버라이어티 쇼의 나이 많은 패널 같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식은땀이 나는 한별이었다.

“둘 다 네가 싫다는 거잖아!”

“사실을 이야기하지 마! 팩트로 패지 말라고! 허위와 과장과 거짓으로만 기만해!”

MC가 버럭 소리치자 태하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었다.

“그럼 제가 한별이를 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왜죠!”

“제가 더 어리고 젊으니까요.”

MC 덕이다. 허위와 과장과 거짓으로 이야기하라는 그 말과 합쳐져 태하의 말은 어린 후배의 농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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