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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55화 (55/78)

55화

“한별이 너 속은 진짜 못생겼을 거야. 간이고 위고 할 거 없이.”

스트레스 때문에? 하긴, 전날의 일로 위가 살살 녹는 것 같긴 하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태하 너 없었으면 안 질렀지.”

“나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 거야?”

“없었으면?”

MT에 태하가 없었다면……. 꽤 복잡한 일이 일어나긴 했을 것이다.

한별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뒤엎어야지. 차라리 그럴 땐 크게 가야 하거든.”

아마 당돌하게 맞서지 않았을까?

주변에 사람이 많은 만큼 상황이 한별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을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당장은 학과 선배라는 같잖은 이유로 헛짓거리를 할 수 있으나, 필드에 나가면 마주치기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내 편곡엔 그 사람 세션, 안 필요해.”

물론, 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세션이 필요하긴 하다. 수업 점수 자체가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야 높게 책정이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선배는 아니었다. 애초에 점수도 제대로 못 받아서 여태 졸업도 못 했는데 같이 공연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태하가 있으니 쓰러질 것을 각오하고 잔을 비웠지만, 없었다면 술은 무슨. 경찰 부를 것을 각오했을 것이다.

“학과 행사에 경찰 부르면 이미지 나빠지고 분위기 조지긴 하겠지만, 안 그랬음 100퍼센트 윤수 형도 난리 났을 테니까.”

“아…….”

“주먹 쥐는 거, 봤거든.”

한별은 눈치가 느린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태하, 너 없었으면 분명 윤수 형 폭행 관련해서 뭐 떴겠지. 그거까지 감수할 생각은 없어.”

가만히 있어도 루머와 논란이 생성되는 지금 시기에 폭행을 얹는다? 만약 태하가 없었으면 애초에 MT도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신입생 환영회부터 불참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한별은 태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뭐지.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내 인싸행의 원흉이 얘였잖아.

“그렇게 빤히 보면 민망한데.”

얼굴 붉히지 마라. 그렇다고 열 안 받는 건 아니니까. 한별은 에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잉―.

그러던 중, 돌연 핸드폰이 울렸다. 한별은 한숨을 내쉬다 말고 시선을 내려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 카메라 왔다.”

“왔어?”

“응. 형이 갖다준다더니, 지금 또 뭐가 꼬였는지 택배로 보내 줬거든.”

“어차피 내일 쉬니까 사진 찍으면 되겠다.”

어제 일은 어제 일이고, 너튜브 채널을 여는 건 순항일 것 같았다.

한별은 이대로만 가면 자신이나 태하의 포트폴리오, 전공 실기 점수 등등이 술술 풀리리라 생각하며 태하와 웃음을 지었다.

* * *

한별이 전화를 받지 않자, 여러 메시지가 계속해서 전송됐다.

최유성ㅗㅗㅗㅗㅗ

금방 갈게

오지마 ×발

오지 말라고, 이 형 새끼야.

한별은 열을 올렸다. 태하가 차가운 물을 가져와 한별에게 내밀었지만, 원샷을 해도 불타는 속은 식지 않았다.

한별이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냥 묻자. 내가 밖에다 땅 파 둘 테니까, 형 새끼 이따 들어오면 좀 둘러메 주라.”

“하, 한별아. 참아…….”

솔직히 유성에게 생길 논란은 거기서 거기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느냐고, 주변 관리 철저하니 갑질이니 폭력 이슈 같은 건 나려야 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내내 학생 회장에 당선된 데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연애는커녕 그 흔한 썸도 없다는 건 한별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나, 유성이 좋아해.’

‘나도 좋아해. 근데, 다가가기 너무 어려워…….’

‘되게 왕자님 같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머리채를 잡는다거나 ‘6학년 5반 최유성 팬카페’ 같은 걸 만들어서 서로 손뼉을 쳐 댔는데 썸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럴 때 일이 벌어지느냔 말이다.

“이게 최유성 계정이, 후…….”

한별이 으득, 이를 물었다.

유성의 비공개 계정으로 추정되는 SNS 계정이 털렸다. 인터넷엔 온갖 기사가 올라온 상황이었고, 심지어 ‘유성 럽스타 논란’이라는 해시태그까지 달리며 하루가 다르게 폭발 중이었다.

“와, 실시간 트렌드네.”

한별은 정말 조용히 살고 싶었다.

차라리 채널(Cha.N) 멤버 중 다른 사람이었으면 조금 덜했을 것이다.

태하와 함께 너튜브 채널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채널의 주인이 밝혀질 것을 알기에 제발 유성이 시끄러운 일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랐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의 관종 짓으로 인한 개판이 터지면 유성이 쪽팔릴 테니, 한별은 이전보다 더욱 숨을 죽이고 살았다.

너튜브 채널도 최대한 실력 위주로 화제가 되게 하려고 태하와 얼마나 애를 써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일단, 유성이 형 계정은 맞는 건지 확인을…….”

“아니, 맞아. 백 퍼센트야.”

한별이 이마를 짚었다.

유성의 메시지 습관은 익히 알고 있다.

데뷔 후, 한별과 생활 환경이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유성과 한별은 자주 연락했다. 바쁜 부모님께 연락할 수 없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말?”

“어……. 형이 버릇처럼 쓰는 말들이 꽤 많아.”

한별은 처음, 그놈의 비공개 계정이라는 것을 보고 아닐 것이라 애써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너무 비밀 연애하는 것 같은 계정이지 않은가. 유성이 이런 계정을 만든다는 것도 상상이 가지 않지만, 들킬 것은 더욱 상상 되지 않았다. 그만큼 한별의 머릿속 최유성이라는 사람은 자기 관리의 대가였으니까.

하긴, 그놈의 자기 관리도 작년 말에 이미 몸 상태 조져 놨을 때 끝나긴 했지만.

“하…… 내용이 왜 다 이따위지.”

오늘도 귀여웠다,라든가 같이 찍은 손을 톡톡 두드리는 사진들을 떠올리니 다시금 화가 치솟았다.

“……씨×.”

“하, 한별아…….”

“진짜 땅 팔 거야. 나 말리지 마. 오늘 최유성 어떻게든 조져야겠으니까.”

“…….”

한별의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이유는 당연했다. 유성이 아이돌이어서도 아니고, 자신에게 숨긴 채 연애를 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진짜 형 새낀, 미친 또라이 맞다고.”

“…….”

“태하, 네가 생각해도 그렇잖아!”

“그, 그건…….”

태하도 차마 고개를 젓지 못했다.

“씨×, 차라리 진짜 연애를 하지!”

사람들은 지금 채널(Cha.N)의 유성이 누군가와 연애하고 있는 게 아니냐며 무수한 관심을 쏟고 있다. 하지만, 한별이 보기에 사람들의 관심과 걱정은 하등 쓸데없었다.

왜냐면, 최유성은 지금 연애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그도 그럴 것이.

“왜 전부 다 나와 관련된 내용인데!”

팔불출 새끼가!

유성의 비공개 계정 모든 사진과 내용이 한별을 담고 있었으니까.

“이걸 진짜 어떻게 해명하냐고!”

한별은 어이가 없었다.

유성의 계정인 건 확실하다. 자주 쓰는 표현이나 이모티콘 외에도 자신에게 한차례 보여 줬던 사진들이 꽤 있었으니까.

한숨을 내쉬던 한별이 화제가 된 사진 중 하나를 핸드폰에 띄웠다.

“태하, 너도 이 사진 알잖아.”

“……응. 이거 이 주 전에 유성이 형이 보내 준 거지? 다음에 같이 오자고.”

“응.”

최근 채널(Cha.N)의 스케줄은 대부분 해외 일정이었다. 마치 해외 팬들의 힘을 모아 자본을 쓸어 담듯 외국을 도는 스케줄만 가득했다.

계약이 만료되는 6월이면 소속사는 채널(Cha.N)에서 자본을 빨아들이지 못한다. 더구나 상반기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데뷔시킨 StarV의 첫 기획 아이돌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외에선 역시 대형 회사라 영상미가 좋고, 콘셉트도 좋다고 조금 화제가 되긴 했지만 국내에선 영 맥을 못 추었다.

그렇게 해외에서 이동하던 중 유성이 찍은 사진 중 몇 장은 항상 한별의 핸드폰에 전송됐다.

최유성ㅗㅗㅗㅗㅗ

(사진)(사진)(사진)(사진)

형. 일 해. 놀러 다닐 생각만 하지 말고.

최유성ㅗㅗㅗㅗㅗ

ㅠㅠ 차가워...

ㅡㅡ

최유성ㅗㅗㅗㅗㅗ

맛나는 거 사 갈게~

단 거 사와.

그렇게 받은 사진 대부분이 한별에게 한 말과 비슷한 내용으로 그놈의 럽스타그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있었다.

내가 형이랑 지금 연애했냐고!

소름 돋는 소문에 한별은 몸을 떨었다.

더구나 한별이 받은 사진과 똑같은 사진 아래에 적힌 내용은.

1starsbro

(사진)

단 거 사 갈게

“미친놈.”

아이디부터 한별브로다.

한별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느낌에 소파에 늘어지듯 누웠다. 가까이 다가온 태하가 한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믿겠냐고……. 다 아는 태하, 너도 어이가 없을 텐데.”

“하하…….”

태하 역시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진짜 누가 봐도 럽스타그램이었고, 동생이 아니고 애인한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한별이 받은 사진과 한별이 보낸 내용들만 봐도 순식간에 뒤집혔다. 태하는 흔들리는 눈으로 한별의 핸드폰 액정에 손가락을 올렸다.

최유성ㅗㅗㅗㅗㅗ

(사진)

후드 이거?

ㅇㅇ 그거 파란 거.

최유성ㅗㅗㅗㅗㅗ

이거 근데 파란색이 없는데?

다른 색이어도 상관X

최유성ㅗㅗㅗㅗㅗ

그럼 노랑으로 사 갈게

병아리 같고 귀엽겠다

좋은 말로 할 때 빨강으로 사 와라.

이후, 유성은 알록달록한 무지개색 후드티를 먼저 내밀어 한별에게 등짝을 맞았다.

1starsbro

(사진)

알록달록한 것도 귀엽고 잘 어울리겠는데?

색동저고리?

역시 한별과의 메시지와 이어지는 아웃스타그램의 게시글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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