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57화 (57/78)

57화

“하……. 급하게 잡은 건 확실해.”

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관찰 예능은 한별과 태하의 너튜브 채널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가정했을 땐 무조건 이득이었다. ‘유성의 동생이 알고 보니 n만 구독자의 너튜버?!’ 같은 어그로를 끌기 딱이지 않나.

하지만, 당장 유성의 비공개 SNS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탓에 득이 줄어들더라도 참여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태하는 관찰 예능에 완전히 출현하는 건 아니고, 한별의 친구로 가끔 나올 생각이었다. 유성이 한별을 보러 학교에 놀러 온다는, 구닥다리 같은 콘셉트가 잡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동생 바보♥ 채널(Cha.N) 유성’의 어쩌고 하는 타이틀이라는데, 동생을 끔찍이 아껴 아웃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을 만들었단 해명과 채널(Cha.N) 멤버 챙기기 이미지를 동시에 가져가겠다는 유성의 크나큰 목표 되시겠다.

그래서 오늘 윤수 역시 주에 하루만 나오는데 평소엔 듣지도 않는, 1학기 앙상블 수업을 청강하기로 했단다.

아무리 관찰 예능이어도 어느 정도의 콘셉트 조작은 있다고 하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학교에서도 냉큼 승인한 이유도 학과 출신 아티스트가 조금이라도 매체에 얼굴이 보이면 학과를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뻔하지. 그러니까, 앙상블 수업에 촬영 허가를 냈지.”

2학년의 기타 전공 학생이 쓰게 웃음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학과 촬영 예고에 수업 준비랍시고 연습하는 모습을 찍어야 했다.

“죄송합니다…….”

“아냐. 내 입장에서도 나름 좋아.”

물론 악보는 준비되어 있다지만, 뜬금없이 예정에도 없던 1학년이 작곡한 노래를 연주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학생들 입장에서도 난감했다.

당장 Weekly와 학기 말 연주회를 준비해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 시간을 뺏기게 된 것이다.

“들어 보니까 노래도 좋고. 대신, 다음 학기에 우리 그대로 한별이 네 곡 준다고 하면 더 열심히 해 줄 수 있는데.”

드럼 전공인 3학년이 웃으며 이야기하자, 한별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요. 잘 부탁드립니다.”

“오케이. 다음 학기도 앙상블 점수는 걱정 없겠네.”

“아, 누나는 매번 점수 걱정 없었잖아요.”

“시꺼~.”

“다시 한번 해 봐도 되겠습니까?”

“응~.”

프로그램에서 담아내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출연자의 숙명이었다. 한별은 자신이 작곡한다고 정보를 흘려 버린 유성의 멱살을 어떻게든 잡고 말리라 다짐했다.

“확실히 스트링 세션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네.”

“키보드 추가할까?”

“오부리(즉흥 연주) 할 것도 아니고, 만들어진 악보 다 있는 데다 좀 있음 촬영 시작이라 지금 추가하긴 어려워. 일단, 이대로 완성도를 높이는 편이 좋지.”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해 보자. 태하야?”

“예.”

당연하게도 보컬은 태하였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잘생긴 보컬을 포기할 순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악기 전공 선배들이 악보에 집중해 연주하는 동안, 태하는 교수들 앞에서 보여 주는 척 카메라에 담길 구도를 생각하며 노래했다.

‘아이돌 연습생 기간의 덕을 여기서 보는구나…….’

한별은 앞에 앉아 핸드폰 카메라로 합주 영상을 찍으며 연신 감탄했다.

정말 대충 찍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핸드폰 액정 너머로 튀어나올 것처럼 생겼다. 근데도 카메라가 못 담는 외모는 좀 너무했다. 아니, 저 외모를 못 담는 카메라가 너무한 건가.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전부터 학과 내 학생들 연습 시간으로 수업이 대체된 상황이었다.

‘우리는 평소에도 이런 수업을 합니다’ 하는 콘셉트를 위해서였다. 한별이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팀 외에도 몇몇 팀의 영상 역시 촬영할 계획이라 벌어진 사달이었다.

“시간 다 됐네. 둘 다 점심 안 먹고 왔다고 했지? 우린 조금 더 맞춰 보고 있을게. 이따 앙상블 시간에 보자.”

“정말 죄송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정 미안하면 나중에 한별이가 술 사~.”

“네.”

한별이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자 선배들이 손을 흔들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상황이라 당황스러울 텐데도 그들은 성심성의껏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연기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태하도 있고, 유성도 있으니 카메라 앞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유성을 포함한 제작진이 오는 건 알지만 촬영 시작 시간은 정확히 전달 받지 못했다. 대충 점심시간 넘어서 온다는 말만 들었는데…….

“한별아!”

“……!”

돌연 들려온 목소리에 한별은 눈을 크게 떴다.

점심 넘어서 온다며! 한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돌리자, 유성이 달려와 한별의 머리칼을 사정없이 헤집었다.

“뭐야, 뭔데.”

왜 벌써 왔는데?

한별의 놀란 표정을 담으려고 한 거라면 정답이었다. 확실했다. 유성은 분명 한별의 놀란 표정을 담으려고 이 시간에 온 것이다.

한별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유성의 손을 떼어 냈다.

“왜 벌써 와?”

“동생 보고 싶어서?”

“…….”

한별의 띠거운 표정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한별보다 키가 큰 유성이 한별의 양 뺨을 붙잡고 귀엽다는 듯 손을 움직였다.

“아, 얼굴 따가워.”

뚱한 만두가 된 한별이 툴툴대자, 유성이 가자며 한 건물을 가리켰다.

“나 지금 점심 먹으려고 했는데?”

“같이 먹자. 어차피 윤수 형도 먹어야 하니까.”

이어 유성이 고개를 돌려 태하를 향해서도 인사했다.

“오랜만이네~.”

오랜만은 무슨. 저번에도 봐 놓고. 태하는 유성에게 맞추듯 꾸벅 인사했다.

촬영 팀 쪽에서 눈을 빛내는 게 보였다. 그래, 잘생긴 사람 못 놓치지. 인사하는 장면이 끝나자 스태프들이 다가와 한별과 태하가 사용할 마이크를 가져왔다.

“마이크 착용할게요~.”

어쨌든 촬영은 촬영이었다. 자신과 태하가 연예인이 아니라는 것 때문인지 막내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가왔다.

“바지 뒤쪽에 마이크 수신기를 달 거예요. 무거우시면 허리띠 따로 해 드릴 테니까 말씀하세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한별은 조금 어색한 무게에 몸을 조금 움직여 봤다. 반면, 태하는 익숙한지 마이크 선을 옷 안으로 빼 상의 가운데에 마이크 집게를 쿡 집었다.

태하가 한별에게 다가와 수신기에서부터 이어진 마이크를 붙잡고 한별을 바라보았다.

“한별아. 마이크 도와줄…….”

“태하야. 잠깐.”

그때, 유성이 다가와 태하의 손에 잡힌 제 마이크 집게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건 형이 한별이 해 줄 테니까, 올라가서 윤수 형 좀 찾아 줄래?”

“아…… 네.”

태하가 잠시 주춤거리다 미소 지었다. 태하는 유성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자리를 벗어났다.

“하…….”

“뭐야? 왜 한숨이야?”

“우리 한별이가 벌써 마이크를 다 차고…….”

최유성, 대체 무슨 헛소리지.

무슨 아들 결혼식 보내는 부모님 눈빛을 하는 모습에 한별이 미간을 좁히자, 장난이었다는 듯 유성이 웃음을 지었다.

“옷 안에 손 잠깐 넣을 거야. 차가워도 참아.”

“어.”

마이크 선 빼려면 당연히 넣어야지, 그럼. 한별은 별생각 없이 상의를 살짝 들었다.

그런 한별을 복잡한 눈으로 보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냥 막 그렇게 해 달라고 해도 되는 거야?”

“뭘?”

“마이크. 형은 형이지만, 태하는 아니잖아.”

“도와주려는 건데, 뭐.”

“그게 문젠 건데…….”

뭐가, 어디가 문젠데. 태하도 도와주려던 거고 유성도 도와주려던 거니 상관없지 않나.

“태하가 뭐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야?”

“그건 아니지만…….”

“도와주려는 사람 의심하는 건 안 좋아, 형.”

셔츠 위쪽으로 마이크를 뺀 한별이 유성의 가슴 쪽을 보고, 자신도 따라 마이크 집게를 꽂았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방송 도중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한별과 태하의 너튜브 채널과 관련된 언급이었다.

‘잘못해서 홍보처럼 보이면 진짜 이미지 조진다.’

일주일 만에 구독자 만 명을 모은 건 대단한 일이지만, 천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Cha.N)의 너튜브 채널을 생각하면 새 발의 피였다.

최대한 욕 먹을 짓은 하면 안 된다. 특히나 자기 너튜브 구독자 늘리려고 참여했다는 말은 절대 나오면 안 되니, 홍보의 ‘ㅎ’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유성과 윤수와 사이좋은 모습을 보이되 윤수와는 너무 거리감이 느껴져서도, 너무 가까운 모습을 보여도 안 된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태하 역시 유성과 친한 모습이 남아선 안 된다.

지금은 열성 오메가임을 알리지 않았기에 상관없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난 뒤에 오메가임이 알려진 이후 괜한 헛소문이 돌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이 아니라 미래까지 계산해야 하니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한별이었다.

“그럼, 두 분은 무슨 사이세요?”

그리고, 또 하나.

태하와 한별은 유성과 윤수, 자신들까지 촬영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꼬일 것을 대비하여 보험을 하나 더 들었다.

“초중고 동창이고, 대학까지 함께 다니고 있어요.”

“와~ 엄청난 인연이네요.”

이건 한별과 태하가 진작 입 맞춰 둔 내용이었다.

“네. 좋은 인연입니다.”

태하가 한별을 보며 다정하게 웃었다.

유성과 윤수에겐 미리 이야기하지 않은, 일방적인 썸의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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