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60화 (60/78)

60화

“한별아. 멤버들이 리더분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응한 거라면?”

“그럼 이미 데뷔 초에 끝냈을 거야. 단영이 형이 법적으로 꿇리는 것도 없고, 그런 관계는 일찍 정리하는 편이 맞으니까.”

너무 옛날에 헤어진 친부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자식의 앞을 막을 것이라는 상상은 못 했다는 것이 맞았다.

데뷔 초라면 단영 역시 갓 스물이 되었을 때다. 그래서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한별은 자신이 아는 유성이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혹시 모르지. 형도 그때면 열여덟 살이었는데?”

“…….”

한별은 고개를 저었다.

유성의 중이병 각성 이후, 다정해졌다고 생각해서 간혹 까먹고 막 대하는 경향이 생겼지만 그래도 잊지 않았다.

“최유성 씨, 머리 보통 좋은 거 아냐.”

“그건 나도 알아.”

어느 누가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수능 만점을…… 하고 이야기하려던 태하는 한별의 표정이 입을 다물었다.

“정말 보통 좋은 거 아냐. 중고등학교 때 이미 어지간한 투자는 성공했을 만큼 빠르다고. 계산하고 대비하는 거.”

그래서 한별은 지금 하나를 더 확인하기 위해 낚싯대를 드리운 상태였다.

지금껏 유성은 모든 사태를 수월하게 해결해 나갔다. 오메가 페로몬과 관련된 이야기도, 멤버들의 논란과 관련된 이야기도, 본인이 직접 터뜨렸지만 스캔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별이 눈앞의 태하와 시선을 맞췄다.

“형한테 일부러 운을 띄웠어.”

“어?”

“난 연기를 못 하니까.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한별은 유성에게 자신이 태하를 좋아한다는 식으로 뉘앙스를 흘렸다. 유성이 본 두 사람 사이의 썸이 진실이라고 확언한 것이다.

어차피 태하에게도 썸을 타자고 이야기한 상황이라 딱히 거짓은 아니니 들키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한별의 설명에 태하가 눈을 크게 떴다.

“난 유성이 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하고 싶어. 형이 자꾸…….”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니까.

처음엔 도움을 달라고 해서 움직였을 뿐인데, 어느새 한별은 자신과 주변에 설계된 것들을 속속들이 발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확신이 필요했다. 유성이 그저 머리가 좋아, 대비가 빨랐을 뿐이라고. 그러니 자신이 걸어온 모든 것이 유성의 설계가 아니라는, 그 확신이 필요했다.

물론, 자신이 하는 일이 유성이 설계한 일이라고 해도 미래가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자신이 원해서 길을 걷는 것과 다 계산된 상황에서 정해진 대로를 걷는 것은 한별 본인이 받는 감정의 차이가 생긴다.

유성이 계산한 모든 것을 자신이 그간 무감각하게 걷고 있었던 거라면 그만큼 등골 서늘한 것은 없었다. 유성이 정한 길에 자신은 그저 퍼즐처럼 남아 있었다는 뜻이 되어 버리니까.

지금껏 한별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이미 유성의 손에 정해진 거였다면…….

태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야. 한별이 네가 지금까지 이룬 건 네가 원해서 한 것이 맞아.”

“……무슨 근거로?”

그래서 확신이 필요했다.

한별은 어제부터 아무런 작업도 할 수 없었다. 그걸 봐 온 태하였기에 한별의 물음은 자신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 건넨 말이라는 가능성을 열어 뒀다.

“유성이 형이 우리 약속을 알 리가 없으니까.”

“아…….”

그건 맞다. 어린 시절, 태하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한별이 입을 벌렸다. 한별은 유성에게 훗날 작곡을 하고 싶다고 말했지, 태하와의 약속을 이야기하진 않았었다.

“그리고 네가 실력을 키운 건 네 능력이지, 형이 부여할 수 있는 게 아냐.”

그것도 옳았다. 한별이 여태껏 노력한 것들이지 남에게 받은 능력 따위가 아니었다.

“혹시나 형이 원한 길이라고 해도, 그냥 이해관계가 맞았던 거 아닐까?”

태하의 말에 한별은 심각해졌다.

그러게?

본인의 이득 없이 설계한 건 아닐 테다. 유성이 자신에게 길을 강제한 것도 아니니, 그냥 도움을 줬다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했다.

그래도 어딘가 무서울 정도라서 자꾸 생각에 빠져들게 됐다.

“그럼, 형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전부 대비한 걸까?”

“전부 대비한 게 아니라, 나중에 원활히 해결한 거 아냐?”

“그냥 보면 그렇게 보이지.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기묘한 해결이 너무 잦으니 헛생각이 드는 것이다. 유성이 전부 아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 뭐, 태하와의 관계는 전혀 생각지 못한 것 같으니 전부 아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 그 아웃스타그램 사건도 있지만…….”

한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가장 이질적인 게 하나 있어.”

“어떤 거?”

“예찬이 형 사건 때 말이야.”

한별이 화제로 올린 건 채널(Cha.N)의 막내인 예찬의 거짓 루머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예찬이 나오지 않은 학교를 뒤지며 실체가 없는 소문을 부풀려 갈 때, 유성이 가져간 중학교 졸업 앨범이 그 사건에 큰 도움이 됐다.

남들이 보면 ‘그게 뭐? 운 아니야?’ 하겠지만, 어떻게 기다렸다는 양 시기적절하게 졸업 앨범을 집에서 찾아갈 수가 있었을까? 일이 터질 것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게다가 우리 형, 초등학교 앨범은 집에 없거든.”

“어? 정말?”

“응. 고등학교 졸업 앨범도 내가 알기론 초등학교 앨범이랑 같이 있고.”

“중학교 앨범만 집에 있었단 거야?”

한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 졸업 앨범은 채널(Cha.N)의 숙소에 있다. 초등학교 앨범 역시 숙소에 있‘었’다.

“……어째서?”

“그야, 방송사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게 초등학교랑 고등학교 앨범이니까. 완전 어려서 앨범이랑 데뷔한 직후의 모습을 비교하기가 가장 좋잖아.”

하여 데뷔 초에 앨범을 가져갔었다. 초등학교 졸업 사진이 필요하다며 가져갔을 땐 데뷔 직후 지상파 예능에서 나왔다.

유성은 데뷔한 후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굳이 앨범을 다시 집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집엔 중학교 앨범만 남은 거고.

“팬…… 아니지. 사생들이 집에 막 들어오고 그럴 때, 초등학교 앨범이 망가진 걸로 알고 있어.”

이미 지상파에 자료가 남기도 했고, 동창이었던 친구들이 사진을 찍어 인증한 자료들이 인터넷에 남아 있으니 망정이지, 숙소에 쳐들어온 사생들이 유성의 졸업 사진을 앨범에서 오려 갔다. 하여 앨범엔 유성의 자리가 전부 텅 비어 있었다.

예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냥 ‘요즘 사생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으로 그쳤다.

“만약에 중학교 앨범까지 숙소에 있었다면?”

“그…… 자컨 때문에 형이 가져갔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근데, 애초에 앨범이 전부 망가진 상태였다면 자컨에서 아예 기획도 하지 않았겠지.”

아티스트의 논란과 욕설에 대한 보호는 회사의 일이지만, 자컨은 애초에 외주 제작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계약된 외주 제작 팀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컨을 잘 뽑아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촬영한 아이돌 자컨 자체가 자신들의 포트폴리오가 되는 시스템이니까. 멤버들과 인터뷰했던 내용들 기반으로도 자컨을 기획하는 편이니, 중학교 앨범은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거, 생각해 보면 앨범 안 가져가도 됐던 거였어.”

한별은 유성의 중학교 앨범이 나왔던 채널(Cha.N)의 자체 콘텐츠를 확인했었다.

‘멤버별 졸업 앨범이 나오는 건가?’ 하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추억을 판매한다는 그 주의 콘텐츠 내용에 맞게 멤버들은 대부분 옛날에 입었던 작아진 옷이나 사용했던 노트 등을 가져왔다.

“그거, 어떻게 끝났는지 알지?”

“어…… 유명하니까.”

채널(Cha.N)의 셋째, 넷째와 막내가 사실은 같은 학년이었다는 사실에 다른 멤버들은 큰 충격을 받고, 심지어 셋째와 막내가 같은 학교였다는 사실에 졸업 앨범은 무의미해졌다.

본인만이 가진 추억의 물품을 가져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예찬의 사진까지 있으니, 유성의 물건은 0원 처리가 된 것이다.

해당 회차의 개그 요소와 예찬의 논란 해명 및 과거 뚱뚱한 모습이 혼재되어 콘텐츠 너튜브 조회 수는 평소보다 뻥튀기가 되었다.

“만약에 형이 정말로 전부 계산한 거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한별이 떠올리는 생각의 마무리는 결국 이거였다.

물론, 편한 것이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거부감이 들었다.

탄탄대로가 좋은 건 안다. 하지만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넘어지고 실패하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경험이 될 테고, 결국 한별이 쌓아 가야 할 일이었다.

한별이 부모님께 그리고 유성에게 배운 것이었다. 본인의 일은 자신이 힘이 닿는 데까지 노력하는 것.

지금 한별에겐 믿음이 필요했다.

누군가 쌓아 준 성과 예쁘게 꾸며진 내부에 얌전히 앉는 인형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땅을 메워 허술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만든 작은 집을 원했다.

“그렇지만, 한별아. 애초에 편한 길을 찾았으면 네가 작곡을 안 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사업하는 모친과 대학교수인 부친. 그리고 머리가 좋아 무얼 해도 성공했을 형까지 있었다.

그러니만큼 자신을 갈아 내야 하는 직업군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한별은 너무도 작곡을 하고 싶었다. 하여, 하고 싶은 길을 잘 걸어가고 있음에도 불안함은 완벽하게 가시지 않았다.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은 특히나…….

“아, 구독자 더 늘었다.”

“또?”

“응. 만삼천 명.”

자신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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