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공모전 수상이나 작업한 곡의 판매 등은 한별이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유성도 부모도 친구도 그 누구도 자신의 일에 손을 얹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뿌듯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너튜브 채널은 한별과 태하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곳이다. 지금은 아주 살짝 보이는 외모에 대한 환상과 궁금증에 가파르게 올라가는 추세였다. 하지만, 그것도 태하의 노래 실력과 한별의 편곡이 좋지 않았다면 닿지 못했을 관심이었다.
성장이 실시간으로 보이는 상황.
한별은 자신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는 지금의 상황이 못내 불안했다. 반대로 혼자였다면 견디지 못했으리라는 생각 역시 들었다.
가끔은 궁금했다.
그런 시선들을 오롯이 혼자 받아 내야 하는 아이돌의 생활은 도대체 어떻게 이어 나가는 것일까? 자신은 여전히 자신의 사진이 돌아다니는 SNS 저 깊은 곳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태하야.”
“응.”
“너, 얼굴 보인 채로 노래하면 나도 밝혀야 하는 거겠지?”
태하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어.”
한별은 그 대답에 미소 지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담감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단호하지만 다정한 대답이 고마웠다.
그래, 아직은 괜찮다.
* * *
오랜만에 집에서 잠을 청한 유성이 한밤중 눈을 번쩍 떴다. 창밖으로 희끄무레한 빛만 번지는 어두운 새벽이었다.
“하…….”
땀에 젖은 옷을 보던 유성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상의를 들어 벗었다. 아무리 지구 온난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곤 해도 4월 중순의 새벽은 땀 범벅으로 깨어나기엔 이른 날씨였다.
유성이 몸을 일으키곤 느리게 방문을 열었다. 부모님은 평소처럼 계시지 않고, 자신이 원래 사용했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남들은 당연히 잠들었을 새벽. 유성은 떨리는 손으로 한별의 작업실을 열었다.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마우스를 달깍거리는 동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평소라면 새벽 세 시가 넘도록 잠들지 않은 동생에게 잔소리를 퍼부었을 유성이었다.
“형?”
한별이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유성과 눈이 마주치자,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한별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형.”
한별이 익숙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또 악몽 꿨어?”
유성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지만, 한별은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이기에 익숙하게 행동했다.
“괜찮아. 나 여기 있어.”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괜찮아.
한별의 몽글몽글하고 깨끗한 페로몬이 아주 옅게 흘러나왔다.
유성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형제여도 조금은 생리적인 거부감이 드는, 같은 오메가의 페로몬이었다. 그럼에도 유성은 안도하듯 눈을 감았다.
한별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 떠올랐다.
익숙한 상황이었다.
유성이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 무서운 영화를 본 이후 지금까지 종종 꾸고 있는 악몽 때문이니까.
* * *
오전 일정은 텅 비었고, 오후는 교양 강의만 두 개가 연달아 있었다. 새벽까지 내내 작업한 것도 모자라 불안에 사로잡힌 유성을 달랜 탓에 한별은 종일 피곤했다.
“다음 학기 시간표는 꼭 금요일을 비우려고.”
한별의 중얼거림에 태하가 미소 지었다.
“무슨 일 있었어?”
“별일은 아냐.”
“그래? 근데, 약간…….”
한별을 보던 태하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되게 옅은데, 그걸 알아챘나? 한별이 팔을 들어 자신의 코에 살짝 갖다 댔지만, 페로몬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카락 사이에 잔향이 남아 있는 것 같아.”
귀 가까이 고개를 내려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놀란 한별이 눈을 크게 떴다. 얘 진짜 페로몬 감지 능력이 끝내주네.
한별은 머리카락을 털 듯 손을 움직였다. 손짓을 따라 옅게 남았던 페로몬이 점차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뭐, 형 때문이지.”
“전에 말한, 그……?”
태하가 고개를 끄덕인 한별이 걱정되는 듯 미간을 좁혔다.
원래 사람이 가장 예민한 시기에 받은 충격은 오래 남는 법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면 충분히 감성이고 멘탈이고 예민한 시기인데, 그때부터 이어진 악몽은 유성을 여태 괴롭히고 있었다.
한별이야 가끔 두려운 표정으로 문을 여는 유성을 달래기만 하면 되지만, 유성으로선 지금껏 시달리고 있으니 꽤나 피곤할 것이다.
“되게 웃긴 게, 꼭 이때쯤 심해지더라고.”
“언젠데?”
“대충 내 생일 전? 4월 중순 넘어서 그래. 그때도 4월쯤이었어.”
“PTSD 같은 걸까?”
“그럴 수도……?”
유성이 처음 그런 행동을 보였을 땐 상담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나아지진 않았기에 지금도 가끔 병원에 들러 의사와 상담하는 편이었다.
그나마도 한별이 깨어 있을 땐 오래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그, 페로몬 때문에?”
“응.”
“자고 있으면?”
“…….”
한별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일단, 잠을 안 자. 밤새 뭘 중얼거리길래 한번 깬 적이 있는데…….”
뭐라더라?
한별이 미간을 좁혔다.
“하고 싶은 건 다 해도 된다고 했던가?”
평소 유성이 한별에게 하는 말버릇과 거의 일치했다. 한별은 여태 하고 싶은 걸 하고 자라 온 편이라 생각했기에, 왜 그런 이야기를 그토록 불안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형이 꾸는 악몽에서 내가 죽는 것 같더라고.”
“……뭐?”
“그쯤 나왔던 영화가 일가족이 죽는 내용이었는데, 그게 어린 마음에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 같아.”
기실 유성의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사람마다 힘든 부분은 다르기 마련이었다.
처음엔 놀랐고, 다음엔 고쳐 보려고도 했지만, 지금은 익숙하게 달래는 편이었다. 특히나 유성이 아이돌로 데뷔한 후로는 더욱 달래 주려고 노력했다.
한별은 잠시 피곤하면 끝이지만, 유성으로서는 스트레스일 테니까.
“그것뿐이야?”
태하가 한별을 바라보며 조심히 물었다. 한별은 입을 다문 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니 유성을 너무 몰아세우지 않기로 했다. 트라우마도 결국은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그 스트레스가 사라질 때까진 한별이 맞추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선 괜찮아. 전엔 내가 깨어 있었어도 계속 울었거든.”
아침이 되어 아무리 유성에게 이유를 물어도 유성은 왜 그랬는지 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별이 네가 그걸로 더 트라우마 생긴 거 아냐?”
“난 그다지?”
한별은 어깨를 으쓱였다.
유성이 우는 건 몇 번 본 적 없었다. 어렸을 땐 한별이 더 많이 우는 편이었고, 밤에 간혹 일어나는 그 일을 제외하면 유성은 울지 않았다.
[Pick, My Dol!] 1위를 했을 때도 멀쩡, 1위를 했을 때도 멀쩡, 첫 콘서트에서도 눈물이 살짝 눈에 맺히긴 했어도 멀쩡, 아파도 멀쩡…….
그렇게 눈물이라곤 없이 사는 유성이 가끔가다가 그러는 것이니 한별로선 걱정이 앞섰다.
걱정에 잠겼던 한별이 이내 생각을 비우듯 눈을 감았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냐. 내 앞길이나 잘 처신해야지.
“시간 남았으니까, 조금 자 두는 게 어때?”
다음 강의실은 멀지 않으니 잠시 비는 시간을 잠으로 채우는 건 어떠냐는 물음이었다.
“……내가 자면, 태하 넌?”
“난 네가 작업한 거 듣고 있을게.”
영상을 올린 지 이제 1주 조금 넘었다.
영상을 1~2주에 하나씩은 올려야 했다. 다음 곡은 이미 선정했고, 편곡도 거의 끝나 가는 상황이기에 태하는 편곡 MR에 맞춰 녹음을 준비해야 했다.
한별이 고개를 끄덕이곤 책상에 엎드리자, 가까이 앉은 태하가 한별의 앞머리를 살짝 넘겼다.
“잘 자. 이따 깨울게.”
응.
답인지 앓는 소리인지 확실하지 않은 소리가 울렸지만, 태하는 답하지 않았다.
* * *
태하가 보는 한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며 걱정할 시간에 다음 계획을 세우는 편이었다.
어찌 보면 고민할 시간도 없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나쁜 버릇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고민에 매몰되지 않아 회복력이 좋다는 장점이 있었다.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한별이 얼마나 피곤한 상황에 휩쓸렸는지가 확연히 보였다. 자신이 겪은 것들을 계속 되돌아보고, 되짚으니까.
평소라면 적당히 생각하고 지나갔을 텐데,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로 느끼는 듯 한별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댔다.
태하는 한별이 한참 누른 탓에 붉어진 관자놀이를 유심히 바라보다,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다지?’
태하는 담담한 그 말이 한별이 자신을 전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 탓에 나온 것이라 판단했다. 담담하게 행동하려 하고,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굉장히 여린 편이니까.
새벽에 유성이 울었다던가? 단정하고 다정하게 생긴 한별과는 달리, 유성의 외모는 날이 선 편이었다.
‘같이 울었겠네.’
유성이 울었다는 건 상상 가지 않았지만, 태하는 한별이 울었다는 건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한별은 자기 자신을 너무도 몰랐다. 그저 버릇처럼 입에 올리는 ‘괜찮다’는 말이 한별 본인을 괜찮다고 느끼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괜찮지 않으면서.
한별의 눈은 잠을 못 자서, 피곤해서 붉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닌 척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에 예민한 편이니만큼 유성의 감정에 같이 눈물 흘렸을 것이다.
아직은 어렸던 그 날, 미안함을 담아 한별에게 말을 꺼내자 울어 버렸던 때처럼 여전히 다른 사람의 감정에 휩쓸리는 한별이었다.
그런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있기에 표정은 최대한 무덤덤하게 꾸며 내려 하지만, 태하는 한별이 작업한 곡들을 들을 때면 그 예민한 감성이 느껴져 가슴이 아렸다. 이번에 편곡한 곡에서도 느껴지는 피곤함에 걱정이 들었다.
턱을 괸 태하가 한별의 이마와 눈가를 타고 내려오는 결 좋은 머리칼을 조심히 넘겼다. 썸이니 이 정도는 들켜도 괜찮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강의실에서 태하는 한별을 보며 쓰게 웃었다.
다행이라 생각한 관계는 역시 시간이 갈수록 아쉬움을 남겼다. 욕심이 났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한별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한별에게 해가 되는 일이면 마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유성을 돕기 위해 움직이는 한별을 돕고자 움직이는 것이지, 유성이나 채널(Cha.N) 멤버를 위해서는 아니니까.
특히나 이번 방송 촬영에 태하가 출현하기로 한 것은 ‘그저 유성의 친동생으로서 출연한 것이고 윤수와는 어떠한 감정의 기류가 없음’을 보이기 위한 블러핑이었다.
“사실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면…… 내가 나쁜 걸까? 한별아.”
한별에게 한발 다가서는 태하의 모습에 움찔하던 그 ‘알파’를 떠올린 태하의 눈빛이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