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넌 여전히 인기가 많아, 한별아.’
태하는 지금처럼 자신이 눈에 띄는 외모를 가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한별이 마음에 들어 다가오려던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걸음을 멈추는 경우가 잦으니까.
“한…….”
“아, 한별이한테 이야기할 거 있어서 오셨어요?”
“어? 어…….”
“죄송해요. 한별이가 밤에 잠이 부족하다고 해서요. 자고 있어요.”
그래, 지금처럼.
문을 열고 들어왔던 2학년 선배가 한별의 옆에 앉은 태하를 보고 굳었다가 애써 웃으며 문을 닫았다.
아는 얼굴이었다. MT를 가던 날, 한별의 옆자리에 앉은 그 선배였다. 단 한 번 위치가 겹쳤을 뿐인데 한별을 향한 관심을 숨기지 않던 사람이기도 했다.
“역시, 넌 진짜 사람들 시선을 너무 끌어.”
한별이 들었다면 말도 안 된다며 부인했겠지.
하지만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만큼 단정한 외모를 가진 한별은 카메라를 통해 보아야 현실적이라 말할 만큼 화려한 외모 탓에 말도 걸기 어려워하는 자신과는 달리,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얻어 냈다.
하지만 태하는 한별의 취향에 꼭 맞는 것 같은 자신의 외모를 물려준 부모님에게 감사했다.
당장이라도 부드러운 머리칼에, 눈동자를 덮은 눈꺼풀에, 하얀 뺨에 입술을 내리고 싶었다. 태하에게 중요한 건 자신이 아닌, 한별이 가진 감정이었다.
조금 덜 피곤할 때 다시 눈을 떠, 눈동자에 나를 담았으면 좋겠다.
태하는 자신도 모르게 올라간 입꼬리를 애써 내리다 고개를 돌렸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익숙한 기척이었다. 오늘 올 사람이 아니기도 했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안녕.”
윤수가 태하보다 한별을 먼저 눈에 담았다. 잠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듯 발걸음을 죽여,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는 다른 이들이 ‘곰’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커다란 몸에 무뚝뚝한 인상을 하고 있지만, 매체에서의 순한 이미지와 달리, 곰은 기실 사람을 찢는다. 태하는 윤수의 날렵하고 약삭빠른 사냥꾼의 면모를 이미 알아챈 후였다.
“오늘 오시는 날이 아니지 않나요?”
“재학 증명서가 필요해서.”
헛소리.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뗄 수 있는데, 고작 그 일로 학교에 나왔을 리가. 태하는 속이 뻔히 보이는 윤수의 말에 입꼬리를 올린 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신가요?”
“한별이 데리러 온 거기도 하고. 교양 수업 하나 남았다고 들어서.”
“한별이를 왜요?”
태하의 입술이 저도 모르게 내려갔다.
태하는 이래서 채널(Cha.N)의 큰형 라인이라는 두 멤버가 거슬렸다. 친형과 같은 멤버라는 이유로 태하에겐 힘겹게 허락되고 있는 한별의 곁을 그들은 너무도 쉽게 생각했다.
한별이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만 밝힌 ‘오메가’라는 이야기도 형의 일에 관련됐다는 이유로 너무도 쉽게 알게 된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성이 부탁. 근데, 깨우기가 어렵네.”
유성의 부탁이라는 말에 태하의 눈이 조금 더 가라앉았다. 그 형은 ‘또’ 배제하려는 거다. 자신이 떨어져 나가도록.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걸 이젠 아셔야 할 텐데.
“이따 수업 끝나고 주차장에서 기다릴게. 문자는 해 둘 건데, 이야기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태하는 순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달한다고 했지, 수를 쓰지 않는다고는 안 했다.
* * *
“다음 주에 올리려면 오늘 가녹음도 해 봐야 할 텐데.”
한별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곤 고민되는 표정을 지었다.
웬일로 유성이 자신을 불렀다.
소속사와의 계약은 6월이면 만료가 되니, 지금이면 한참 바쁠 시기였다. 심지어 스케줄은 계약 이후로도 조금 더 잡힌 것으로 알고 있었다.
상호 간의 동의가 있으니 진행한다는 공식 입장이 있긴 하지만, 한별이 보기엔 상황이 애매해 보였다. 이게 같은 모그룹의 힘이 있기에 스케줄을 그대로 진행하는 것인지, 아니면 레이블 설립에 차질이 있어 기존 회사가 그대로 붙잡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바쁜 와중에 자신을 불렀다는 건 무언가 일이 있다는 소리였다.
한별이 손을 들어 눈을 살짝 비볐다. 태하가 손을 뻗어 한별의 양 손목을 붙잡아 내렸다.
“많이 피곤해?”
“아냐.”
눈이 조금 침침한 느낌이 들었다. 태하가 가방의 작은 칸에 손을 넣어 인공 눈물을 꺼냈다.
“……도라×몽?”
“나라고 다 가지고 있진 않아.”
태하가 웃으며 하는 말에 한별도 푸흐흐 웃음을 지었다.
몸을 일으킨 태하가 한별의 의자 뒤에 섰다.
“고개 들어 봐.”
고개를 뒤로 젖히자 양 눈에 차가운 방울이 톡톡 떨어졌다. 조금 부었던 눈이 가라앉는 느낌에 한별은 편히 눈을 깜빡였다. 흐렸던 시야가 눈의 깜박임에 따라 조금씩 돌아왔다.
한별이 핸드폰을 들고 고개를 다시 갸웃거렸다.
“이번 교양 수업 끝나고 나오라는 연락이지?”
“응.”
굳이 윤수와 번호 교환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같은 학과라는 이유 탓에 번호를 저장해야 했다.
같은 수업을 듣기도 하고, 윤수가 스케줄로 인해 강의를 듣지 못할 때면 과제 내용 전달 임무는 자연스럽게 동료의 동생인 한별에게 내려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번 학기만 지나면 연락이 줄어들 테다. 윤수에게 남았다는 강의는 이번 학기의 피아노와 다음 학기의 앙상블. 굳이 같은 공연 팀을 하지만 않으면 마주칠 일은 없을 예정이었다.
하여, 한별은 다음 학기에 절대 윤수와 같은 팀이 되지 않도록 모든 힘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쯤 되면 자신이 오메가라는 소식도 주변에 많이 퍼졌을 테니, 괜히 엮였다가 태풍에 휘말리는 건 사양이었다.
“근데, 뭘까. 형이 날 부를 일이 없거든.”
“그래?”
“설마, 몸이 또? 싶긴 한데…….”
하지만 그랬으면 집으로 찾아와서 다시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교양 과목 강의실로 이동하던 한별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핸드폰을 들었다. 너튜브 앱이 액정에 떠오르자, 같이 확인하려는 듯 고개를 내린 태하가 미소를 지었다.
“5만이나 10만 되면 질문 받기로 했지?”
“……이 기세면 곧 하겠는데.”
“그러게.”
이게 말이 되나?
영상 하나 올라갔고, 곧 두 개 올라갈 예정이다. 그런데 가파르게 올라가는 구독자 수가 무서울 정도였다.
역시, 얼굴이 다야.
한별은 흘깃 시선을 올려 태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실감 없는 외모였다. 연예인들 외모를 말하는 이야기 중 ‘카메라가 다 담지 못하는 미모’라는 게 있다. 그건 분명 태하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복을 입고 머리도 했다. 외모를 최대한 감추지 않으려 헤드셋이 아닌 이어폰을 착용하기까지 했다.
한별이 너튜브 채널의 성장은 무조건 태하의 외모라 생각하고 있을 때, 태하가 2만에 가까워지는 구독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 우리 학과 사람들이 구독 눌러 준 게 좀 컸던 것 같아.”
“그런가?”
“거기다 학과 선배 중에 20만 되신 분 계시잖아.”
“아…….”
“채널 둘 다 노래 커버라, 관련 영상으로 꽤 뜬 것 같더라.”
그간 영상을 본 사람들이 온갖 커뮤니티로 가져가 화제성 가득한 글을 올린 덕에 더 시끌벅적한 것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하의 말대로라면 노래 커버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선배의 위력도 적지 않다는 뜻이었다.
“선배님이 그 최근에 올린 커버 영상에…….”
태하가 핸드폰을 들어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해당 영상 뒷부분에 들어가는 추천 영상에 자신들의 너튜브 채널 영상이 올라온 것을 보곤 한별이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해 주셨더라고. 말씀 안 해 주셔서 몰랐는데, 이 링크 타고도 꽤 많이 오신 것 같아.”
예로부터 한국인은 감사하면 밥을 사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했다.
“밥 사야겠다.”
한별의 진지한 말에 태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뜻밖의 홍보를 받긴 했지만, 끊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구독자를 모았다는 건 채널 성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19920101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선 비극이라는데 씽의 목소리+코스모의 편곡은 성은이 망극이다... 이것이 극... Rock?
아메리카노
들리니? 지구가 고장나는 소리, 파도가 너희의 노래를 듣다 떠나가지 못할 것 같잖니...
영상이라곤 하나뿐인데, 주접 댓글 모음집이 되는 것 같다.
핸드폰을 확인했다가 실시간으로 달린 영상 댓글이 하나둘 팝업으로 올라오자, 한별은 웃으며 태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 얼굴을 빤히 보던 태하가 한별의 손목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웃는 것을 그냥 놔두다간 수업에 늦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인기가 많지 않은 교양 과목이다 보니 학생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업을 허투루 들을 생각이 없는 한별과 태하였기에 자리에 앉아 책과 노트를 펼쳤다.
형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업이 끝난 후 가면 알게 될 것이다. 한별은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는 교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집중했다.
* * *
“……같이 왔네?”
“네? 네.”
한별은 윤수가 태하를 힐끔 바라보고 꺼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가녹음 해 보기로 했는데, 태하 시간이 붕 떠서요.”
기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윤수의 차에 자신 혼자 타고 간다? 나중에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인생 조지는 일이었다.
형이 아닌 사람과는 절대 무엇으로도 엮이면 안 된다. 집으로 돌아올 땐 무조건 유성에게 차를 대령하라 말할 생각이기도 했다.
뒤에 함께 앉은 태하와 한별을 룸미러로 확인한 윤수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형이 저를 왜 불렀는지, 혹시 아세요?”
“이번 촬영 때문인 것 같은데……. 직접 이야기하는 편이 낫겠다고 했거든.”
“무슨 일 때문인지는 아예 모르시는 거고요?”
“응.”
그럼 채널(Cha.N)엔 영향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구태여 불렀다는 건 한별과 깊이 관련된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관련된 거라면 촬영 때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