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이상이 있나?’
촬영본은 이번 주 주말 방영될 예정이었다. 유성의 스캔들과 관련된 해명도 어느 정도 풀렸고, 해명에 노를 젓듯 한별과 유성의 모습이 전파를 탈 것이다.
한별의 얼굴이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유성이 데뷔한 지 5년이나 흐른 만큼 이미 얼굴을 숨기기도 힘들 때가 되긴 됐다.
그동안 유성이 아예 동생이 없는 척, 혹은 한별이 유성의 동생이 아닌 척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말을 조금 꺼렸기에 한별의 얼굴이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는 것이 늦어졌을 뿐이고, 연습생 소동 탓에 얼굴을 아예 감추기란 물 건너갔다.
물론, 요즘은 무슨 생각인지 유성이 그 이후로 방송에 적극적으로 한별의 이야기를 언급하긴 했다.
‘이번엔 동생 유명인 만들기인가?’
한별은 한숨이 나오지만, 일단은 놔두기로 했다. 너튜브 구독자가 지금 속도대로 늘어 채널이 더 유명해지면 어차피 팔리게 될 얼굴이었다. 미리 어색하지 않게만 하지, 뭐.
차는 느리게 움직였다. 한별의 멀미를 알아서인지 윤수가 흔들림을 되도록 최소화하고 있었다.
“선배님, 운전 되게 잘하시네요.”
태하가 입을 열자, 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멤버 중에선 내가 가장 잘해.”
아니라는 말도 없이 칭찬을 그냥 받아먹는다. 태하는 눈을 끔뻑이며 웃음을 지었다.
“운전을 선배님께 배워야겠어요. 제가 본 중에 가장 잘하시는 분께 배워야, 저도 훗날 이렇게 운전하죠.”
“…….”
“나중에 면허 따면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래.”
대화 내용만 들으면 선후배 관계가 참으로 훈훈하네, 생각할 테다.
‘근데 분위기가 왜 이러는 건데.’
한별은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훈훈한 대화 내용과는 완벽하게 다른 감정이 느껴지는 탓에 눈치를 보던 한별이 이내 포기한 듯 정면에 시선을 맞췄다.
“아까 약 먹어 두길 잘했다. 그치, 한별아.”
“응.”
마지막 교양 수업 전, 태하가 내민 멀미약의 효과가 확실했다. 미리 먹어 둔 덕에 차에 오르고 시간이 조금 지나, 거의 도착한 상황임에도 울렁임이 적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한별도 처음 보는 곳이었다. 한별이 당황하는 모습에 같이 내린 태하가 윤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 회사야.”
“……네?”
회사요?
한별과 태하의 표정이 멍해졌다.
* * *
“그래서, 먼저 요청하는 거지.”
“아니, 아니…….”
한별과 태하는 자신의 앞에 놓인 몇 장의 종이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근데…… 이런 경우가 있어?”
“은근히 있어. 물론, 대형 소속사에서 하는 경우는 못 본 것 같긴 한데.”
“뭐, 우린 레이블이니까.”
유성의 말을 부연하듯 근처에 앉은 단영이 웃으며 입술을 뗐다.
“……진짜 당황스러운데.”
“바로 하라는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아냐. 근데, 기왕 하는 거 우리 쪽이 낫지 않아?”
한별이 혼란스러운 탓에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돌렸다.
“넌 이런 거, 들은 적 있어?”
“그…… 전에 구독하고 있는 너튜버 하나가 들어간 건 봤어. 우리 일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태하의 목소리도 애매하게 흐려졌다. 확신 없는 태하의 목소리가 새롭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신기한 일이었다.
“회사 이름은 뭔데?”
“블루 라임 사운드.”
라임이면 라임이지, 블루는 왜? 한별의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멍한 한별의 표정을 보던 단영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그…….”
“우리 블루 라임 사운드에 싱 코스모가 합류했으면 한다는 거지. 너튜브 크리에이터로.”
돌연 유성이 불러서 와 보니, 한별도 태하도 예측하지 못한 신기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별도 처음 듣는 일이었다. 갑작스레 커진 너튜브 채널에 관련 소속사를 아예 찾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연예 기획사로 들어가는 건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물론, 꼭 너튜브 크리에이터가 너튜브 MCN에 들어가야 활동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었다. 애초에 너튜브 채널은 소속이 없이도 활동 가능한 개인 채널이니까.
프로게이머 출신의 스트리머가 자신이 몸담았던 게임단의 스트리머가 되는 케이스도 있었고, 연예인들이 MCN 없이 소속사와 함께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한별과 태하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기에 연예 기획사는 애초에 생각도 안 했다. 훗날 너튜브 채널이 더 커져서 MCN에 들어가야 한다면 아몬드TV나 마인박스 같은 곳에 소속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도는 했지만.
“물론,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니긴 해. 빨리 결정하면 좋지만, 그래도 충분히 생각해 보고 결정해 줬으면 해.”
어차피 법적인 일 처리를 위해 회사가 있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급격히 커지는 너튜브 채널에 MCN을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 본 건 사실이었다.
사실, 저작권과 관련된 사항이 복잡하게 느껴진 탓에 두 사람은 커버 영상에 관한 수익 창출을 아예 포기한 상황이었다.
“회사에서 저작권 사용 관련한 것도 처리하기 좋잖아.”
“그게 돼요?”
“안 될 게 뭐 있어?”
저작권 사용 허락 받고 리메이크 앨범으로 내 버리면 된다며 단영이 웃음을 지었다.
“다른 MCN도 그런 것쯤 충분히 해 주겠지만, 너희 둘 다 일반 너튜브 채널이 아니라 노래 관련이잖아. 기왕이면 음악 관련 회사인 게 좋지.”
그 말대로 이미 노래 커버 영상을 올리는 채널과 많이 계약해, 법적인 처리를 하는 회사에 들어가는 편이 한별과 태하의 입장에선 좋긴 좋았다.
한별이 태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정할 것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았다. 당장은 스트리머와 관련된 계약이나, 추후 괜찮다면 아티스트 계약을 노려 볼 수도 있으니까.
“궁금한 게 있어요.”
서류를 보던 태하가 종이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얼마든지.”
“솔직히 계약 관련한 일 때문에 연락한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한별인 형이 불러서, 그리고 이번 촬영 때문인 것 같다고 했거든요.”
“그래?”
“너튜브 채널은 한별이랑 제가 같이 만들고 있는 곳이잖아요?”
한별 역시 태하와 같은 생각이었다. 기실 촬영 관련한 사항이라면 한별만 와도 됐다. 하지만 너튜브와 관련된 거라면 태하도 동석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유성은 한별만 쏙 부르지 않았었나.
“우리도 원래 이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어.”
단영이 흘깃, 유성을 보았다. 역시 본론은 따로 있나 보다. 그럼 진짜 촬영과 관련된 이야기인가?
한별이 고개를 갸웃하자, 유성이 난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방송사에서 너희 둘 너튜브 채널을 알았어.”
“뭐? 그걸 어떻게 알아?”
한별이 미간을 좁히며 목소리를 키우자, 유성이 고개를 열심히 저었다. 한별이 자신을 의심한다고 생각한 듯 보였다.
“형이 안 그런 거 알아. 형한테 화낸 거 아니니까, 당황하지 말고.”
유성이 계획한 일이라면 한별이 화를 낼 것을 알고 미리 선수 쳐서 설득했을 확률이 높았다.
유성이 애매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었다. 아직은 퍼지지 않은, 어떤 커뮤니티의 글이었다.
제목: 메te오 동생 맞지 않나?
작성자: ㅇㅇ
아까 그 글 삭제된 거 보면 가능성 있는데?
댓글
하긴 데뷔할 것 같다고 한참 시끄럽더니 지금은 조용해졌잖아 일반인이라 사진도 많이 삭제됨
└ 그럼 co스mo = 망성?
└ ㅇㅇ
데뷔하네마네 하다가 결국 너튜브 스타로 전환했냐고
└ 작곡할 수 있다잖아ㅋㅋㅋㅋ 달달한 저작권 포기 못하지
└ 아 ㄹㅇㅋㅋ만 쳐라
└ ㄹㅇㅋㅋ
한별이 ‘이게 왜?’ 하는 얼굴로 유성을 바라보았다.
“시끄럽게 퍼진 것도 아니고, 그냥 글이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영상이 남아 있잖아.”
“그게 왜…….”
“이번에 태하가 노래를 했고.”
“아……!”
비교군이 나와 버렸단 뜻이다.
너튜브 영상은 다른 사람의 노래를 편곡한 것이고, 방송에 나올 노래는 한별이 작곡한 것이기에 비교군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노래는 달랐다. 둘 다 노래한 사람이 같으니까. 아무리 장르에 따라 목소리 높낮이나 창법을 다르게 한다 해도, 소위 ‘쿠세’라고 부르는 버릇은 남는 법이었다.
특히 한별은 사진이 하나기에 제대로 비교할 수 없지만, 태하의 경우는 달랐다. 노래하며 보인 버릇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다.
숨을 길게 빼며 고개를 드는 것이나, 노래를 녹음하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흔드는 건 습관이기에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상을 따로 찍어 노래를 얹긴 했으나, 목소리와 입 모양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 영상을 찍을 당시 음소거를 하긴 했어도 노래를 부르긴 했다. 그러니 버릇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예상하기 너무 좋아서…….”
“……그러네.”
‘싱’을 태하로 둔다면 ‘코스모’가 한별인 것도 예측하기 쉬웠다. 지난번 촬영 때 한별의 친구로 나왔고, 친한 것이 확실한 데다, 작·편곡이 특기인 것이 설명으로 나갈 예정이니까.
방송계 사람들의 눈치는 기민하기 그지없었다. 화제가 될 만한 것들은 물고 놓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유성 역시 한별과 태하의 너튜브 운영을 알리기엔 아직 구독자가 너무 적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편집에서 그 내용을 최대한 빼려 했지만, 방송국 생각은 다른 듯 보였다.
“대체 왜?”
“최근 너튜브 성장세를 봤나 봐.”
너무 빨리 구독자가 늘어난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됐다. 영상이 올라간 지 이제 곧 2주 차가 된다. 첫 영상을 올렸던 때와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올릴 생각으로 준비 중이었다.
녹음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으니 녹음이 끝나면 영상 촬영도 금방이었다. 하루 이틀만 더 작업하고 모레 올리려 했는데 상황이 이상해졌다.
“방송에서 알린 후에 영상 나오면 버즈량 미치겠네.”
“……그렇지.”
방송으로 인한 버즈량인지, 이미 화제가 된 너튜브 채널로 인한 버즈량인지 구분이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한별과 태하의 너튜브 채널은 아직 얼굴을 밝히지 않아 온갖 주접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방송에서 해당 채널을 알리게 되면 그 내용들은 순식간에 사그라들 것이다. 얼굴을 보이지 않았기에 받은 관심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