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대놓고 채널(Cha.N)의 곡, 심지어 데뷔 앨범이었다. 앨범 타이틀이 아닌 커플링 곡이라, 짧은 활동 기간에 채널(Cha.N) 팬들이 깊게 앓은 곡이기도 했다.
한별이 MT 때 불렀던 Nice Night처럼 신나는 곡도 있긴 하지만, 채널(Cha.N)의 곡은 대부분 콘셉트가 강렬했다. 멤버들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강하고 날카로웠던 탓이다.
하지만 채널(Cha.N)의 데뷔 초는 리더인 단영을 제외하곤 미성년자가 넷이나 껴 있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섹스 어필은 고사하고, 잘못했다간 미성년자 상품화 논란이 올라오기 딱 좋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소속사는 그룹의 분위기를 소년틱 하게 밀고 나갈 생각이 없었다. 하여 채널(Cha.N)의 모든 곡을 강렬하게 뽑았다. 나중에 더 강한 섹시 콘셉트를 위해 전체적으로 파워 있게 구성했다.
그만큼 홀로 조용히 부르면 맛이 살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었다. 노래는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고, 무대는 강한 댄스가 눈길을 사로잡았으니까.
[Pick, My Dol!] 초반에는 프로그램 타이틀곡의 안무만 간신히 숙지하던 유성이 프로그램 후반으로 갈수록 메인 보컬과 실력을 겨루고, 당당하게 댄스 브레이크에 참여하는 모습에 난리가 났으니 가능한 콘셉트이기도 했다.
19910101
아니;;; 씽 노래는 알겠어. 근데 랩은 도대체 왜 잘해?;;; 아니;; 아니 나 지금 좀 땀남;; 누가 내 땀 좀 말려줄 사람;;;
해탈
01:33 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 씽 손 저거 crash 안무냐? 각 살아 있는 거 미쳤냐 진짜
레레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춤까지 잘춘다? 왜 UM 지하 연습실이 아니라 여기 있으신 거죠? 그래도 너튜브에 나타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잉싸되는법
02:12 살짝 보이는 입꼬리
└ 선생님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받으세요
그리고 태하는 채널(Cha.N)의 노래를 너무도 잘 소화해 냈다.
분위기를 위해 학과의 합주실과 마이크 스탠드를 빌려 촬영을 했다. 합주실 조명은 어두웠다. 하여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실루엣만은 확실했다.
태하는 노래에 맞춰 주요 안무까지 섞었다. 뒷모습이 아닌 앞모습, 그리고 노래에 맞춰 어두운 의상까지 갖춰 입었다. 깊게 눌러쓴 페도라에 얼굴은 대부분 그림자에 가려졌다.
그러다 보니 악플러들이 힘을 쓰지 못할 정도로 댓글 창은 순전히 영상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 났다.
사유란
아 미리 구독 눌러놔야 한다고 얘넨 좀 있음 천상계 갈 애들임
J Joon
중간중간 코스모 미쳤냐고... 코스모 진짜 아니, 진짜 미쳤냐고 씽만 대박인 줄 알았는데 코스모는 도대체 이유가 뭔데? 우리 심장 터져 뒤지라고?
존잘을 보면 욕하는 개
시바 119 불러
You R My Destiny
나 지금 심장 부서짐 씽이 crash 부르길래 사고난 줄 알았는데 씽이 코스모랑 같이 손잡고 나 들이받은 거다. 이 새끼들이 진짜로 crash 해 버리네? 보험청구는 어디로 하면 되냐?
머쓱타드
코스모... 코스모 손 미쳤니...? 아니 손도 존나 잘생겼네 아니 tlqkf 무슨 일이야
└ 죄송한데 선생님 변태신 것 같아요
└ 죄송한데 정확히 보셨습니다. ㅅl1벌 내가 한 마리 짐승이여,,;
업로드 한 두 번째 영상까진 태하만이 움직였다.
하지만 세 번째 영상엔 한별이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함께 삽입됐다. 악기야 학교에서 빌릴 수 있고, 한별이 연주가 가능하기에 내밀 수 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한별은 먼저 연주 영상을 찍고, 그렇게 만들어진 음원을 다듬어 합주실에서 틀었다.
녹음 후에 영상을 촬영한 앞선 영상들과는 달리, 만든 MR에 맞춰 촬영하며 녹음까지 진행했기에 음질 자체는 앞선 영상들보단 조금 거칠었다.
핳홓힣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형 이름값 소리 하는 새끼들은 귀가 막힌 거냐ㅋㅋㅋㅋㅋㅋㅋㅋ
정아
형 이름값 소리 하는 놈들 제발 니들 노래 너튜브에 올려 줘라^^ 비교해 보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만큼 라이브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기에 유성의 이름값 가지고 너튜브 시작했다는 악플러들은 더더욱 힘을 쓰지 못했다.
“좋네.”
한별이 손을 살짝 올리자, 태하가 제 손을 부딪쳐 손뼉을 쳤다.
직접적인 대응은 일절 하지 않는다. 그저 손을 대면 터질 만큼 커진 반응을 역이용할 뿐이다. 그리고, 방법은 형에게 배웠다.
당연히 유성이 직접 가르친 건 아니었다. 동생은 형을 보며 자란다던가? 한별은 그저 유성이 했던 행동들을 응용했을 뿐이다.
물론, 악플에 아예 대응하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소속된 회사는 없지만 전부 캡처했고, 구독자들이 메일로 보낸 pdf 자료들도 고스란히 저장 중이었다.
‘형의 픽마돌 출연 때의 상황을 고스란히 내가 겪게 될 줄이야.’
자비로운 이미지 같은 건 개나 주라지.
한별은 자신만 욕하는 게 아니라, 태하를 향한 욕도 가득하기에 일절 자비를 보이지 않기로 했다.
자신을 향한 욕은 참을 수 있었다. 아무리 형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악플러들은 믿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든 방송 때 티 내지 않으려 했는데. 태하의 노래도 노래지만, 한별이 작업하던 영상이 참고 자료로 사용되며 이미 너튜브나 인터넷에 상주하는 음악 분석가들에게 낱낱이 분석되고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영상이 올라오면 그 이미지가 바뀌리라 생각했다.
“편곡이 멋있어서 그런 거야.”
“아니지, 네가 잘 불러서 그런 거지.”
태하의 음역대에 맞춰 편곡한 것은 한별이지만, 노래 자체를 많이 바꾸지는 않았다.
태하만 담기던 영상에 한별의 연주 영상까지 들어가 화제성을 더 올리긴 했지만, 보컬 커버 영상만큼의 파괴력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결국, 태하가 있었기에 써먹을 수 있는 패였다.
노래만 불러도 분위기로 전부 커버할 수 있는데, 태하가 군데군데 핵심적인 부분에서 춤까지 추며 영상이 더 대단해졌다.
“좋아요 눌리는 숫자 봐…….”
아웃스타그램과 파랑새, 푸른책에 공유된 이 영상에 관한 미친 듯한 호응이 오고 있었다. 짧게 공유되는 SNS 앱의 특성상, 한별보단 태하의 모습이 클립되어 많이 공유되고 있었다.
한별이 공유되는 영상에 [좋아요] 표시를 하며 미소 지었다.
“네가 잘생겨서 시너지가 난 거지.”
한별의 담담한 칭찬에 태하가 눈을 굴렸다. 옅게 붉어진 태하의 뺨을 보며 한별은 뿌듯하게 웃었다.
조금 더 태하에게 잘 맞는 노래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별에겐 여전한 꿈이었다.
“아. 근데, 한별아.”
“응?”
“댓글 양상이 좀 바뀐 거 알아?”
“……욕?”
“아니, 기존 구독자분들 쪽.”
뭐가 바뀌었는데?
한별이 가까이 다가오자 태하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곧 핸드폰을 쥐지 않은 손을 한별의 어깨에 올렸다.
“여기.”
댓글을 보던 한별이 눈을 크게 떴다.
처음엔 온갖 주접으로, 다음은 어그로를 가져온 악플러와 싸우는 노선을 잡았던 구독자들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영상부터 댓글의 분위기가 완벽히 달라졌다.
잇쏘영
한,별? 모르겠고 여긴 씽이랑 코스모임. 암튼 그럼.
딱복
아 씽이랑 코스모라고.
Romance
씽이랑 코스모 많이 컸네. 아이돌 동생이랑 닮았다는 이야기도 듣고
“이거…….”
어디서 많이 보았던 상황이었다. 다 알고 있지만, 애써 모른 척해 주겠다는 모양새가…….
몇 년에 걸쳐, 소위 ‘부캐릭터’를 만드는 예능이 인기를 끌었다. 부캐를 만들었을 때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본체’는 절대 모르는 척해 주는 것이었다.
한별과 태하는 ‘싱’과 ‘코스모’가 자신들이 아니라고 선언하지도 않았고, 맞다고 밝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전부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비꼬듯 시작된 한 댓글이 원인이었다.
YeJin
지들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게 됨? 근데 지들이 아니라고는 한 적 없음
어, 그러네? 하는 식으로 시작됐던 댓글에 조금씩 드립의 낌새가 스며든 것이다.
제믐
어? 그럼 아닌가보네~ 아니라고 해 주는 걸로 하자~
└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 주는 건 뭐야
아메리카노
그 최모씨랑 지모씨 아니라고
└ 애써 아닌 척해 주는 거 보소 딱 봐도 맞는데
└ 아 새끼 눈치없네
강근
최모랑 지모는 볼드×트야? 왜 직접 안 씀?
└ 너도 안썼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들은 너무 높은 분들이라 씽과 코스모가 넘볼 수 없는 사람들임. 현실 사람을 너튜브로 데려오지 마라.
이제 한별과 태하의 이름은 말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거나 ‘싱’, ‘코스모’와는 다른 엄청난 인물이 되기도 했다.
이게 댓글을 다는 사람들 사이의 유행이 되어 버리자, ‘태하, 한별≠씽, 코스모’라는 공식까지 등장했다.
오히려 한별과 태하에 관한 내용을 댓글로 올리려는 이들의 아래로 [씽스라이팅, 코스라이팅을 멈춰 달라]는 댓글까지 생겨, 이젠 애써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식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특히나 태하는 아니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방송 장면에 노래하는 모습이 나왔고, 똑같은 버릇이 담긴 세 번째 영상을 올렸다.
실력으로 악성 댓글을 전부 밀어 버리자는 포부로 올린 거였는데, 페도라로 얼굴을 꽁꽁 숨긴 모습에 몇 년 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천을 뒤집어쓰고 다른 이름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아티스트와 연관 지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싱 코스모’의 너튜브 채널에서 태동한 부캐 밈은 이제 구독자들끼리의 약속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다 알면서 애써 모르는 척 눈을 감는 모습에 웃음이 터진 건 한별과 태하뿐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