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67화 (67/78)

67화

“가방 가져왔어.”

“아…….”

고마워.

한별이 애써 침착하게 답했다. 가방을 넘겨받곤 생각난 듯 주머니를 뒤지자, 태하가 가방을 가리켰다.

“지갑, 가방 안에 넣어 놨어.”

“하…….”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단영의 목소리가 사라진 이후,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달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택시 온대.”

달려 나오면서 택시가 잡히지 않아,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지나가는 택시를 또 잡을 뻔했다.

“그런데, 테러라니?”

태하가 한별을 달래듯 물었고, 한별은 고개를 저었다. 저 역시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 테러? 총기 소지는 불법이고, 무엇보다 아이돌과 범죄는 연관 짓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지금 채널(Cha.N)은 스케줄이 거의 없었다. 어떻게든 StarV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앨범을 성공시켜 좋은 감정으로 끝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계약 해지 및 레이블 설립. 채널(Cha.N)의 이동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소속사는 어떻게든 자신들이 이렇게 케어를 잘하고, 아티스트에게 쿨하고, 멋지게 행동한다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

게다가 마지막 앨범을 화려하고 멋있게 성공시켜 채널(Cha.N)이 레이블로 빠져나갔을 때, 소속사에 있을 때보다 기획이 별로라는 뒷공작이라도 하기 위해선 지금 강하게 나가야 했다.

신인 그룹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지금, 기획사 이름값을 위해 채널(Cha.N)의 커리어 하이가 무조건 StarV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자본과 기획을 때려 부은 것이다.

그런데, 테러라니. 무슨 테러?

그 단어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것들이 죄다 영화와 드라마 등의 이미지인 탓에 지금 유성이 어떤 상황인지가 도통 상상되지 않았다.

생각은 자꾸 나쁜 쪽으로 향했다.

안티가 칼이라도 들고 나타났나? 그래서 형이 다쳤나? 병원이면, 정말 큰일이라도 난 건가? 형이 못 일어날 만큼 다친 거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전화를 그렇게 많이 한 걸 보면 병원이 아니고, 혹시나…….

“한별아.”

태하의 손에 붙잡혀 택시에 오른 후에도 부정적인 생각을 이어 가던 한별이 태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나, 안 괜찮아. 안 괜찮아, 태하야. 형이 진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다쳤으면 어떡해.

한별이 이를 꽉 물었다. 나쁜 쪽으로 뻗어 나가는 생각 때문에 태하의 위로가 마음에 닿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악문 이가 아프지만 풀리지 않았다. 그만큼 불안하고 초조했다.

“괜찮을 거야, 한별아. 그러니까…….”

얼른 택시가 병원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울지 마.”

한별의 머리에 커다란 손이 닿았다.

괜찮을 거라는 말은 여전히 마음에 닿지 않았다. 지금 한별은 태하의 어깨에 눈을 대고, 간신히 숨만 내쉬고 있는 상태였다.

또 다른 손이 이번엔 등에 닿았다. 토닥토닥, 느리게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오히려 눈물이 쏟아졌다.

“괜찮을 거야. 인터넷에 올라온 게 없어.”

“…….”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고,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면 기자들이 먼저 난리를 쳤을 거야. 회사에서도 그런 건 숨기기 어려울 거고.”

한별이 입술을 달싹였다.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 회사에서 막은 걸지도 모르지 않나.

하지만 한별은 태하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 정도로 심각한 것이 아니라서, 그래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 자신에게 바로 전화를 한 것이라고…….

* * *

“한동안은 안정을 취하도록 할게요.”

“…….”

그게 끝이었다.

유명인이라 응급실 치료는 조금 힘들었다. 곧장 1인실, 그것도 사람들이 오기 힘든 VIP 병실로 이동됐다.

“그러니까…… 뼈에 실금이 갔다는 거죠?”

“응.”

“애가 무슨 낙법 하듯이 움직이는데…… 와, 어디서 스턴트 배웠나 싶더라니까.”

윤수가 답하고, 단영이 퀭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유성은 생각보다 피를 많이 흘리긴 했다. 테러라는 표현이 알맞을 만큼, 범인이 실제로 칼을 들고 설쳐 댔으니까.

“맨 처음엔 차 끌고 나타나서 얼마나 기겁했는데.”

“……차에 치일 뻔했다는 거예요?”

“응.”

예찬과 세현이 잠들어 있는 유성의 옆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가장 눈물 많은 멤버와 막내이기에 맏형과 둘째는 말리지 않고, 원 없이 울게 놔두는 중이었다.

그리고 한별 역시 그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 중이었다.

“근육이 놀란 것도 있는데, 그건 윤수 잡아당기느라 벌어진 일 같아. 윤수가 좀 무거워야지.”

“어, 예…….”

“미안해…….”

한별이 입을 달싹이자, 윤수가 민망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무거운 사람이긴 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래요?”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한참 이상한 편지 보내던 사람이야. 처음 편지를 받은 건 데뷔 초인데, 이야기하는 걸 들어 보면 픽마돌 때부터 주시했다나 봐. 꿈에서 봤다고 했던가? 꿈속에서 약속한 대로 찾아갈 테니 반지를 받아 달라는 식으로……. 회사에서 매번 막았었지.”

편지는 회사 선에서 잘라 냈다. 데뷔 직후를 제외하면 멤버들 역시 한 번도 그 사람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없었다.

“인연이니 당연히 알아볼 거라는 둥, 내가 당신의 알파라는 둥 얘기를 해서 어이가 없더라. 우리 멤버 중엔 오메가가 없는데.”

단영이 미간을 좁혔고, 한별은 괜히 움찔 몸이 떨렸다. 말만 하지 않는 것이다. 속이는 것이 아니니, 여기선 말을 돌리는 것이 나았다.

한별이 입을 열기 전에 태하가 선수 치듯 물었다.

“그럼, 누구를 노린 건지는 모르는 거예요?”

“아, 그건 밝혀졌어.”

단영의 시선이 울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세현이 형?”

“아니, 예찬이. 우리 중에선 가장 작잖아. 그 사람한테 예찬이는 베타라고 몇 번을 얘기해도 믿질 않더래. 그래서 예찬이가 아예 형질 증명서 떼 왔어. 우리, 여태 회사에 형질 증명서 제출한 적이 없어서 가진 사본도 없었거든.”

처음엔 차를 몰고 들이박으려 들었단다. 멤버 중 가장 키가 큰 윤수를 향해서.

“……그러니까. 같은 멤버인 알파의 목숨을…… 노렸단 거예요?”

“어……. 우리 중에 누가 알파고 누가 베타인지 일일이 구분도 못 하던데? 말 그대로 그냥 키 큰 사람이 차에 탔으니, 그대로 돌진한 거야. 솔직히 윤수는 픽마돌 때 아예 알파라고 적혔으니까. 윤수는 확실했다, 이거지.”

단영은 이야기하면서도 어이가 없는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컴백 전, 홍보를 위한 오랜만의 단체 라디오 스케줄이었다. 늦은 밤에 진행되는 보이는 라디오라 음악 방송처럼 빡세게 스타일링을 할 필요가 없어 간단히 꾸미고 느지막하게 숍을 나온 참이었다.

깜짝 스케줄이니만큼 따라붙은 사생도 없었고, 팬들은 더더욱 없던 상황.

숍 앞에 대기한 차에 미리 탄 것은 윤수와 유성이었다. 그러다 유성이 남은 멤버들이 다 끝났는지 확인하고 오겠다며 잠시 차에서 내렸다.

“운이 좋았던 게 맞긴 해.”

달려드는 차를 본 유성이 조수석의 문을 열어, 윤수를 바로 잡아끌었다. 높은 차체에서 거의 떨어지다시피 내린 윤수가 이유를 묻기도 전에 유성이 그를 잡아끌었다.

“아, 어쩐지. 윤수 형도 긁힌 상처가…….”

“나는 긁힌 정도라 괜찮아.”

이후 차를 세게 들이받았다. 상대 차가 조수석 쪽을 이용해 밴을 들이받은 터라, 운전하던 범인은 꽤 멀쩡히 차에서 내렸더랬다.

문제는 상대가 손에 칼을 쥔 채였다는 거다. 굉음에 놀란 멤버들이 하나둘 숍에서 나오자, 찌그러진 차에서 빠져나온 범인이 이번엔 단영에게 달려들었다.

“……형한테요?”

“응. 우리 중엔 알파가 둘이니까.”

예찬을 오메가로 생각해서 예찬과 가까이 붙어 있는 알파를 노린 테러였다.

“아…….”

애초에 예찬이 자신의 인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헛소리를 늘어놓은 사람이었다. 제 운명과 같이 나오는 알파를 보고 눈이 돌았단 소리였다.

“근데, 왜 유성이 형이…….”

“갑자기 달려들었어.”

“칼 든 사람한테요?”

“어…….”

내 형이 가장 미친놈인가? 한별은 눈을 감은 유성을 보며 눈초리를 올렸다.

그 뒤는 난장판이었단다. 유성은 날카로운 칼에 베인 탓에 팔뚝을 꿰맸다. 매니저들도 제대로 달려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성은 놀랍게도 범인을 제압했다.

“한별아,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이를 으득 물고 유성을 노려보는 한별에게 윤수가 물었다.

“혹시 유성이…… 격투기 같은 거 배운 적 있니?”

“예? 아뇨.”

한별은 고개를 저었다. 격투기? 격투기는 무슨. 태권도도 배운 적 없는데.

“그래?”

윤수와 단영이 시선을 잠시 마주쳤다.

“그렇구나……. 그럼 그냥 천재다, 이건가?”

“왜요?”

“아니, 그……. 되게 멋있게 제압하더라고.”

“…….”

저기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그런 생각들을 하셨냐고요.

한별의 표정을 읽은 단영이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되게 철없는 생각인 건 알아. 아는데…… 너무 신기하더라고! 몸으로 들이박고, 막 칼 뺏고 그러는데…… 와. 무슨 영화 보는 줄…….”

멋있다는 감상을 차치하고서 멘탈이 나가 제대로 생각을 잇지 못했을 테다.

리더라고는 해도 단영은 20대 중반이다. 낯선 사람이 눈 뒤집은 채 칼 들고 달려들었을 때,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도 이상하지 않단 뜻이다. 되레 침착하게 대응하면 그게 이상한 거지.

안심, 안도와 걱정. 그리고 유성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범인에게 달려들어 넘어뜨리고, 팔이 베이긴 했으나 칼을 들고 위협하듯 설치는 이를 제압해 칼을 멀리 차 내는 모습을 낱낱이 보며 생각이 비어, 제대로 생각을 이어 가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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