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베인 데를 꿰매긴 했어도 실제로 꿰맨 부분은 작았다. 상대적으로 얕게 베인 부분은 지혈과 소독 정도의 처치만 한 상태였다. 상대를 밀치며 뼈에 실금이 갔으니 한동안 움직일 땐 아프겠지만, 목숨에 지장을 주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모든 상황 후, 단영의 머릿속에 남은 건 우리 멤버가 대단하다, 같은 존경이었다.
“……형?”
“유성아, 괜찮아?”
그때였다. 치료를 위해 잠시 잠들었던 유성이 눈을 찌푸렸다.
전신 마취를 하진 않았지만 피로가 누적되어 잠들었다는 말에 한별은 굳이 유성을 깨우지 않았다.
물론, 그 덕에 해야 할 잔소리가 머릿속에 정리되어 제대로 쏘아붙일 수 있게 되었다. 유성의 까만 눈동자를 보며 한별은 입꼬리를 올렸다. 가만두지 않겠다.
하지만, 한별의 그 생각은 흔들리는 유성의 눈동자와 두려운 듯 빠져나온 목소리에 한순간 휘발됐다.
“왜, 한별이, 너…….”
“…….”
잔소리가 목 밑까지 차올랐다가 사라졌다.
최유성이 운다. 다친 건 본인이면서.
남들이 말리기도 전에 몸을 일으킨 유성이 한별을 붙잡았다.
“한별아, 한별아, 어디 다친, 거, 아니, 괜찮…….”
“형……? 왜 그래. 진정 좀 해 봐.”
“너, 왜 병원, 왜 여기, 다치―.”
“유성아.”
“형!”
세현이 그런 유성을 붙잡았다.
덜덜 떨던 유성이 세현과 예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유성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한별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유성을 바라보았다. 사람도 많은데……. 제대로 감정을 갈무리하지 못하는 유성의 모습에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형. 나, 괜찮아.”
“…….”
“살아 있다고.”
그놈의 악몽이 또 형을 갉아먹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심한 모습에 한별은 유성을 끌어안고 토닥였다.
평소처럼 유성의 불안함을 달래려던 한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어느 쪽이 우선일까?
형의 멤버들의 전부 있는 이상 페로몬을 낼 순 없었다. 또한 자신이 붙어 있으니, 만약 지금 유성의 페로몬이 흘러나온다 해도 자신의 것인 척할 수 있었다.
유성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잠시 나가 달라고 할 순 있지만…… 역시 자신의 페로몬은 낼 수 없었다. 약간이라도 남은 자신의 페로몬을 단영이나 윤수가 알아채선 안 되니까.
유성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유성의 형질을 들키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한별은 시선을 돌려 태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맞춘 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잠깐 나가 있자.”
태하가 입을 열기도 전, 윤수가 말했다. 한별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윤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윤수가 세현과 예찬의 어깨를 붙잡았다. 유성이 잠든 동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세현과 예찬은 유성이 깨어난 이후로 보인 모습에 오히려 진정된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하도 눈치껏 함께 자리를 피하고자 몸을 돌리며 가족끼리의 일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후 일은 이후에 생각하자.’
한별은 병실 문이 닫히자마자 창문부터 열고 페로몬을 아주 약하게 흘렸다. 덜덜 떨던 유성이 그제야 안정하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곤 유성을 다시 자리에 눕혔다.
오래지 않아 유성이 눈을 감았다. 몸이 좋지 않으니 금세 잠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고른 숨소리를 확인하고서야 한별은 이불을 끌어 유성의 몸을 덮어 주었다.
한별은 조금 전, 자신을 바라보던 유성의 눈빛을 떠올렸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이쯤 되니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형. 도대체 뭣 때문에 그래?”
대체 어떤 악몽이기에 지금까지 헤매는 거냐고.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창문에 기댄 채 잠에 빠진 유성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한별은 진동과 함께 도착한 문자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한별은 오래 지나지 않아 열린 창을 닫고, 병실 문을 열었다.
형이 알려 주지 않는다면, 제가 알아내야 했다.
* * *
병실 밖엔 태하의 메시지처럼 아무도 없었다. 다른 멤버들은 스케줄에 따라 이동해야 했으니까.
어차피 깜짝 출연이었기에 다섯이던 인원은 셋으로 줄었다. 멤버 중 하나는 남아 있겠다는 이야기까진 들었으나 누군지는 정확히 몰랐다. 태하는 멤버들끼리의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니까.
병실 앞에서 한별을 기다리겠다 하기엔 조금 애매한 상황. 태하는 한별에게 병원 밖 정원에 있겠다고 메시지를 보낸 후, 더는 연락이 없었다.
한참 기다렸을 것이다. 날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기에 한별은 가방을 챙겼다.
혹시 모르니 집에서 옷을 챙겨 다시 병원으로 올 생각이었다. 몸이 안 좋아서, 혹시나 유성의 페로몬이 흘러나올지도 모르니까.
“……하.”
솔직히 걱정되었다.
형이야 늘 알아서 잘해 왔으니 자신은 혹시 모를 페로몬 때문에 그런 것뿐이라며 일부러 생각을 바꾸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으…….”
손이 떨렸다. 절로 억눌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족을 잃을 뻔했다.
유성이 조금이라도 달려오는 차를 늦게 보았더라면? 분명, 차에 같이 올랐었다고 했다. 차 안에 있었더라면 다른 사고로 이어졌을 테다.
그리고 칼이 팔을 살짝 베어 내는 정도가 아니었다면? 아니, 제대로 막지 못했다면…….
한별은 병실 문에 기대 주저앉았다. 일어날 힘이 없었다. 손만 떨린다고 생각했는데,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눈을 꾹 감은 한별의 앞에 누군가 섰다. 익숙하지 않은 발끝에 한별은 고개를 들었다.
“차가워. 일어나, 한별아.”
윤수였다. 멤버 중 한 명은 남는다고 했던가? 단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리던 한별은 간신히 이해했다.
단영은 리더이니만큼 빠지면 안 된다. 곧 나올 앨범 중 스포 해도 되는 정도의 내용을 알려야 하니까.
예찬은 단영과 함께 곡을 만드는 멤버이니 당연히 함께 가야 했고, 원체 눈물이 많은 세현은 병원에 있으면 더 길게 침울할 것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말이 적고, 병원에서도 쉽게 감정이 휩쓸리지 않았으며, 주변을 잘 챙기는 사람이 남았다.
한별은 자신에게 손을 내밀려는 듯 몸을 숙이는 윤수를 알아채곤 모른 척 몸을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나, 한 거 없는데.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한별로서는 신경을 써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다.
“형, 다시 잠들어서요. 잠깐 혼자 둬도 될 것 같아요.”
아무리 환기를 시켰다 하더라도 윤수가 지금 들어가는 것은 위험했다.
잠시만 윤수를 붙들어 두는 편이 맞을까? VIP 병실이니만큼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정원에서 태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지?
“저, 집에 가서 옷을 좀 가져오려고 하는데요.”
결국, 생각이 기운 건 윤수가 병실에 들어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는 것이었다.
“혹시 태워다 주실 수 있으세요?”
“병원에 있게?”
“네. 그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래. 알겠어.”
병간호는 가족의 몫이었다. 같은 성별이라고는 해도 형질이 다른 이들이 멤버 중 둘씩이나 있는 만큼 동생이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한별은 태하에게 연락을 하려 핸드폰을 들었다.
“아래, 지태하가 기다리고 있던데.”
알고 있었구나.
한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태하도…… 같이 가도 되죠?”
한별을 빤히 바라보던 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은 곧장 병원으로, 멤버들은 숍에서 숙소로 이동했다가 윤수 차로 병원에 온 덕에 지하 주차장엔 윤수의 차가 주차돼 있었다.
한별은 태하에게 자동차가 나가는 정문에서 기다려 달라 메시지를 남겼다.
그 후, 둘이 나란히 걷는데…… 어색했다. 조용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윤수와는 조금 불편했다. 우성 알파여서…… 라기엔 태하 역시 우성 알파이니 형질 탓은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말수가 적기 때문일까? 시끌시끌한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조용하던 윤수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기도 했다.
물론, 전부 유성에게 들은 얘기였다. 그 말마따나 지금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색한 와중에도 발은 착실히 움직여 주차장에 도착했고, 한별은 윤수의 차 조수석에 올랐다.
그런데 시동을 걸어 놓고 도통 출발할 생각이 없다. 오가는 대화조차 없는 상황에 한별은 이제 불편함마저 느꼈다.
“한별아.”
“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성까지 붙여 부르면서, 자신은 멤버들과 비슷하게 이름만 부르는 저 목소리가 오늘따라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다.
“너무 어색해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한별은 언제나 들킬까 봐 조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어색하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정말로 괜찮아. 나, 알고 있으니까.”
‘윤수 형이 말을 잘 안 해서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은데, 나중에 보면 은근히 눈치가 빨라. 매번 빠른 건 아니고…… 가끔 동물적인 감각 같은 게 발동하는 느낌? 별명이 괜히 곰이 아니야. 가끔 무서워.’
‘형이 무서운 것도 있어?’
‘당연히 있지. 그래서 형이 항상 대비하면서 살잖아?’
유성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 페로몬, 유성이 페로몬인 거 알고 있어.”
정윤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한별의 굳은 표정이 노을이 지기 시작한 어두운 창에 비쳤다.
* * *
자동차는 천천히 길을 따라 빙글빙글 돌았다. 지하 3층에서 2층으로, 1층을 지나 지상으로 나오는 동안 둘은 아무런 말을 나누지 않았다.
태하를 발견한 윤수가 차를 세우자, 태하가 뒷자리에 오르며 짧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아냐. 한별이 옷 가지러 가는 길이니, 먼저 데려다줄게. 집이 어느 쪽이야?”
한별에게 할 이야기지 태하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듯 윤수는 유성의 페로몬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