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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69화 (69/78)

69화

언제부터? 아니,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그간 가만히 있었던 걸까? 한별은 생각에 잠겨 태하의 부름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한별아?”

두어 번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에 퍼뜩 놀란 한별이 고개를 돌렸다.

“한별아. 괜찮아?”

낮은 목소리가 한별을 다정하게 감쌌다. 한껏 긴장했던 한별은 그제야 힘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속이 울렁였다. 태하가 한별의 시트에 손을 올려 어깨를 붙잡았다.

“앞에 봐. 괜찮아.”

웃긴 일이었다. 상황을 모르면서 태하는 괜찮다며 한별을 달래고 있었다. 그 말에 바닥까지 떨어졌던 심장이 원래대로 차근차근 올라오는 것이 너무도 웃겼다.

“……응.”

한별의 작은 목소리에 태하가 미소 지었다.

그때, 분위기를 끊듯 윤수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저쪽 사거리?”

“네. 조금 더 가서 역 앞에 세워 주시면 됩니다.”

“집까지 데려다줘도 되는데.”

“아뇨, 괜찮습니다.”

태하가 조금 차가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한별이, 멀미 심하잖아요. 저 때문에 돌아가실 필요 없습니다. 바로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옷 챙겨서 또 차를 타고 병원으로 되돌아가야 하잖아요?”

“…….”

“이렇게 차를 탈 줄 알았으면 미리 멀미약이라도 먹였을 텐데요.”

선배님께서 운전을 잘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덧붙이는 태하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차갑게 들렸던 게 착각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제가 운전해도 되는데……. 지금은 부탁드릴게요.”

태하가 조용히 덧붙였다.

운전해도 된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한별이 고개를 돌리자, 태하가 사르르 웃음을 지었다.

“나, 차 있어. 면허도 있고.”

“……뭐? 언제부터 있었어?”

“음……. 2월?”

여태 못 들었는데?

한별이 배신감에 표정을 굳히자, 태하가 장난스레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아침에 데리러 갈게.”

“…….”

“학교 가야 하잖아.”

태하의 말에 한별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사이 차가 목적지에 천천히 멈췄고, 태하가 내리고자 가방을 챙겼다.

“감사합니다. 한별아, 바로 전화할게.”

“응, 내일 보자.”

내린 곳은 태하의 집과 한별의 집이 갈라지는 곳이었다.

“한별아.”

윤수가 입을 연 것은 한별이 안전벨트를 풀 때쯤이었다. 슬슬 멀미를 이겨 내기 힘겹던 때이기도 했다.

속이 울렁였다. 이게 부담감 때문인지 멀미 때문인지 제대로 인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태하가 있는 동안 괜찮았던 걸 보면…… 역시 부담감 때문이었다.

한별은 결국 차에서 벗어났다. 울렁거림에 숨을 크게 토하며 고개를 들었다.

“나, 사실―.”

윤수의 목소리에 한별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한별의 몸이 기울기에 윤수가 손을 뻗었다.

“……한별아?”

곧, 당황한 윤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 한별은 제 무릎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부탁드릴게요.”

“…….”

“모르는 척해 주시면 안 될까요?”

같은 멤버이니만큼 마음대로 밝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느냐, 다른 멤버와 공유하고 회사까지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게 만드느냐는 지금 달렸다.

무릎을 꿇은 한별을 보고 잠시 말을 잃었던 윤수가 몸을 낮췄다. 이어 한쪽 다리를 굽혀 앉곤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

“형이 아이돌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왜? 형의 일이잖아.”

“가족의 일이잖아요.”

“유성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윤수의 말이 옳았다. 한별이 과하게 파고들 필요 없이, 유성이 해결할 일이긴 하니까.

유성을 어리게 보는 건 아니었다. 자신보다 머리도 좋고, 해결 방법도 좋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해 주고 싶어요.”

“형인데?”

이야기가 돌고 돈다. 그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증이었다.

“형도 그랬으니까요.”

한별의 답에 윤수가 눈을 크게 떴다.

“유성이가?”

한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실 유복한 것과 달리, 집안 분위기는 화목과 아주 거리가 멀었다.

사업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대학 교수인 아버지. 그러니만큼 그 아래의 두 아들은 잘해도 본전, 못하면 문제가 되었다.

‘아. 네가 최 교수님 둘째 아들이구나?’

‘얘도 어려서부터 공부 잘한다던데.’

‘역시, 교수님댁 아이들은 다르다니까?’

그리고 주변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이 어린 한별에겐 너무도 힘겹기만 했다.

‘몇 문제를 틀렸던데.’

‘……죄송해요.’

‘다음엔 조금 더 올려 보자.’

‘네…….’

상대적으로 평범한 한별은 부모님과 형을 따라잡지 못했다.

부른 배를 붙들고 출근하던 어머니의 사진과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찍어 준 발 도장, 그리고 갓 태어났을 적엔 유성과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닮았다는 것을 사진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한별은 자신이 이 집안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머리와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은 어린 날의 유성은 한별이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것을 넘보는 것도 용서하지 않았다.

반면, 한별은 종종 유성에게 장난을 걸곤 했다. 공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봐주길 바라서 일부러 유성의 컴퓨터에 손대기도 했다.

부모님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아 담담한 유성이 감정을 드러내고, 부딪히며, 바라봐 주는 게 그때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한별이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그마저도 빈도가 줄어들었다.

조금씩 포기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발버둥 치고, 발악을 해야 간신히 ‘부모님과 형을 닮았구나’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지친 것이다.

그랬던 만큼 유성이 돌연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한별은 줄곧 힘든 생활을 이어 나갔을지 모른다.

‘굳이 음악을?’

‘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구나.’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말했을 때, 한별에게 돌아온 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좁히는 부모님의 반응이었다. 부모님의 생각, 그리고 유성이 지내 온 생활과 전혀 다른 방향이었으니까.

태어날 적부터 정해져 있었다. 머리가 좋은 유성은 법조계로 나가려 했다. 하여 어린 나이부터 유성의 책장엔 법전과 온갖 법학 전공 서적이 꽂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방의 분위기가 법학 전문 대학원생 수준이었으니 말 다 했다.

이에 한별은 눈치를 보아야 했다.

법조계는 유성이 공부하고 있으니, 한별은 경영을 공부하거나 무언가 집안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하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한별은 처음으로 생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젓는 한별에게 부모님이 처음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음악은 나중에 해도 되지 않니?’

‘네 미래에 좋다고는 못 보겠는데. 현실적으로 음악으로 성공하기도 어렵고.’

‘그래, 한별아. 재능이 있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로 실패하는 것이 예체능 아니니.’

어린 한별은 옷을 꽉 쥐었다. 자신은 형과 다르게 잘하는 것이 없었다. 책을 외우다시피 하는 형과 자신은 너무도 달랐다.

하지만, 부모님의 기준은 늘 유성이었다. 같은 부모 밑에서 똑같은 교육을 받았으니 결과도 비슷할 거라 여겼다. 유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그저 한별의 노력이 조금 부족할 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한별은 속부터 천천히 지쳐 가고 있었다.

‘저, 용돈 안 받아도 돼요.’

그때, 유성이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용돈, 안 받아도 돼요. 한별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주세요.’

‘유성아.’

그간 말대꾸 한번 한 적 없을 만큼 성실한 큰아들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처음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옷을 꾹 쥔 채 하고 싶은 바를 이야기했지만,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굳건한 태도를 견지하던 부모님 앞에 한별을 가리고 선 유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느껴졌다.

‘잘할 거예요.’

부탁드릴게요. 어머니, 아버지.

유성이 무릎을 꿇었다. 그런 유성을 보며 한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디서도 아들들의 무릎을 꿇린 적 없던 부모님이었다. 그간 굳이 혼내지 않아도 됐고, 혼내기엔 일이 바빴으니까.

학교와 학원으로 두 아들을 키운 부모님은 자식들의 몸에 쏟아지는 체벌이나 직접적인 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일어나. 뭐 하는 거니?’

‘한별이, 하고 싶은 거 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

그리고 먼 훗날, 부모님은 한별에게 그때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안 해 줄 수가 없었다.’

‘맞아. 눈에 광기가 있었거든.’

‘……네?’

‘허락 안 하면 너 데리고 가출할 것처럼 올려다보지 뭐니.’

‘한별이 넌 유성이 뒤에 있어서 못 봤겠지만.’

이후로도 한별은 꾸준히 작곡 학원에 대해서,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서, 작업하는 시간에 대해서 부모님과 부딪혔다.

더 시간이 흐른 뒤 유성이 집을 나가 아이돌이 되어 버리기까지 했으나, 몇 번의 부딪힘으로 부모님은 자식들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어느 정도는 체념한 체념했다.

자신들이 해 오던 대로 고압적이던 그들은 힘을 푸는 방법을 제 자식들에게 배웠다.

‘다른 건 다 생각대로 흘러가도, 너희만큼은 생각대로 되지 않더구나.’

나쁘게 말하면 억압과 방임을 공존시킨 부모님이지만, 숨통을 트고 한별의 생을 다채롭게 만들어 준 사람은 유성이었다.

그런 유성의 생에 색을 불어넣은 것이 아이돌 생활이라면 몇 번이고 무릎을 꿇을 생각이었다.

물론, 계속은 아니고.

“한 아홉 번까지는 꿇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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