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왜?”
“열 번부턴 사람이 많아서 못 막아요. 그럴 바엔 그냥 때려치우게 해야죠.”
9번이라는 횟수는 누가 들어도 의아한 듯했다.
누가 보면 어린 날의 치기 어린 반항 같겠지만, 한별에겐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유성이 확실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때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한별의 삶은 많이 달라졌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부탁드릴게요. 비밀 지켜 주시면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관해선 형을 도와드릴게요.”
한별이 작게 덧붙였다.
“물론, 무엇이든…… 은 무리고요.”
“…….”
현실적으로 ‘무엇이든’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붙여선 안 됐다. 지킬 수 없는 말이니까.
한별의 진지한 표정에 할 말을 잃은 듯 입술만 달싹거리던 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말할 생각도 없었어.”
“……처음부터요?”
“응.”
그럼 의뭉스럽게 굴지 말고 처음부터 말을 하든가! 한별은 아주 조금 억울해졌지만,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근데, 정말 내가 비밀 지켜 주면 네가 할 수 있는 걸 도와주게?”
한별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는 선 안에선 가능하지 않나?
어차피 윤수가 자신에게 요청할 일이라곤 A부터 Z까지 뒤져 봐도 뻔했다. 윤수가 한별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을 요구할 리 없으니까.
그 이유인즉 첫 번째, 만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이니만큼 그다지 친하게 지낸 일이 없었으며 두 번째, 둘 사이의 형질이 달랐다. 세 번째, 한별은 일반인이고 상대는 아이돌이다.
그러니 소위 말하는 ‘감정을 교류하는 부탁’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윤수가 한별에게 부탁할 수 있는 내용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개인 믹스 테이프 작업 도움 혹은 참여 정도 아닐까.
특히나 한별의 실력은 이미 싱 코스모 너튜브 채널의 운영을 통해 확인이 됐다. 현재 구독자가 3만 명을 돌파한 상태.
그리고 조회 수는…….
‘……이게 가능한 숫잔가?’
‘하하…….’
‘우리, 첫 영상 올린 지 이제 한 달 아냐?’
‘그러게. 지금 한 달 만에 20만 넘었네.’
무려 구독자의 6배가 넘었다.
같은 곡을 불렀던 너튜버 영상 관련 영상으로 추천도 많이 되는 것을 보면, 너튜브 알고리즘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듯 보였다.
심지어 최근 올린 채널(Cha.N)의 Crash 업로드 영상은 두 번째 영상의 조회 수를 넘어갔다. 첫 번째 영상의 원곡자보다 더 높은 이름값을 가졌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빠른 속도였다.
“뭐 시키시려고요?”
한별이 담담하게 묻자, 윤수가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이야기할게.”
한별은 어깨를 으쓱였다. 도움을 주겠다는 조건은 자신이 걸었으니, 당장 말하라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그래도 시킬 일은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 한별은 생각을 접었다.
“금방 나올게요.”
입고 있었던 옷은 찢어졌으니 다른 옷은 퇴원하는 날 멤버들이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니 속옷이랑 한별이 입을 옷만 몇 벌 챙겨 갈 생각이었다.
“아…….”
한동안 집에서 작업하긴 글렀다. 노트북으로 가벼운 작업은 되겠지만……. 유성의 퇴원 일정이 뒤로 미뤄진 탓에 업로드와는 많이 멀어졌다.
‘한별아, 한별아, 어디 다친, 거, 아니, 괜찮…….’
잠에서 깨어났을 때, 불안해하던 유성의 모습을 멤버들이 보았다.
분명 한별이 병원에 막 도착했을 땐 다친 곳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다. 심지어 잠에서 깨어나면 바로 퇴원해도 될 정도라고.
슬슬 활동 준비에도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해야 했다. 당장 콘셉트 포토 촬영과 뮤직비디오 촬영이 잡혀 있었다.
소속사와의 계약 종료는 6월. 앨범 스케줄 중이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완료해야 하며, 완료하지 못할 시 계약이 연장된다는 식으로 해석되는 조항이 있었다.
꼭 계약 사항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일정을 미룰 수 없었다. 서글프게도 아이돌은 크게 다치지 않아, 촬영에 영향이 없어 다행이라 말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다치지 않은 이상 오래 미룰 수도 없을뿐더러 이미 예약한 장소의 일정, 촬영 팀의 일정, 메이크업을 맡긴 업체의 일정 등등이 꼬이는 것을 방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소속사에서의 마지막 앨범이었다. 미뤄질수록 계약서에 적힌 사항에 따라 회사에서 벗어날 시기가 늦어질 뿐이었다.
그러니 유성이 불안해한다면 너튜브 영상을 조금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형을 먼저 케어해서 스케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지태하
한별아. 다음 곡은 저번에 편곡했었던 곡으로 먼저 진행해도 될까?
하고 싶었던 곡이라 당겨도 좋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그때, 한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태하에게서 연락이 도착했다. 옷을 가방에 채워 넣던 한별은 메시지를 보다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고마워.
지태하
내가 하고 싶은 곡을 하는 건데?
하고 싶은 걸 하고 감사받는 느낌
조금 미묘한데 (◔_◔)
한별은 태하의 메시지 뒤에 따라온 이모티콘에 잠시 멍해져 있다, 옷을 붙잡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쓰지도 않던 이모티콘을…… 갑자기?
“지태하, 귀엽네.”
이모티콘도 그렇고, 이모티콘을 찾아 꾹꾹 눌렀을 태하도 그렇고.
지태하
괜찮을 거야. 웃으면서 좋은 생각하는 게 가장 좋아.
‘그래. 네 말이 맞아, 태하야.’
한별이 다 챙긴 가방을 들었다.
좋은 생각을 하자.
당장은…….
“형 새끼 돌려놓는 것부터 생각하면 되겠지.”
또 자신이 병원에 있다고 기겁하고 덜덜 떨면, 아픈 사람이고 자시고 멱살을 끌고 집으로 데려올 생각이었다.
한별이 비장한 얼굴로 윤수의 차에 올랐다.
“뭔가…….”
“뭐가요?”
“……아냐.”
비장한 한별을 바라보던 윤수가 곧 고개를 저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차에 오를 것을 대비해 멀미약을 먹은 한별은 덕분에 집에 오던 때보다 한결 괜찮은 얼굴로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최대한 형을 잘 간호해서 원래의 생활로 돌려놓을 생각이 만만했던 것이다.
“…….”
하지만, 한별의 생각은 병실 문을 열자마자 180도 바뀌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병원에 안 왔지.
병실의 꼴을 보던 한별이 이를 으득 물었다.
“……도박 그만해라.”
“도박이라니? 돈 안 걸었는데.”
“다 모았다!”
“말도 안 돼!”
“하하하!”
세현이 새가 그려진 패를 이마에 떡하니 붙였다. 마치 풀로 붙인 듯 딱 붙어서 세현이 몸을 일으켜 춤을 추듯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예찬이 부들부들 몸을 떨며 그 패를 바라보았고, 유성은 단영이 쥔 패를 같이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형. 우린 다음 판을 노리자.”
“그럴까?”
저 인간 중에 정상이 없어. 한별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형들 내일 스케줄 없습니까……?”
“응. 유성이가 여기 있으니까.”
“형이 없으면, 개인 연습을…….”
“에이. 같이해야지. 어차피 우리, 다 춤은 외웠어. 대형이 문제라 유성이 있어야 해.”
“그럼 촬영 컨셉 확인이라든가…….”
“어차피 다음 타이틀 주인공은 유성이야. 유성이 몸 상태 회복하는 게 가장 좋지.”
“하다못해 다음 앨범 작업…….”
“하루 정도는 괜찮아. 어? 아싸! 패 내 거! 내 거!”
“아악! 내가 먹으려고 했는데!”
“흐흐흐. 순서는 나부터였다!”
아니, 근데. 그게 여기서 노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것도 환자 병실에서…….
1인실, 그것도 VIP 병실은 참 좋았다. 다인실이 아니니만큼 다른 방의 소리가 들리지도 않으니까. 반대로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물론…….
“밖에서 대기하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듣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한별의 말에 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정상이지 않을까, 그래도 멤버들을 말리지 않을까, 기대했던 한별은 윤수가 예찬과 세현 사이에 앉아 패를 비교하는 것을 보며 이제 생각을 포기하기로 했다.
“……형. 그냥 퇴원하지?”
“아, 한별아……. 형, 좀 아픈 것 같아.”
제 팔을 붙잡고 울상을 짓는 모습에 한별은 결국 유성의 얼굴에 집에서 가져온 속옷을 꺼내 던졌다.
“억!”
“나 그냥 집에 간다, 형 새끼야.”
“한별아, 한별아!”
형 새끼를 걱정한 내 잘못이다!
한별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꾹 눌렀다.
* * *
결론적으로 유성은 이튿날 퇴원했다. 한별이 연말과 연초에 잠시 회사에 일하며 저장해 두었던 매니저에게 들었다.
사건 자체가 꽤 대단했기에 회사에선 오히려 쉬쉬했다. 덕분인지 유성이 오메가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은 다시 요원해졌다.
하필이면 형질이 있는 이들이 휘말린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멤버 중 가장 얼굴이 앳된 예찬을 오메가로 단정 지은 알파 스토커에 관한 이야기.
“나여도 말 안 한다.”
화제를 줄줄이 낳기 참 좋았다. 좋은 방향의 버즈량도 아니고, 사고까지 크게 났으니.
퇴원은 했지만 채널(Cha.N) 멤버들은 강제 휴가를 맞았다. 자동차가 없으니 스토커 방지를 위해서도 숙소에 남아 있기로 한 것이다.
결국, 한별은 유성에게 자신이 병원에 있는 걸 보고 왜 그리 두려워했느냐고 묻지도 못한 채 흐지부지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흐지부지된 질문은 자꾸 한별의 머릿속에서 덜그럭덜그럭 기분 나쁘게 돌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