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한별아. 나, 녹음 다시 할까?”
“아냐. 이제 나와도 돼.”
유성이 병원에 그대로 있었다면 학교 실습 조교님께 녹음을 부탁할 생각이었다던 태하는 수업이 끝난 후, 한별이 작업할 수 있다는 말에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별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기대하던 곡이기에 녹음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박?”
“도박은 아니긴 하지. 설이나 추석에도 많이들 하니까.”
카드 게임 같은 거였지. 한별이 한숨을 내쉬자, 태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입원했더라도 바닥을 치는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어두운 것보다 장난치고 웃고 떠드는 편이 오히려 나았다.
게다가, 숙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한별이 간혹 드나들며 본 것만 해도 멤버끼리 거실에 모여 모니터링을 하기도 하고, 함께 예능을 챙겨 보기도 했다. 그러니 병원에 혼자 있는 멤버가 걱정되지 않을 리 없었다.
“뭐, 그래서 이해하기로 했어. 막고 싶긴 하지만.”
“왜 막아?”
태하가 한별에게 묻곤 물병의 뚜껑을 열어 입에 가져갔다.
“아무래도…… 윤수 형이 우리 형 좋아하는 것 같거든.”
“풉―!”
“……? 왜 그래.”
“콜록, 콜록―!”
태하는 한참 동안 콜록거렸다. 물을 잘못 넘긴 탓에 한참을 기침하다가 후, 크게 숨을 내쉬었다.
“……윤수 선배님이, 유성이 형을?”
“응. 아무리 봐도 그래.”
한별의 단호한 말에 태하는 잠시 생각하다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떻게 알았는데?”
“음…….”
한별이 자신의 추리를 정리하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태하는 한별의 옆에 놓인 까만 의자에 앉아, 그런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일단은 윤수 형이 유성이 형, 오메가인 걸 알아챘다고 했잖아.”
태하도 이미 아는 상황이다. 굳이 비밀로 하지 않기로 했고, 여러 일에 휩쓸렸던 만큼 이번 일도 숨기지 않고 얘기해 둔 상태였다.
“그렇지.”
“근데, 솔직히 윤수 형 입장에선 그걸 숨겨 줄 필요가 없거든.”
“활동과 관련된 일일 수도 있잖아.”
“그거야 당연한 거지만, 멤버들한테까지 말하지 않는 건 뭔가 다른 이유겠지.”
잘 들으라는 듯 한별이 앉은 의자를 빙글 돌려 태하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우리 형한테 들은 게 아니잖아. 그런데, 윤수 형이 나한테 얘기한 거고.”
“그렇지……?”
“내가 당사자야, 유성이 형이 당사자야?”
“유성이 형이지.”
“근데, 형이 아니고 나한테 얘기했어. 그럼 뭐겠어? 형과 관련된 일이니 자기가 비밀을 지켜 주겠다는 뜻이잖아.”
태하가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유성이 형이 윤수 형한테 말했던 거라면 나한테도 분명 뭔가 조치를 취했을 게 뻔해. 우리 형 성격 알잖아. 근데, 우리 형이 아니고 나한테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형이 아플 때? 그럼 이걸 뜻하는 건 딱 하나지.”
“어떤 뜻인데?”
“나한테 도와달라고 한 거야.”
한별의 표정이 비장해지자, 태하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은 못 했네.”
“하지만, 난 도와줄 수 없지.”
“왜?”
“아이돌인데 지금 무슨 연애를 하겠다고 그래. 절대 안 돼.”
한별이 정색하자, 태하가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이돌은 지금 연애하면 안 되지. 팬 기만이야.”
역시 안 하는 게 맞았네. 태하가 작게 중얼거리다, 문득 궁금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한별아. 그럼, 유성이 형이 연애하는 것도 막을 거야?”
“그건 아냐.”
왜? 남은 안 되고, 가족은 돼? 한별이 가족이라고 감쌀 타입은 아닌데?
생각이 고스란히 읽힐 만큼 태하의 표정에 물음표가 가득해지자, 한별이 다시 답했다.
“유성이 형은 내가 말 안 해도 자기 직업을 생각하면 연애할 리가 없거든. 내가 아는 그 인간이면 아이돌로 할 만큼 다 하고 후련하게 은퇴할 사람이라.”
“정말?”
“뭘 하든 끝의 끝까지 가려는 타입이야. 아이돌 이후의 계획은 뭐가 될지 감이 안 잡혀. 그래도, 내가 했던 얘기가 있어서 아이돌 하는 동안엔 절대 연애 안 하려고 할 건 확실해.”
“네가 뭐 얘기한 거 있어?”
“응.”
한별이 머쓱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태하가 처음 아이돌 연습생이 된 초등학교 6학년, 한별은 온갖 아이돌 커뮤니티를 확인한 초딩이 되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세계를 어느 정도 알아야 성공한 작곡가가 되지 않겠는가.
팬은 아니지만 모 아이돌의 팬클럽 가입도 해 보고, 콘서트도 돌아다니고, 사인회마저 다녀왔다. 연습생으로 막 들어간 태하가 나중에 이런 활동을 한다고 상상해 보며 내심 뿌듯해하기도 했다.
팬카페 우수 회원이라든가, 팬 중 가장 유명한 홈마 혹은 유명한 친구 겸 팬 겸 작곡가 등등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만큼 제대로 과몰입하기도 했다.
물론, 그 활동으로 유성이 [Pick, My Dol!]에 출연했을 때 꽤 많은 홍보를 했다. 말도 안 되는 루머를 쳐 내거나 논란거리가 올라온 것을 열심히 지우고 다녔다.
다시 돌아와서, 그때 가장 많이 본 게 아이돌의 연애와 관련된 글이었다.
@fxxxxxxxxxge
미친 새끼.
우리를 개호구로 봤겠네?
@jioqpibiyyyy_l
실트 떠서 당연히 루머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일 줄은 몰랐네요. 탈덕합니다. 같이 덕질 해 주시던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창주 니트 포카 팝니다. 적당히 시세 맞춰서 dm주세요
└@ilijffe
탈덕은 조용히; 오피셜 안떴잖아요.
└@cshhhhhhhhhfxxxx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미 비계 영상까지 다 퍼졌구만 뭔 오피셜이 안 떴대//^///^//
비밀 연애를 했다가 기사가 터져도 팬들은 떠나갔고.
@Tonlyou
[Close]
언제나 예쁜 사랑하기를.
지난 3년, 너의 사랑의 시작부터 응원해 왔어.
계속 아름다운 너로 남기를 바랄게.
안녕, 나의 여전한 아이돌.
└@oiuzpfi
헐 ㅅㅂ 히스토리 토닉 대형 홈 클로즈 뜸
└@Loocasu
토닉은 공개연애 오픈했을 때도 팬층 탄탄하지 않았음?
왜 닫는 거?
└@oiuzpfi
@Loocasu 에게 보내는 답글
모름
근데 최근에 사랑꾼 이미지로 계속 나오면서 팬들 지쳐하는 건 눈에 보임
공개 연애를 해도 떠나갔다.
그냥 연애하는 것 자체가 해당 아이돌의 팬층을 갉아먹었다.
데뷔한 지 약 15~20년 이상 되고, 팬들이 [이젠 좀 가라ㅡㅡ] 하고 보내 줄 때가 되어야 연애를 해도 큰 타격이 없었다.
“그러니까, 형은 열여덟 살에 데뷔했으니 한…… 서른여덟 살은 넘어가야 가능하다는 소리지.”
“왜 서른세 살이 아니고?”
“서른세 살은 좀 어리지 않아? 체이서 리더도 연애한다는 말 나오자마자 난리 났는데.”
한별이 이야기한 체이서라는 그룹의 리더는 올해 35살이 된 사람이었다.
“내내 숨기다 제대로 결혼으로 훅 치고 나가는 거 아니면, 공개 연애는 절대 안 돼.”
한별의 단호한 말에 태하가 푸흐흐,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유성이 형은 걱정이 없는 거야?”
“응. 그래도 역시 윤수 형이 좀 포기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낫겠지? 이어 달라고 한다거나 하면 단박에 거절할 생각이야.”
“왜? 좋은 선배님이잖아.”
“그 좋은 선배님도 아이돌이야. 심지어 같은 팀 멤버고. 안 돼.”
한별의 진지한 말에 태하가 기묘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네. 둘 다 아이돌이니까.”
“새로 생긴 레이블에서 아무리 프로듀서 활동을 한다고 해도 아이돌인 건 변함없어.”
한별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형은 못 준다.”
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별은 간혹 형의 회사에 들를 수 있었다. 아직은 StarV 소속이지만, 같은 모회사를 가졌기에 몇몇 직원이 블루 라임으로 쉽게 이동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채널(Cha.N)의 기획과 홍보를 맡고 있던 직원들이었다.
[Pick, My Dol!]의 후속 시즌에서 데뷔한 팀에 직접 관여하는 직원들은 StarV에 남았지만, 일의 지속성을 위해 블루 라임으로 움직이는 A&R 팀 직원들도 더러 있었다.
“연습을 아예 여기서 해?”
“회사는 들어갈 때마다 시끌시끌하거든.”
StarV는 Vnet의 아래에 있는 소속사인 탓에 연습실이나 소속사 건물도 Vnet 사옥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연습하기 위해 이동해도 팬들이 너무 쉽게 소속 아티스트들을 보겠다며 찾아왔다. 아무리 사람들을 배치하고 확인해도 뚫고 들어오는 사생들이 꽤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옮기는 편이 나을 수 있었다.
곧 나올 앨범 준비를 위해 소속사 연습실과 숙소를 왔다 갔다 할 것이라는 예상은 사생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들어가는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찾아오는 격한 팬들이 있으니, 아예 위치를 옮겨 버린 것이다.
“용케 스타에서 오케이 해 줬네?”
한별의 중얼거림에 유성이 눈을 작게 접으며 웃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만들었던 거지? 한별은 이제 형이 저렇게 웃을 때마다 무서웠다.
“도대체 누구를 짜낸 거야?”
“짜내다니!”
“아니면, 누굴 갈았어?”
“한별이는 너무 나를 막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걸로 보는 것 같아.”
먼치킨으로 보긴 하지.
아직 의심이 풀리진 않았다. 병원에서 마주한 한별을 보고 두려워하던 모습이 마치 거짓이라는 듯 태연하게 카드놀이를 하고 있던 유성이었다.
처음엔 이를 으득 물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일부러 속을 긁어 집으로 돌려보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별이 찾아오면 늘 기뻐한 유성이었다. 안도하기도 하고, 어디 아프진 않지? 하고 묻기도 했다.
정말 한별이 ‘무얼 해도 상관없다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돈 안 벌어도 돼. 형이 다 알아서 할게’ 같은 건 아니고, 무엇을 해도 돕겠다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작업실 좋지?”
“……그러게.”
유성이 블루 라임의 작업실을 보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