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놀랍게도 영상의 조회 수는 다른 영상에 비해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영상이 올라간 지 약 5일.
영상의 조회 수는 이전에 올린 영상들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속도로 올라갔다. 잘 모르는 곡임에도 사람들이 듣고, 원곡까지 찾아 듣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채원
씽아 코스모야 ㅠㅠ 좋은 노래 알려 줘서 고마워ㅠㅠㅠ 내 플리에 넣었다ㅠㅠㅠㅠ
꾸낑깅
처음 들었지만 원곡도 쩔고 코스모 편곡도 쩔고 씽 목소리도 쩔었다... 맨처음 영상보다 얼굴 더 돌린 거 보고 내 마음도 지금 쩔고 있다... 언제쯤 너의 용안을 볼 수 있겠니......?
역시, 태하의 얼굴을 조금 더 보인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뒤통수만 보이던 태하의 몸이 조금씩 돌아가며 이젠 후측면이라 할 수 있는 지경에 닿았다.
물론, 얼굴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씽=채널(Cha.N) 유성 동생의 친구’라는 공식이 꽤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하지만 너튜브 구독자나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기대하는 이유는 놀랍게도 해당 방송에서 태하의 정면 모습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별의 모습을 잘 찍기 위해 상대적으로 큰 태하의 모습은 얼마 나오지 않았다. 잘생긴 친구로 나름 화제가 되었지만, 멀리서 보이는 모습인 데다 측면이었다.
노래하는 장면 역시 옆모습과 악기가 함께 찍힌 풀샷이었고, 한별이 노래를 확인하는 장면과 교수들이 듣는 장면이 주로 찍혔다. 그 탓에 정면까지 제대로 보여 달라며 댓글이 극성이었다.
꾸준히 올라오는 댓글에 잠시 핸드폰을 보던 한별이 눈을 끔뻑였다.
“……태하야.”
“응.”
“지금 뜬 알림, 나만 봤니?”
“아니, 나도 봤어.”
Carl Daily✓
Amazing... Your voice is so sweet... Thank you for covering my song! Seein’ Cosmo!
원곡자가 등판했다. 이름 옆의 체크 표시가 실제라는 걸 확실하게 드러냈다.
원곡자 등판을 기점으로 외국인 재생 비율이 급격하게 늘었다.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을 뿐, 원곡 가수의 팬들은 존재했다. 원곡자가 자신의 SNS에 좌표를 찍자 당연히 보러 온 것이다.
“어……. 이거, 좋은 거겠지.”
“그…… 아마도?”
한국이 아닌, 외국 너튜브 알고리즘의 시작이었다.
* * *
한별은 너튜브가 아니더라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태하가 2주 간격으로 영상을 올리자고 제안했지만, 구독자가 늘어나자 다음 주 영상도 기대한다는 댓글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2주가 아닌 1주 간격으로 인식한 상황에 영상 업로드 간격을 다시 2주로 늘리는 건 안 될 일 같았다.
“한별아. 밥은?”
“아직…….”
“일단, 밥부터 먹자.”
실습실에서 뭐 먹으면 안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별은 태하가 건네주는 젓가락을 손에 쥐었다.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요즘 한별은 집에선 자신의 작업실, 학교에선 실습실과 녹음실에 살다시피 했다.
대학에 입학한 당시, 한별은 교수들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사는 ‘학생1’의 위치를 바랐다. 하지만, 한별은 자신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전공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작곡과는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다. 게다가 학생들의 평균 연령대 또한 20대 중후반이고,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외부 작업을 진행하는 케이스가 많기에 다른 학과 전공생들과의 작업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학교 졸업장을 위해 혹은 교수 및 같이 졸업할 미래의 뮤지션과의 인맥을 만들기 위해 입학한 학생들이 많은 전공.
그런 상황에 별똥별처럼 떨어진 사람이 바로 20살의 파릇파릇한 새싹, 최한별이다. 태하가 아니더라도 애초에 강제 인싸행이 될 상황이었다.
“아…….”
컴퓨터에 음식물이 떨어졌다간 조교님한테 혼날 테다. 한별은 젓가락을 꼭 쥐고 몸을 일으켰다.
“내려가서 벤치에서 먹자…….”
손등으로 피곤한 눈을 비비며 간신히 말하자, 태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끄덕였다.
3층에서 1층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거리가 한동안 건물 안에 틀어박혀 있던 한별에겐 꽤 소중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와…… 햇빛 뜨겁다.”
“…….”
태하가 말을 잃었다.
“몇 시에 학교 왔어?”
“집에서 옷 갈아입고…… 파일 옮겨 놓고 조금 잔 것 같은데? 아침엔 햇빛 안 뜨거웠어.”
“한별아. 눈 잠깐 붙인 건 잤다고 하는 거 아냐. 요즘 날씨에 햇빛 안 뜨거웠을 정도면 아침이 아니라 새벽이었을 거고.”
“…….”
팩트가 아프다. 한별은 살을 뚫고 들어오는 잔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한별이 집으로 돌아간 건 새벽 2시. 학과 앱에 실습실과 연습실 사용 관련으로 한별의 이름이 적혀 있으니,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남아 버렸다.
게다가 지금 작곡과 학생 중 학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건 한별뿐이었다.
“한별아. 너, 앙상블 팀 몇 개라고?”
“어…….”
4개?
1학년은 태하까지 끼워서 하나 있었고, 2, 3, 4학년에 각각 하나씩 있었다. 해당 학년 작곡 전공들이 다른 작업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이유였다.
물론 전부 한별이 작곡하는 건 아니었고, 기성곡 및 연주곡을 편곡한 후 그 편곡에 맞춰 악보를 그려서 나눠 주고,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 중이었다.
악기 전공들 나름대로 세션에 대한 이해도가 있기에 알아서 편곡할 순 있겠지만, 한별의 편곡 능력을 믿은 교수들이 한별을 팀에 배정했다. 한별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더라도 의견들을 취합해서 악보로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상황이 그렇다 보니…… 잠이 부족했다.
“왜 하루는 스물네 시간밖에 안 되는 걸까? 한 서른여섯 시간 정도면 좋은데.”
“…….”
하고 싶은 말이 턱밑까지 차오른 태하였다. 하지, 잠이 부족한 탓에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한별의 모습에 그저 한숨만 연신 흘렸다.
“한별아. 일단 이거 먹자.”
도시락엔 간이 세지 않은 음식들이 가득했다. 밥 또한 쌀밥이 아니라 소화가 잘되는 현미밥이었다.
고기와 야채, 과일까지 균형 있게 담긴 도시락을 보며 눈을 끔뻑이던 한별이 고개를 들었다.
“네가 만들었어?”
“응.”
왜? 한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니…….
“그냥 사 먹어도 되는…….”
“안 돼.”
단호박이시네요. 단호하기가 보통이 아닌데. 한별이 밥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밖에서 사 먹는 건 다 자극적이라 안 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움직임도 적은데 음식까지 자극적인 거 먹었다가 속 다 버리면 어떡해.”
‘가끔 우리 형보다 잔소리가 심하단 말이지.’
한별은 태하의 잔소리와 밥을 꼭꼭 씹어 삼켰다. 맛있었다.
한편, 태하 역시 자신이 챙겨 온 도시락을 펼쳤다. 메뉴는 똑같지만 양은 두 배 정도 되었다.
“진짜 많이 먹는다.”
“키가 크잖아.”
그렇긴 하지. 한별이 납득한 얼굴로 도시락을 차근히 비웠다.
담백하면서도 달콤한 떡갈비를 우물거리던 한별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마자 태하의 단호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지금은 일 생각하지 말고 밥 먹자, 한별아?”
“아니, 일이 아니고…….”
“뭔가 영감이 왔다는 얼굴이었는데?”
아니거든.
한별이 눈을 새초롬하게 뜨자 태하가 웃음을 지었다. 사기나 다름없는 외모로 미소를 짓자, 한껏 올라갔던 한별의 눈초리가 천천히 내려갔다.
“그럼 뭔데? 뭐기에 밥을 먹다 말기까지 해.”
“이거 맛있어서. 어디서 산 거야?”
잘라 먹어 조금 남은 떡갈비를 들자 태하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맛 괜찮았어?”
“응.”
“다음에도 만들어 줄게.”
“…….”
한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직접 만든 거였냐고.
“아, 아니 굳이 그렇게까진 안 해도 될 것 같거든……?”
“맛있다니까, 당연히 해 줘야지.”
미안해, 잘못했어. 굳이 일을 시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한별의 흔들리는 눈을 본 태하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아니, 너 왜 이렇게 요리를 잘해?”
“밥이 맛있으면 좋지 않아?”
“그야…….”
누구에게나 완벽한 이상형이다. 한별이 꿀을 훔쳐먹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자, 태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예전에 들었던 말, 기억나서.”
“무슨 말?”
“요리 잘하는 사람이 좋다고.”
태하를 바라보던 한별이 고개를 다시 내렸다. 밥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듯했다.
좀 해롭지 않나? 저 발언. 소위 말하는 유죄 발언이다. 남들이 들어도 유죄라며 판결 내릴 것이다.
“……그럼, 이거는?”
지금 가장 좋은 건 말을 돌리는 것이다. 한별이 같이 있는 김치와 나물 반찬들을 가리키자, 태하가 이번에도 자신을 가리켰다.
사기다, 진짜. 김치도 직접 담가? 한별은 반찬과 밥을 꼭꼭 씹어먹기로 했다.
지태하, 유죄. 그리고 죄명은 대충…….
“다 먹었어?”
“응. 얼른 가서 남은 작업해야 하니…….”
“안 돼. 조금 쉬고 해야 능률에 좋아. 카페 가서 간식 사 가자. 단 거 먹을까?”
“……응.”
태하가 한별의 이마에 살짝 손을 댔다가 내렸다.
“컴퓨터 앞에 계속 있어야 해서 덥잖아. 아이스 초콜릿 어때?”
자각 없이 다정한 죄.
“……어.”
지나가듯 한 말까지 전부 기억하는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