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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75화 (75/78)

75화

상대는 열성 알파. 한별은 오히려 우성인 자신이 페로몬을 잘못 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기 때문에 대응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강제적인 페로몬 샤워 행위는 범죄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열성이 우성에게 행하는 페로몬 샤워는 생각보다 큰 처벌이 가해지지 않았다. 반대의 경우보다 효과가 미미한 탓이었다.

“가지 마. 너, 내 오메가 해. 응?”

학교에 형이 자주 얘기하던 수준의 미친놈이 있었어, 형.

‘팬 사인회에 와선 페로몬을 막 내뿜는 거야. 나야 같은 오메가이니 상관이 없지. 못 맡는 척하느라 혼났지만. 근데, 형들은 표정부터 굳더라. 범죄잖아.’

‘그거 맡는다고 뭐 돼……?’

‘뭐 될 리가. 자기가 운명의 오메가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는데, 그냥 혼자 마음 키우다 폭주하는 거야. 스토커들이 그런 경우 많다더라.’

‘자주 있었어?’

‘그렇게 자주 있진 않아. 오메가 없다는 거 때문에 알파는 그런 경우 없었고. 여태 두 번 정도 그랬나? 근데 그거야, 인구수가 적어서 그런 거고……. 사실 사생이 더 무서워.’

‘아…….’

‘페로몬 쪽은 대놓고 내뿜으면 대응이라도 되잖아. 주변에 말해서 막으면 되기도 하고.’

한별은 그룹에 있는 알파 두 사람 때문에 유성이 겪어 봤다는 상황이 자신에게 벌어지자 어이가 없었다.

“내가 알파니까, 넌 내 오메가가 되어야 해.”

“무슨 헛소리세요, 진짜…….”

“내가 페로몬 묻혔는데, 거절 안 했잖아!”

애초에 관심도 없던 거라고.

“약한 페로몬에 누가 관심을 가집니까? 몸 안 좋아도 나오는 게 그 정도 페로몬인데. 저, 선배님한테 관심 없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태하는 놀랍게도…….

“이거, 신고하면 될까요? 선배님.”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고 있었다.

“페로몬은 제가 확인했고, 페로몬 반응도 확실하게 나올 테니까…….”

빙긋 웃은 태하가 말을 이었다.

“경찰서에서 마저 이야기 나누시죠.”

아, 잘생겨서 그런가. 웃는 거 진짜 왕자님 같네. 하필 역광으로 들어와 더 그런 것 같았다.

한별은 자신을 향한 태하의 미소에 동의하듯 끄덕였다. 합의, 절대 안 할 거다.

태하는 우성 알파이니 상대는 제 페로몬이 밀린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한참 동안 태하를 불청객 취급하던 상대는 한별이 태하에게 가까이 다가서자, 불만스럽다는 듯 입을 꾹 다물다가 소리쳤다.

“……너, 너, 그거 바람이야!”

뭐가 바람이야. 연애해 본 적도 없는데 뭔 바람이냐고.

한별은 굉장히 억울해졌다.

졸지에 애인도 없는데 태하와 바람을 피우는 인간으로 매도되었다. 한별은 저와 똑같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태하를 보곤 한숨을 쉬었다.

증거도 있고, 피해자도 있고, 목격자도 있다.

상대는 분한 얼굴로 씩씩대다 밖으로 나갔다. 내내 영상을 촬영하고 있던 태하가 그제야 촬영을 종료하고 고개를 돌렸다.

“은근히 엄청나네…… 페로몬이 진동을 해.”

원치 않은 페로몬이 닿아 조금 짜증 나는 것 빼고는 아무렇지 않은 한별과는 달리, 태하는 같은 형질의 페로몬에 거부감이 드는 듯 주위를 돌아다니며 실습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 정도로 심해?”

한별의 물음에 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하는 창을 열다 문득 생각이 났는지, 한별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한별이, 너…… 억제제 먹었구나?”

“응.”

“어쩐지 그렇게 쉽게 지워질 리가 없는데…….”

지금도 페로몬이 흐리더라니.

한별은 태하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눈을 가늘게 떴다.

‘얘 진짜 페로몬에 엄청 예민하네…….’

억제제는 히트나 러트 기간에 흘러나오는 과한 페로몬 및 본인의 반응을 억제하는 약물이다.

그러다 보니 억제제를 먹으면 상대 페로몬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특히 열성보다 우성에게 이런 부작용이 크게 나타났다.

물론, 상대가 열성이고 감정이 있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상대의 페로몬에 오래 노출되면 몸에 그리 좋지 않았다.

실제로 한별은 같은 오메가의 페로몬, 그것도 열성 페로몬임에도 히트 사이클이 당겨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근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열린 창을 타고 바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문도 열어 둔 덕에 실습실을 가득 채웠던 페로몬은 빠르게 사라졌다.

한별은 태하의 한쪽 손에 들려 있는 제 가방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알고 챙겨 온 걸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습실에 다른 사람 페로몬이 났거든.”

“…….”

연습실에서부터 묻히고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한별로서는 상대가 제 페로몬을 꽤 많이 묻히고서야 상황을 알아챘다는 뜻이었다.

이에 한별은 더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그쯤 묻혔으면 못 맡고 있나 보다, 하지 않아?”

열성도 억제제를 먹으면 페로몬을 잘 못 맡으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렇지만, 상대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한별에게 했던 이야기도 그렇고, 꽤 오랫동안 착각을 해 온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한별아, 사실은 더 이상한 게 있어서.”

태하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한별은 눈을 크게 떴다.

* * *

최근 들어 한별은 집에서 유성의 ‘이상 흔적’을 찾고 있었다. 설마 유성의 철두철미한 성격에 뭔가 남겨 놓고 갔을까 싶지만, 그래도 확인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전부터 보아 온 유성의 행동, 말투, 뭔가를 아는 것처럼 대비하는 듯한 모습.

그리고…….

‘……한별아, 사실은 더 이상한 게 있어서.’

‘뭐가?’

‘유성이 형이 요즘 별일 없냐고 물었어.’

‘별일?’

‘응. 혹시 네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 있진 않냐고.’

‘……내 주변을?’

‘평소에 내가 한별이 너와 생활 반경이 많이 겹치니까 나한테 물은 것 같더라고. 그런데…… 같은 학교 선배가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곤 생각 못 했어. 미안해.’

‘아니, 네가 미안할 건 없지…….’

태하가 심하게 자책했다.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말에 오히려 한별은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게 누군가 속으로 이상한 감정을 품은 걸 다른 사람이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감정과 생각은 보통 말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법인데.

무엇보다 당사자인 한별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니 함께 다녔던 태하 역시 쉽게 알아채지 못한 건 당연했다.

그 선배와는 수업 루트가 같지도 않았고, 과거에 연습실을 빌렸던 내역도 확인해 보았으나 겹친 적이 없었다. 마주친 것은 앙상블 수업과 학년이 섞인 교양 과목 정도였다.

얼굴을 마주친 적도 별로 없었음에도 그런 식으로 혼자 감정을 진전했다니,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해되지 않는 것은 태하가 들려준 말이었다. 당사자인 한별도 가까이 있던 태하도 알지 못한 걸 유성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예측한’ 듯이.

사실, 아예 일어나지 않을 일은 아니었다. 얼굴이 알려질수록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얼굴 조금 알려졌을 뿐이지 한별은 공개적으로 방송에 마구 출현하는 것도,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도 아니다. 또한 ‘싱 코스모’ 너튜브 채널에선 모두가 ‘부캐’ 쪽으로 여론을 형성해 주는 상황이었다.

―흔적이라……. 형 성격에 없지 않을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태하의 말에 한별은 반박할 수 없었다.

한별이 한탄하듯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잖아.”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한별은 태하와 통화하며 여러 가지 가정을 떠올렸다.

첫 번째. 형이 사실은…….

“국정원도 무리고, 정보사도 안 돼. 한국 국적만 있으니 외국 쪽은 더더욱 말이 안 되고.”

―솔직히 가장 말이 안 되는 가정이긴 해.

“그렇지…… 뭣보다 나이도 안 돼.”

―아이돌 하는 사람이 언제 시험을 보고 들어가겠어? 입대 쪽도 애초에 나이부터 안 되고. 또, 군대 가면 훈련 받아야 하지 않아? 그런데 오메가는 군대 안 가니까 더 안 맞는걸.

혹시나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직업을 가져서 전부 알아채고 대비하는 것일까, 생각했지만 법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아예 불가능했다.

아무리 유성이라 할지라도 가족을 상대로 나이를 속일 수는 없다. 또, 친형제이니만큼 어린 시절부터 계속 보아 왔기에 사람이 중간에 바뀌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에 한별은 다른 가정을 떠올렸다.

두 번째. 한별의 주위에 사람을 붙였다. 혹은 모종의 기기를 이용해 한별을 감시하는 중이다.

현재 유성의 방은 한별의 작업실이 되었지만, 원래 있던 물건을 버리진 않았다. 대부분 다용도실에 보관해 뒀는데 한별의 방에 옮겨 놓은 것들도 있었다.

제 방으로 옮긴 옷가지나 유성이 받았던 상장 등에 힌트가 있을 리가 없으니, 한별은 다용도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상자를 꺼내 하나둘 살펴보던 한별이 입을 열었다.

“근데, 사람을 붙였다거나 감시하는 거라면 형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단 말이지.”

―그것도 조금……. 사람을 붙였다고 해도 집 안 상황까지 아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을까?

“혹시나 집에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했다든가…….”

―그랬으면 부모님이 먼저 알아채지 않으셨을까?

태하의 추측에 한별은 고개를 내저었다.

부모님은 일이 바빠 집에 자주 들르지 못하시는 만큼, 집에 관심이 없었다. 회사 일에 바쁜 어머니와 연구와 논문으로 바쁜 아버지를 둔 한별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았다.

“작업실만 해도 공사하기 전에 이야기했는데, 바뀐 걸 보신 건 봄이 다 되어서였어. 입학식쯤이었나?”

―아…… 그래?

“응. 그러니 부모님이 알아채실 리 없고, 집에 뭘 설치하거나 하는 건 형이나 가능한 일이긴 하단 거지.”

―그래도 좀…… 솔직히 무리일 텐데?

한별도 동의했다. 기실 답답함에 온갖 말도 안 되는 추측을 가져와 붙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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