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형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끝나는 일들은 모두 말이 된다.’
솔직히 연습도 열심히, 데뷔 후에 활동도 열심히, 곡 준비도 열심히, 팬 사랑도 열심히 했다.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하는 것도 확인했고, 레이블 설립에 데려갈 직원들을 빼내기 위해 움직인 것도 확인했다.
열심히 했으니까. 그러니 한별은 유성이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게 이해가 됐다.
자신이 열심히 해서 잘 나오게 된 학교의 점수나 편곡과 태하의 실력에 시너지가 일어나 불어나는 너튜브 구독자 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선재 변호사님
절대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요. 합의도 더는 요청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만나서 연락드릴게요.
무조건 합의를 받아 내겠다고 달려들던 상대가 돌연 한별에게 좋도록 자신의 의견을 무른 상황이 계속 한별의 신경을 긁었다.
메시지를 닫자마자 바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시험 중인 태하의 연락인가 싶어 확인하던 한별은 멍하니 액정을 바라보았다.
윤단영 형(채널)
한별아. 혹시 필요한 거 있니?
여기 일본 초콜릿 유명하던데~
없어도 되는데요. 한 그룹의 리더면 평범하게 멤버만 챙기시라고요.
하지만 한별은 꾸준히 자신을 챙기는 단영에게 차마 부담스럽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괜찮습니다.
소속사 이동이 눈앞에 다가오니, 단영의 작업(?)은 더욱 거세졌다. 블루 라임에 싱 코스모가 합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영은 개의치 않았다.
19기 정윤수 선배
간식 보내려고 하는데.
형도 굳이 그러실 필요 없는데요.
리더라 저장한 단영과는 달리, 윤수는 학과 선배로 저장했다. 한별이 저장한 이름을 보더니 태하 역시 똑같이 맞췄다.
하지만, 간식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의도가 뻔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선배님.
이럴 땐 선 긋는 게 상책이다.
한별은 일부러 거리를 더 두기로 했다. 아무리 윤수가 유성에 대한 관심 때문에 동생인 자신을 챙기는 것이라고 해도, 도와줄 수 없으니 미리 선을 긋자는 취지였다.
이젠 여러 번 봤다고 ‘형’이라고 불렀던 전과는 달리, 최근엔 아예 ‘선배’로 호칭을 굳혀 버린 한별이었다.
19기 정윤수 선배
형이라고 해도 되는데.
선배님은 맞으시니까요. 그리고 저희 형이 사서 보내 줄 거라 괜찮습니다.
아이돌은 연애에 눈 돌리지 마라. 같은 멤버여도 우리 형은 진짜 안 된다.
한별은 역시 유성의 행실도 좀 눈여겨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윤수와의 대화를 멈췄다.
우선재 변호사님
절대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요. 합의도 더는 요청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만나서 연락드릴게요.
무조건 합의를 받아 내겠다고 달려들던 상대가 돌연 한별에게 좋도록 자신의 의견을 무른 상황이 계속 한별의 신경을 긁었다.
메시지를 닫자마자 바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시험 중인 태하의 연락인가 싶어 확인하던 한별은 멍하니 액정을 바라보았다.
윤단영 형(채널)
그래도 라멘 보내는 건 포기 못 해~ 여기 맛집이라고!
집으로 가게 보냈으니까 우리 입국보단 더 빠르게 도착할 거야 맛있게 먹어~
“아, 좀 포기해!”
그냥 포기하라고! 당신은 또 왜 이러는 거야! 아직 커리어도 없어서 날 작곡가로 쓸 수도 없잖아!
그리 생각하던 한별이 문득 스쳐 지나간 생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
이 형, 설마…….
단영이 여태 보냈던 메시지들을 차근차근 보던 한별이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어느 순간, 일상에서 자신을 챙기는 듯한 모습…….
이건, 설마…….
“한별아, 나 시험 다 끝났…… 는데, 무슨 일 있어?”
“태하야…….”
“무슨 일이야.”
“단영이 형이…….”
한별의 진지한 표정에 태하 역시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한테 고백했어?”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한별이 어처구니없다는 양 흐린 눈을 하자, 태하가 눈을 끔뻑였다. 일단 안 일어난 일이라는 건 잘 알겠다.
“단영이 형도 유성이 형을 좋아하는 것 같아.”
“…….”
어쩌다 그런 결과에 다다랐냐는 태하의 표정에 한별은 자신이 생각한 근거를 늘어놓았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은 없었고, 방음이 잘되는 학과의 작은 합주실은 비밀스러운 이야기하기 딱 좋았다.
“솔직히 처음에 단영이 형이 유성이 형 페로몬을 마음에 들어 하면서 ‘그 페로몬은 노래랑 춤을 못 출 페로몬이 아니다’라고 했었거든? 그땐 그게 뭔 개소린가 싶었는데 말이지.”
“응.”
“유성이 형한테 얘기 듣기로도 맨 처음에 단영이 형은 페로몬이 마음에 든다고 했었단 말이야. 그게, 사실은 유성이 형인 걸 본능적으로 알아채서 그런 거지!”
한별이 다시 여러 근거를 댔다.
내기의 결과라곤 하지만 굳이 자신의 실기를 도운 일,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회사로 데려오려고 하는 것들, 그리고 지금 보낸 메시지 내용.
“아…… 그래?”
“친동생을 챙기는 거지. 보통 가족부터 공략하라고 하잖아.”
한별은 그제야 자신을 향한 단영과 윤수의 선물 공세가 이해되었다.
부모님께는 당연히 연락할 수 없었다. 채널(Cha.N)의 멤버들도 한별과 유성의 부모님이 바쁜 일이 있어 연락이 자주 닿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그럼 남은 가족인 자신의 호감을 미리 사 놓으려는 수작인 거다.
“그럼 왜 유성이 형한테 직접 잘하지 않고……?”
“우리 형은 관심을 안 가져 주니까 나한테 그러는 거지. 최유성 씨가 일 바쁜데 연애에 신경을 쓸 인간이야?”
단영이 형은 도대체 호칭을 뭘로 바꿔야 할까? 한별이 진지하게 중얼거리자, 태하가 미소 지었다.
“그럼, 그 두 사람 도와줄 거야?”
“아니. 내가 왜? 도와줄 생각 없어. 본인이 쟁취 못 하는 건데 내가 뭐하러 도와줘?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했어.”
“어디서?”
“뮤지컬에서.”
배우는 곳이 전부 음악이구나.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한 태하가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아, 왜. 뭐가 그렇게 웃긴데.”
“……아냐, 아무것도. 나중에 그 뮤지컬, 같이 보러 갈까?”
“어? 그럴까? 공연 기간 끝났으려나? 태하야, 뮤지컬 하니까 생각난 건데, 커버 영상으로 팝만 하지 말고 뮤지컬 커버해도 괜찮을 것 같아. 잘 어울리고.”
바로 다음 작업으로 화제를 바꾼 한별을 보며 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하니까, 꽤 좋은 문장 같아. 그 노래 편곡 준비해 볼까?”
“그거 좋네.”
곧장 노래를 찾으려 인터넷 서핑을 시작한 한별을 슬쩍 본 태하가 눈을 접었다. 그러곤 작게 목소리를 꺼냈다.
“딱히…… 오해를 풀어 주고 싶지 않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 했으니, 한별의 엉뚱한 의견에 수긍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여지도 막는 것도 자신의 임무일 것이다.
* * *
기말고사가 끝난 후, 한별은 방학을 맞아 여름 학기가 진행되는 학교에 나와 있었다.
물론, 한별은 여름 학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방학이라고는 해도 연습실 대여는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편곡 작업은 집, 녹음은 여전히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이참에 아예 강의실도 빌려 볼까?”
태하가 준비한 과일 도시락을 열어, 과일을 우물거리던 한별이 입을 열었다.
“강의실?”
“정식 뮤직비디오는 아니어도, 기왕 학과 도움 받는 거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자작곡 스케일이 은근히 커졌다.
지금 싱 코스모의 너튜브 채널엔 커버 영상들이 가득했다.
이제 막 10개가량의 영상을 올렸는데 유성이 하나도 아닌 두 대의 카메라를 가져다준 덕에 처음부터 약간의 구도 편집을 넣었고, 굳이 가사를 큰 자막을 달지 않은 덕에 오히려 노래와 얼굴에 집중이 되어 깔끔했다.
하지만 원래 네댓 개쯤 영상 사이에 자작곡을 올리는 것으로 생각했던 목표는 생각보다 늦어졌다.
유성이 학교에 촬영을 왔을 때 찍은 노래와는 다른 노래를 너튜브 영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교수들이 태하가 부른 한별의 자작곡을 따로 들어 보았다.
애초에 음원 등록을 할 생각이었지만, 교수진들은 한발 앞서 아예 유통 기획사까지 찾아 주었다.
대신, 한별과 태하가 학교의 도움을 받길 원했다. 얼굴을 알리지 않는 싱 코스모의 특성을 그대로 적용은 하되 촬영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식이었다.
학교에서 촬영한다고 해도 교수들이 촬영을 돕고 하는 건 아니고, 미디어 콘텐츠 학과 학생들이 해당 학과 촬영 기기와 조명 등을 가져와 편집까지 끝내 주는 식이었다.
“도착이 늦네.”
“그쪽 입장에선 방학에 갑자기 불려 나오는 거니까.”
타 학과 학생의 포트폴리오 역할까지 요청한 게 살짝 애매하지만, 적어도 점수는 잘 얻을 수 있을 테니 도움을 받아 보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노래를 듣고 해당 학과에서 영상 콘티까지 짜서 전달해 줬다. 그러니, 태하와 한별 쪽에서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한별과 태하가 전문 연기자가 아닌 것을 알고 있으니, 도착한 콘티 영상 자체도 큰 연기가 필요하지 않은 내용이 다수였다.
“근데, 콘티 약간 드라마 같지 않아? 막 스토리 있고.”
“음……. 나도 그런 생각은 들어.”
채널(Cha.N)의 노래를 했을 때 한별이 연주하는 장면을 넣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너튜브 영상엔 태하만 나왔다.
구독자들도 조금씩 공개되는 얼굴 면적이 늘어 가는 것을 보며 이젠 온전히 얼굴이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어차피 촬영한 영상이 편집되고,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예정이었다. 황금 같은 방학에 같은 학생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니 굳이 재촉할 생각도 없었다.
물론 그만큼 공개가 늦어지게 되겠지만, 편곡 중인 곡은 많으니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커버곡이 많아지면서 너튜브 채널의 운영 방향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
(여기다 갱신 금지????
혹시라도 그런걸 발견하면 저는..그분께 나머지를 맡기고 이만 빠지겠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