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던전 밖 (2/6)

#2. 던전 밖

지연이 올라간 뒤, 남자는 동굴 벽에 바짝 붙어 숨어 숨소리를 죽였다. 아직 던전을 벗어난 건 아니니 선글라스는 벗지 않았다.

잠시 뒤.

탈것이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다시 내려왔다. 하지만 그걸 타야 할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생존자 확인 바랍니다. 생존자 확인.]

삐이익-

시끄러운 경고음이 울렸다.

저 위에서 입구를 지키고 있던 헌터 셋이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들이 신고 있는 신발은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셋은 가뿐하게 착지해 주변을 살폈다. 남자를 찾는 듯했지만, 입구에서 쏟아지는 밖의 빛이 닿는 곳 근처만 서성일 뿐. 남자가 숨은 안쪽까지는 오지 않았다.

“두 번째 생존자가 보이지 않음. 확인 바람.”

한 명이 무전하는데, 저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방금 내려온 헌터 셋이 일제히 손전등을 켜 그쪽을 비추었다.

남자와 지연이 걸어온 길 말고 다른 길에서 사람 넷이 걸어오고 있었다.

초반 생존자 수색이 지지부진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이 던전은 입구에서부터 길이 일곱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잠깐. 멈추고 신원 확인 바랍니다.”

그의 외침에 다른 길에서 오던 넷이 멈춰 섰다.

넷 중 셋은 헌터였다. 한 명이 생존자였다. 비교적 상태 좋은 헌터 둘이 각각 생존자와 동료 헌터를 업고 있었다.

“충주 사과, 족제비, 남산타워. 이쪽 생존자는 임산부입니다.”

저쪽에서 외쳤다.

임산부 생존자를 지키며 싸우다가 헌터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세 헌터가 경계를 풀고 달려가 생존자와 부상당한 헌터를 부축했다.

남자는 생존자와 헌터들이 탈것을 타고 올라가는 걸 지켜보았다. 위쪽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 분위기가 가라앉기 전까진 사라진 또 다른 생존자는 기억나지 않을 터였다.

남자는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입구 벽을 타고 올라갔다. 절벽을 타는 산양처럼 날랬다. 하지만 절벽을 오르다가 중간에 한 번, 손을 헛짚어 떨어질 뻔했다.

‘몸이 좀 굳었나?’

남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말도 안 되는 실수라 어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아까도 실수가 있었다. 몬스터를 완전 사살했다고 생각했는데. 몬스터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가 마지막 반격을 가했다. 던지는 힘이 부족했던 걸까.

바로 제압해 말 그대로 으깨 버리긴 했지만. 원 샷 원 킬. 100%에 가까운 명중률과 사살률을 자랑했던 전적을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실책이었다.

‘돌아가면 운동 좀 해야겠군.’

남자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펴며 위로 손을 뻗었다. 한 번 실수에 정신이 들어서일까. 두 번째 헛손질은 없었다.

남자는 위로 올라가 사람들 틈에 슬그머니 끼었다. 임산부 생존자 발견에 소란스러워진 상황에서도 던전 안을 경계하는 인원은 분명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탈것에 고정되어 있었다. 절벽 가장자리를 기어 올라온 남자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몬스터가 나처럼 기어오르면 어쩌려고.’

남자는 느슨하다 못해 허술한 헌터들의 경계 태도가 못마땅했다. 하지만 곧, 그들이 자신들처럼 필사적으로 예민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몬스터 추적 스킬을 쓰고 있겠지.

만약 남자가 몬스터였다면, 그들은 알아서 남자를 발견하고 휘황찬란한 스킬을 난사했을 것이다.

남자는 사람들이 절 이상하게 보기 전, 누가 벗어놓은 구급대 점퍼를 입었다. 선글라스는 벗었다. 그러곤 급한 명령을 받은 사람처럼 양해를 구하고 인파를 헤치고 밖으로 나왔다.

공기가 신선했다. 남자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제가 방금 빠져나온 던전을 돌아보았다.

이 인스턴트 던전은 개방형이었다. 던전 입구가 동굴처럼 열려 있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나올 수도 있었다. 타임홀 던전과 정 반대 타입이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처음 열릴 때 주변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들을 빨아들이고, 이후에도 사람이든 몬스터든 나고들 수 있으니까.

이 인스턴트 던전의 선제공격권을 차지한 건 동해 길드였다. 동해 길드는 대한민국 최고 길드답게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얼마 전까지 민군 합작 길드였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군부대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인스턴트 던전은 왕을 잡아 죽이면 던전 입구가 닫히고 사라진다. 그러니 생존자를 모두 구출하기 전까지는, 던전 내 시료를 채취해 자원이 풍부한 던전인지 확인하여 고정 던전화 시킬지 판단이 설 때까지는, 던전의 왕을 죽이면 안 된다.

그러니 던전 공략팀은 왕을 상대하며 시간을 끌고, 구조팀은 던전 내부를 수색하여 생존자를 구출하고 시료를 채취하고, 지원팀은 던전 입구를 지키며 몰려드는 인파를 통제하고 생존자를 수습해 적절한 처치를 한다.

남자는 그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곳에 존재한 적 없었다는 듯 조용히 사라질 생각이었다.

동해라고 등판에 크게 쓰인 구급대 점퍼를 벗고, 누구 것인지 모를 낡은 점퍼와 모자를 슬쩍해 눌러쓴 채로 구경꾼들 사이를 헤쳐 이곳을 벗어나려는데.

“모정우 대령이다!”

“대령님!”

“길드장님! 안녕하십니까!”

“충성!”

남자의 동생이 나타났다.

남자 앞에 보라색으로 은은히 빛나는 검은 세단이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슈트를 입은 장신의 모정우가 몸을 일으켰다.

그를 본 사람들은 구경꾼, 기자, 길드 직원, 소속 헌터 가릴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몰려들었다. 아이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살아남은 임산부의 감동적인 인터뷰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우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양옆으로 세 걸음씩 물러서 길을 만들었다. 정우를 영접하러 몰려들었으나 그 누구도 감히 정우를 잡아당기거나 달려들지 않았다.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우러러볼 뿐이었다.

정우를 그런 눈으로 보지 않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젠장.’

남자는 인상을 구기며 돌아섰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자리를 피하려 했건만. 정우가 가만 두고 보지 않았다.

“형.”

안 들린다.

“연우 형.”

여기에 연우 형이 또 있나 보지.

“모연우, 대답하지?”

……젠장.

사람들은 남자의 정체를 눈치채고, 알아서 정우와 남자 사이에 길을 텄다.

“형. 연우 형. 모연우.”

대답할 때까지 계속 부를 셈인 듯했다. 정우는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남자를 불렀다.

남자, 연우는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

눈이 마주쳤다.

“안녕, 형?”

너 때문에 안녕치 못하시다면?

“역시 여기 있었네.”

딴 데 있는 줄 알고 딴 데로 가 버리지 그랬냐.

“놀라긴.”

하나도 안 놀랐거든?

정우가 눈웃음치며, 그 긴 다리로 단번에 걸어왔다.

연우는 뒷걸음쳐서라도 그와 멀어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정우가 너무 반갑다는 듯 연우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가볍게 끌어안았다. 죽은 줄 알았다가 십 년 만에 상봉한 형과 동생 같아 보였다.

형의 얼굴은 죽상이었지만 모자를 꾹 눌러쓰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와, 그 모연우, 모정우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형도 같이야!”

“대령님이 형을 진짜 아끼나 봐.”

사람들이 멋대로 떠들어댔다. 개중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연우는 그 사람이 빠른 시일 내에 안과나 정신과에 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 잠깐만요. 대령님!”

고맙게도 이 눈물겨운 형제 상봉을 방해하려는 사람이 나타났다.

연우는 반가워 고개를 돌렸다가 그의 행색을 보고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똥차를 피하려다가 또 똥차를 만난 기분이랄까.

“형님분께서는 아직도 각성을 못하셨다는데, 맞습니까? 그럼 이대로 구헌터로 분류되는 겁니까?”

기자가 복식 호흡 발성으로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게 봉인을 푸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정우의 등장에 압도되어 있던 기자들이 하나둘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는 앞다퉈 핸드폰과 마이크를 내밀었다. 그러곤 비슷한 질문을 쏟아냈다.

각성, 상태창, 아직 형님은, 구헌터.

특정 단어들이 반복될수록 훈훈한 형제애를 보며 흐뭇하게 웃던 사람들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시한폭탄 보듯 보는 시선이 살갗을 따갑게 찔러 댔다.

‘이래서 조용히 빠져나가려고 한 건데.’

연우는 애꿎은 모자만 꾹꾹 눌러썼다.

절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불편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질문들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입장 표명을 해 왔습니다만.”

다만. 당연하게 앞에 서며, 보호자로 나서는 정우의 모습이 신경에 거슬렸다.

무언가 물어뜯을 게 없을까. 기자들은 굶주려 있었다. 정우는 그들을 둘러보며 옅게 웃었다.

정우와 눈이 마주친 기자들은 제가 언제 이빨을 드러내었냐는 듯 주춤하다 고개를 돌렸다. 물론 기자들 모두가 적절하게 물러설 타이밍을 잰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형님분이 대학로 01 던전에서 나온 지 벌써 한 달째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각성을 못했다는 건-.”

“제 형은.”

정우가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기자의 말을 끊어냈다.

“십 년 동안 국가를 위해 타임홀 던전에서 몬스터들과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십 년입니다.”

“그, 그건 적절한 보상이-.”

“자그마치 십 년.”

정우가 피식, 웃었다. 참 가당찮다는 듯이. 연우는 정우의 손등 위에 도드라진 힘줄을 발견했다.

“아니, 십 년 하고 더 되지요. 형이 던전에 들어갈 때 난 헌터가 아니었고. 형의 심장이 멈춰 던전이 다시 열렸던 날은 내가 예편하는 날이었으니까.”

“그게 지금 당신 형이 각성 못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다른 기자가 지원 사격에 나섰다.

“내가 예편식 중 연락을 받자마자 던전에 들어가 형에게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면 내 형은 그대로 죽었을 겁니다. 내 형은 이미, 던전에서 한 번 죽은 목숨이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그게-.”

“국가를 위해 죽었다가 겨우 되살아난 사람에게, 십 년 만에 겨우 돌아온 내 형에게. 고작 한 달 적응할 시간을 주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보이라고 말하는 게 옳은 일인지 묻고 싶습니다만.”

단정하고 고저 없는 말투. 중령 시절,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국회 청문회에 소환당해 질의서를 읽고 답변할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구경꾼들은 그때를 기억해냈고, 제풀에 흥분한 기자들 역시 그때를 기억해냈다.

분위기가 다시 변했다. 이번엔 형제를 향해 좀 더 온정적인 방향으로. 감히 모정우 대령의 심기를 건드린 기자들을 향해서는 적대적으로.

기자들은 몸을 움츠리며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침묵은 잠시뿐이었다. 기자란 불굴의 정신을 가진 물음표 종족이니까.

“그런 말로 각성 못한 형을 옹호하는 건-.”

“그 말은, 그럼 모정우 대령님께서는 아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구헌터들을 옹호한다는 뜻으로-.”

“혹시 동해 길드에서 구헌터 구제 지원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게 형님과도 연관-.”

“모정우 대령님! 요즘 구헌터 테러 집단의 테러 행위가 극심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

“혹시 대령님 형님과 구헌터들의 테러 행위에 연관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

“동해 길드에서는, 그리고 저는. 형의 각성 유예 기간을 최대 석 달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정우가 기자들의 말을 끊고 짧게 답했다. 동해 길드를 통해 나온 공식적인 입장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발언이었다.

“석 달? 대령님, 그 구체적인 기간은 어디서-.”

“왜 석 달씩이나 걸린다는 겁니까.”

“대령님! 대답을!”

“모정우 대령! 잠깐만!”

“형, 가자.”

정우가 연우에게 어깨동무하고 그를 잡아 끌었다.

“잠깐만요!”

“대령님!”

“모정우 대령!”

“여긴 왜 온 겁니까. 형님분은요!”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으나 누구도 정우와 연우의 소매 한 번 잡아당기지 못했다. 대기하고 있던 지원팀 헌터들이 벽이 되어 그들을 막아섰다.

“왜들 저래.”

“딴사람도 아니고 모정우 대령 형인데. 설마 구헌터로 남기야 하겠어?”

“대령님 말씀이 맞지. 겨우 살아 돌아온 사람한테 뭘 바라. 적응할 시간을 줘야지. 십 년 새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사람들이 수군대며 기자들을 손가락질했다. 그들 중 누구도 감히 정우의 앞길을 막아서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들에게 잡히지 말고 빨리 가시라고 길을 터 주었다.

정우와 연우는 지원팀의 보호를 받으며 차에 올라탔다. 연우는 타고 싶지 않았으나 뒤에서 떠미는 정우 때문에 탈 수밖에 없었다. 타자마자 반대쪽 문을 열려 했으나.

달칵, 달칵.

의미 없는 손짓이었다.

문이 잠겨 있었다. 여는 방법이 있을 텐데. 옆에서 들린 비웃음 때문에 찾을 시도도 하지 못했다.

“계속 그렇게 귀엽게 굴어 봐.”

정우가 넥타이를 풀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서른 중반의 남자가 이십 대 중반의 형제에게 할 수 있는 말이나. 이십 대로 보이지만 서른 중반인, 정우보다 무려 한 살이나 더 많은 연우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하극상이었다.

“닥쳐.”

연우의 말에 정우 말고, 앞에 앉아 있는 운전자와 비서가 동시에 인상을 찡그렸다. 비서는 백미러로 연우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연우는 거리끼지 않았다.

그는 정우의 형이었다. 모정우의 형, 모연우로 이십 년 넘게 살아왔다. 한 살 차이여도 형은 형. 저보다 열 살 많아 보이는 동생이라 해도 동생은 동생이었다. 동생이 어딜 감히 형한테.

“애써 형 찾으러 온 동생한테 무슨 말이 그래, 서운하게.”

정우가 전혀 서운하지 않은 얼굴로 앞쪽에 눈짓했다.

운전사가 급히 시동을 켰다. 보조석에 앉아 있던 비서는 얼른 눈을 내리깔고 태블릿을 내밀었다.

“오후 스케줄은 모두 캔슬했습니다. 당장 급한 문건만 결재해 주시면 됩니다.”

정우는 태블릿을 건네받았다.

“너만 안 왔어도 내가 알아서 조용히 빠져나올 수 있었어.”

“애초에 아무 말 없이 빠져나와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됐을 텐데?”

“내가 어딜 가든…….”

“내 소관이지. 형이 각성하기 전까진.”

“…….”

모자 아래 단정한 턱 선이 굳는 게 보였다. 정우는 태블릿에 담긴 급한 문건보다 연우의 턱 선, 그 아래로 이어지는 긴 목에 시선을 두었다.

한 달.

빨고 물어뜯었던 흔적이 사라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던전 밖은 타임홀 던전과 달리 시간이 흐르니까.

언제 씹힌 적 있었냐는 듯 매끈한 목선을 볼 때면 살의가 돋았다. 또 죽기 싫으면 알아서 두꺼운 스웨터나 목티로 좀 가리고 다녔으면 좋겠는데.

얇은 면티에, 어디서 주워 입었는지 모를 점퍼라니. 가소롭게 맛있어 보여 입안에 침이 다 고였다.

“10.3km.”

“뭐가.”

“형이랑 나 사이 거리.”

“그게 뭐.”

“너무 멀잖아. 미쳤어?”

“무슨 소리야. 애초에 일 있다고 먼저 나간 건 너잖아?”

“길드 본사에서 내 목적지까지는 5.8km야. 안정권인데 형이 멋대로 이곳으로 와서 사이가 벌어졌잖아.”

“그러니까 그게 뭐?”

“불안해서 안 되겠어.”

“전혀 안 불안해 보이는데.”

“앞으로 나 외부 약속 있으면 같이 가자.”

“내가 너 일하는 델 왜 따라가.”

연우는 미친 사람 보듯 정우를 보았다.

“계속 그렇게 귀엽게 굴어 봐. 나도 내 인내심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니까.”

“너 형한테 자꾸 헛소리!”

울컥해 언성을 높이던 연우가 급 차분해졌다. 겨우 재미있어지려고 했는데. 정우는 아쉬워했다.

“왜? 네가 있는 곳에서 반경 10km 내에 있어야만 하냐, 내가? 그게 보호감찰 조건이야?”

연우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차분한 모연우도 취향이긴 했지만, 아까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정우는 흥미를 잃고 건성으로 대꾸했다.

“글쎄. 그런 거로 생각하든지.”

“무슨 말이 그래?”

“확실한 답을 원하면 각성해.”

“…….”

연우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정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고는 태블릿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다고 딱히 문서를 넘겨보는 건 또 아니었다.

“급한 건인데…….”

비서만 전전긍긍했다.

“아무튼 죽기 싫으면 내 옆에 붙어 있어. 나랑 떨어져 있고 싶으면 길드에 얌전히 처박혀 있거나.”

정우는 뭐가 그리 답답한지 목 부분의 단추를 두어 개 더 풀었다.

근육으로만 짜인 것 같은 몸이 살짝 드러났다. 연우는 못 볼 걸 봤다는 듯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또 뒤통수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연우는 울컥했으나 꾹 참았다.

화려한 서울의 시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차는 부드럽게 코엑스 부근을 지나쳤다. 대형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광고는 헌터콜센터 공익 광고와 유명 헌터 길드의 길드원 모집 공고였다.

발현하GO! 전화하GO! 각성하GO!

당신의 각성을 국가가 지원합니다.

헌터로 발현해 도움이 필요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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