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6)

“아흑.”

허리를 뒤틀며 신음하자,

“조금만 더. 응? 응.”

달래는 듯 보채는 소리가 뒤이었다.

“형.”

“흐윽.”

자신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사내에게 형 소리를 들으며 허리를 내렸다. 배 속을 파고드는 게 목 끝까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우윽, 윽.”

헛구역질하니, 그마저도 삼키겠다는 듯 입 안을 헤집어댔다.

혀는 뜨겁고 축축했다. 던전에서 촉수형 몬스터 상대하다가 붙잡혀 이로 물어뜯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입 안에서 꾸물거리던 촉수의 말단과 비슷했다.

“흣.”

그 생각에 찡그리는데, 상대가 혀를 끌어당겨 가더니 깨물었다.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혀가 잘릴지도 모른다는 섬뜩함에 허리를 떨었다.

뭐가 즐거운지 상대방이 웃었다. 맞닿은 입술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 기어이 쫓아와 다시 입을 맞대고는, 미안하다는 듯 제가 깨문 혀를 핥아 올렸다.

“흐으, 읏.”

“그러니까 딴생각, 하지 마. 하아. 형,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

“우윽, 이제 그만…….”

쏟아지는 쾌락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정신이 깜빡깜빡, 들어왔다 나갔다.

눈꺼풀을 느리게 감아 뜨니, 열락에 휩싸인 현재와 이런 미래 따윈 상상도 못 했던 과거가 엇갈렸다.

***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 판타지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냥 판타지가 아니라 현대 판타지. 그중에서도 던전이니 몬스터니 하는 것들이 튀어나오는 헌터물.

갑자기 세상 곳곳에서 ‘던전’이 열리고, 평범하게 잘 살던 사람들 중 일부가 ‘헌터’로 발현했다. 던전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이 사람들을 공격했고, 헌터들은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몬스터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훗날, 살아남은 사람들은 던전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몬스터 웨이브’라고 불렀다.

몬스터를 죽이고 죽여도 던전은 계속 몬스터들을 토해냈다. 이에 행정체계가 무너지지 않은 나라들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했다. 미국에서는 호기롭게 핵을 날려 던전과 그 인근 지역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던전이 뉴욕 한복판에 나타나자 그 계획은 취소했다.

제일 무난한 방법은 자국 내에서 발현한 헌터들을 찾아내 몬스터와 싸우게 하는 것이었다. 각 나라에서는 일반인 군인과 갓 발현한 헌터들을 수없이 희생시켜 던전 근처에 저지선을 구축하고 몬스터의 전진을 막고자 애썼다.

그런 상황에서 의외의 나라가 의외의 해결책을 발견했다.

인해전술로 유명한 중국에서 사람을 던전에 투입했다. 정확히는 그냥 사람이 아니라 헌터. 그것도 해외로 이민 가려다 붙잡힌 헌터들을.

결과는 놀라웠다. 헌터들이 던전 속에서 몬스터들을 해치우니,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지 않았다. 전투는 오직 던전 속에서만 일어났다. 헌터 대 몬스터.

세계 각국은 중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중 가장 빠르게 반응한 건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던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은 징집된 20대 사내들 중 헌터로 발현한 이들을 2년 동안 던전 공략에 집중시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헌터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고, 발현 비율이 인구 10명당 1명꼴로 낮은 편이었다. 2년, 게다가 남자만. 이 조건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이에 여자 또한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징집해야 한다는 내용이 국회에서 논의되어 어떤 구체적인 형태를 갖출 즈음, 또 한 번의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 수천 명의 일반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많은 민간인이, 그보다 더 많은 군인이 희생되었다. 사람들은 안전한 일상을 갈구하며 위정자들을 압박했다.

국회의원들은 여론을 등에 업고 강력한 헌터 모병 법안을 내놓았다.

- 헌터로 발현한 국민은 최소 10년간 복무하며 사회의 안전을 위해 의무를 다할 것

모두가 마음속으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모두가 감히 노골적으로 말할 수 없었던 요구였다.

당연하게도 헌터로 발현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인권 단체에서 강력히 항의했다. 그 혼란한 틈을 노린 일본에서 대한민국 헌터들을 회유해 자국으로 귀화시키려 했던 것이 드러나자, 법안은 짧은 기간 동안 급히 수정됐다. 헌터로 발현한 당사자와 그 가족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눈속임용 보상을 덧붙인 타협안이 만들어졌다.

일명 1가정 1헌터법.

가족 중에 헌터로 발현한 사람이 없는 경우 만 20세 남자는 이전처럼 2년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다. 단, 가족 중 단 한 명이라도 헌터로 발현해 입대하고 최소 10년간 복무한다면 그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군복무를 면제받는다. 형제자매 중 헌터가 또 발현한다면 그 헌터는 보충병으로 입영하여 향토방위업무를 수행한다. 또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 근무한다.

라는 것이었다.

경제적 보상도 주어졌다. 헌터로 복무할 동안의 월급은 생명 수당을 붙여 웬만한 대기업 초봉 연봉을 상회하도록 했다. 10년 복무 후 제대하면 서울 강남에 25평짜리 아파트 한 채는 살 수 있을 정도로. 연금 또한 제대 후 다음 달부터 지급하며, 원한다면 군대에 계속 복무 가능. 아니면 헌터 관련 공기업에 특채로 입사 가능.

이만큼의 조건이 뒤따르는 이유는 던전에 들어가서 살아나올 확률이 40.5%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이 40.5%도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신중윤이 복무기간 내내 그가 이끄는 소대를 100% 귀환시켰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신중윤이 군대에 있는 동안은 헌터병들의 무사 제대율 또한 40%에 근접했다.

하지만 그가 제대하고 난 뒤, 헌터들의 무사 제대 확률은 20%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평균의 함정.

학구열 높고, 무식하다는 말이 욕인 대한민국. 그 나라의 국민들이 모를 리 없었다.

이에 사회에서는 지옥의 사탄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비윤리적인 유행이 불어닥쳤다. 미성년 자녀를 둔 좀 산다는 집에서 고아원을 뒤지고 다니며, 헌터로 발현할 것 같은 아이들을 입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그 아이가 헌터로 발현되지 않으면 파양했고, 다시 입양과 파양을 반복했다. 입양한 아이 중 누군가가 헌터로 발현할 때까지 계속.

이 같은 일이 사회 문제로 거론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자, 국가가 나섰다.

아이가 헌터로 발현하는 나이는 보통 14세에서 15세 사이였다. 자식 있고 돈도 있는 가정에서 제 자식 대신 군대에 보낼 아이를 입양하는 건, 보통 아이가 헌터로 발현하기 직전인 13세에서 14세. 국가에서는 11세 이상 아이의 입양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10세 이하의 아이를 입양하기 시작했다. 이에 국가는 한 부부의 입양 가능 횟수를 3회로 제한했다. 이른바 삼진 아웃제. 또한 한 번 입양한 자녀를 파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도 입양아가 헌터로 발현하지 않으면 학대하거나 버리는 등의 사회 문제는 계속되었다.

연우는 그런 사회 문제가 심각해지다 못해 당연해져 버린 시점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태어나자마자 고아원 앞에 버려져 있었으니까. 탯줄만 겨우 자른, 시뻘건 핏덩이 상태로.

고아원을 집으로 알고 자란 연우는 일곱 살 때 일찍이 입양됐고, 이 년 뒤 파양됐다. 이후 몇 달 안 되어 다시 입양되었다가 다시 파양됐고. 또 입양됐고 파양됐다. 열 살이 되기 전까지 3번이나 입양-파양을 경험했다.

입양의 이유도, 파양의 이유도, ‘헌터가 될 자질’ 때문이었다.

누가 헌터로 발현하는가. 헌터로 발현하는 아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국가 수준에서 계속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정확히 밝혀진 건 없었다. 왜 하필 2차 성징 시기에 헌터로 발현하는가. 이 점에 집중한 학자들은 청소년기의 신체 성장과 호르몬, 신경체의 불안이 어떤 조건을 접하여 인간 내부에 내재된 헌터 능력을 각성시키는 거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헌터 발현을 인간의 3차 성징이라고 불렀다.

이에 민간에서는 뼈가 굵고 건강한, 그리고 신체 내 호르몬 수치가 불안정한 아이가 헌터가 된다는 ‘썰’이 나돌았다.

연우는 어릴 적부터 또래에 비해 키가 컸다. 매년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소아 건강 검진에선 평균 이상의 신체 능력과 불안정한 호르몬 수치를 드러냈다.

우수한 신체 능력. 불안정한 호르몬 수치.

둘 다 아이가 헌터로 발현할 가능성이 있는지 점칠 때 이야기되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연우는 항상 입양 후보 1순위였다. 하지만 막상 입양되고 난 다음엔 여지없이 이런 애가 헌터가 될 리 없다는 소릴 들으며 파양당했다.

‘얘가 정말 헌터가 될까? 이렇게 조용하고 소극적인 애가?’

아무리 훈련시켜도 연우의 호르몬 수치는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불안정한 수치의 안정화. 이는 양부모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연우를 입양해 간 세 가정 모두 친자식의 헌터 발현 검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확실하게 헌터로 발현할 아이가 절실했다. 그들에게 연우는 성에 차지 않는 입양아였다.

연우에게 실망한 양부모들은 연우를 홀딱 벗겨 몇 날 며칠이고 문밖에 세워 놓았다. 감기가 폐렴이 될 때까지 방치하고는, 연우가 죽기 직전에야 언 몸뚱이를 들고 고아원으로 달려갔다. 애가 병에 걸린 걸 말도 안 해주고 입양 보냈다며 고아원 쪽의 과실을 주장하고 파양을 요구했다.

국가에서 파양을 어렵게 만들었기에, 입양아를 이런 식으로 파양하는 것이 팁처럼 나돌았다. 실제로도 꽤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세 가정 모두 이 방법으로 연우를 파양했다. 연우의 폐엔 파양의 흔적이 점점이 남았다.

그렇게 연우는 입양당하고 또 파양당하며 키만 훌쩍 큰, 비쩍 마른 아이로 자라났다.

세 번쯤 파양되는 건 희귀한 일은 아니지만 흔한 일도 아니었다. 반복된 파양을 당한 연우는 보육원의 안쓰러운 존재이면서도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쯤 되자 더는 연우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이 고아원을 방문하면 연우는 늘 제일 뒤에 섰다. 키가 훌쩍 큰 연우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없진 않았으나 연우의 이력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연우는 그런 자신의 처지에 차라리 감사했다.

이대로 열여덟 살까지 보육원을 다니다 약간의 지원금을 받고 독립하게 되겠지. 그러면 아무 데나 취직해서 돈 좀 벌다 군대에 가고, 이 년 뒤에 제대해 또 어딘가에 취직하고. 그렇게 살게 되지 않을까.

안도 섞인 체념. 남은 미래에 대한 소박한 바람을 가진 채 살았건만.

네 번째 입양이 결정되었다. 어느 부잣집 부부가 그를 선택했다.

그 댁에는 외동아들이 있었다. 연우보다 한 살 어린 남자아이였다. 부부는 그 아이를 위해 이미 두 명을 입양했던 전적이 있었다. 둘 모두 헌터로 발현하지는 않았지만 스무 살까지 키웠고, 대학까지 보내주었다고. 학비를 주고 대학 근처에 자취방까지 구해 독립시켰다고 했다.

연우가 세 번째, 그러니까 마지막 입양아였다. 연우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겠다는 것이었다.

‘왜 나를?’

연우는 의아했다.

보육원에는 가능성 있는 아이들이 몇 더 있었다. 다른 보육원에는 더 많을 테고. 그런데 왜 굳이 세 번이나 파양당한 고아를 입양한단 말인가.

연우는 혹시나, 자신을 가엾이 여기는 원장 수녀님이 자신의 파양 이력을 숨기고 입양을 추천한 게 아닐까 의심했다. 그래서 양부모와 정식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에 대해 사실대로 말했다.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는 착한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니었다. 더는 입양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 번의 입양 생활은 모두 보육원 생활보다 끔찍했다. 채 열 살도 안 된 연우에게 스무 살 넘어 입대한 헌터들이나 받을 법한 훈련을 시키려 드는 양부모도 있었고, 고등학교급 선행학습을 시키며 연우의 뛰어남을 강제로 끌어올려 헌터급으로 서류를 조작하려 했던 양부모도 있었다. 언제나 가혹할 정도의 빡빡한 일정에 쫓겼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성당 부속 고아원에서의 생활은 편안했다. 푹 잘 수 있었으니까. 똑같은 비참함을 또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하구나. 다 알고 널 선택한 거란다.”

그런데 네 번째 양부모가 될 사람들은 솔직히 말하는 연우를 보며 웃어주었다. 우린 다 알고 있노라고.

“세 번이나 파양당했다는 건 우리 이전에 이미 세 번이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거잖니. 우린 네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싶구나.”

상냥한 말이었다. 그래봤자 제 피붙이 아들을 지키기 위한 상냥함이지만.

양부모는 연우를 데리고 자신들의 집으로 갔다. 늘 부유한 집에 입양됐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다른 부유함이었다. 차를 타고 커다란 대문을 지나 한참을 가자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커다란 집이 나타났다.

거기에 그 아이가 있었다.

아홉 살의 정우.

아이는 낯을 가리는지 쭈뼛쭈뼛하게 서 있었다. 아이보다 큰 커다란 개가 아이를 지키듯 서 있었고, 아이는 그 개에게 매달리듯 뒤에 숨었다.

“형이야. 두 번째 형. 정우야, 인사해야지?”

양부모가 말하자 아이는 도도도, 달려와 엄마 다리에 매달리고는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연우를 바라보았다.

예쁜 아이였다. 또,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아이였다.

통통한 뺨이나 반바지 아래로 드러나는 상처 하나 없는 하얀 다리. 동그란 눈. 보슬보슬, 파마한 것 같은 머리카락.

아이는 눈이 마주치자 쏙 숨어버렸다.

“왜 그래, 부끄러워? 무서워?”

“아냐. 우석이 형이랑 지영이 누나랑 똑같아. 앞에 둘한테는 싹싹했으면서, 왜 그래.”

양부모는 아이를 앞으로 끌고 와 연우와 인사시키려 했지만, 아이는 끝까지 버텼다.

연우는 마네킹처럼 멀거니 서서 세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헌터가 되고 싶다고. 저 가족을 저렇게 화목한 채로 지켜주고 싶다고. 저 모습을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싶다고. 이번엔, 여기서 잘려나가고 싶지 않다고.

그건 아마도. 인정하기 싫지만.

첫눈에 반해서이지 않을까. 한 살 터울의 아이에게.

열 살의 연우는 그게 사랑인 줄 몰랐지만.

***

연우는 정우의 형이 되고 ‘연우’라는 이름을 받았다. 보육원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고, 이전 입양된 세 집에서도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이 집에 와서 다섯 번째 이름을 받은 것이었다.

모연우.

정우와 친형제가 된 것 같아서, 연우는 제 다섯 번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

이 집은 연우에게 훈련을 강요하거나 밥 먹기 전 헌터가 되고 싶다는 말을 거울 앞에서 백 번씩 외우게 하지 않았다. 따뜻한 밥을 먹여주고 옷을 입혀주고, 푹신한 침대에서 재워주었다.

양부모가 자신을 챙겨줄 때마다 더더욱, 헌터가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양부모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찍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고, 땀이 흠뻑 젖을 때까지 몸을 단련했다. 찬물로 씻고 나서는,

‘헌터가 되고 싶어. 헌터가 되어야 해.’

화장실의 거울을 보며 마음속으로 백 번씩 되뇌었다.

정우와는 천천히 친해졌다. 양부모들은 정우가 낯을 가리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정우는 매우 낯을 가렸다. 연우와 둘만 있기 싫다는 듯 도망 다녔고, 가족이 된 뒤 한 달 넘도록 ‘안녕’ 말 한 번 해주지 않았다.

‘나를 싫어하나?’

미움받는 건가 싶어 우울해졌지만, 이전 세 집 입양 갔을 때처럼 괴롭히지 않는 걸 보니 그런 건 아닐 거라 생각하고 싶었다. 자는데 들어와 밟는다든가 찬물을 뿌린다든가. 거지 새끼 노예 놈이라고 욕하며 비웃는다든가, 밥 먹는데 밥그릇 속에 상한 우유를 붓는다든가, 하진 않았으니까.

정우는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후다닥 도망갔다.

집에만 있으면 어디서건 정우의 눈길이 따라붙었다. 방에서 숙제를 하다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면 동글동글 밤톨 같은 머리가 보였다. 문에 매달려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거실에 앉아 던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저기 2층 계단에 나타나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냥 낯가리는 거네, 엄청.’

듣기로 이전에 입양한 두 아이는 정우와 나이 차가 많이 났었다고 했다. 양부모에게는 다 똑같은 어린아이들이었겠으나, 정우에게 앞선 형과 누나는 어른이었으리라.

앞의 두 입양 형제에게 낯을 안 가린 건 그냥 어른처럼 느껴져 남인 듯 친하게 굴었던 거였고. 정우는 또래의 연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낯을 가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이 큰 집에 제 또래가 생긴 게 반가워서 곁을 맴도는 것이었고.

양부모는 상냥했지만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외동아들을 더없이 사랑했지만, 그래서 연이어 세 아이를 입양할 만큼 그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 큰 집에 외동아들을 홀로 두고 이른 아침에 떠나 밤늦게 돌아왔다. 어떤 때는 일주일, 열흘씩 집을 비웠다. 연우가 머문 한 달 동안 그러했으니 그 이전에도 그런 경우가 다반사였으리라.

집엔 고용된 어른들이 여럿 있었으나 그저 고용인일 뿐이었다. 가족이 아니라 남. 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 고용주의 어린 아들에게 깍듯이 구는 게 고작이었다.

그 속에서 정우는 혼자였다.

이전의 나이 차 많은 형, 누나는 일찌감치 제 처지를 알고 독립을 준비했을 테니. 정우와 정신적으로 형제 교감을 쌓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우는 정우가 ‘처음 가진’ 또래 형제였다.

외로움은 비루먹은 나귀의 몸에서 나는 구린내처럼 고약해서 그것을 품은 동류를 쉽게 알아보게 만드는 법이었다. 연우는 자신의 곁을 맴도는 정우의 마음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정우는 천천히 연우에게 다가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먹이를 노리는 굶주린 사자 같았다.

연우는 정우가 제 발로 제게 다가오기를 기다려주었다.

그러기까지 석 달.

거실에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공부하고 있던 연우의 옆에, 작은 무언가가 살금살금 다가와 풀썩 주저앉았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연우의 등에 얼굴을 기대고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안도, 혹은 만족의 한숨이었다.

숨죽이고 기다리던 연우는 픽, 웃고 말았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정우가 부끄럽거나 화를 내며 가버리지는 않을까 싶었건만. 정우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는, 고개를 들어 연우를 쏘아보고 중얼거렸다.

“웃지 마, 재수 없어.’

그리 말하고는 연우를 슬그머니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자그만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연우가 제 말을 듣고는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했다.

“어디, 형한테.”

“형은 누가 형이야.”

“내가 니 형이지.”

“흥, 웃기시네.”

조그마하던 정우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늘 단정하고 무표정하던 연우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웃음이 어렸다.

그렇게 둘은 오랫동안 등을 맞대고 있었다.  연우는 숙제를 다 끝내고도 괜히 공책을 뒤적거렸다. 정우는 멍청해서 숙제가 어려운 거냐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힐끔힐끔 연우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러다 그대로 깜빡 잠들어 버렸다.

정우의 몸은 뜨거웠다. 등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해졌다. 연우는 혹시나 정우가 열이 있는 게 아닐까 걱정되어, 손을 뒤로 짚어 이마를 만져보았다. 다행히 열은 없었다. 연우는 안심하며 그제야 노트를 덮었다.

그렇게 둘은 비로소 말을 텄다.

***

그다음부터, 두 사람은 금세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만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차라리 낯을 가리는 게 나은 거 아닐까?’

연우가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 정우는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형은커녕 야야 소리나 들으면 다행이었다. 공부하면 책을 뺏질 않나, 물 마시면 팔을 툭 쳐 쏟게 하고. 연우가 대응하지 않고 한숨을 푹 내쉬면, 방방 날뛰었다.

“형이랍시고 지금 무게 까는 거냐고. 웃기시네.”

바나나를 빼앗겨 열 받은 원숭이 같았다. 아주 못생기고 성질 더러운 원숭이.

얘가 왜 이럴까 떨떠름하게 쳐다보노라면 주변 사람들도 연우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도련님이 이런 분이 아니신데.”

“그러게나 말이야. 연우 학생이 온 뒤로, 아주 신이 났어.”

“역시, 곁에 또래가 있어야 하나 봐요. 왜, 옛날 왕들도 제 자식 어릴 땐 소꿉친구니 놀이친구니 하고 붙여줬다면서. 괜히 그랬겠어?”

정우를 작은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연우를 큰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다들 연우를 그냥 연우 학생이라 불렀다. 이전의 두 명도 그렇게 불린 듯했다. 양부모는 고용인들이 그리 말하는 걸 여러 번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우는 자신보다 먼저 입양됐던 두 명이 왜 양부모의 친절과 애정에 기대 좀 더 기생하려 하지 않았던 건지, 미련 없이 독립을 선택하고 이 집을 떠났는지, 진학한 뒤에도 정기적으로 전화를 하고 편지를 보내 안부 인사를 여쭈면서 정작 찾아오지는 않는지 이해했다.

양부모는 선한 사람들이었다. 입양한 자식을 홀대하지 않고 잘 돌봐주었다. 세 번째 입양아는 때로, 이들이 정말 절 친자식처럼 여겨주는 게 아닐까 착각할 뻔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아들은 오직 정우뿐이었다. 입양아는 입양아였다. 정우의 군 면제를 위한 도구.

애정 없는 친절은 공허한 것이어서 결국엔 상대방에게도 그 공허함이 닿고야 만다. 이들이 날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앞선 두 사람이라고 그걸 몰랐을까.

‘어쩌면 나보다 빨리 알아차렸을지도.’

그러니까 ‘적정한 선’을 지키기 위해 물러섰던 거겠지. 섣불리 가족의 사랑, 부모의 정을 기대하고 저들에게 다가가면 저 알량한 친절마저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며.

연우 역시 양부모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그들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헌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마는.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양부모에게 진짜 부모의 애정을 바라진 않았다.

연우는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가족의 정을 흉내냈다. 그게, 그들이 언젠가 자신을 당연하게 정우를 위해 희생시킬 때 하찮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길일 테니까.

미리 마음에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저들이 날 사랑해줄 리 없으니까 나도 저들을 사랑하지 말자.

하지만 정우는 달랐다.

정우 앞에만 서면 그 하찮은 방어막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그건 다 정우 탓이었다. 정우는 늘 온 힘으로 부딪쳐 왔다. 미친 원숭이, 광견병 걸린 개처럼 날뛰며 괴롭히는 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같이 놀아 달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연우가 말려 들어가지 않고 차분히 대꾸하면, 분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내고 악을 썼다. 심할 때는 달려들어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솜주먹이어서 아프진 않았다.

얌전히 맞아주면 정우는 울상을 지었다. 연우는 그 얼굴이 보기 싫어 적극적으로 막고, 역으로 그를 넘어뜨려 배 위에 올라타 공격했다. 역시나 투닥투닥. 힘은 하나도 안 들어간 솜주먹이었다. 그러면 정우는 그걸 고스란히 맞으며 히히, 웃곤 했다.

“뭘 웃어, 맞으니까 좋냐? 변태냐, 너?”

“니가 존나 힘 약하니까, 같잖아서 웃은 거거든?”

“존나?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왜, 씨발. 학교에서 딴 애들은 다 하- 악!”

“욕하지 말랬지.”

“아씨, 왜 때려. 니가 형이면 다냐?”

“방금 넌 형도 아니라고 한 게 누군데?”

욕하지 말라고 좀 아프게 꿀밤을 먹였더니 형이면서 왜 동생을 때리냐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어느 장단에 춤을 맞추라는 건지.’

연우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다시금 저를 넘어뜨리려는 정우에게 맞섰다.

풀썩.

연우의 몸이 뒤로 밀렸다. 어느새 뒤통수가 양탄자 깐 바닥에 닿았다. 정우는 날름 배 위에 올라타서는 연우의 두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힘을 줘 밀쳐도 정우를 밀어낼 순 없었다. 솜주먹인 주제에 힘은 왜 이리 센 건지. 헌터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 헌터가 되면 안 되는 사람에게 힘으로 밀리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안 비켜?”

“밀어내 보든가. 왜? 안 되겠지?”

정우는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였다.

“거봐, 형 니는 나한테 안 돼.”

“지금 자세가 나한테 불리해서 그런 거거든?”

“변명 오지네. 존나 어이없어.”

“그런 말 하지 말랬지. 부모님 들으시면 속상해하셔.”

“왜, 씨발. 여기 없는 부모님 얘기는 왜 해. 어차피 다음 주까지 오지도 않을 텐데.”

목소리에서 섭섭함이 묻어났다. 연우가 그걸 알아채고 정우를 올려다보자, 정우는 슬쩍 고개를 돌리며 궁시렁댔다.

“뭘 그렇게 쳐다봐. 보지 마. 내 잘생긴 얼굴 다니까.”

“정우야, 부모님께선-”

“형인 척하지도 말고.”

갑자기 퍽, 소리가 났다. 정우가 이마로 연우의 가슴을 콱 박아버린 것이었다.

“윽.”

연우는 눈을 질끈 감으며 신음했다.

너무 아파서 순간, 숨 쉬는 걸 잊었다. 겨우 다시 숨통을 트고 눈을 깜빡이니, 정우의 얼굴이 눈앞에 와 있었다. 코가 닿을 만큼. 서로의 숨이 너무 당연하게 입술을 덮을 만큼 가까이.

‘너 뭐야. 안 비켜?’라고 말해야 하는데. 밀어내야 하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연우는 침을 삼키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정우는 그런 연우를 이마에서부터 턱 끝까지 훑어보았다.

“…….”

“…….”

정우가 불쑥, 고개를 더 들이밀었다. 코가 부딪치자 고개를 꺾었다. 정우의 입술이 가까워졌다. 연우는 눈만 뜬 채 그걸 지켜만 보았다. 피해야 한다는 생각도, 정우를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막 입술이 닿기 전.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이내 다급해지면서 더 가까이 오는 타인의 기척.

“도련님, 또 연우 학생 괴롭히고 계시는 거예요?”

“……!”

타박하는 목소리에 놀란 연우가 힘껏 정우를 밀었다.

“악.”

정우는 맥없이 뒤로 밀려나 소파에 얼굴을 박았다. 푹신한 곳에 박아서 하나도 안 아플 텐데.

“아, 씨발. 뭐하는 거야!”

정우가 엄살을 부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평소라면 ‘하늘 같은 형에게 개기니까 그러지.’라고 한마디 했으련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연우는 후다닥 일어나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적당히 좀 하세요. 연우 학생이 도련님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데.”

“노력? 뭐? 헌터 훈련인지 뭔지 받는 거? 그게 왜 날 위한 거야?”

“어쩜, 그렇게 말씀하세요. 도련니임!”

등 뒤에서 정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연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곧바로 제 방으로 가 문을 걸어 잠그고, 문에 등을 대고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쿵쾅쿵쾅.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다리 사이도 두툼하게 달아올랐다.

연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바지 버클을 풀었다. 속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니 발기한 성기가 두 손에 잡혔다.

“윽.”

연우는 신음을 삼키며, 두 손으로 성기를 마구 비벼 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탁액이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단단했던 성기가 한풀 죽어 손안에 늘어졌다.

부끄러움, 죄책감. 아무튼 비참한 감정들이 제멋대로 뒤섞여 밀려왔다. 연우는 신음을 토하며 흐느꼈다.

“미안, 미안…….”

첫 몽정도, 첫 수음도, 연속된 모든 자위의 대상이 피 섞이지 않은 동생이라는 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연우는 멍하니,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거울에 지치고 흉악해 보이는 이상성애자가 비쳤다. 연우는 그 형상을 보며 중얼댔다.

헌터가 되어야 해. 나는 헌터가 되어야 해. 빨리, 어서, 반드시, 제발.

***

열세 살부터 매달 센터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신체 능력과 호르몬 수치는 늘 평균을 웃도는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불안정의 안정을 유지하며 일정한 수치를 보였다. 발현한 헌터들에게서 발견되는 비이상적인 튀어오름은 보이지 않았다.

보통 헌터로 발현하는 건 15세 전후. 좀 더 일찍, 좀 더 늦게 발현하는 경우가 없진 않으나 자신이 그 경우일 거라고 기대하는 건 위험한 망상이었다. 연우는 매달 조금씩 더 조급해져 갔다.

그리고 열다섯 살 되던 해의 12월.

지난달. 작년. 재작년과 다르지 않은 그래프를 확인하며, 연우와 양부모는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모연우는 헌터로 발현하지 않았다.’라는 현실.

집안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양부모는 애써 괜찮다고 말하며 연우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앞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연우는 다시 한번 자신과 그들 사이에 그어진 선을 느꼈다. 그건 아마도, 앞선 두 명 역시 겪었을 일이었다.

고용인들은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읽고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말을 아끼고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은 정우뿐이었다.

“난 당연히 안 될 줄 알았어. 형 주제에 헌터는 무슨 헌터야.”

“형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연우가 얼마나 실망하고 있는데, 위로는 못 해줄망정 그게 무슨 나쁜 말이니.”

어머니에게 혼나도 상관없다는 듯 굴었다. 정우는 연우가 헌터가 안 되길 바랐던 사람처럼 좋아했다. 모처럼 꼬박꼬박 형이라 부르며 연우의 곁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물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온 연우는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은 일을 경험했다.

안방 문이 살짝 열려 있고 그 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불빛과 목소리가 새어 나오니, 연우는 저도 모르게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걸어갔다.

방 안에서 양부모가 다투고 있었다. 누가 들을라 낮은 목소리로 속닥속닥 말하고 있으면서 문단속은 하지 않는 허술함이라니. 연우는 그들의 속마음을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다른 곳 가서 다른 애를 데리고 오자고 했잖아요.”

“앞에 두 아이를 그렇게 데려왔어도 꽝이었으니, 이번엔 전혀 다르게 골라보자 싶었던 거지.”

“그래서 결국 또 안 됐잖아요. 이제 우리 정우는 어떻게 하라고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되니까.”

“다른 방법 뭐요?”

“위장 이혼해서, 내 쪽이든 당신 쪽이든 정우 넣고 재혼하면 다시 세 번 기회가 생기잖아.”

“정우가 벌써 열네 살이에요. 아니, 아니지. 출생 신고를 늦게 했으니 서류상으로는 열세 살이지만. 그동안은 몸이 약하다고 검사를 번번이 미뤘지만, 연우가 저렇게 됐으니 더는 검사를 미룰 수도 없잖아요. 이러다 정우가 헌터로 발현이라도 되면 어떡해. 시간이 없잖아. 위장 이혼은 뭐, 내일 당장 뚝딱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동산이라든가, 주식 지분 분할 같은 건 어떻게 할 건데!”

“진짜 이혼도 아닌데, 뭘 그런 걸 챙기고 그래.”

양부모의 목소리가 날카로운 발톱이 되어 연우의 심장을 할퀴었다. 연우는 보이지 않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돌아가야 한다고, 들키기 전에 방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계속 생각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형.”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손이 튀어나와 연우의 손목을 슬그머니 움켜잡았다.

흠칫. 놀라 몸을 떨자,

“형, 나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 우?”

“저딴 소리를 왜 듣고 있어, 이리 와.”

정우가 팔을 잡아당겼다. 몸이 언제 굳어 있었느냐는 듯 말랑해졌다. 연우는 고장 난 인형처럼 절그럭절그럭, 정우를 따라 걸었다.

정우는 제 방 침대에 연우를 눕히고는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연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연우는 제 품을 파고드는 정우를 익숙하게 끌어안았다. 뱃속에 불덩이를 품은 것 같았다.

한 살 차이인데도 정우는 연우보다 체격이 한참 작았다. 아직까지도 머리 하나 정도 작았다. 먹는 건 두 배 이상으로 잘 먹으면서, 그게 다 어디로 가는 건지 비쩍 말라 또래보다 두어 살은 더 작아 보였다.

정우는 연우에게 꼭 달라붙어서는 숨만 색색 내쉬었다. 씨발과 존나로 이루어진 자신의 언어체계와 어휘력을 발휘하여 안일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대신,

“잘했어. 헌터 같은 거 하지 마. 그냥 내 옆에 있어.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이렇게 웅얼거렸다. 들릴락 말락 한 작은 목소리였지만 연우는 놓치지 않고 알아들었다.

연우는 정우를 꽉 끌어안으며, 그의 정수리에 턱을 괴었다. 울컥 치솟는 울음을 꾹 눌러 삼키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헌터가 되고 싶어.

헌터가 되어야 해.

TV 다큐멘터리로 본 던전은 끔찍하고 흉악했다. 삭막하고 척박했다. 정우를 그렇게 무섭고 위험한 곳에 보낼 순 없었다.

‘내가 가야 해요. 제발요. 정우 말고 제가 헌터가 되게 해주세요.’

연우는 누군가에게 해야 하는지 모를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날 밤.

누군가 그의 기도를 들어준 듯, 연우는 헌터로 발현했다.

***

연우는 한 달 내내, 정우의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고열에 시달렸다.

헌터 발현은 온몸의 뼈와 살과 힘줄이 잘게 토막 나 으스러진 다음 재구성되는 과정과 비슷했다. 섬세한 과정이었기에 의사도 섣불리 손을 대지 못했다. 진통제도, 마취제도 듣지 않았다.

연우는 씻지도 일어나지도 못한 채, 입에 문 호스로 흘러드는 물과 죽을 겨우겨우 삼키며 한 달을 꼬박 앓았다.

고통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손을 꼬옥 잡아주고 이마의 땀을 닦아주는 자그마한 온기를 놓치지 않았다. 감긴 눈꺼풀 사이로 가느다란 눈물이 흘러내렸다.

***

열여섯 살의 2월.

1월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연우는 헌터가 되었다.

등록 절차를 밟기 위해 센터로 갈 때, 정우는 연우의 손을 붙잡고는 가지 말라고 생떼를 썼다. 양부모는 고용인들에게 눈짓해 정우를 연우에게서 떼어내다시피 했다. 정우는 연우의 한 팔에 매달려 끝까지 버티려 했고, 그 흔적은 연우의 팔에 선명히 남았다.

고용인들이 정우를 저택 안으로 들고 들어갔고. 연우와 부모님은 정우의 지랄 발광하는 소리를 등 뒤에 두고 차에 올라탔다. 아아악. 가지 마. 가지 말라고! 씨발, 모연우!

센터로 가는 길 내내, 양부모는 연우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연우는 고맙다는 말을 스무 번째까지 세다가, 세는 걸 포기했다.

“고맙다는 말씀 마세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는걸요. 정우를 위해서요.”

연우의 말에 양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고맙다는 말이 또 한 다발 쏟아져 내렸다. 연우는 빙긋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양부모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건 진심이었다. 정우를 위해서라는 말 역시 진심이었다. 연우는 차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난 헌터야. 아주 강한. 센터에서 입대 적격 판정을 받고 입대할 만큼 강한 능력을 가진 헌터.’

소원은 또 한 번 이루어졌다.

***

센터에서 여러 검사를 걸친 후. 연우는 헌터 발현자의 평균 능력치를 훌쩍 뛰어넘는, 상위권의 신체 능력과 호르몬 수치 결과를 통보받았다. 당연히 입대 적격 판정을 받았다. 정우는 자연히 입대가 면제되었다. 훗날, 실수로라도 헌터로 발현된다 하여도 타의로 입대를 강요받지는 않으리라.

연우는 집으로 돌아와 정우에게 이 기쁜 소식을 직접 전했다. 정우는 굳은 얼굴로 연우를 노려보고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고맙다는 말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축하한단 말 한마디는 들을 줄 알았는데. 연우는 내심 섭섭했다.

그리고 곧, 그 섭섭함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당연히 정우 때문이었다.

헌터와 발현한 뒤 정우와 지내는 건, 이전과 다른 의미로 전쟁 같았다. 정우는 연우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바로 앞에 서 있는데도 눈 한 번 안 주고 지나쳤다. 연우는 자신이 유령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할 뻔했다.

“네게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정우가 섭섭해서 그런 거야.”

“그러게. 형을 많이 아끼고 따라서…… 나중에라도 헤어지는 게 섭섭해서 저러는 걸 거야.”

양부모는 애써 연우를 위로했다. 그들은 연우가 헌터로 발현한 뒤, 연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연우 또한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매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알아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

정우는 연우의 중학교 졸업식, 고등학교 입학식, 졸업식에 와주지 않았다. 연우는 양부모를 쫓아 정우의 중학교 졸업식과 고등학교 입학식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늘 제 몫의 용돈으로 꽃다발을 사서 들고 갔으나 그 꽃다발이 정우의 손에 들리는 일은 없었다. 연우는 한 발 뒤로 물러서 세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정우는 연우를 무시하다가도, 연우가 멀찍이 떨어져 서 있으면 죽일 듯 노려보았다. 하지만 다가오라거나 거기서 뭐하냐고 말을 걸지는 않았다.

***

헌터가 된 뒤에도 일상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이전에 없던 오후 스케줄이 하나 추가됐을 뿐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가거나 집에서 EBS 인강을 듣는 대신, 사는 동네에 위치한 구립 예비 헌터 훈련소에 가야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받고, 신체 성장 속도와 호르몬 수치에 맞춰 훈련을 받았다. 던전에서 잘 싸우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주로 신체 훈련이었으나 전술, 군대 직급, 병기의 구조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신과 상담을 받았고 심리 검사도 받았다. 그러고 집에 돌아가면 대개 아홉 시나 열 시쯤이었다.

그러면 학원에 혼자 갔다 돌아온 정우가 연우의 방에서, 연우의 침대를 차지하고 대자로 누워 게임을 하고 있었다. 피곤에 절어 돌아온 연우에게 땀 냄새가 나니 씻고 들어오라고 면박을 줬다. 연우가 느릿하게 씻고 돌아와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차마 싸울 힘이 없어 대충 침대 구석에 웅크리고 누우면, 못마땅한 눈빛으로 한참을 쏘아보다가 휙- 가버렸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 저벅저벅.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 연우는 정우의 소리를 들으며 정우가 좀 컸다고 생각했다. 주먹으로 얼굴을 치거나 발로 허리를 밟고 가진 않았으니까.

하루하루, 신체 능력이 상승했다. 할리우드 영화나 그래픽 노블에 나오는 히어로 수준은 되는 듯했다. 훈련소 강사들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 이상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실전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확인해볼 길이 없었다.

다만 이럴 때면 자신이 인간 말고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 게 실감 났다. 정우가 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는데도 정우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든가. 이상하리만치 가쁜 정우의 숨소리, 평소보다 상승한 정우의 체온. 정우의 두 손이 허리춤에 들어가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느껴진다든지.

기쁘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연우는 다리 사이에서 한 차례 열을 뿜어낸 정우가 씩씩대며 베개에 마구 주먹질하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훈련소의 훈련이 고된 덕에 연우는 들리고 느끼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할 수 있었다. 침대에서 폴폴 나는 정우의 냄새를 맡고도 자위하지 않은 채 곯아떨어질 수 있었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

스무 살 생일 전, 입영장이 날아왔다. 연우는 미루지 않고 바로 입대할 생각이었다. 미룰 이유가 없었다. 양부모 역시 반기면 반겼지 반대하지는 않았다. 의외의 태클은 의외의 곳에서 들어왔다.

“안 돼. 왜 그렇게 빨리 가려는 건데? 연기할 수 있잖아.”

고3 정우가 반대했다.

“연기해봤자 1년이야. 딱히 연기할 이유도 없고.”

“왜 연기할 이유가 없어?”

“……있나?”

나도 모르는 입대 연기 사유를 네가 가지고 있다고? 연우가 의아해하며 정우를 바라보았다.

“나 고3이야.”

정우가 당당히 말했다.

“…….”

연우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스무 살에 바로 입대할 생각으로 대입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헌터병으로 입대하겠다는 연우에게 딱히 고3 수험 생활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우가 대한민국에서 고3이라는 1년 특수직이 겪는 힘겨움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고3을 시한폭탄 다루듯 하는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것이 아니었고. 정우에 한해서는, 기꺼이 그 분위기에 편승할 마음도 충만했다. 뭐? 입양된 형이 괜히 신경에 거슬리고 공부에 방해되는 거 같다고? 걱정 마. 당장 입대해서 눈앞에서 꺼져줄게.

피도 안 섞인 형. 절 대신해 입대한답시고 죄책감이나 살금살금 긁어대는 타인. 그런 건 하루라도 빨리 눈앞에서 사라지는 쪽이 공부하는 데 더 편하겠지. 연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양부모 역시 대놓고 말을 하지 않을 뿐.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섭섭하진 않았다. 그들이 정우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니만큼, 오히려 동질감을 느꼈다.

그런데 정우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고3한테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아, 공부를 해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지.”

“뭐 인마?”

나 한 공부 했거든? 입대하려고 수능 안 본 거지. 연우는 울컥했다. 얼마나 울컥했느냐면, 양부모 앞이라는 걸 잊고 정우를 한 대 쥐어박을 뻔할 정도로 울컥했다.

“……뭔데?”

연우는 꾹 참고 물었다.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것과는 별개로, 정우의 수험 생활에 방해가 되고 싶진 않았다.

“환경이 갑자기 변하지 않는 거야.”

정우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말했다.

“내가 그걸 왜 몰라, 알고 있거든?”

연우는 괜히 지기 싫어 이렇게 대꾸하고는, 잠깐 고민했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게 왜?”

“…….”

정우가 경멸 어린 시선으로 연우를 노려보았다.

“있던 게 갑자기 없어지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그게 왜.”

“왜 갑자기 귀머거리인 척해?”

“뭔 소리야.”

“…….”

“왜 말을 하다 말아.”

“갑자기 있던 형 새끼가 사라지면 공부가 안 된다고.”

신경 거슬리는 게 갑자기 없어지는 것마저 수험 생활에 반대된다는 건가? 연우는 고3의 센티멘털한 감성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양부모님은 연우를 따로 불러 부탁했다.

“아무래도 정우가 연우를 많이 의지하고 있나 보네. 정우 말대로, 수험생 주변 환경이 갑자기 바뀌는 게 정서적으로 안 좋다니까. 괜찮다면 정우 수능 끝날 때까지만 좀 더 있어주면 안 될까?”

“그러고 보면 계속 정우한테 형과 누나가 갑자기 생겼다가 없어지곤 했던 거니까. 정우가 그에 대해 별말 안 했어도 사실,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양부모는 뒤늦게 정우의 정서 불안을 걱정했다.

딱히, 정우의 싸가지 없는 성격이 피 안 섞인 형제 셋이 갑자기 생겼다가 독립해 버린 것에서 기인한 것 같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네. 그럴게요.”

연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부모들의 부탁이 없었어도 그럴 예정이었으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연우는 정우의 인생에 방해물이 되고 싶진 않았다.

***

입대를 일 년 미룬 연우는 예비 헌터병 훈련소와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정우는 지나가는 말로 같이 수능 공부를 하면 어떠냐고 물었지만, 연우는 거절했다. 공으로 생긴 1년을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를 미래를 준비하는 데 쓰고 싶진 않았다. 그냥 당장의 현재에 충실하고 싶었다.

정우는 연우가 입대를 미루겠다고 한 이후 얼마간은 꽤 살갑게 굴었다. 새삼 형형 따르지는 않았지만. 다니던 학원 개수를 줄이고 되도록 저녁 식사 전엔 집에 돌아와 연우와 밥을 먹으려 했다. 자기가 공부할 때 옆에서 소설책이라도 읽으라고 성화였기에, 연우는 공부하는 정우 옆에 저녁에 두어 시간씩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화목한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연우가 수능 공부할 생각이 없다고 한 즈음부터, 정우의 짜증이 늘었다. 수험 스트레스가 상당한 듯했다.

그걸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연우뿐이었다. 다른 고용인들은 고용주의 하나뿐인 아들을 당장 깨질 것 같은 유리병처럼 조심조심 다루었고, 양부모는 여전히 바빴다. 정우의 옆에는 별다른 할 일 없이 입대를 1년 미룬 연우만 있었다.

‘이러려고 나보고 입대를 미루라고 한 건가?’

별거 아닌 일에도 버럭버럭 짜증 내는 정우를 보며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젖어 아련해지려면, 정우는 더욱 짜증을 내며 연우를 아득바득 올려다보았다.

“젠장, 왜 내려다봐.”

이젠 저보다 키 큰 걸 가지고 짜증이었다.

“내가 더 크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러니까 왜 그렇게 큰 건데!”

“음…… 헌터니까?”

헌터로 각성하면 신체 조건이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2차 성징기쯤에 헌터로 발현하게 되는 게 아닐까 추측할 정도였다.

연우는 15세에 헌터로 발현한 직후 반년 동안 30cm가량 더 컸고. 그래서 현재는 180 후반대였다. 정우는 178. 아주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작다고도 할 수 없는, 고만고만한 키였다. 그마저도 중3 때 성장이 멈췄다. 그러니 내리 3년째 연우를 올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정우는 늘 새로운 듯했다.

“씨발, 툭하면 헌터 헌터. 헌터면 다냐?”

‘다지, 내가 헌터가 되었으니까 니가 군대 안 가도 되는 거잖아.’ 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그다음으로 신경 쓰이는 걸 지적했다.

“씨발이라니, 아직도 그러냐. 부모님 앞에서는 그런 소리 하지 마.”

양부모는 교양이 넘치는 분들이셨다. 평생 씨발 소리 한 번 해본 적 없는 분들인데,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씨발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씨발이 뭐 어때서.”

“그래, 씨발이 뭐 어떤지 굳이 알고 싶으면 해도 되고.”

“씨발. 씨바알!”

“…….”

“어디 가!”

“씨발 소리 안 들리는 곳으로.”

“에이 씨…… 가지 마.”

“뭐?”

“가지 말라고. 안 할 테니까.”

정우가 이를 벅벅 갈며 손짓했다. 제게 오라는 것이었다. 지가 오는 게 아니라 오라고 하다니. 것도 모자라 손을 까딱까딱? 어느 것 하나 건방지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연우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저 성격에 그래도 많이 참고 있는 걸 테니.

“아무튼 싫어. 열 받아. 짜증 난다고.”

연우가 돌아오자 정우는 이를 갈며 연우를 노려보았다.

‘그러게 좀 크지 그랬어.’

라고 말하면 또 난리 날 게 분명했기에. 연우는 어깨만 으쓱이고 말았다.

“짜증 난다고!”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우는 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알았어.”

연우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이제 됐지?”

의자에 앉아 정우를 올려다보았다. 하, 정우가 기가 막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내가, 그거 때문에 이러는 거 같아?”

“…….”

응 그래, 라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아 대답하지 못했다.

침묵은 긍정.

그걸 정우가 모를 리 없었다.

“씨발, 누굴 애새끼로 아나.”

“…….”

“아냐. 아니라고.”

“그럼 뭔데.”

“그걸 내가 말해야 알아?”

“말 안 하는데 어떻게 알라고?”

“아씨, 꼭 이럴 때만 눈새인 척하지.”

정우가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으며 돌아섰다. 모처럼 눈높이를 낮춰주려고 의자에 앉은 보람이 없게.

연우는 쿵쾅쿵쾅 발을 구르며 계단을 오르는 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픽, 웃었다.

“귀엽긴.”

“……네?”

뒤에 지나가던 가정부 아줌마가 뜨악한 눈으로 연우를 바라봤다. 저게 귀엽다고? 눈이 삐었어? 무언의 눈빛 공격을 받으며 연우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민망하네.

***

정우가 수능을 봤다. 새해도 맞이했다.

곧 정우의 생일.

더는 미룰 수 없는 연우의 입대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입대 전날.

모처럼 네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했다. 정우는 자리를 피하진 않았으나 죽상을 하고 앉아 제 몫으로 덜어낸 음식을 포크로 푹푹 찌르기만 했다. 양부모는 그런 정우를 모른 척하며 애써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연우는 적당히 장단을 맞추며 방긋방긋 웃다가 식탁 아래로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물론 피의자는 정우였다.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지만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식사가 끝난 후. 양부모는 연우를 따로 서재에 불렀다. 그들은 연우에게 두툼한 서류를 한 꾸러미 내밀었다. 연우가 무사히 제대하면, 두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의 주식을 어느 정도 양도해주겠다는 계약서였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건실한 대기업의 주식 1%와, 대한민국 유통을 꽉 잡고 있는 업체의 지분 1.8%. 로또를 연달아 백번 1등 해도 손에 들어오지 않을 금액의 증여였지만, 양부모는 아깝게 여기지 않았다. 연우는 굳이 여러 번 사양해 시간 끌지 않고 바로 서류에 사인했다.

최근 3년간, 입대한 헌터들의 제대율은 18.9%.

연우는 자신이 18.9% 안에 들 거라고 기대하는 낭만주의자가 아니었다. 계약서에 적혀 있는 보상이 끝내 제 것이 되리라는 희망도 가지지 않았다. 정우가 가지게 될 것이 잠시, 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양 꾸며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쉽게 사인한 것이었다.

능력치가 낮았다면, 살아서 제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던전에 들어가지도 못할 능력을 가진 헌터라면 일반병들과 함께 던전 근처의 초소나 돌고 말 테니까.

하지만 연우는 평균치를 한참 웃도는 능력과 가능성을 가진 헌터였다. 입대하여 적당한 훈련을 거치고 나면, 가장 위험한 던전에 투입될 게 분명했다. 저 18.9%에서 상위권 헌터의 생존 제대 확률만 따로 떼어 논한다면, 숫자는 더 낮아질 게 분명했다. 두 자리 수가 안 될지도.

연우는 살아 돌아오라 말하는 양부모에게 웃는 얼굴로 그러겠다 대답한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대개 무얼 할까. 어느 영화 때문에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버킷리스트. 죽기 전 꼭 이루고 싶은 것 목록. 그것을 작성해 하나하나 이루고자 노력하는 게 일반적인 행동일 것이다. 연우는 그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방법을 따라 입대 전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았다.

버킷리스트는 리스트라고 말하기도 뭐할 만큼 단출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딱 한 줄.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연우는 침대에 누워 마음속으로 천천히 천을 세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보이지 않는 감각을 집중해 저택 곳곳의 기척을 확인했다. 1층으로 내려간 양부모는 침실에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고용인들은 모두 퇴근하거나 각자의 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연우는 화장실로 가 거기서 약간의 시간을 보낸 후 맞은편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정우의 방이었다.

달칵.

문을 잠그고, 불도 켜지 않은 채로 침대 앞에 섰다.

정우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창가의 달빛이 정우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선 정우는, 자는 모습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고 대리석 조각상 같았다.

잠든 정우는 천사처럼 순했다. 낮의 그 굶주려 날뛰던 미친 원숭이는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순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약간의 죄책감,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슬금슬금 자라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포기하고 돌아설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연우는 주머니에서 넥타이와 케이블 타이를 꺼내 들었다. 케이블 타이로 정우의 양손과 발을 침대에 고정해 묶었다. 반항할수록 더욱 강하게 옥죌 터였다. 넥타이로는 조심스럽게 정우의 눈을 가렸다.

그런 뒤 정우의 몸 위로 올라탔다.

정우는 그 지경이 되고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연우는 살살, 정우의 눈을 가렸을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 정우의 바지를 벗겼다. 바지와 브리프를 허벅지 부근까지 내리자 성기가 툭 튀어나왔다. 발기 전인데도 부피와 크기가 상당했다.

“으으.”

속살이 드러나 추운지 정우가 몸을 부르르 떨며 뒤척였다. 팔과 다리가 묶여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자 부스스 눈을 떴다.

“……뭐야.”

잠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연우는 머뭇대지 않고 바로 정우의 성기를 물었다. 이로 깨물지 않으려 애쓰며 쭉, 빨아올렸다.

“흣!”

정우가 허리를 튕겼다.

“뭐야, 씨발. 누구야!”

정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고함이 방 밖을 새어 나갈까, 혹은 1층으로까지 번져 양부모를 깨울까. 그런 걱정은 들지 않았다. 저택은 개인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존중하고 지켜줄 만큼 넓고, 또 방음이 잘 되어 있었다. 어릴 적, 정우와 치고받고 싸우며 숱하게 확인했던 바였다.

몸부림치는 정우의 움직임 때문에 입에 문 성기를 이로 긁거나 깨물게 될라. 연우는 오직 그것만 조심하며, 있는 힘껏 빨았다.

남의 성기를 빨다니. 그것도 이성이 아니라 동성의 것을. 당연히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제 것도 자위할 때와 씻을 때, 소변 눌 때 빼곤 만지지 않는데. 남의 걸, 그것도 입에 다 물리지도 않는 큰 걸. 당연히 버거웠다. 성기 끝이 목 안쪽을 꾹꾹 누를 때마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씨발, 너 뭐냐고. 놔. 놓으라고 안 비켜? 죽여버릴 거야! 흡, 형! 씨발, 싫다고. 형!”

정우가 맞은편 방에 누워 퍼자고 있어야 마땅한, 입양된 형을 불렀다. 그 형이 제 다리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는 듯했다. 그 순수한 믿음을 저버리다니. 배덕감에 허리가 다 떨렸다. 하마터면 나 여기 있다고 성기를 입에 문 채로 대답할 뻔했다.

싫다고 날뛰는 것과는 별개로 정우의 성기는 착실히 커졌다. 연우는 그게 눈물 날 정도로 고맙고, 좋았다.

서기 전에도 컸는데, 발기하니 그 길이와 부피가 몇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입안에서 자꾸 커지는 걸 견디다 못해 뱉어낸 후. 연우는 제 노력으로 이루어낸- 63빌딩급으로 높게 솟은 성기를 보았다. 꼿꼿이 서다 못해 배에 붙을 정도로 발기한 성기를 보노라니, 살짝 기가 질리기도 했다.

‘이게 사람의 성기인가…… 말 자지지.’

언젠가 TV에서 봤던 ‘종마의 생활’ 다큐가 떠올랐다. 모자이크 처리되긴 했었으나 모자이크 된 면적만 보더라도 가히 그 위용을 짐작해볼 수 있었던 말의 자지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것과 비슷해 보이는, 모자이크 안 된 것이 지금 연우의 눈앞에 서 있었다.

‘헌터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커.’

남자란 게 정력에 좋다고만 하면 곰의 웅담이든 사슴 피든 가리지 않고 먹는 족속들인지라. 세상에 헌터라는 게 생긴 뒤로는 그것마저 정력이랑 엮고는 했다. 헌터가 되면 정력이 죽인다더라. 발기 후 지속 기간이 길고, 사정 후에도 곧바로 발딱발딱 잘 선다더라. 하루 동안 연속으로 열 번 넘게 발기할 수 있다고도 하더라. 헌터의 발현 조건과 함께 ‘썰’이 무성했다.

물론 소문일 뿐이었다. 대한민국은 묘하게 보수적이면서 유교적인 나라인지라, 누구도 헌터에게 대놓고 네 정력이 어떠하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헌터의 발현에 대해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국가 기관에서 헌터의 정력이 일반인의 몇 배인지 연구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고. 그러니 헌터의 초월적인 정력은 공인된 능력은 아니었다.

능력 좀 있다 하는 헌터들은 군대에 있거나 죽었거나, 헌터 관련 공기업에 소속되어 쎄빠지게 던전을 돌며 불철주야 대한민국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일반인들이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그들의 정력을 확인할 기회는 더더욱 없었고.

그래서 헌터의 초월적 정력은 더더욱 미지의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하급 헌터들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정자왕에 등극하는 걸 보며 일반 남자들보다는 정력이 좋겠거니, 추측할 따름이었다.

물론, 헌터의 정력에 대한 환상이 커지는 만큼 반발 심리 또한 무럭무럭 자라났다. 남자들은 헌터가 정력이 좋다더라 떠들어대다가도 하루에 열 번 발기가 말이 되느냐, 헌터도 인간인데. 스테로이드 과하게 먹고 근육만 기르는 헬스에 미친 놈들이 발기부전 걸리는 거 모르냐, 헌터들도 그렇겠지. 이렇게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나 지금 뭐하고 있냐.’

피 안 섞인 동생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성기를 빠는 주제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다니. 이게 다 정우 탓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정우의 성기 탓이었다.

‘이 새끼 설마, 헌터인가? 이 정도 성기를 일반인이 가질 수는 없을 텐데, 헌터 중에서도 특급 헌터는 되어야…….’

이런 생각이 무심코 들게 만든달까. 아무튼, 그렇게 거대했다.

‘아니, 그럴 리 없지. 정우가 헌터라니.’

헌터는 14세에서 15세 전후로 발현한다. 처음 던전이 생겼을 때 초기 발현했던 헌터들 말고. 2세대 헌터들은 대부분 청소년기에 발현하고 있었다. 20세 이후에 발현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그건 극소수의 예외 사례, 선택받은 자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살아 있는 전설 신중윤 정도?

그러니 정우의 성기가 말 자지에 비견될 만큼 거대한 것을 보고, 정우가 헌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었다. 지금은 보다 건설적인 생각을 해야 했다. 이를테면, 저것을 제대로 제 구멍에 박아 넣을 수 있을까 하는 것?

“…….”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이 동영상도 구해보고, 인터넷에 검색해서 남자끼리는 어떻게 섹스하는지도 충분히 찾아봤다. 화장실에서 어설프게나마 뒤에 손가락을 넣어 보기도 했는데…….

‘저게 여기 들어갈 수 있을까?’

연우는 슬그머니 제 아랫배를 문질러 보았다.

장이 파열되지는 않을까? 저번 검사 때 재생력 수치가 좀 높게 나오긴 했는데, 그 정도면 뒤가 찢어져도 금방 아물려나? 아, 그런데 거기 찢어진 채로 입대해서 훈련 받으면, 감당할 수 있으려나?

오만 생각이 들었다.

불쑥 다가온 현실감이 모처럼의 각오를 흔들었다.

‘지금도 늦지 않아, 그냥 다 없던 일로 하고 돌아가자. 얜 아직 제 걸 세운 게 누군지도 모르잖아.’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기껏 세워 놓았는데, 포기하게?’

아까웠다.

‘끝까지 빨기라도 해볼까?’

타협안도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다.

저게 제 뒷구멍에서든 입속에서든 잔뜩 흔들려서 못 참고 사정하는 걸 보고 싶었다. 그러면 어느 던전에서든 뒈져버려도, 아무 원 없이 고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뒷구멍에 박히는 것까지는 무리인 거 같고. 입으로라도 끝까지 가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다시 성기를 빨려 입을 벌렸을 때였다.

눈이 가려지고 사지가 묶인 채로 정체 모를 놈에게 성기가 빨려 발기한 게 꽤 충격적이었는지, 정우가 사납게 반항했다. 아니, 자포자기한 걸지도. 정우는 연우가 머뭇거리는 걸 눈치채고는, 연우가 달래 물러나게 하기는커녕 한껏 비웃었다.

“야, 이 변태 새끼야. 막상 일 저지르려니까 쫄리냐? 쫄았으면 이제 그만 꺼져버려, 씹새꺄. 씨발,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당장 꺼져라.”

듣는 변태 새끼 기분이 참 나빠지는 소리였다.

“씨발, 야! 모연우! 너 이 새끼, 씨발, 헌터라면서. 귓구멍에 뭘 쳐넣었길래, 씨발, 헌터 되면 예민해진다며. 내 목소리 안 들려? 씨발! 잠 그만 처자고 빨리 이리로 오라고, 씨발, 내가 지금 개변태 새끼한테 잡혀서, 씨발, 뭔 짓을 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처자냐? 어? 잠이 오냐? 야!”

이게 크리티컬했다.

변태 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기분만 좀 나쁘고 말았는데. 이 상황에서 저를 부르며 바락바락 대드는 걸 보니, 새삼 끝까지 가야겠다는 각오가 샘솟았다. 기어이 이걸 제 안에 박아야 성이 풀릴 것 같았다.

연우가 다시 각오를 다지고 용감하게 바지를 벗었다. 바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니, 정우는 더욱 발버둥 쳤다.

“씨발, 변태 새끼야 당장 안 꺼져? 너 이 씹새끼, 나 건드리면 정말 죽여버린다.”

철컹철컹, 침대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그 바람에 케이블 타이에 묶인 손발이 꽉 조여, 생채기가 났다. 연우는 그걸 안타깝게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제 할 일에 몰두했다. 셔츠는 입은 채로 바지와 팬츠만 벗고 정우의 위에 올라타는 게 그 할 일이었다.

아랫배에 묵직한 게 얹히자, 정우가 기겁했다. 덜컹덜컹, 정우가 몸부림치니 연우의 몸이 덩달아 위아래로 몸이 들썩였다. 정말 성난 종마에 올라탄 것 같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 거친 움직임을 감당치 못해 밀려났거나 침대 아래로 고꾸라졌겠지만, 연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무려 입대를 앞둔 헌터. 지진 수준의 몸부림이 아니라, 지구에 운석이 박혀도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연우는 균형을 잃지 않고 잘 버티며 한 손으로 정우의 가슴팍을 짚었다. 다른 손은 뒤로 돌려 정우의 성기를 잡았다.

성기를 잡히자 정우가 움찔, 했다. 어쨌거나 성기도 급소였다. 남에게 잡히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후우. 연우는 깊게 심호흡하며, 그 성기 위로 몸을 올렸다. 두꺼운 귀두가 엉덩이 살에 쓸렸다. 그 날것의 감촉에, 연우는 이를 사리물었다.

콘돔을 낄까. 이 방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안전한 섹스엔 콘돔이 필수라며, 콘돔 사용을 강조하는 인터넷 글들을 숱하게 읽어서였다.

하지만.

딱 한 번이니까. 그냥, 날것의 감각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연우는 후회하지 않았다.

불덩이가 엉덩이 살을 벌리고 구멍 입구를 쿡, 찔렀다. 정우가 생소한 감각에 놀랐는지 몸을 파드득 떨었다. 연우는 이를 악물고 그대로 허리를 내렸다. 성기가 푹, 몸속으로 박혔다.

“……!”

충격은 엄청났다.

연우는 입을 벌렸다. 목구멍이 막혀서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헉. 더운 숨이 정우의 가슴팍에 쏟아졌다.

고작 귀두를 박았는데 이 정도였다.

당장 빼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냥 버티기만 한 게 아니라, 허리를 더 내렸다. 그렇게 정우의 성기를 모두 제 배 속으로 쑤셔넣었다.

반 정도 넣고 나니 죽을 것 같았다. 까슬한 음모가 엉덩이에 닿기 무섭게, 천장이 빙글- 돌았다. 이대로 웩, 헛구역질하며 뒈지고 싶을 정도였다.

배 속의 장기가 다 위로 밀려나고 정우의 성기로 꽉 찬 듯 싶었다. 목 끝까지 성기가 꽂힌 것 같았다.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는 고통이 이런 게 아닐까.

훈련소에서 통감 둔화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이대로, 뒷구멍에 정우의 성기를 꽂은 채로 기절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버티자, 버텨야 된다. 오직 그 마음으로 악착같이 버텼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제 배 속에 잠긴 정우의 성기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그도 아니면, 제 배 속이 움찔대고 있어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씨발, 조여. 내 걸 끊어먹을 셈이야.”

괴로운 건 정우 역시 마찬가지인지, 이를 악물고 중얼댔다.

‘미안.’

연우는 속으로나마 사과하며, 두 손으로 정우의 가슴을 짚고 상체를 들었다.

“윽.”

동영상을 보면 박을 때부터 좋다고 앙앙대던데. 아무래도 그냥 연출이었던 것 같다.

좋긴 개뿔. 연우는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후회하진 않았다. 신체적으로는 고통스러우나 정신적인 고양감은 존재했으니까.

연우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겨우겨우 허리를 돌려 주변을 찔러대는 정도였으나 하다 보니 숨 쉴 만해지니, 좀 더 깊이 찔러 보았다. 반쯤 성기를 빼냈다가 다시 끝까지 쿡.

“아, 흑.”

신음이 턱턱, 숨처럼 삐져나왔다.

박힐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아팠다. 동시에 가슴께가 간질간질했다. 쾌락은 거기에서부터 살살 피어올랐다.

성기가 나고 들 때마다 내벽이 때맞춰 밀고 들어오는 성기를 조였다. 안에서 불끈, 불끈, 박동하는 성기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아흐.”

연우는 허리를 비틀며, 아랫배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 안이 두근두근했다. 여전히 아프고, 쓸려서 화끈거리는데. 그게, 슬슬 고통이 아니라 다른 감각으로 느껴졌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허리 놀림이 점점 격해졌다. 턱턱, 규칙적으로 들었다 내렸다. 성기를 받아먹으며 속도를 높여가는데.

어느 한 지점. 성기가 콱 박혔다.

“아, 흐.”

눈앞이 하얘졌다.

이를 악물고 숨이든 신음이든 비명이든 꾹 참고 있었건만. 저도 모르게 소리를 토해냈다. 제가 소리를 낸지도 모르고 다시금 허리를 들어 아까 거기를, 콱 찍었다.

“아흑.”

온몸에 전기가 도는 것처럼 짜르르해졌다.

“조, 좋아.”

연우는 뭉개진 발음으로 말하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형? 형. 형이야?”

제 위에 올라탄 누군가에게 가슴이 눌린 채로, 제 위에 쏟아지는 숨. 제 성기를 씹어 삼키는 뜨겁고 쫄깃한 감각에 먹혀 돌처럼 굳어 있던 정우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온몸의 열기가 한순간에 식어 버렸다.

“…….”

“형. 연우 형. 씨발, 연우 형 맞냐고!”

정우가 몸을 들썩였다. 그 바람에 반쯤 빠져 있던 성기가 연우의 몸에 뿌리 끝까지 박혔다.

“힉. 윽.”

무방비한 상태로 박혔다. 연우는 신음하며, 구멍을 조였다.

윽. 두 사람은 동시에 신음했다. 뜨겁게 조여오는 내벽의 조임이 아찔해서. 방금 찾은 그 지점을 짓이기듯 파고드는 감각에 놀라.

“형. 형- 읍.”

“……미안.”

연우는 손을 뻗어 뭔가 말하려는 정우의 입을 막고는 한 손만으로 몸을 지탱한 채, 다시금 허리를 치댔다.

“흑. 윽. 흑…….”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절박하게, 필사적으로 허리를 흔들며 정우의 성기를 조이고, 박아댔다.

“혀, 읍. 으, 읏!”

정우가 손바닥을 깨물어댔다. 세게 물지는 않았다. 손바닥을 핥는 혀의 감촉이 까슬하고 뜨거웠다.

“아흑.”

연우는 정우의 입을 세게 쥔 채로, 있는 힘껏 성기를 조였다.

배 속 깊숙이 처박힌 것이 끔틀거리며 박동하더니 파정했다. 뜨끈한 것이 확- 퍼졌다.

“아흑, 윽.”

연우는 그 감각에 몸서리치며, 제 성기를 손으로 쥐고 흔들었다. 두어 번 문질렀을 뿐인데 픽, 사정했다.

후득.

탁액이 정우의 잠옷 위로 떨어졌다.

후드득.

덩달아 정우의 가슴 위로 뜨거운 물이 떨어졌다. 그게 땀인지 눈물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눈앞이 흐릴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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