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탄탈로스라면 신들을 조롱하기 위해 제 아들을 구운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내놓은 고대의 사이코패스였다.
접시가 의미하는 바는 구워진 탄탈로스의 아들일 것이다. 치영은 그것과 작전과의 상관관계가 궁금하여 인석의 말에 집중하였다.
이석은 전에 없이 명료한 말투로 말했다.
“거대 기업 명왕 총수 일가의 막내아들에 대한 경호 활동이다.”
치영은 조금 놀랐다. 명왕 기업이라고 하면 매년 발표되는 재계 순위에서 늘 3위 안에 머무는 기업이다. 당장 숙소에만 가도 명왕 전자에서 나온 가전제품으로 가득했다.
“VIP? 까다로워서 싫은데.”
김민우가 투덜거렸다. 치영은 명왕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다 탄탈로스가 요정 플루토의 아들이라는 걸 떠올렸다.
‘…꽤 낭만적인 작전명이네.’
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석이 말을 덧붙였다.
“의뢰인은 명왕의 전 회장인 조필식. 아들인 조종영이 손자인 조현호를 살해할 용병을 고용했다고 한다.”
‘아, 낭만적이지는 않네. 그래서 탄탈로스의 접시였구나.’
치영은 저 혼자 납득하다가 옆을 보았다. 이인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회의 내용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그걸 보며 가벼운 동질감이 들었다. 이 자리가 긴장되는 것이 저뿐만은 아닌가 보다.
막내인 인교는 현장 경험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날고 기는 상관들 사이에서 유독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저도 S급이라 다른 팀에 가면 왕자 대접을 받을 텐데 그런 건 상관없는 듯싶었다. 치영은 브리핑 중인 이석에게 집중하는 인교를 따라 다시금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마침 인나가 다음 슬라이드로 화면을 넘겨 준 참이었다. 빔프로젝터가 젊은 남자를 흰색 벽면에 투사하고 있었다.
꽤 준수한 생김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잘생긴 남자의 껍데기에는 휘둘리지 않는 눈을 갖게 된 치영은 단번에 조현호라는 인물의 성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이제는 집안싸움에도 군인이 낍니까?”
“조종영이 이악 부대를 용병으로 고용했다는 소문이 있다.”
김민우가 모나미 볼펜을 인중에 끼우며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이석이 어조 없이 대꾸했다. 이석의 브리핑을 얌전히 듣고 있던 청중 사이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미친 새끼 아닙니까?”
“재벌이면 불순분자들 고용해도 되는 겁니까?”
이악 부대에 대한 반감은 센터 내에 뿌리 깊었다. 기백한이 팀장이 되고 난 뒤부터 그들의 주거지에 무차별적인 폭격이 내려 세가 죽은 편이지만, 그 전의 이악 부대는 악명이 자자했다.
가이드 납치, 인신매매, 가이딩을 통한 성매매 후 가이딩이 고갈된 가이드들을 장기 매매로 알뜰하게 팔아먹기까지 했다.
피해자의 나이를 가리지도 않았다. 국가는 아이가 태어나면 예방접종을 의무적으로 실시하여 부모 모르게 채혈하는데, 이 채혈된 혈액샘플은 모두 센터로 보내져 에스퍼, 가이드 판별 검사에 사용된다.
세상에 혼란을 가져올까 봐 민간인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이능력자의 존재가 그런 식으로 초기부터 유추되어 국가에 기록되는 것이다.
국가는 적당한 때가 오면 부모에게 자녀의 입대를 권유하고, 부모는 그제야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 수많은 국방세를 지불하는지 깨닫게 된다.
그렇게 알음알음 영입한 탓에 시간이 지난 뒤에는 에스퍼의 존재가 물 밑에서 드러나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버렸다.
이악은 처음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해킹하여 이와 같은 정보를 습득, 해당 가정에 방문하여 이제 막 갓난아기를 납치하여 후원하는 고아원에 처박아 둔 뒤, 아이의 출생 정보를 세탁시켜 연고 없는 가이드로 만들어 냈다.
그렇게 자란 가이드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앞서 말한 것과 같다.
그러나 이악은 차츰 군부의 추적과 압박을 심하게 받았고, 일반 가정에서 아이를 납치하는 짓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전국의 고아원을 돌며 그들이 고아원에 심어 둔 가이드들을 납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치영도 그중 하나였다.
에스퍼들은 가이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자신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이악의 비인도적 범죄에 분노하며, 그들의 소탕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이악으로서도 가만히 당할 수는 없었기에 각지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그에 특수군 소속 에스퍼들도 수많이 전사했다.
전우를 잃고 가이드를 빼앗긴 에스퍼들은 이악을 아주 혐오했다. 치영에게서 기백한이라는 바람막이가 떨어져 나가자, 가이드는 물론이고 에스퍼들에게까지 괴롭힘을 받았던 이유 중엔 그가 이악 출신이라는 점도 포함되어 있었다.
치영은 저도 납치되어 이악에서 허드렛일을 했다고 일일이 변명할 성격도 아니었다.
아무도 막아 주지 않으니 소문은 점점 안 좋아지고, 센터 내의 치영의 입지는 좁아지기만 했다.
…뭐, 지금은 견딜 만하니까.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이석의 다음 말에 주목했다.
“조현호는 조종영의 아들이 아닌 조필식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그런 개인적인 원한은 지금 중요한 바가 아니고, 문제는 조현호가 에스퍼라는 거다.”
이석의 말에 에스퍼들은 별소릴 다 듣는다는 표정을 했다.
“민간인인데 에스퍼요? 이능력 잃고 민간인이 된 에스퍼가 아니라?”
“조현호 나이가 김민우 중위랑 동갑인데 동기 중에 저 얼굴 아는 사람 있어? 아예 양성학원 자체를 입학하지 않은 거다.”
이석은 무감한 어조로 말했다. 치영은 인물 보고서를 뒤적거렸다.
조현호: A급 에스퍼—식물 강화 계열
부: 조종영
모: 한희연
한희연이라는 이름 옆에 전대 국무총리인 한상욱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치영과 같은 줄을 읽고 있던 것인지 박형인이 짧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투였다.
“집안이 빵빵해서 입대를 안 할 수 있었던 겁니까?”
“아들을 사지로 내몰고 싶어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 부모의 직업이 재벌이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는 법이지. 게다가 외조부도 총리 이전에는 4선 의원이었으니까.”
이석은 담담한 어투로 그들의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김민우가 신세를 한탄했다.
“그래요, 우리 집은 수원에서 왕갈비 집이나 하느라 아들이 좆뺑이 쳐도 뭐라 못 하네요.”
“왕갈비 맛있는데. 그리고 전 군인 된 거 기분 째지는데요.”
허인나가 아메리카노를 쪼옥 빨며 말했다. 김민우가 그녀를 째려보았다.
“밖에서 낳은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한테 기업을 승계시키고 싶어 이악을 고용한 것 같다. 여기까지가 의심 정황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증거는 조종영이 갖고 있던 차명 계좌 중 하나에서 30억 상당의 외화가 암호화폐를 구매하는 것에 사용되었다는 거다.”
30억이면 춘란 때문에 자금줄이 막혀 허덕이는 이악을 당분간 숨통 틔워 주게 할 정도는 된다.
몇 년 전이지만 치영은 그들의 자금 사정을 나름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 돈이 없어 몇 해 묵은쌀로 밥을 지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치영은 계속해서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대기업 총수와 이악과의 유착은 국가보안법을 흔들 수 있을 만한 사항이었다.
조종영의 아버지이자 조현호의 조부인 조필식은 이것을 알고 명왕이 타격받지 않게끔 조종영 개인의 일로 꼬리를 자르기 위해 군부에 다이렉트로 조현호 경호 의뢰를 넣은 것이다.
“근데 안치영은 왜.”
그때, 상석에서 내내 말없이 있던 기백한이 볼펜을 검지로 톡 굴리며 말했다. 그의 시선은 데굴 굴러가는 볼펜을 향해 있었다.
에스퍼 파장이 쨍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조용했는데도 치영은 그가 화가 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구석이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그쪽 요청이야.”
이식이 드물게 뜸을 들이며 대답했다. 서리가 낀 서늘한 눈으로 백한을 흘끔 바라보며 말이다.
백한이 그 말에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그 위에 턱을 괴며 웃었다.
“무슨 개 같은 요청인데?”
“체술 훈련이 되어있는, C급 이하의 가이드를 경호원으로 고용하라는 요청.”
그 말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파삭 얼어붙었다. 치영은 저도 모르게 백한을 바라보았다. 백한의 웃음이 짙어졌다. 왼쪽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점이 살포시 접히는 게 보였다.
“재밌네. 그치?”
뭐가 재밌냐고 묻지도 못할 만큼 살벌한 웃음이었다.
웃음 자체는 사근사근한 데다가 기백한의 껍데기가 워낙 훌륭하니 미인이 웃는구나 싶은데, 회의실 안을 천천히 뒤덮는 냉기 같은 에스퍼 파장은 소름 끼칠 지경이었다.
* * *
“조현호가 가이딩 거부증 증세가 있나 봐요.”
“아…….”
치영은 인나가 들고 있던 봉투를 나눠 들으려 그녀의 주위를 기웃거렸지만, 그녀는 샌드위치 65개, 1.5L짜리 페트 8병이 묶인 콜라 번들을 들고도 말짱하게 걸었다.
뭐라도 나눠 들고 싶었으나, 인나는 틈을 주지 않았다. 회의가 길어질 것 같아 배달시킨 간식거리를 건물 밑으로 받으러 간 참이었다.
같은 센터 지구 내에 있기는 하더라도 회의실이 있는 본청 건물에 누림동 상인들이 들어올 수가 없어 밑으로 음식물을 받으러 내려가야 했다.
주위의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허인나가 치영에게 속삭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치영은 그녀가 들고 있는 샌드위치들이 더 신경 쓰였다.
그녀가 저보다 훨씬 강한 에스퍼임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나이가 어리니 짐을 혼자 들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